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판매업체에 맹장수술 맡기고 동의 없이 유명 의사 대신 집도하고…
윤소하 정의당 의원, 집도 의사 밝히고 환자에게 동의 구하는 ‘의료법 개정안’ 발의
# A씨는 마취 중에도 사람을 알아볼 만한 분별력은 남아 있었다. 사각턱 수술을 침대에 누운 후 의사에게 마취를 받고 깼는데, 그의 앞엔 자신의 성형을 집도하겠다고 밝힌 의사와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당신 누구세요?” 그는 급한 마음에 소리쳤다. 팔 부위에 주사위 바늘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더니 의식이 혼미해졌다. 해당 병원이 상담 의사와 집도 의사가 다른 ‘그림자 의사’ 수술을 하는 기관이었단 사실은 한참 후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
# 맹장의 통증을 느낀 B씨는 경남 김해시의 한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수술실로 들어온 의사를 보는 순간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등 B씨를 대하는 태도가 어색했기 때문이다. 기분 탓이라고 여긴 B씨는 우연히 접한 환자 피해자 단체를 통해 알게 됐다. 자신의 맹장을 수술한 이는 해당 종합병원장의 지시로 대신 집도한 의료기기 판매업체 대표였다.
무적격자나 검증되지 않은 의사가 환자에게 수술 등을 집도하는 ‘대리수술’ 행태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 22일 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 등이 공동 발의한 이 법안은 의사가 수술을 받을 환자에게 집도할 의사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만큼 대리수술이 양방의료계의 뿌리깊은 관행으로 이어져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리 수술에도 종류가 있다. 검증되지 않은 의사가 환자와 상담한 의사 대신 집도하는 이른바 ‘그림자 의사’가 첫 번째 유형이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삼성서울병원 김 모 교수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김 교수는 환자 동의 없이 후배 의사에게 대리수술을 맡겼다가 환자 가족의 제보에 의해 적발됐다. 제보자의 동생은 자궁근종 수술로 유명한 김 교수를 찾아 수술을 받았지만, 일주일 후 풀린 실밥에 의한 과다출혈로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두 번째는 의료기기 영업사원이나 대표 등 면허가 없는 무적격자가 수술에 참여하는 형태다. 병원가에서는 이를 ‘오더리’라고 부른다. 의사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남자 간호 조무사들을 가르키는 비공식 의료용어다. 보건복지부는 오더리의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미국 뉴저지 대법원은 지난 1983년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자가 수술을 하면 살인미수로 기소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리수술은 지난 2014년 4월 대한성형외과의사회의 제보로 처음 알려진 후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 등 시민단체가 합류하면서 세상에 좀 더 많이 알려졌다. 문제는 대리수술을 적발하는 것도 힘들고, 적발한다고 해도 법적 책임이 가볍다는 점이다. 지난 해 발족한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는 피해자로부터 52건을 제보받았지만, 형사고발까지 간 사례는 4건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환자가 수술실 내부 상황을 녹음한 파일을 같고 있는 경우였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 대표는 지난 7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본적으로 수술실 안에서 이뤄지고 환자는 전신마취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입증이 쉽지가 않다”며 “자기 신체 노출되는 것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수술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누가 수술했는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의료 서비스 피해구제 접수 건수는 총 1015건으로 2011년의 833건보다 21.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