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유니버시아드(2015. 7.3~7.14) 칼럼 (5)

조 철 원 광주광역시한의사회·맑은샘한의원장
오후 4시경 한 선수가 선수촌 진료실에 들어왔다. 왠지 낯익은 아이보리색 히잡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사람 얼굴을 기억하는데 낙제점인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 선수는 똑똑히 기억이 났다. 광주 유니버시아드 선수촌 진료실에서는 이렇게 초진으로 온 구면(舊面)인 외국 선수를 만나게 되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녀는 오만 출신의 태권도 선수 슈크리였다!
시간을 약간 거슬러 올라간 그날 일요일 아침. 태권도 사범이 장래희망인 초등학교 4학년 고집쟁이 아들과 태권도 경기를 보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 그런데 비바람이 거세고 태풍이 올 거라는 핑계로 경기를 보러가는 게 무리라고 생각해 아들을 회유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예정대로 경기를 관람하러 갔다.
슈크리(shoukri yusri k.)는 그 태권도 경기장 관중석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우리와 불과 십여 미터 떨어진 경기장에서 예선 첫 경기를 치르는 중이었다.
다부진 핀란드 선수와 맞서 싸워 수차례의 얼굴 공격을 정타 당했고 관중석에서 보는 이들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왠지 발이 무거워 보였다. 안타깝게도 24대 3이라는 큰 점수 차로 그녀는 패했다. 경기는 단 몇 분만에 종료됐다.
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던 그 슈크리 선수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얼굴을 맞대고 문진이 시작되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는 척을 해볼까. 위로라도 해야 하나. 하지만 문진을 하는 동안 타이밍을 놓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예상대로 슈크리는 대퇴 근육에 만성적인 부상이 있었다. 침 치료는 해본 적이 없고 원하지 않으며 굉장히 수줍음을 타는 듯 했다. 게다가 그녀는 외출 시에도 몸과 얼굴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이었다.
우선 침상으로 안내한 뒤 간단한 물리치료를 했다. 나는 침과 추나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모두 권하기로 결심했다.
얼굴을 맞대고 미력(微力)한 영어로 띄엄띄엄 아침에 있었던 사연을 끄집어 냈다. 그런데 정작 내가 했던 어색함과 걱정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그 수줍던 선수가 굉장히 밝은 표정으로 자기 얘기를 쏟아 냈다. 지질학(geology)을 전공했던 그녀는 태권도를 배운 지는 3년 반 정도 됐다고 했다. 오만팀의 귀국 일정까지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줄 땐 혹시나 알아듣지 못할까봐 배려하는 섬세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내 나이를 묻고 나서는 훨씬 젊어 보인다며 오히려 내 노안을 위로해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구면이라 그런지 서로 마음을 튼 덕일까. 그녀는 침 치료를 흔쾌히 허락했고 틀어진 골반을 바로잡는 추나 치료를 한 후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폴짝폴짝 뛰었다.
나는 그 동안 평범한 한의사로 살아왔다. 출근-진료-퇴근으로 이어지는 하루 일과가 내 일이었다. 그렇게 틀에 박힌 일상이 계속되던 어느 날, U-대회 진료한의사 모집 공문이 도착했다. ‘가능한 진료 시간을 적어 보내시오’ 라고 쓰여 있었다. 가능한 6일을 모두 적어서 답신을 보냈다.
그리고 2015년 여름이 됐다. 진료 일정표가 나왔고 6일 모두 진료 당번으로 채택 되었다. 새하얀 새 가운도 받았다. 출근-진료-퇴근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그리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수많은 사연과 인연과 진땀났던 진료실이 성화가 꺼지면서 곧 막을 내린다.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선수촌 진료가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U-대회 진료를 하게 된 것이 내 생애 커다란 행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