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점과 개량의 방법을 찾아내자”
安秉國敎授의 一金方論

[한의신문]『一金方』은 구한말 咸興에서 활동하던 한의사 金弘濟가 『東醫寶鑑』을 근간으로 자신의 독창적인 견해를 더하여 지은 의서로서 1928년에 간행되었다. 이 책의 저자 金弘濟에 대해서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353쪽에서는 韓東錫의 스승이며, 李濟馬의 제자로 기록하고 있다.
1975년 간행된 『一金方』에는 安秉國敎授의 서문이 붙어 있다. 아래에 그 서문을 덧붙인다.
“『一金方』 發行에 부친다.
이 珍本에 序文 및 跋文이 없어서 그 經論에 對하여 알 길이 없으므로 甚히 遺憾된 일이나 西紀 一九二七年(昭和二年)十二月에 우리나라 咸鏡南道 咸興郡에서 金弘濟란 醫者가 編集한 것으로 現 서울 乙支路(日帝 때 黃金町)에서 發行된 것이다. 一金이란 中國 漢代에 黃金一斤에 對한 名詞인데 『戰國策』 註에는 黃金 二十兩이라 하였다. 定義야 어찌 되었던 이 책에 收錄된 한 治法 및 處方이 治療上에 있어서 人命을 救濟하는 價値가 一金과 比等하다는 뜻으로 解釋된다.
此書는 모두 八卷으로 되었고 體裁가 『東醫寶鑑』의 順序와 같이 各科가 엮어져 있다. 그 中에서 脈學은 許浚이 引用하지 못한 李時珍(瀕湖)의 것을 傳寫하였는데 楊上善의 太素通玄賦에 言及한 것이 異彩롭다.
本草는 『醫學入門』의 本草分類에서 原註는 빼고 그대로 引用하였으니 推理하여 보건데 從來에 康命吉의 『濟衆新編』과 黃度淵의 『醫宗損益』·『方藥合編』에 있는 藥性歌는 主로 中國 明代 『壽世保元』에 根據한 것으로 너무 一方的이며 自家經驗에만 치우치고 簡略하므로 內容이 보다 豊富한 『醫學入門』의 것으로 代替한 것 같다.
卷三에는 運氣學에 對하여 骨子가 되는 文獻만을 選入하고 여기에다 各各 該當한 鍼法의 補瀉를 區別하여 附記한 것이 特色이며 子午流注鍼法에 對해서는 當時에 應用하던 陰遁 및 陽遁의 起例를 說明하기 爲하여 많은 圖表를 揷入하여 學習의 便宜를 提供한 點이 역시 他醫書보다 時異하다 하겠다.
西紀一九二四年 南采祐의 著인 『靑囊訣』보다 三年 뒤에 있어서 距今 四十八年前에 우리나라 時히 咸鏡道에서 施行된 漢醫學上의 治療法을 이 책이 傳해줌으로서 因하여 그 大體를 把握할 수 있을 뿐 아니라 金弘濟의 自家見解를 添附하여 發表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同時에 當時 漢醫學의 要點과 改良을 試圖한 編集으로 不佞은 後生이 取할만한 要點이 많다고 느끼며 硏究하여 볼 點이므로 江湖 硏究家에게 널리 推薦하는 바이다.
乙卯 一九七五年 十二月 二十五日 於 慶熙大學校 漢醫學部 內科總論敎室 敎授 一咲 安秉國 志”

安秉國 敎授(1919∼1996)는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고전 의서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해독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위의 글에서 安秉國 敎授는 일제강점기 金弘濟 先生이 저술한 『一金方』이라는 서적을 발굴하여 서문과 발문이 없음을 발견하고 전모를 적어 의사학적 맥락을 짚어주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이 1920년대의 흐름인 한의학의 “要點과 改良을 試圖한 編集”이라는 키워드를 잘 만족시키고 있다는 것에서 그 의의를 찾고 있는 듯 싶다. 게다가 당시 함경도에서 시행된 한의 치료술의 흐름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귀한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게다가 金弘濟의 自家見解를 添附하고 있다고 한다.
정지훈은 「『一金方』에 보이는 溫補學說」이라는 논문에서 『일금방(一金方)』의 치료 방법은 보양(補陽)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온보학설(溫補學說)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하였다. 처방에 있어서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을 많이 활용한 것이라든지, 새로 만든 처방에는 한결같이 숙지황(熟地黃)을 군약(君藥)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또 시기나 상황에 따라 약제를 자유로이 가감한 것 등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