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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5일 (목)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151)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151)

“건강 유지 위해선 養生法, 導引法, 藥物療法, 鍼灸療法 등이 필요하다”

『동의보감』의 易緯乾鑿度論


kni-web



『東醫寶鑑』의 제일 첫 門인 身形門은 『乾鑿度』에 나오는 말로 시작한다.

“『乾鑿度』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늘에서는 형체가 乾에서 나오는데, 이에는 太易, 太初, 太始, 太素가 있다. 태역은 아직 기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고 태초는 기가 나타난 시초이며 태시는 형체가 나타난 시초이고 태소는 물질의 시초이다. 형체와 기가 이미 갖추어진 뒤에는 痾가 되는데 痾는 瘵하고 瘵한 것은 병들게 되니, 병이 여기에서 생긴다. 사람은 태역으로부터 생기고 병은 태소로부터 생긴다.”

『東醫寶鑑』 전체에서 『乾鑿度』를 인용한 것은 위의 문장이 유일하다. 위의 문장으로 身形門의 시작을 연 것은 『東醫寶鑑』의 의서로서의 성격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의학은 사람을 치료하는 학문으로서 학문적 이론을 논함에 있어서도 인체의 치료에 대한 내용과 구체적으로 연계되면서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東醫寶鑑』에서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乾鑿度』라는 책은 『易緯』에 속하는 8종의 책 가운데 하나이다. 동한시대 鄭玄의 주석에 따르면 乾鑿度의 ‘乾’은 天을 말하고 ‘鑿’은 뚫는다는 뜻이며 ‘度’는 길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乾鑿度’란 “하늘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上卷과 下卷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上卷에서 주역의 성질, 팔괘의 기원, 괘효상의 구조와 서법의 예 등을 서술하고 있고, 下卷에서는 九宮, 四正, 四維가 陰陽의 數에 부합된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 그 도식은 太易 → 太初 → 太始 → 太素 → 渾淪 → 天地 → 萬物의 순서로의 분화이다. ‘寂然不動’한 太易이 太始로 가는 것은 무형에서 유형으로 가는 과정이고, ‘形變而有質’하여 太素가 된다. 氣形質의 세가지가 혼연일체가 된 것이 ‘渾淪’이며, ‘渾淪’은 또한 ‘一’이라고도 하니 즉 ‘太極’을 말한다. ‘太極’이 一分爲二하여 “淸輕者上爲天, 重濁者下爲地”하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天地가 萬物을 生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천지만물이 생성되는 원리는 후세의 도가와 도교에 흡수되었고 宋明理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張其成의 『易學大辭典』).



이와 같은 맥락에서 身形門의 제일 앞부분을 『乾鑿度』의 宇宙生成論으로 시작을 연 것은 『東醫寶鑑』 醫論의 독창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身形門이 시작하기 전에 나온 身形藏府圖의 뒷부분에 나오는 ‘孫眞人曰’로 시작하는 문장에서 天人地의 형상적 유사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서 우주의 분화 과정 속에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작용되는 원리에서부터 사람의 실존의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자연의 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 그 영향권 안에 있는 만물은 그 변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이것은 특히 만물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東醫寶鑑』의 인용문이 『乾鑿度』의 원문과 차이가 나는 면이 보인다. 먼저 앞부분에 “天形出乎乾”이라는 말이 삽입되어 있다. 그리고 “氣形質具而未離故曰渾淪”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形氣已具而痾痾者瘵瘵者病病由是萌生焉人生從乎太易病從乎太素”이라고 바꾸고 있다. 이것은 허준이 『乾鑿度』를 의학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허준의 의학관은 이 부분의 문장의 변용 속에 녹여져 있다.

새로 삽입된 “하늘에서는 형체가 乾에서 나온다(天形出乎乾)”는 것은 그 뒤의 太易, 太初, 太始, 太素 과정의 원천을 乾으로 본 것으로서 “萬物資始”라는 乾卦의 德을 우주의 시원으로 잡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形氣가 갖추어져서 질병이 생겨난다는 이야기로 이 부분의 내용을 정리하여 마무리 짓고자 하고 있다.



2197-35“형체와 기가 이미 갖추어진 뒤에는 痾가 되는데 痾는 瘵하고 瘵한 것은 병들게 되니, 병이 여기에서 생긴다”는 것은 사람의 질병이 생기는 원인을 내재적으로 痾 → 瘵 → 病의 순서를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사람이 확연한 질병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이러한 단계의 마지막인 ‘病’으로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痾’는 形과 氣가 갖추어져서 발생하는 숙명적 불균형을 의미하며, ‘瘵’는 사람마다의 체질적 강약, 타고난 운명의 차이, 섭생방법의 好惡 등으로 인한 질병발생의 原因子들이 된다.

“사람은 태역으로부터 생기고 병은 태소로부터 생긴다”는 것은 太易, 太初, 太始, 太素의 과정을 거쳐 氣形質이 만들어지는 단계적 발전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본원인 太易은 사람들이 지향해야할 건강의 추구점이 된다.

“병은 태소로부터 생긴다”고 하였으므로 氣形質의 마지막 단계인 太素의 단계는 질병이 만들어질 바탕을 마련하는 과정의 끝이므로 사람들이 육체라는 ‘有形’에 사로잡혀 있는 한계 안에서는 질병은 숙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이 지점에 바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養生法, 導引法, 藥物療法, 鍼灸療法 등의 필요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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