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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28일 (화)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360)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360)

“淸나라 末期 中醫學 敎育을 위해 이렇게 노력했다”



淸나라 末期 中醫學 敎育



kni-web[한의신문] 中國 淸나라는 1911년 辛亥革命이 일어나 孫文을 대총통으로 하는 中華民國臨時政府가 수립되면서 멸망하게 됐다. 이 무렵 中醫界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中醫學 敎育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하 趙洪鈞, 『近代中西醫論爭史』(安徽科學技術出版社, 1989)의 ‘第二節 淸末的中醫敎育’을 참조했다.



1892년 개혁적 中醫學 敎育論을 들고 나온 인물은 鄭觀應이었다. 그는 『盛世危言』卷十四 ‘醫道’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땅히 모든 책들을 고찰하고 西法을 참조하되, 太醫院으로부터 일률적으로 상세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各 省府州縣鎭市에는 자본을 모아서 醫院을 건립하는데, 名醫를 선발하여 院長으로 충당한다. 醫學을 공부하는 모든 학생들은 그 수준에 따라서 입학시켜 학습시킨다. 마음을 다해서 가르친다.…中外를 나누지 않고 몇 년동안 학습해서 성과를 이루도록 한다.”



개혁파인 梁啓超는 『醫學善會叙』에서 “中西의 理法을 采取하여 총명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하나의 學堂을 만들자”라고 주장하였다(梁啓超, 『飮氷室文集』권4).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반영되지 못하였다.



1901년 이후 ‘新政’을 주도한 洋務派는 의학교육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지 않다가 1903년 발표한 ‘奏定大學堂章程’을 통해 명확하게 의과과정에 대해서 규정하기 시작하였다. 중의학교육은 29부문 과정의 하나에 불과하였지만 首位에 나열하였다.



이것은 ‘中學爲體’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분위기는 어떻게 西醫를 도입할 것인가가 중심이고 中醫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입장이 많았다.



1904년 何廉臣은 최초의 中醫雜誌인 『醫學報』에서 서양의학에 대한 무분별한 수용을 비판하고 교과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과학적 방법으로 중의학의 사상을 정리할 것을 주장하였다(“今日中醫開智莫若仿歐美治科學之法, 先編定敎科書, 將中醫之缺者補以西法…若銳志維新…恐于中國風土習慣難得密合.”). 1906년 周雪樵는 中醫學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中西醫學의 소통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今之言改良醫學者莫不知注重學堂矣. 然醫學堂有元素焉, 則敎員, 宗旨, 課本是也. 敎員之選尙非難事…若夫宗旨則中西醫不可不通, 而中醫又不可廢棄, 合中西而論又不能相通也, 則課本之編殆非易矣.”).



2122-30-1淸나라 末期에 民間에 설립된 中醫學敎育機關은 다음과 같다.



①紹興醫學講習社: 1904년 杜煒孫이 紹興에서 창설함.

②女子中西醫學院: 1905년 李平書, 張竹君이 상해에 세움.

③南洋中西醫學堂: 1905년 吳淞에 세움.

④山西醫學館: 1907년 周雪樵를 敎務長으로 초빙.

⑤中國醫學會附設講習所: 1910년 蔡小香, 丁福保가 上海에 세움.

⑥中西醫院附設硏究所: 1908년 세움.

⑦中等醫學堂: 1908년 惲敏鼎이 北京에 세움.

⑧鎭江自新醫學堂: 1910년 袁桂生이 鎭江에 세움.

⑨函授新醫學講習所: 1910년 丁福保가 上海에 창립.



위의 교육기관 가운데 丁福保가 세운 函授新醫學講習所가 中醫學界에 西醫學의 지식을 소개한다는 명확한 기치를 내걸었다. 紹興醫學講習社와 中國醫學會附設講習所는 실제로는 中醫들이 西醫를 토론하는 학술단체이다. 鎭江自新醫學堂에서는 목표를 “發明新理, 中西會通, 造成完全醫學之材”로 하였다. 學制는 4년이었고, 13세부터 20세까지의 청소년을 학생으로 받았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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