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의는 중국 고대과학의 보고이자 중화문명을 여는 열쇠”
마오쩌둥 “중국의 세계에 대한 많은 공헌 가운데 중의가 첫째”
중국중의과학원 투유유 교수가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중국 정부의 강한 중의약 육성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헌법 제21조에 중의학을 서양의학과 동일한 위치에서 발전시켜야 함을 명시하고 있는 중국.
이같은 헌법 정신에 따라 중국의 역대 정치 지도자들은 중의약 육성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국의 세계에 대한 많은 공헌 가운데 중의가 첫째다. 중의의 일부 원리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치료를 하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진리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대표적 발언이다. 이와함께 마오 주석은 “중국 중의학은 위대한 보고이므로 적극 노력하여 발굴해야 하며 끊임없이 수준을 제고해야 한다.”, “침구는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과학이다. 중의침구는 해외로 진출하여 전 세계 인민이 질병 치료에 침구를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고 말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오 주석, 중의학은 위대한 보고다
이같은 마오 주석의 중의약에 대한 관심으로 중의약은 1950년대 중반부터 현대 주의의 첫 번째 고조기를 맞았다.
1952년 위생부는 의정국내에 중의행정관리기구인 중의과를 설치하고, 1954년 위생부에 중의사(中医司)를 설립, 부부장을 임명해 중의를 서의와 분리해 직접 관리하도록 했다.
1956년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청두 등에 첫 번째 중의학원이 설립됐으며 서양의학학교 내에 중의계열 혹은 중의약 과정을 설치함으로써 이때부터 중의 교육은 정식으로 국가고등교육 체제에 진입하게 된다. 이 시기에 침구마취, 소협판 등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연구 성과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화혁명 10년 동안 중의계와 중의약사업은 심각하게 위축됐다.
중의약종사자 수는 전국적으로 대폭 감소했으며 인재가 부족해 의술이 실전되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중국 정부는 이론에 정통하고 임상경험이 풍부한 ‘중의사 육성’을 운영하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56호 문건 : 1978년)
“중의약 후계자가 부족한 문제의 해결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중의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창조해야 한다. 그러므로 56호 문건에 중국공산당중앙 명의의 ‘특별 지시’를 첨가하여 하달할 것을 건의한다.”
덩샤오핑 주석, 헌법에 중의약 육성 명기
덩샤오핑 주석은 1978년 9월 ‘중의정책의 진지한 관철과 중의대오의 후계자 결핍문제에 대한 보고’ 56호 문건을 배포하며 이같이 밝혔다. 당시 중의계는 “제 때에 내린 비와 같다”며 환영했다.
덩샤오핑 시대에 중의약 사업은 새로운 발전기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1980년 위생부는 ‘전국 중의 및 중서의결합공작회의’를 개최했으며 ‘중의중약의 현대화 실현’을 지시했다.
1982년 후난(湖南) 형양(衡阳)에서 개최된 ‘전국 중의의원 및 고등중의교육공작회의’는 “중의기구는 반드시 중의특색을 유지하고 발양해야 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같은 해 “국가는 현대의약과 중국 전통의약을 발전시킨다”는 조항이 ‘중화인민공화국헌법’ 제 1장 총강 제 21조에 들어가게 된다.
이로서 중국은 세계 최초로 전통의학에 대한 법률적 보호를 확정한 나라가 됐으며 이후 헌법에 근거해 중의와 서의를 동등한 지위에 두게 됐다.
장쩌민 주석, 중의약 현대화 추진
중의약 사업의 진흥과 중의약 현대화를 추진한 장쩌민 주석은 중의와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장쑤(江苏) 양저우(扬州)의 중의세가에서 출생했으며 조부인 장쓰시(江石溪)는 중의이론에 정통한 중의사인 동시에 국사에도 적극적으로 임해 장쩌민 주석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쩌민 시대에 중의중약은 큰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장쩌민은 저우언라이에 이어 국제적인 정계 요인들을 통한 중의약 알리기에 적극 나섰다.
2001년 5월 러시아 전 총통 옐친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장쩌민은 그에게 중의치료를 받도록 했다. 옐친부부가 러시아로 돌아간 후, 러시아 사람들은 그의 건강상태가 크게 개선된 것을 보고 이때부터 러시아는 중의약을 주목하게 됐다.
“현대과학기술을 적극 이용해 중의약이론과 임상실천을 발전시키고, 중의약 현대화를 실현하여 인민건강을 더욱 증진해야 한다. 중의, 서의의 단결을 강화하고 상호학습, 상호보충하여 중서의결합을 촉진하자.”
후진타오 주석, 매일 중의경전 연구
장쩌민 주석은 1996년 12월 전국위생사업회의에서 이같이 연설했다.
후진타오(胡锦涛) 주석은 매일 오전, 황제내경, 상한론 등의 중의경전을 연구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수시로 안후이(安徽) 중의학원의 노중의와 중의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며, 손자가 병에 걸리면 손수 중약음편을 처방할 정도로 중의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후진타오 시대에 중의는 2006년, 돌발적으로 발생한 ‘중의존폐논쟁’을 겪는다. 반중의인사들의 ‘중의취소 인터넷서명’으로 시작된 ‘중의존폐논쟁’에 대해 중국 정부는 국무원부총리 우이(吴仪)를 통해 “중의에 대한 일체의 의심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소비적 논쟁을 잠재우고 중의계로 하여금 중의약 발전에 전념하도록 했다.
이후 중의약은 ‘중장기과학기술발전규획강요’의 ‘인구와 건강’ 연구영역의 4대 중대과학연구의 하나로 결정되고 2007년 1월 과기부를 비롯한 16부서가 연합해 ‘중의약창신발전규획강요(2005-2020년)’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2009년에는 국무원이 ‘중의약사업발전 지지와 촉진에 관한 약간의견’(이하 약간의견)을 정식으로 선포하는데 이는 중의약사업의 발전사에서 이정표적 의의를 지닌 강령성 문건이며, 당과 정부가 중의약사업을 국가발전전략에서 중요한 위치에 배치한다는 표지다. ‘약간의견’ 이후 중의약 발전은 국가 유관부문과 각 성차원에 이르기까지 중점사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각 지방별로 앞다퉈 중의약발전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고 중의약 관련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2004년 7월, 상하이上海약물연구소 천연약물화학실험실 참관 자리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중약현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중의는 현대기술을 이용하여 중약을 더욱 잘 만들어서 세계를 향해 중국의 전통재부를 내놓아야 한다. 중의중약 연구자들은 생물과학기술의 성과와 중국 민족이 쌓아온 귀중한 의학자산을 결합하여 반드시 새로운 차원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주석, 중의는 중화문명 여는 열쇠
시진핑 주석은 2010년 6월, 호주 로얄멜버른이공대학 중의공자학원 현판식에 직접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중의는 중국 고대과학의 보고이며 중화문명을 여는 열쇠다. 중의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과학적 정리는 세계의학을 풍부하게 하고 생명과학연구에 적극적 역할을 할 것이다. 중의공자학원은 전통과 현대중의약을 중국어 교육과 융합하여, 호주 인민들이 중국문화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중국과 호주 인민의 소통과 우호증진에 새로운 교량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