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대에서 경희대 한의대로”
1969년 『慶熙二十年』에서 묘사하고 있는 경희대 한의대의 역사

[한의신문]『慶熙二十年』은 1969년 10월 30일 출판된 慶熙大의 20년 역사책이다. 이 책은 1949년 개교 이래 1969년에 이르기까지 慶熙大가 20년간 걸어온 발자취를 기록하고 있다. 초창기 신흥초급대학으로 시작하여 한국전쟁을 맞아 경영난을 맞게 되어 趙永植先生이 재단을 인수하게 되어 힘찬 새출발을 한 후 新興大學을 거쳐 慶熙大學으로 교명을 바꾸고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초창기 慶熙大學校의 청년시기를 적고 있는 기록이라 할 것이다.
이 자료를 보면 경희대학교 한의학과가 설치되어 발전하는 시작점을 발견하게 된다. 慶熙大는 東洋醫科大學을 인수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이 책의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당시 趙永植總長은 10개의 단과대학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특히 醫藥系列의 대학을 세우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던 東洋醫科大學의 흡수합병에 대한 건이 대두되었다. 東洋醫科大學의 흡수합병에 나섰던 대학은 당시 7〜8개에 달하는 등 경쟁이 치열하였다. 각종 어려운 과정이 있었음에도 이를 극복하고 1965년 4월 27일 흡수합병이 결정되게 된다.
그 과정에 대해 『慶熙二十年』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 내용을 아래에 全載하여 독자 여러분들의 참고가 되시기를 바란다.

오랜 교섭과 절충 끝에 재단법인 高凰財團이 杏林學園을 흡수 병합하는 절차가 진행되었다. 高凰財團에서 제출한 「東洋醫科大學을 引受 經營하기 위한 計劃書」를 놓고 65년 1월 중순께 열린 財團法人 杏林學園 假理事會(이사장: 趙元準. 이사: 金箕斗, 金容哲, 金賢濟, 閔庚天, 宋慶國. 감사: 李基淳, 金聖煥)에서는 장시간 논의 끝에 高凰財團과 병합키로 결정, 高凰財團에서 추천한 正理事 7명의 취임인가를 문교부에 신청키로 결정했다. 3월 4일에 제출된 동 신청서가 3월 20일 문교부에 의해 승인되었다.
이리하여 고황측 추천 이사 7명과 東洋醫科大學長 李鍾奎를 합쳐 8명으로 개편된 杏林學園 이사회는 3월 22일 시내 미장그릴에서 제1차 회의를 열고, 이사장에는 고황재단 이사장 吳貞明여사를, 또 감사에는 金明福敎授(경희대 체육대학장)와 朴魯植敎授(경희대 문리대학장)를 선출했다. 4월 27일 본교 총장실에서 열린 행림학원 제2차 이사회에서는 학교법인 행림학원을 고황재단에 흡수 병합시키고 東洋醫科大學을 慶熙大學校로 흡수 병합시킬 것을 결의했다. 한편 29일에 열린 고황재단 이사회에서도 이와 상응되는 사항을 결의하였다. 이리하여 양쪽 이사장의 공동명의로 합병인가신청서를 문교부에 제출하였던 바, 많은 대학과의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9월 3일자로 정식 인가되었다. 이리하여 東洋醫科大學을 慶熙大學校 醫科大學으로 이름을 고쳐 趙永植總長과 李鍾奎學長이 안암동 교사에서 학교 간판을 고쳤다는 校名改名式을 가졌다.
이보다 앞서 4월 27일에는 東洋醫科大學合倂慶祝式이 노천극장에서 거행되었다. 안암동 교사에서 스쿨버스르 타고 환영식장에 도착한 東洋醫大 학생들은 대표가 꽃다발을 받고, 학생 전원에게 경희대 여학생들이 경희의 배지를 달아주는 등 환영식장은 열을 띠었고, 오후에는 조영식 총장, 이종규 학장을 비롯하여 東洋醫大의 新舊理事, 기타 교수 직원들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부속병원 기공식을 거행했다. 또 이어서 이들 새 식구가 참석한 가운데 신입생 환영회가 임간교실에서 열리는 등 경축무드가 캠퍼스에 넘쳐 흘렀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