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유행성 독감’ 퇴치를 위한 대구시한의사회의 무료진료활동

[한의신문]1956년 간행된 『東方醫藥』제3권 제4호에는 ‘유행성 독감과 싸운 醫功. 대구한의약단체–시민의 무료진료로 높은 의료봉사 칭송하자’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돼 있다.
이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1956년 8월 3일부터 12일까지 경상북도한의사회, 대구한의사회, 대구시한약협회 등 3개 단체 합동으로 대구시내 동성로 덕제한의원에 ‘유행독감 한방무료진료소’를 설치하고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실시했다. 하루 평균 來院患者는 100여명이었고 투여된 한약의 첩수는 하루 평균 200여첩이었다고 한다.
이 시기 전염병 관련해 이 잡지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우리 신생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래 동서의약인들로서 이루어진 여러 가지 대중보건사업과 위생사업의 발전과 향상은 국민보건 향상의 관건이며 국민증강의 일대요소가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좀 먹는 병을 논할 것이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그 중에서도 국민만년지대계를 이울 우리 민족의 건강을 끊임없이 좀 먹고 있는 전염성 질병(장질부사, 호열자, 발진티프스, 흑사병, 홍열, 기타 법정전염병 10여종 등)과 같이 무섭고 대중적 인명의 손실을 주는 병은 보편적으로 희소할 것이고, 전염병이라고 하면 누구나 다 공포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금년 7월에 유래로 보기드믄 인프렌자란 유행성 독감이 해외로부터 침습하여 이 땅에 만연일로로 한 때의 방역 치료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러한 국가적 상황은 무언가 적극적 치료 활동이 요구되는 것이었기에 경상북도한의사회, 대구한의사회, 대구시한약협회 등 3개 단체가 협동해 진료소를 개설하여 무료진료를 하게 된 것이었다. 10일에 달한 이 기간동안 한의사 5人은 자발적으로 계속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충실히 진료를 하여 새로운 仁術醫道를 열게 된다. 이 시기 유행성 독감에 사용한 한약 처방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 구체적인 기록은 없지만 같은 호에 나온 중화한의원 우인평 원장의 ‘傷寒與濕溫症之治療經驗’이라는 글에 나오는 처방들에서 그 일부를 파악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당시 유행병에 사용된 처방으로 치자시탕, 갈근총백탕, 총시탕, 형방패독산, 계지탕, 대승기탕, 지실도체탕, 양격산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 사업을 위해서는 사업비가 필요했다. 이에 당시 한의계에서 명망있는 인사인 鄭鉉坤, 呂元鉉, 鄭奎萬, 金秀旭, 朴在奭, 朴義仲, 李貢鎬, 崔海鍾 등이 당시로서는 거금이라고 할 수 있는 액수의 돈을 기부하였다. 鄭鉉坤은 대구한의사회 회장으로 봉사했던 인물이다. 이들 한의사들은 이후에도 대구한의사회 회관을 건립할 때 각종 기부금을 쾌척하였다.
鄭鉉坤은 1958년 대구한의사회 회관을 건립하고자 할 때에도 사재 100만환이 든 통장을 기부하였고, 이 돈과 呂元鉉의 기부금을 합하여 남성로에 대구한의사회 회관을 건립하는데 기초 기금이 되었다.
呂元鉉은 1958년에 경상북도한의사회 부회장, 1962년부터 1968년까지 경상북도한의사회 회장을 역임한 한의사이다. 鄭奎萬은 경상북도 선산군 출신으로서 대구 약령시에 활신한의원을 개원하여 활동한 한의사이다. 그는 1958년 경상북도한의사회에서 회관을 만들고자 회관신축기성회를 만들었을 때 회장 여원현, 공동부회장 권세영, 총무 이종필 그리고 이사 9인과 함께 이에 적극 참여하여 추진 노력을 구체화시켰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