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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6일 (금)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144)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144)

張基茂의 東西醫學新論

“동서의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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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基茂(1886~?)는 근현대 한국 한의학의 부흥을 위해 노력한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이다. 1904년 대한의학교를 졸업하고, 1905년부터 대한의학교 교관, 그 뒤 1907년까지 육군3등군의관으로 근무했다. 1908년 11월 한성 내외에서 의업을 하는 한국인 의사들의 모임인 ‘의학연구회’를 조직해 그 간사를 맡았다.

특히 1915년 『東西醫學新論』이라는 저술을 간행하는데, 이 책은 일본인 의사 와다 케이쥬로(和田啓十郞: 1872〜1916)가 1910년 저술한 『醫界之鐵椎』를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이듬해인 1911년 중국의 학자 丁福保(1874~1950)에 의해 같은 이름으로 中文으로 번역돼 동아시아 전통의학계에 파문을 던졌다.

張基茂(1886~?)가 이 『醫界之鐵椎』를 한국어로 번역해 『東西醫學新論』이라는 이름으로 간행, 한국의 의학계에 문제를 던졌다. 이 책의 앞쪽에는 ‘東西醫學新論 小弁’이라는 제목의 張基茂의 序文이 보인다. 그 내용의 일부를 아래에 소개한다(필자의 번역).



2181-28“어떤 客이 나에게 『동서의학신론』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가를 물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것은 이에 선배인 和田氏(와다 케이쥬로를 말함)의 저작이며, 내가 스스로 저술한 책이 아니다. 그러나 그 저자가 스스로 고백한 말들을 읽어보면 저자의 마음 쓰는 것이 또한 고통스러웠음이라. 무릇 와다(和田氏)는 노련하고 훌륭한 의사이다. 학문이 동서를 관통해 옛 것을 받아 들여 지금 시대의 것을 길러내었다. 그 수십년간의 경험으로 비교절충하여 특별히 하나의 책을 사면초가의 가운데에서 저술했다. 능히 그 믿는 바에 의거하여 옛 학설들을 홀로 창조해 東醫學의 진수를 피력했고, 西醫學의 위장을 간파해 서양의학이 가장 번성하고 있는 현대 일본에서 큰소리를 빨리 질러대었다. 진실로 지금 세상을 걱정하여 구제하고자 하는 어진 마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가히 衆論을 배척하고 옛 순수한 것만을 보호하고자 할 것인가. 이것이 『동서의학신론』이 지어져서 세상에서 사용되게 한 까닭이다. 客이 다시 말했다. 그대가 하물며 일찍이 서양의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닌가? 이에 책 가운데 여러 차례 서양의학의 단점을 이야기한 것이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또한 그대가 평일에 견지한 의론과 더불어 서로 동떨어진다. 지금 그대가 번거로운 수고를 꺼리지 않고 분주하게 번역하여 사람들에게 제공한 것이 또한 어떤 의미인가? 이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가 이 책을 번역해 서술한 것은 본래부터 저자의 뜻을 대신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만일 내가 문장으로 쓰지 않는다면 상세하게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힘써서 사양하지 않은 것은 진실로 천리나 되는 신과의 약속을 먼저 내 마음에서 찾아내고자 하기 때문인 것이라. 또한 무릇 학문은 실용을 귀하여 여기니, 진리가 하나의 궤적으로 관통한다.……위태로움에 처한 동의학에 만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보충하여 구제할 바를 생각하여 정수리에 침을 놓는다. 비록 우리 무리들 서양의학도 신파들과 더불어 저촉되는 바가 없지는 않겠지만 어찌 차마 묵묵히 간과하고는 제기하여 깨어나게 하지 않을 것인가?……”



위에서 보듯이 양의사 張基茂 先生은 1915년 무렵 한국 땅에서 일제의 한의학 말살정책으로 한의학이 말살되어가는 상황을 목도하고 새로운 갱생의 길을 찾고자 이 책을 번역의 형식으로 출판하고 있는 것이다. 원저자인 와다 케이쥬로(和田啓十郞: 1872〜1916)는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였지만 어린 시절 경험한 한방의학의 우수성에 대해서 항상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아왔던 인물이다.

원저인 『醫界之鐵椎』는 張基茂의 입장에서 서양의학과 동아시아 전통의학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접점에서 두 의학의 공존과 공영에 있어서 중요한 경험을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전범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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