崔南善의 鄕藥集成方論 - “科學魂의 보배로운 탑”
‘향약집성방’은 ‘전 세계 의학문헌사상의 앞을 밝히는 위대한 업적’ 평가

[한의신문] 崔南善(1890~1957)은 불행하지만 유능한 애국계몽운동가로 평가된다. 그는 1942년에 이전부터 이어져 온 『鄕藥集成方』의 판본을 정리해서 『重刊鄕藥集成方』을 간행한다. 여기에 ‘重刊鄕藥集成方序’라는 제목의 崔南善의 서문이 붙어 있다. 그 번역본(필자의 번역)을 아래에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이 글에서 『鄕藥集成方』을 “科學魂의 보배로운 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어진 성인의 다스림의 요체가 되는 도는 진실로 생명을 길러 근원을 보전함에 있었기 때문에, 예로부터 의학과 의술이 중시되었으니, 세종대왕의 치세 중에도 의학의 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神市에서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제정한 360여 가지 일 중에 ‘主病’·‘主命’의 두 강령이 분명하게 명시되었으니 震域(우리나라)의 고유의학이 반드시 흘러서 전해져 존재하였을 것이다. 중국과 서양의 양대 의학이 전하여져 세계의학의 정수가 이 땅에서 합쳐졌을 것이다. 신라의 효소왕 때(692년)에 이미 醫學(교육기관)이 설치되었고, 고려의 光宗(958년)이 과거제도를 실시할 때 의학이 그 중 한 과목이었다. 역대로 나라에서 의학권장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으니, 이 추세에 따라서 대륙 의서의 수입과 간행이 날로 증가하였다. 이렇듯이 각고의 노력은 마침내 의학 자립의 틀을 이루게 되었다. 고려 중엽 이후로 『濟生立效方』, 『禦醫撮要方』, 鄕藥方, 『診脈圖誌』 등의 저술은 실로 똑똑 떨어지는 샘물이 작은 물길을 이루고 다시 개천과 강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조선에 들어와서 수차례의 개정·증보를 거친 『鄕藥集成方』이 바로 그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장관을 이룬 것이다. 『鄕藥集成方』이 다만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전 東方의 의학 내지는 전 세계의 의학문헌사상의 앞을 밝히는 위대한 업적임은 다시 장황하게 말할 필요도 없다. 옛 성인들의 세상을 구제하고자 한 생각과 옛 백성들의 학문을 향한 타고난 능력이 세종의 뛰어나신 문화건설의 날카로운 뿔로 모여 드러나 거의 유감이 없었으니, 특히 우리들이 감격하여 찬양하고 추대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일변 과학화하자는 소리가 한창이지만 이른바 과학이 반드시 백성들을 지켜주기 위함인지는 의심스러워 과학의 숭상이 도리어 그 참된 요체와 동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때에 한 시대의 지혜와 능력을 오직 세상 사람들을 무병장수케 하는 면에 모든 노력을 쏟아 부은 『鄕藥集成方』을 대함은 의학적 입장을 초월하여 일반 인류의 학문적 양심을 촉발시키는 효과 또한 매우 크다. 최근에 행림서원의 사장인 이태호 군이 의학비급을 모아서 후대에 오래 전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맨 먼저 『鄕藥集成方』을 선택하였으니, 생각하건데 한 점 신령스러운 빛이 저절로 옛 道에 통한 것이다. 구태여 그 서문을 나에게 청한 것은 혹시 朝鮮光文會의 설립 초기로부터 이 책의 인쇄를 갈망하여온

미천한 뜻에 동감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내가 이 책에 서문을 쓸진데 뜻은 남음이 있지만 글은 가히 미치지 못함을 어찌하겠는가. 옛날에 『東醫寶鑑』이 국내외에 널리 유행하매 중국인 凌魚가 찬양하여 ‘옛 법을 신명케 하여 둘 사이의 빠진 느낌을 제거하였다’고 하였고, 林信篤은 ‘百書를 회통하여 衛生의 道가 이에 잘 갖추어졌다’고 칭송하였으며, 또 德川時代 말기에 多紀元堅의 무리인 丹波康賴가 『醫心方』을 교정, 간행할 때 『醫方類聚』를 같은 시기에 인쇄하여 완벽한 토대를 삼았다. 이제 『鄕藥集成方』은 그 공덕이 『東醫寶鑑』보다 더하고 효과가 『醫方類聚』보다 적절하여 어둠 속의 빛이 한번 발하면 十方에서 모두 우러러 봄이 끝이 없게 되는 것이니, 다시 무슨 구구한 군더더기 말을 필요로 하겠는가. 오히려 나에게 한마디 말을 필요하다고 한다면 이에 다시 한번 강조하여 말하노니, 학문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사물은 땅의 마땅함에 바탕하니, 科學魂의 보배로운 탑으로서 『鄕藥集成方』 한권이 진작부터 이 땅에 엄연히 존재한 것을 그대여 보라 할 따름이로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