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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묶인 보험한약 규정, 이제는 바꿔야 할 때”[한의신문] 1990년 이후 단 한 차례도 바뀌지 않은 56개 기준처방. 건강보험용 한약제제는 지난 36년간 급여 범위가 사실상 동결된 채 운영돼 왔다. 그 사이 의약품 시장에서 한약(생약)제제의 비중은 꾸준히 커졌지만, 정작 건강보험 안에서는 의료계도 산업계도 한약제제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구조가 굳어졌다. 이에 김영수 대한한의사협회 약무이사로부터 건강보험용 한약제제의 현주소와 제도 개선 방향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Q. 건강보험용 한약제제 제도의 현황을 짚어 달라. 건강보험용 한약제제는 1987년 한방건강보험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68종 단미엑스산제와 26개 기준처방으로 출발했고, 1990년 56개 기준처방으로 확대됐다. 문제는 그 이후다.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급여 범위는 단 한 번도 확대되지 않았다. 지금도 급여목록에는 56개 기준처방과 68종 단미엑스산제, 그리고 단미엑스산제를 물리적으로 혼합한 ‘단미엑스혼합제’만 등재될 수 있다. 이 방식은 제정 당시의 제약 기술과 임상 환경을 반영한 것이다. 이후 질병 구조가 바뀌고 제약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제도는 그대로다. 처방을 새로 등재할 절차 자체가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일본은 148종, 대만은 430여 종의 복합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 제도가 얼마나 좁은 틀에 갇혀 있는지 알 수 있다. Q. 의약품 시장 전체를 보면 한약(생약)제제의 위상은 오히려 커졌는데. 바로 그것이 역설이다. 일반의약품(OTC) 시장에서 천연물 성분 의약품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약국에 가면 생약 성분의 소화제, 감기약, 진해거담제, 자양강장제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소비자들의 선호도 높다. 국민은 이미 일상에서 한약(생약)제제를 폭넓게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천연물의약품에 대해 가장 깊이 있는 전문 교육을 받고, 진단부터 처방까지 책임질 수 있는 한의사의 역할은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한약제제는 성분 특성상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선택할 때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이다. 전문가의 진단과 관리 아래 사용되는 경로, 즉 건강보험용 한약제제를 확대하는 것이 국민이 한약(생약)제제를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길이다. 시장은 커지는데 전문가의 관리 영역은 좁아지는 지금의 구조는 국민 건강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Q. 임상 현장에서는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 첫째는 보상 구조다. 한의원에서 한약제제를 처방·조제할 때의 처방료와 조제료를 합쳐도 1일분에 1000원 남짓에 불과하다. 2026년 기준 약국의 1일분 총조제료가 6000원을 넘는 것과 비교하면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것은 특정 직역과의 형평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의약품을 선택하고 조제해 투약하는 전문적 행위에 대한 보상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약제 자체의 상한금액도 낮아, 좋은 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처방하기 어려운 구조다. 둘째는 65세 이상 정액제다. 총진료비가 정액 구간에 묶여 있다 보니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보다 총액을 넘기지 않는 저가 약을 선택하게 되는 왜곡이 발생한다. 실제 청구 건수는 지난 10년간 2배로 늘었는데, 약품비 증가는 그에 크게 못 미치는 기형적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진료의 질을 수가 구조가 끌어내리고 있는 셈이다. 셋째는 처방 구성 자체다. 56개 처방은 36년 전의 질병 구조를 기준으로 짜여 있어, 현재 한의원을 찾는 근골격계·소화기·호흡기 질환과 만성질환 환자들에게 필요한 처방이 충분히 담겨 있지 않다. Q. 의약산업계 상황도 심각하다고 들었다. 그렇다. 2024년 기준 국민건강보험 약품비 26조8373억 원 가운데 한약제제 약품비는 441억 원, 비율로는 0.165%에도 미치지 못한다. 생약 원료 가격과 GMP 품질관리 비용은 매년 오르는데 약가는 사실상 묶여 있으니, 제약사 입장에서는 만들수록 손해인 품목이 늘어난다. 그 결과 당귀육황탕, 대청룡탕, 백출산, 인진호탕 등 급여목록에는 있지만 실제로는 생산되지 않는 품목이 계속 늘고 있다. 급여목록에 이름만 남은 처방이 많아진다는 것은 제도가 임상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시장이 축소되니 제약사는 신제품 개발이나 R&D 투자를 할 수 없고, 좋은 제품이 나오지 않으니 사용이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다. 어려운 지금의 상황은 의료계나 산업계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풀 수 없다.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Q. 협회가 추진하는 개선 방향은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천연물원료 의약품의 급여 인정이다. 현행 규정상 한약제제 단미엑스제와 혼합제로 이뤄진 형태로 매우 제한적으로 급여화가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같은 한약재라도 추출 방식, 배합 원리 등에 따라 다양한 의약품(제제)의 구성으로 만들 수 있다. 지금 방식으로는 한약제제의 확대에 큰 제약이다. 따라서 한약을 기반으로 하는 천연물의 전문가인 한의사가 다양한 천연물원료 의약품을 환자에게 적절히 처방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양방도 한약을 근간으로 하는 의약품이 급여가 되고 그 시장은 넓어지고 있는데 한의에서 급여가 되지 않은 것은 매우 불합리하며, 이는 한의학 발전의 저해뿐 아니라 환자의 치료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 둘째, 처방 항목의 전면 개편이다. 임상 다빈도 처방과 사상처방 등 현장 수요가 검증된 처방을 새로 등재하고, 생산이 중단된 품목은 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신규 처방을 등재하고 주기적으로 목록을 재평가하는 절차를 제도화해, 다시는 36년간 방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약가 현실화와 수가 개선이다. 원가를 반영한 약가 산정 기준을 마련하고, 처방·조제 행위에 대한 정당한 보상 체계를 갖추며, 65세 이상 정액제 구조도 개선해야 한다. 이런 개선이 공허한 요구가 아니라는 근거도 있다. 2016년 정제·연조엑스 등 제형 개선이 이뤄지자 해당 제제의 청구가 큰 폭으로 증가했고 환자 만족도도 높았다. 제도가 조금만 움직여도 시장과 임상이 즉각 반응한다는 것이 이미 확인된 것이다. Q. 회원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어려운 수가 여건 속에서도 많은 회원이 자발적으로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만들어 보험한약 임상 경험과 처방 노하우를 공유하고, 진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써 오셨다. 이런 활동이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으로 이어지는 등 대외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보험한약의 명맥을 지켜온 것은 제도가 아닌 회원들의 헌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헌신이 바로 제도를 바꾸는 힘이라고 말 하고 싶다. 임상 현장의 사용량은 산업계가 생산과 투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신호고, 현장에서 축적되는 임상 근거는 정부를 설득하는 가장 강력한 자료다. 실제 급여 확대와 약가 협상의 테이블에서 결정적인 것은 “현장에서 얼마나 쓰이고, 어떤 치료 성과를 내고 있는가”다. 회원들이 쌓아온 임상 경험과 근거가 곧 정책의 근거가 된다. 협회는 그 목소리와 데이터가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책임지고 뒷받침하겠다. Q. 건강보험용 한약제제 활성화의 비전을 말해 달라. 한의약의 강점은 두 축으로 발휘된다. 하나는 환자 개개인의 체질과 상태에 맞춰 처방하는 개인맞춤형 의학으로서의 조제한약(첩약)이고, 다른 하나는 표준화된 품질로 신속하고 경제적으로 처방할 수 있는 급여 약제로서의 한약제제다. 이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다. 맞춤형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첩약을, 신속한 표준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보험한약을 적극 활용할 때 한의진료의 폭과 깊이가 모두 살아난다. 이는 한약제제 활성화가 단순히 한약제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천연물의 매커니즘을 가장 잘 아는 한의사들이 전통적인 한의학에 천연물 원료 치료 의약품을 치료에 덧붙여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해 한의약의 육성 및 획기적인 치료 패러다임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낼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협회에서도 이러한 노력을 적극 해나갈 것이다. -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68)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달 전에 한국동양의학회 김영신 회장이 타계했다. 근현대 한의학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한·일 전통의학 교류의 길을 탐색했던 큰 별이 진 것이다. 필자는 약 11년 전인 2015년경, 『조선 이코노미』의 ‘한방명의 열전’ 시리즈를 진행하며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동산한의원에서 김영신 회장을 직접 취재하고 대담을 나눈 인연이 있다. 당시 마주했던 김영신 선생은 단순한 임상가를 넘어, 동아시아 의학의 역사적 흐름을 꿰뚫고 있는 탁월한 안목의 소유자였다. 고인이 된 그를 추모하며, 취재록에 남아 있는 그의 독특한 개인사와 한의학적 업적을 의사학적 관점에서 다시 기록하고자 한다. 최근 일본에서 열린 일본동양의학회의 한국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해 이종안 국제동양의학회 사무총장(배원식한의원장)을 통해 밤을 세가면서 김영신 회장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도 여기에 참조했음을 밝힌다. 김영신은 1955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출신 한의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일본 최고 명문 사립 중 하나인 와세다실업학교를 거쳐 다쿠쇼쿠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인재였다. 졸업 후 부모의 나라인 한국으로 건너올 때까지만 해도 경영학도로서의 미래를 그렸으나, 우연히 접한 한의학의 깊이에 매료되면서 인생의 항로를 전면 수정했다. 인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우주로 바라보고 근본을 치료하는 의학철학에 빠진 그는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한 후 1984년 졸업하고, 1990년 동 대학원에서 한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이 유년기의 추억을 간직한 곳이라면, 한국은 그의 인생 전성기를 함께한 한의학의 모태였던 셈이다. 그의 개인적 배경은 임상과 연구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김영신 회장은 환자를 진료할 때 問診을 매우 철저히 하고, 환자의 증상과 치료 기록인 차트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는 일본에서의 학창 시절부터 체득한 정밀함과 기록을 중시하는 태도가 몸에 밴 결과였다. 그는 치료가 어려운 질환에 대해서는 환자에게 솔직하게 고지하며, 무리한 투약보다는 질병과 조화를 이루며 건강 수명을 늘리는 ‘삶의 질’ 중심의 의료철학을 실천했다. 필자와의 대담에서 김 회장이 가장 강조했던 것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 ‘한의학 말살정책’에 대한 역사적 비판과 현대적 대안 제시였다. 그는 일제의 한의학 왜곡과 1913년 제정한 醫生 제도가 한·양방 갈등의 비극적 시발점임을 명확히 짚어냈다. 메이지유신 이후 전통의학을 양의학 아래 강제 편입시켜 학문적 발전을 정체시킨 일본의 과오를 경계한 것이다. 동시에 일본 의사의 80% 이상이 한약을 활용하고 한·양방 융합에 적극적인 현실을 언급하며, 한국 한의계가 기본적인 현대 기기조차 쓰지 못하게 하는 규제의 모순을 강하게 비판했었다. 그는 진정한 국익과 전통의학의 발전을 위해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고 과학적 도구를 허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학문적 실천력은 국제동양의학회(ISOM) 활동에서 가장 큰 결실을 맺었다. 김 회장은 한국 한의학이 옛 동아시아 의학의 정통 본류를 온전히 보존한 유일한 의학이라는 확고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소수의 약재만 쓰는 일본의 腹治醫學이나 침구에 치우친 중국의 中醫學(TCM)과 비교해, 한국은 독자적인 제도 하에서 높은 학문적 수준과 처방의 깊이를 유지하고 있다는 논지였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2003년 중국의 사스(SARS)를 한·양방 병행 치료 성공 사례와 WHO 권고안을 인용하며 “감염병에 맞서 몸의 면역력과 저항력을 키우는 한의학적 정책이 시급하다”고 했던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선하다. 시대를 앞서간 혜안으로 근현대 한의학의 영토를 넓혔던 故 김영신 회장. 필자가 받아든 그의 부고는 단순한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닌, 동아시아 의학의 주권을 지키고자 했던 한 거인과의 이별을 의미한다. 고인이 남긴 학문적 유산과 한의학을 향한 과제는 이제 남은 이들의 몫으로 남았다. -
‘살리는 치료’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 처음 호스피스 입원 병동을 만든다고 했을 때,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첫마디가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아휴... 병원이면 응당 살리는 치료를 해야 할 텐데...” 살리는 치료란 무엇일까. 입원형 호스피스는 암 환자 중심으로 운영되니, 우선 암 환자에 한해서 살리는 치료란 무엇일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환자 입장에서 살리는 치료란 당연히 암이 없어지는 치료를 의미할 것이다. 암이 완전히 없어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수술이 가능해야 할 것이며, 재발이 없어야 될 것이고, 이론적으로 1~2기의 암일 것이다. 대략적인 통계상으로 국내의 암 환자 중 1~2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약 75% 정도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다른 25%의 암 환자들에게 살리는 치료란 무엇일까. 항암, 방사선 치료를 포함하는 표준 암 치료의 목적 자체가 의학적으로는 1)잔존암 소실, 2)생존기간 연장(잔존암이 있더라도 생존기간은 연장될 수 있음), 3)증상 완화(생존기간 연장은 되지 않더라도 증상은 완화될 수 있음), 4)삶의 질 완화 및 임종까지 편안한 상태(증상 완화와 편안한·존엄한 임종의 의미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음)의 네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남은 25%의 암 환자들은 암이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는 사람들이니 살리는 치료는 불가하다는 판정이 났다고 간주해야 되는 걸까? 단지 암세포의 소실만이 그 단어의 전부라면 말이다. ‘희망’이라는 단어 자체의 존재 가치 호스피스 병동에 암 환자가 입원하기 위해서는 입원 ‘전’에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더 이상의 항암치료는 불가하며, 생존기간은 n개월 이내로 예상되어, 호스피스 의료기관에 의뢰드립니다’ 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주치의의 소견서이다. 이 소견서를 들고 입원 수속을 밟는 환자의 모습을 상상해보았을 때, 환자의 이미지가 보통 어떻게 떠오를까? 아마 일단 혼자 힘으로는 못 서있을 것이며, 주렁주렁 관이 달려 있을 것이고, 팔다리를 포함한 몸 여기저기는 부어있고 머리카락은 듬성듬성한, 그런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사실상 수개월의 여명 선고를 받으신 분들 중에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환자는 약 60~70%에 불과하다. 일단 지금 우리 병원에서 모시고 있는 분들만 해도 50%가 본인 힘으로 잘 걸어 다니시는 분들이다. 이 분들은, 잘 걸어 다님에도 불구하고, 그 뜻 모를 ‘살리는’ 치료가 불가능한 걸까? 좀 더 나아가서 언젠가 한 의대 교수님이 던지셨던 질문처럼, 호스피스에서 희망이란 무엇일까. 그들은 희망을 꿈꿀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희망’이라는 단어 자체의 존재 가치를 재고해봐야 되는 거 아닐까. 환자들이 길어 올리는 ‘희망’의 형태 제도적인 면을 살펴보면, 호스피스·완화의료 의료기관으로 지정받게 될 때 대부분의 수가가 ‘포괄수가제’에 귀속된다. 어떤 치료를 얼마만큼 하든 환자에게 청구되는 총 금액이 동일하게 묶여 있는 구조다. 물론 수가가 조금 더 보완된다면 현장에서 한층 더 양질의 진료 여건이 마련되겠지만, 제도가 이토록 엄격한 틀을 유지하는 데에는 나름의 본질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호스피스라는 공간에서만큼은 환자에게 고통을 연장할 뿐인 불필요한 소생 목적의 치료를 지양하고, 온전히 환자의 편안함과 남은 삶의 질에 집중하라는 무언의 메시지이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제도적 틀 안에서, 일반적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암 환자의 평균 재원 기간은 2주 내외로 알려져 있다. 2주라는 시간은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하기에는 턱없이 짧고, 누군가의 생을 정리하기에는 야속할 만큼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다. 제도가 그어놓은 선과 평균 2주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 우리는 매일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환자들을 마주한다. 완치라는 명확한 목표가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이 짧은 여정 속에서, 환자들이 길어 올리는 ‘희망’의 형태는 저마다 다르다. 그것은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 상을 마주하는 기쁨일 수도 있고, 미뤄두었던 가족과의 응어리를 푸는 대화일 수도 있으며, 혹은 그저 고통 없는 고요한 밤을 보내는 일상일 수도 있다. 저 마다의 언어로 구상해 나가는 ‘희망’ 결국 호스피스라는 공간은 삶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무력하게 대기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짧은 2주일의 시간 동안, 각자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가장 압축적으로 채워나가는 서사의 공간에 가깝다. ‘살리는 치료’가 부재한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매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존엄을 목격한다. ‘살리는 치료’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감히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완치라는 명사 뒤에 가려져 있던 그 수많은 여백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그 뜻 모를 단어에 어떤 숨을 불어넣고 저마다의 언어로 희망을 구상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결국 이 짧고도 긴 시간을 채워가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 17김호철 교수 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 교수 (주)뉴메드 대표이사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김호철 교수(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의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를 통해 임상 현장에서 자주 제기되는 한약의 궁금증과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최신 연구 결과와 한의학적 해석을 결합해 쉽게 설명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이 기존의 한약 지식을 새롭게 바라보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회에서 우리는 桂枝와 肉桂의 구분이 본래 약리학적 발견에서 출발했다기보다, 한 그루의 계피나무에서 나오는 부위 차이와 송대 본초학의 법상론적 해석 속에서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밑둥과 굵은 줄기의 두껍고 향이 강한 수피는 肉桂로, 위로 올라가며 얇아지는 가지와 어린 가지는 桂枝로 나뉘었고, 후대 본초학은 이 차이를 해표(解表)와 온리(溫裏), 온경통맥(溫經通脈)과 보화조양(補火助陽)이라는 효능으로 정리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두 약재는 성분부터 다른가. 肉桂에는 있고 桂枝에는 없는 결정적인 성분이 따로 있는가. 더 중요한 것은 임상이다. 桂枝는 실제로 사람의 몸에서 표를 풀고, 肉桂는 리를 덥힌다는 차이가 확인되어 있는가. 아니면 같은 계피나무에서 나온 부위 차이를 후대 본초학이 효능 차이로 설명해 온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桂枝와 肉桂는 완전히 다른 약재라기보다 같은 계피류 안에서 부위와 농도가 다른 약재다. 肉桂는 밑둥과 굵은 줄기의 두껍고 향이 강한 수피이고, 桂枝는 위쪽의 가는 가지나 어린 가지다. 두 약재의 차이는 전혀 다른 성분의 차이라기보다, 같은 계피류 성분이 얼마나 진하게 들어 있느냐의 차이에 가깝다. 후대 본초학은 이 차이를 해표와 온리라는 효능으로 설명했다. 결국 桂枝와 肉桂의 구분은 먼저 계피나무의 부위 차이에서 출발했고, 그 차이가 본초학 속에서 효능 차이로 정리된 것이다. 다른 성분이 아니라, 진하고 옅은 차이다 성분을 보아도 桂枝와 肉桂는 전혀 다른 약이 아니다. 두 약재는 모두 Cinnamomum cassia 계열에서 나오고, cinnamaldehyde, cinnamic acid, coumarin, procyanidin류, phenolic compound류 같은 계피류의 대표 성분을 함께 가진다. 한쪽에만 있고 다른 쪽에는 없는 결정적 성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차이는 같은 성분이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느냐에 있다. 이 차이는 부위에서 나온다. 肉桂는 밑둥과 굵은 줄기의 두꺼운 수피다. 이 부위에는 정유 성분과 polyphenol 성분이 더 많이 모여 있다. 반면 桂枝는 위쪽 가지나 어린 가지다. 수피는 얇고 목질부는 많다. 그러니 같은 계피류 성분을 가지고 있어도 전체 농도는 낮아진다. 桂枝 안에서도 껍질에는 cinnamaldehyde와 cinnamic acid가 많고, 목질부로 갈수록 줄어든다. 물론 肉桂와 桂枝가 화학적으로 완전히 같다는 뜻은 아니다. 다르다. 그러나 그 차이는 전혀 다른 약리 본성의 차이라기보다, 같은 계피나무에서 어느 부위를 쓰느냐에 따라 생기는 농도와 비율의 차이다. 산지, 수령, 채취 시기, 껍질 두께, 건조와 가공 방식에 따라서도 이 성분 함량은 크게 달라진다. 그러므로 성분 분석만으로 “桂枝는 표를 풀고, 肉桂는 리를 덥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성분 분석은 肉桂가 더 진한 수피이고, 桂枝가 더 옅은 가지라는 점을 설명해 줄 뿐이다. 그 차이가 사람 몸에서 해표와 온리라는 효능 차이로 나타나는지는 별도의 약리실험과 임상연구로 따져야 한다. 월경통·혈당 연구는 계피 연구이지, 계지·육계 비교 연구가 아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계피류 약재의 효과는 보고되어 있다. 월경통, 혈당, 대사 관련 연구가 있고, 일본의 계지복령환처럼 계피류가 들어간 복합처방 연구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이 연구들은 桂枝와 肉桂를 나란히 놓고 비교한 연구가 아니다. 대부분의 임상연구에서 사용한 cinnamon은 어린 가지 桂枝가 아니다. Cinnamomum cassia나 Cinnamomum verum의 수피 분말, 추출물, 정유, 또는 계피류가 들어간 복합처방이다. 쉽게 말하면, 현대 임상연구에서 말하는 cinnamon은 대개 桂枝라기보다 桂皮·肉桂에 가까운 수피 산물이다. 따라서 cinnamon이 월경통이나 혈당에 효과를 보였다고 해서, 곧바로 “桂枝는 해표하고 肉桂는 온리한다”는 구분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그 연구들은 계피류 약재가 사람 몸에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桂枝와 肉桂가 사람 몸에서 어떻게 다르게 작용하는지를 비교한 것은 아니다. 일본의 계지복령환 연구도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 일본에서 쓰는 桂皮는 한국·중국식 의미의 어린 가지 桂枝가 아니라 Cinnamomi Cortex, 즉 계피·육계 계열의 수피에 가깝다. 그러므로 일본의 계지복령환 연구는 어린 가지 桂枝의 독자적 효능을 입증한 자료라기보다, 일본 한방이 桂枝와 肉桂를 엄격히 나누지 않고 桂皮 중심으로 처방을 운용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에 가깝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임상연구만으로 桂枝와 肉桂를 반드시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계피류 약재가 사람에게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은 확인되고 있지만, 桂枝와 肉桂를 같은 조건에서 비교한 연구는 부족하다. 이 구분은 과학이 확정한 결론이라기보다, 후대 본초학이 정착시킨 운용상의 기준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桂枝는 ‘약한 계피’였지만, 해표약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桂枝는 단순히 품질 낮은 肉桂인가. 상품학적으로 보면 그렇게 볼 여지가 있다. 肉桂는 밑둥과 굵은 줄기의 두껍고 향이 강한 수피이고, 桂枝는 위쪽의 가는 가지나 어린 가지다. 肉桂에 비해 桂枝는 껍질이 얇고 목질부가 많아 계피류 성분의 농도가 낮다. 그런 의미에서 桂枝는 본래 진한 계피가 아니라, 더 옅고 가벼운 계피류 산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초학은 이를 단순히 낮은 등급의 약재로만 보지 않았다. 후대 의가들은 얇고 가벼운 가지라는 특징을 효능으로 연결했다. 두껍고 향이 강한 수피는 안으로 들어가 속을 덥히는 약으로 보았고, 얇고 가벼운 가지는 밖으로 퍼져 표를 풀고 경맥을 통하게 하는 약으로 보았다. 계피나무의 부위 차이가 본초학 안에서 효능 차이로 설명된 것이다. 따라서 桂枝는 처음부터 肉桂와 전혀 다른 약효를 가진 별개의 약재였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肉桂보다 성분 농도가 낮고 가벼운 계피류 산물이었고, 후대 본초학이 그 가벼움을 해표와 온경통맥이라는 효능으로 설명하면서 따로 쓰이게 된 것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桂枝와 肉桂는 용량을 맞추면 바꾸어 쓸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임상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중요한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桂枝와 肉桂를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는가. 나는 조건을 맞추면 가능하다고 본다. 두 약재는 전혀 다른 약이 아니라 같은 계피류 약재이고, 차이는 주로 부위와 농도, 작용 강도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양으로 그대로 바꾸면 안 된다. 肉桂는 밑둥과 굵은 줄기의 두껍고 향이 강한 수피이므로, 桂枝보다 정유성 자극과 온열감이 강할 수 있다. 따라서 桂枝 대신 肉桂를 쓸 때는 용량을 줄여야 한다. 반대로 肉桂 대신 桂枝를 쓸 때는 필요한 작용 강도에 따라 용량을 늘리거나 조제 방식을 조절해야 한다. 장중경 처방을 고증학적으로 생각한다면, 오늘날의 어린 가지 桂枝만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장중경이 쓴 桂가 가지껍질이나 桂皮·桂心류에 가까웠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桂皮나 肉桂 계열을 쓰되 용량을 조절하는 방식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 반대로 후대 한국·중국 본초학의 체계를 따르려면 桂枝 처방에는 桂枝를, 肉桂 처방에는 肉桂를 쓸 수 있다. 다만 그 구분이 현대 약리학으로 확정된 법칙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보면 桂枝와 肉桂를 유연하게 본다는 것은 전통을 무시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전통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고, 약재의 부위와 농도, 용량과 조제 방식을 함께 보며 다시 임상의 판단을 회복하는 일이다. -
“환자들의 가까이에 있는 한의 방문진료 의미 전달하고 싶었다”[편집자주] 본란에서는 부산광역시한의사회가 주최한 ‘한의학 홍보 공모전’에 참여한 미얀마 출신 유학생인 찬미에체리툰 학생으로부터 공모전에 참여한 계기 및 한의학에 대한 견해, 공모전이 학생들에게 주는 의미 등에 대해 들어봤다. Q. 자신을 소개한다면? “Global Korea Scholarship(GKS) 장학생으로 동서대학교에 재학 중으로, 대학 생활 동안 다양한 교내·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실무 경험과 글로벌 역량을 쌓고 있다. 현재 서울 소재 ASEAN Youth Network in Korea(AYNK) 외국인 유학생회에서 Social Media Manager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산 지역 대학생 광고동아리인 ‘부산 애드 마니아(PAM)’에서도 2년째 활동하며 광고·홍보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가고 있다.” Q.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공모전에 참여했다. “먼저 공모전 참여는 PAM 광고동아리 팀원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의학은 저를 비롯한 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다소 익숙하지 않은 분야다. 저 역시 처음에는 한의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지난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한의학이 4대 질환을 어떻게 치료하는지, 어떤 진료와 치료가 가능한지 등을 자세히 알게 됐다. 이러한 경험과 지식이 올해 공모전에 다시 참여하는 데 큰 도움이 됐으며, 실제 이전 프로젝트를 통해 쌓은 이해를 바탕으로 더욱 깊이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었고, 한의학의 가치와 방문진료의 필요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콘텐츠를 기획할 수 있었다.” Q. 이번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팀장 역할을 맡았지만, 팀원들의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함께 방향을 만들어가고자 노력했다. 팀원들 모두 기존의 틀에 머무르기보다는, 보다 창의적이고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통해 한의 방문진료를 알리고 싶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가장 먼저 최근 트렌드를 분석하며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키워드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러닝(Running)’ 문화에 주목하게 됐고, 이를 한의 방문진료와 연결해 ‘한의사의 결승선은 당신의 집에 있습니다’라는 콘셉트를 도출하게 됐으며, 이에 맞춰 광고 영상과 포스터 등 주요 제작물 전반에 러닝이라는 스토리텔링 요소를 일관되게 적용했다. 또한 캠페인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한결이’라는 캐릭터를 제안했다. 캐릭터는 하나의 자산으로 다양한 홍보물에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캠페인의 지속성과 확장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외에도 티셔츠, 뱃지, 마스크 스트랩 등 다양한 굿즈를 기획했으며, 모든 제작물이 캠페인 콘셉트와 연결될 수 있도록 디자인에도 러닝 관련 요소를 적극 반영했다. 특히 제작 과정에서는 단순히 눈에 띄는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의 방문진료의 메시지를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방문진료를 트렌디한 문화와 접목함으로써 보다 자연스럽게 관심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Q.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부분은? “한의 방문진료가 환자들의 일상 가까이에서 이뤄지는 의료서비스라는 점을 전달하고 싶어, ‘러닝’이라는 콘셉트를 활용해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가는 러너의 모습과 환자의 집까지 직접 찾아가는 한의사의 모습을 연결해 표현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은 분들이 한의 방문진료에 관심을 갖고 그 필요성과 가치를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했다.” Q.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한의약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었는지? “공모전에 참여하기 전에는 한의학도 미얀마의 전통의학처럼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면 진료와 치료를 받는 의료서비스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한의사들이 직접 환자의 집을 찾아가 진료하는 방문진료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의료기관에서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치료를 가정에서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하거나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 한의학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앞으로 미얀마에서도 이러한 방문진료 서비스가 더욱 발전해 의료 접근성이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Q. 공모전이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주는 의미는? “학생들에게 한의학을 보다 친숙하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세대가 한의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 가치와 역할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공모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역시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한의학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는 계기가 됐고, 단순히 전통의학이라는 인식을 넘어 현대사회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배우게 됐다. 이러한 경험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분야를 탐구하고 창의적으로 표현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Q. 그 외 하고 싶은 말은? “이번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게 돼 매우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다. 함께 열정적으로 참여해준 PAM 광고동아리 팀원들과 바쁜 와중에도 많은 조언과 아이디어를 주신 김영호 부회장님, 그리고 PAM 한울 집부 팀원 및 심사위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다양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마케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
“역사는 저절로 남지 않아, 누군가 끝까지 기록해야만 겨우 살아남아”[편집자주] 다큐멘터리 ‘1951 피란수도 부산, 한의학의 脈을 잇다’가 성황리에 방영돼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부산경남대표방송인 KNN을 통해 전파를 탄 이 다큐멘터리는 부산시한의사회의 기획과 자문아래 이뤄졌다. 이에 본란에서는 ‘경험은 가장 위대한 과학’이며, ‘역사의 실재는 기록에 의한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등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자문 역할에 깊이 관여했던 김영호 부산시한의사회 부회장으로부터 방송 제작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Q. 다큐멘터리 ‘1951 피란수도 부산, 한의학의 맥을 잇다’를 직접 보고 난 소감은? :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성취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바쁘게 진료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어떤 역사를 가진 직업인지, 얼마나 감사한 직업인지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이번 다큐는 한 편의 방송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라질 뻔한 이야기를 겨우 붙잡아 둔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쯤 멈춰 서서 우리의 출발점과 뿌리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Q. 지역 한의사회 차원에서 대형 다큐를 기획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 부산시한의사회 건물 안에는 오래된 서고가 있습니다. 다큐에도 등장하는 공간인데, 그 자료들을 볼 때마다 오래전부터 ‘최소한 백서 형태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부산한방병원협회 조병제 회장님의 다큐 제작 제안이 더해지면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습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2026 뉴욕 페스티벌 TV & 필름 어워즈’에서 3관왕 수상 경력을 보유한 전문 제작사인 최작기획을 만나게 됐고, 김영옥 배우님의 나레이션도 큰 힘이 됐습니다. 특히 김영옥 배우님께서는 부군상을 당하신 지 3일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흔쾌히 참여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Q. 다큐 제작 시 가장 어려웠던 점은? : 현실적인 문제는 역시 예산이었습니다. 방송 제작과 공중파 편성에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합니다. 제한된 지부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습니다.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공감대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처음부터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시작되는 일은 아닙니다. 공공성을 가진 일은 원래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성과보다 미래를 위해 씨앗을 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을 것 같다는 책임감이 오히려 저를 움직였습니다. Q. 역사적 자료를 찾고 고증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 해방 이후와 1950년대 기록이 생각보다 너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국회 회의록과 오래된 신문 기사, 사진들을 찾아다니다가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곧 잊히겠구나.’ 역사는 저절로 남지 않습니다. 누군가 집요하게 찾아내고 기록해야 겨우 살아남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 작업은 다큐 제작이라기보다 역사 구조(救助) 작업에 가까웠습니다. 이 과정의 발판이 된 1950년대 동양의학전문학원 연구를 진행해 주신 동신대 박훈평 교수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Q. 다큐 후반부에는 미래 한의학의 비전이 제시됐는데, 앞으로 한의사의 역할은 어떻게 정의돼야 하는지? : 한의사의 역할은 앞으로 더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도 국민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한의사가 선택받았습니다. 미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정신적 소진의 시대에 인간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한의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특히 대만처럼 중의약을 만성질환 관리 체계 안으로 적극 편입시키는 사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이제는 기존 역할을 지키는 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 가야 할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Q. 중앙회 차원의 필요한 지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한의학의 역사는 결국 우리가 직접 보존해야 합니다. 중앙회 차원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과 체계적인 역사 보존 사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번 다큐를 준비하면서 2012년 발간된 900페이지가 넘는 『대한한의사협회사』를 다섯 번 이상 읽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역사는 저절로 남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집요하게 기록하고 정리해야 겨우 살아남는다는 사실입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과거를 미화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미래 세대가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좌표를 남겨주는 일입니다. 한의학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것은 뿌리를 잃은 나무에게 더 높이 자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한의신문>과 <민족의학신문> 역시 단순한 언론이 아니라 현재의 한의계를 기록하는 살아 있는 역사 아카이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산되는 기사와 기록의 가치는 우리가 아니라 50년, 100년 뒤의 후대가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협회 차원에서 최소 10년에 한 번씩은 한의계의 역사를 정리한 공식 사료(史料)와 백서를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고민과 도전, 제도와 정책,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겨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빠짐없이, 그리고 성실하게 기록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누군가가 50년 뒤에는 제2의 오인동지회처럼 한의학 역사의 중요한 인물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Q. 다큐 제작에 있어 아쉬웠던 점과 앞으로의 계획은? : 사실 이번 다큐는 완성작이라기보다 예고편에 가깝습니다. 이제 겨우 첫 삽을 떴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한의학 근현대사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통의학 네트워크까지 더 긴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일본의 대학병원 의사들이 한약을 활용하는 모습, 대만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활용된 중약(中藥) 청관1호, 영국과 중국의 제도가 공존하는 홍콩의 중의약 체계 등을 통해 한국 한의학이 얼마나 뛰어난 시스템과 인재를 보유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또한 동신대 박훈평 교수팀과는 부산시한의사회 서고의 역사 자료를 전수 조사하는 작업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단 한 권의 오래된 규정집이 새로운 논문 <1950년대 부산의 한의사 유관 단체 규약에 대한 연구-박훈평 2026 한국의사학회지>과 역사적 사실을 탄생시켰듯, 아직도 수많은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 제 꿈은 한의학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해 공중파 골든타임에 전 국민이 함께 시청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작품이 국내외 다큐멘터리 어워즈에서 인정받고, 언젠가는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20년 동안 한의학 홍보라는 한 길만 걸어온 사람으로서, 그때쯤이면 비로소 ‘한의학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충분히 해냈다’고 담담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근거의 데이터화’와 ‘미래의 표준화’…일본 한방의학이 가는 길유준상 상지대 한의대 교수 제76회 일본동양의학회(JSOM) 학술총회가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일본 도야마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됐다. 올해 학술총회는 일본 한방의학계의 임상·교육·연구 현황을 확인하는 자리였을 뿐 아니라 한방의학의 디지털 전환과 국제표준화 전략, 그리고 임상 근거 창출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무대였다. 학술대회는 도야마 국제회의장과 인근 도야마 시민프라자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10개의 회의장과 포스터 전시장이 운영됐으며, ‘Meet the Expert’ 세션을 비롯해 복진 술기 세미나와 설진 체험 세미나가 큰 관심을 모았다. 일본 학회가 이를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모습은 국내 한의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 급성기 진료·구강안면질환·AI…일본 한방의학의 현재 특히 필자가 한의대 교수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은 ‘Meet the Expert’ 세션으로, 이는 회원 추천을 통해 만나고 싶은 전문가를 선정하고, 해당 전문가가 짧은 강연과 질의응답을 진행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단순한 학술 발표를 넘어 세대 간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장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국내 학술대회에도 참고할 만한 시도였다. 최근 일본 한방의학계에서 주목받는 분야 가운데 하나는 급성기 통합진료다. 급성기 서양의학 치료 과정에서 한방치료를 병행했을 때 효과가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분석하고, 어떤 상황에서 한방치료가 임상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연구가 활발히 발표됐다. 이는 한방치료를 보완요법을 넘어 급성기 의료체계 안에서 활용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협진체계를 중심으로 관련 연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임상 분야에선 구강안면질환도 새로운 관심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구내염과 구취 클리닉뿐 아니라 안면부 질환 전반에 대한 한방치료 적용 사례가 증가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부인과 질환, 스트레스 관련 질환, 수면장애 등은 여전히 주요 연구 주제로 자리하고 있었다. 한편 최근 2~3년 사이 급속히 확산된 생성형 AI 활용 흐름 역시 일본 한방의학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AI를 임상, 교육, 연구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으며 관련 서적도 출간되고 있었다. ▲(왼쪽부터) 필자, 이토 고(기타사토대)·전찬용(가천대 한의대)·권나연(가천대 한의대) 교수 ◆ 표리한열과 상열하한, 병태별 접근의 가능성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기타사토대학 한방의학연구소의 이토 고(ITO Go) 교수를 만나 수족냉증 연구 현황에 대해 의견을 나눌 기회도 있었다. 그는 수족냉증의 병증명과 진단기준 정립 문제를 비롯해 체온 측정 방법론에 대한 연구 경험을 소개했다. 특히 표면온도보다 심부 체온 변화에 주목해 복부 밀착형 온도 측정기와 다수의 센서를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오수유탕과 부자제제 복용 후 체온 변화를 장시간 추적 관찰한 결과도 소개했다. 흥미로운 점은 연구 규모보다 측정의 정밀성을 우선시한다는 점이었다. 국내에서는 다수의 연구대상자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반면, 일본 연구진은 소수 사례라도 정밀한 생리학적 변화를 확인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또한 수족냉증을 표리한열(表裏寒熱)과 상열하한(上熱下寒) 등 다양한 병태 유형으로 구분해 접근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는 향후 한의 임상진료지침과 변증 연구 발전에 참고할 만한 부분으로 보였다. ▲이토 교수와 수족냉증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국제표준화 전략에서 읽는 일본 한방의 미래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에서 매년 주목하게 되는 세션 중 하나는 ISO와 WHO 관련 활동 보고다. 일본은 ISO/TC249 대응을 위해 분야별 전문가와 산업계 전문가를 함께 참여시키고 있으며, 국제표준 제정 과정과 진행 상황을 학회 회원들에게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특히 의료기기와 제약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검토하며 학술과 산업의 관점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ICD-11(11차 국제질병분류) 역시 중요한 변화다. WHO는 ICD-11 제26장에 전통의학 병증 분류 체계를 포함시켰다. 이를 통해 서양의학 진단과 전통의학 변증을 동시에 기록하는 이중 코딩이 가능해졌다. 이는 향후 특정 질환군에서 어떤 변증이 많이 나타나는지 분석하고, 변증별 치료 효과를 평가하는 연구 기반이 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전통의학 변증의 과학적 타당성을 WHO가 공식 인정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 사용되는 전통의학 진단체계를 국제적으로 표준화하고 기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본은 후생노동성을 중심으로 ICD-11 관련 자료와 일본어 표준 번역을 지속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관련 논의와 진행 상황을 일반 회원들이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학술대회에서 정기적인 국제표준화 활동 보고 세션을 운영하는 일본의 사례는 국내 한의계도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왼쪽부터) 토야마대학병원, 병원 내 화한진료과(한방진료과) ◆ 일본 한방의학의 현재와 한국 한의계에 던지는 과제 이번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를 통해 확인한 가장 큰 흐름은 ‘근거의 데이터화’와 ‘미래를 위한 표준화’였다. 급성기 통합진료, AI 활용, 객관적 진단기술 개발, 국제표준화, ICD-11 대응 등은 모두 한방의학을 현대 의료체계 안에서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의 연장선에 있었다. 한편 JSOM은 내년 6월 4일부터 6일까지 일본 나고야에서 국제동양의학회(ISOM)와 학술대회를 공동 개최할 예정이다. 일본 한방의학계가 보여주고 있는 변화와 도전이 앞으로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손끝으로 읽어낸 여성의 건강척추신경추나의학회 서포터즈 김소정(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본과 3학년) [한의신문] 지난달 21일, SETEC 컨벤션센터에서 ‘2026 유관학회 연합세미나’가 열렸다. ‘한의학이여, 여성의 부름에 답하라’라는 슬로건 아래 척추신경추나의학회·임상약침학회·대한스포츠한의학회·대한침구의학회가 여성 질환을 함께 다룬 자리로, 서로 다른 전문성을 지닌 네 학회가 한 주제 아래 강단을 나눈 것만으로도 한의계가 여성 건강을 얼마나 폭넓게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서포터즈로 학기 중에도 기성훈 원장님의 한의원에서 추나 스터디를 이어온 나에게, 이날은 평소의 배움이 큰 무대에서 하나의 그림으로 모이는 시간이었다. 네 학회의 강의는 다루는 도구도, 출발점도 저마다 달랐지만, 가만히 듣다 보니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모이고 있었다. 여성의 몸을 남성의 축소판이 아니라 그 자체의 언어로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오전 첫 강의에서 대한스포츠한의학회 함유정 이사님은 여성 스포츠인의 상대적 에너지결핍(RED-S)을 다루며, 스포츠의학의 임상 기준 상당수가 남성 데이터 위에 세워져 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셨다. 이상섭식·무월경·골다공증을 직선적으로 잇던 1997년의 여성 3증후가 2014년 IOC의 RED-S를 거쳐 최근의 개인화된 관리 모델로 발전해 온 흐름은, 여성 건강을 바라보는 의학의 시선이 어떻게 정교해져 왔는지를 보여줬다. 월경을 하나의 활력징후로 보아 생리·배란·황체기를 길게 추적한다는 관점은, 여성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흘려보내지 않고 읽어내는 출발점처럼 다가왔다. 무엇보다 ‘여성은 작은 남성이 아니다’라는 한 문장은, 생리·임신·골반저에 이르는 여성의 건강을 남성의 축소판이 아니라 독립적인 관리 대상으로 세워야 한다는 메시지로 오래 남았다. 이어 대한침구의학회 박연철 학술이사님은 침 치료와 안면 매선을 원리에서 풀어내셨다. 술기를 익히기에 앞서 수승화강(水升火降)이라는 치료의 목표와 경락의 대응 원리를 먼저 세우고, 정경침법·동씨침법·사암침법을 하나의 틀로 꿰는 강의였다. 특히 고전이 말한 천응혈(天應穴)이 오늘날의 근막통증유발점과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신 대목은, 옛 직관이 현대 해부학의 언어로도 설명될 수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이어진 여성질환 침구 치료에서는 포문(胞門)·부인문(婦人門)의 관점에서 월경부조를 조혈(調血)로 풀고, 월경의 색과 형태로 몸의 상태를 읽어내는 변증 체계가 소개되어 평소 부인과에서 배우던 내용을 침의 언어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근거를 이해하면 술기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말이 강의 전체를 관통했다. 오후 첫 강의에서 임상약침학회 성혜령 원장님은 미용약침을 활용한 피부·탈모·다이어트 치료를 소개하셨다. 연어와 송어의 정소에서 얻은 성분이 손상된 조직의 재생을 돕는다는 출발점부터, 피부 재상을 위한 미주안약침과 지방 분해를 겨냥한 리포컷약침까지, 본초의 성분을 현대 약리의 언어로 풀어내며 약침이 재생과 대사라는 임상의 수요에 정교하게 응답하는 모습을 보았다. 피부와 모발, 체형처럼 여성의 삶의 질과 직접 맞닿은 영역까지 한의학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사실은 여성 건강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층 넓혀 주었다. 이날의 마지막은 척추신경추나의학회 기성훈 원장님의 부인과 추나요법이었다. 손으로 내부 장기를 직접 다루는 내장기 추나는 장기의 가동성과 고유운동성을 회복시켜 순환과 자연 치유력을 끌어올리는 치료로, 진단은 익숙한 복모혈·배수혈에서 출발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해부학과 발생학을 손끝으로 옮겨 오는 관점이었다. 자궁천골인대·원인대·광인대가 자궁과 난소의 위치를 지배한다는 점, 발생 초기 흉강과 골반강이 접히며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슬러 골반강을 준비시킨다는 설명 앞에서, 책에서 외우던 인대와 발생 과정이 손끝에서 살아 움직이는 도구가 되는 순간을 보았다. 시연은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조직이 스스로 풀리기를 기다리는 방식이어서 내가 알던 추나와는 또 다른 결이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치료적 박동을 기준으로 시술을 마무리한다는 설명은, 추나가 결국 손으로 몸을 읽어 가는 과정임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제왕절개 흉터가 생식기 통증으로 이어진 환자, 골반과 내장기의 긴장을 정리하자 임신에 이른 난임 환자의 증례는 추나가 여성 건강에서 가질 수 있는 폭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무엇보다 측와위처럼 서로 민망하지 않은 자세를 택한 구성에서, 기법의 효과만큼이나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치료의 일부임을 배웠다. 네 강의를 모두 듣고 나니, 서로 다른 네 분야가 결국 한 사람의 여성을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졌다. 스포츠한의학은 에너지와 회복으로, 침은 원리와 변증으로, 약침은 재생과 대사로, 추나는 구조와 손끝의 감각으로 같은 몸을 저마다의 언어로 읽어내고 있었다. 여성의 부름에 답하는 길은 한 가지 치료법이 아니라, 여성의 몸을 고유한 텍스트로 읽어내려는 네 갈래의 접근이 만나는 자리에 있었다. 이처럼 각 학회가 임상에서 쌓아 온 지견을 한 주제로 모아 학생과 회원에게 여는 학술 교류는, 한의계가 함께 키워 가는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나학회가 서포터즈 제도를 통해 학생에게 임상 현장의 추나를 직접 잇는 통로를 열어 준 것도 그런 배움의 한 갈래였고, 학기 중 단편적으로 익히던 기법들이 발생학과 인대 생체역학이라는 하나의 틀로 꿰어지는 경험은 추나를 동작의 모음이 아니라 몸을 읽는 언어로 이해하게 해 주었다. 그 배움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사람으로서, 이를 동료 학생들과 나누고 임상 현장으로 이어가는 일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본과3학년으로서 이번 세미나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 앞으로 어떤 한의사가 되고 싶은지를 다시 그려보게 한 시간이었다. 좋은 강의를 준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330)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신문] 염태환 교수(1933〜2024)는 경희대 한의대 교수로서 시내한방병원장을 역임한 한의학자이다. 저술로는 『현대한방강좌』, 『동의처방대전』, 『동의사상처방집』 등이 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L.A 사우스베일러 한의대 학장, 뉴욕한의사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1979년 염태환 교수는 『현대한방총론』이라는 책을 저술한다. 이 책은 Ⅰ. 총론편 Ⅱ. 通則篇 Ⅲ. 약물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Ⅰ의 총론편은, 1. 서론 2. 한방의학의 변천 3. 한방의학의 병리사상 4. 한방진찰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2. 한방의학의 변천’은 한·중·일 삼국의 전통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정리하고 있다. 중국의 전통의학에서 중요 의서로 『황제내경』, 『상한론』, 『신농본초경』, 『제병원후론』, 『천금요방』, 『천금익방』, 『외대비요』, 『화제국방』과 주요 의가로 금원사대가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명대, 청대, 근대 이후 중의학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일본의 한방의학에 대해선 초창기 한국 한의학의 일본 전래부터 후세파와 후세별파의 대두, 고방파와 절충파, 고증학파의 형성과 발전, 근현대 이후 한의학의 쇠망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한국 한의학에 대해서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 사상의학의 대두, 일제강점기 한의학의 쇠퇴, 해방 이후 한의학, 체질침의 출현 등의 순서로 서술하고 있다. 그는 특별히 조선시대의 三大醫書로 『醫方類聚』, 『鄕藥集成方』, 『東醫寶鑑』을 꼽고 있다. 그가 꼽는 삼대의서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〇 『의방유취』: 세종 27년(1445년)에 완성, 당시 집현전학사 등 수인의 손에 의하여 3년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인용서목 153부, 분류항목 95문, 266권, 264책(현재 일본 궁내성 도서료에 250권 252책이 소장되고 있음)으로 당시 의학의 총집성이라고 볼 수 있다. 본서는 당송원과 명초에 걸쳐 150부의 의서를 舊文대로 개정치 않고 각병문에다 유취한 것이다. 〇 『향약집성방』: 세종 때에 완성한 것으로 권채, 유효통, 노중례 등의 공저로서 85권 30책으로 되어 있고, 특히 본서의 권77로부터 권85까지의 鄕藥本草에는 本草物名에 한글로 우리나라 鄕名을 각각 倂記하였다. 〇 『동의보감』: 광해군 3년(1610년) 허준의 成書로 25권 25책으로 되어 있다. 동의보감은 주로 의학입문, 단계심법, 의학정전, 만병회춘, 고금의감, 득효방, 성제총록, 동인경, 의방유취, 직지방, 동원십서, 본초, 내경 등 의약학 제서에 걸쳐 널리 인용하여 『의방유취』의 호번함을 간요하게 정비하므로서 한국은 물론 현대의 중국에서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조선의 삼대의서 이외의 기타 의서로 그는 『제중신편』, 『방약합편』 등을 중요 의서로 꼽았다. 또한 사상의학의 發祥을 중요한 역사적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이어진 한의학의 쇠퇴의 원인은 조선총독부의 치우친 정책이 원인이며 이 시기 조헌영의 『통속한의학원론』, 의학박사 강필모의 한의학 연구 등이 한의학 부흥에 이바지했다고 주장한다. 해방 이후의 한의학은 한의사제도의 부활과 한의과대학의 설립 등으로 부흥되는 기간으로 보았다. 그가 『의방유취』, 『향약집성방』, 『동의보감』을 삼대의서로 명명한 것은 한국 한의학의 역사적 도약에 기여한 세 의서의 결정적 역할 때문이다. 앞선 『의방유취』와 『향약집성방』이 지식의 축적을 통해 『동의보감』을 가능하게 한 자양분이었다면, 이를 이어받은 『동의보감』은 이후 한국 한의학의 독자적 정체성을 구축하고 발전시킨 핵심 학문 동력이었다. -
국경을 넘어 마주한 통합돌봄과 한의학의 미래장진용 원장(시흥시 재택의료센터 대표·사랑한의원) 지난 2025년 2월, 시흥시한의사회 학술이사라는 직책을 맡으며 다짐한 것이 있었다. 단순히 관례적인 학술행사나 보수교육을 주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분회라는 작은 단위에서도 주도적이고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당시 필자에게는 두 가지 가슴 벅찬 꿈이 있었다. 첫째는 2029년 개원 예정인 배곧서울대병원의 공공기능 컨트롤 타워기능 구성, 둘째는 임기 내에 국제학술교류를 성사시켜 지역 분회 차원에서도 글로벌 학술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2026년 3월, 대한민국이 본격적인 ‘통합돌봄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시흥시 역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고있다. 이 시점에서 배곧서울대병원이 단순 진료 중심의국립병원을 넘어, 통합돌봄의 컨트롤타워로서 공공의료기능을 강화한다면 ‘시흥형 통합돌봄 모델’ 구축에 거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국제학술교류 또한 시흥시와 우호협력을 맺은 해외 도시들을 중심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마침 일본 도쿄도 하치오지시(八王子市)가 2026년 11월부로 시흥시와 우호협력 20주년을 맞이하는 상징적인 해였기에, 관내 ‘후쿠다 의원’과의 교류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다. 비록 여러 현실적인 제약으로 임기 내에 전사적인 사업으로 꽃 피우지는 못했고 짧은 임기를 마무리해야 했지만, 필자의 열정마저 접을 수는 없었다. 2025년 3월,개인적인 노력으로 후쿠다 의원의 후쿠다 원장과 1시간동안 화상통화를 하며 양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깊이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의사가 양약과 한약을 단독 혹은병행 처방할 수 있는 일본의 일원화된 시스템은, 환자의편익 측면에서 매우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후 시흥시의 돌봄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재택의료와 방문진료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고, 한의재택의료학회에도 가입했다. 마침내 2026년 3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시흥시 재택의료센터’로 지정받는 결실을 봤다. 비록시작 단계지만 재택의료센터로서의 온전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차근차근 발판을 다져가던 중, 후쿠다 원장과의 지속적인 교류가 계기가 돼 마침내 올해 6월, 하치오지시의 선진 통합돌봄 시스템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하치오지시청 방문: 기우를 확신으로 바꾼 연대의 시간 6월3일, 하치오지시청으로 향하는 길은 설렘과 긴장 이 교차했다. 일개 지역 한의원 원장이 외국의 관공서를 공식 방문한다는 사실 자체가 생소했거니와, 일본어 소통이 가능하다 해도 심도 있는 의료정책 담론을 완벽히 이해할 수있을지, 또 그들이 이방인의 방문에 얼마나 진정성 있게 응해줄지 만감이 교차했다. 렌터카를 운전해 시청으로 향하는 1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으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시청 정문 현관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수십 분 전부터 필자를 기다리고 있던 시청 관계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경직된 공무원 사회를 예단했던 필자의 기우가 무색해질 만큼, 그들의 환대는 따뜻하고 정중했다. 정문을 지나 개호보험과를 거쳐 미팅룸에 들어서자 정성스레 준비된 자료들이 필자를 맞이했다. 당초 1시간으로 예정됐던 간담회는 뜨거운 열기 속에 1시간 반을 훌쩍넘겼다. 개호보험과와 건강의료정책과 공무원들은 하치오지시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재택의료 상담창구 운영’과 ‘재택의료 체제 정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시흥시와 하치오지시의 평행이론 두 도시는 인구와 면적이 유사할 뿐만 아니라, 방문진료를 하기엔 가옥들이 다소 분산돼 있는 지리적 구조까지 닮아 있어 깊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초고령사회를 한발 앞서 경험하고 있는 하치오지시의 선례는 향후 시흥시 통합돌봄의 미래에 훌륭한 나침반이 될 것이 분명했다. 특히 통합돌봄 체계 안에서 지자체가 최일선에 서서 의료기관, 방문간호 스테이션 등 다양한 자원을 총괄 지휘하는 행정적 리더십이 인상적이었다. 하치오지시 측 역시 시흥시의 현황에 대해 이미 철저한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그들의 질문은 송곳처럼 예리했다. 선정된 대상자들의 개인정보 관리 방식부터 시스템 열람 권한, 시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의 규모와 정산 방식 등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거주지중심의 노후 보장(AIP)과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실현하는 과정에서의 고충을 나눌 때는 국경을 초월한 유대감이 형성되기도 했다. 재택의료 현장에서의 한방치료 사례와 더불어, 한국에는 없는 케어매니저(Care Manager)와 사회복지사의 유기적인 역할 분담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활기차고 즐겁게 일하며 하치오지시 통합돌봄의 희망찬 미래를 보여준 공무원들의 미소를 보며, ‘이 지역 시민들은 참 복이 많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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