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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9일 (월)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99)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99)

“정신과 팔다리를 마음대로 놀리기 힘들어 일을 못 하겠습니다”



李恒福의 怔忡痿痺論



kni-web[한의신문]李恒福(1556〜1618)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문관이다. 본관은 慶州이며, 자는 子常, 호는 白沙이다. 임진왜란 후 호성공신 1등으로 녹훈되어 鰲城府院君의 봉호를 받았다. 그는 저서로 『白沙集』이 있는데, 이 문집은 西厓 柳成龍의 『懲毖錄』과 함께 임진왜란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저서로 손꼽힌다.



『白沙集』에는 ‘윤달 20일에 열두 번째 올린 차자(閏月二十日十二箚)’라는 제목의 상소문이 실려 있다. 아래 글의 내용상 병을 이유로 사직하는 것이기에 아마도 휴전에 찬성한 유성룡이 파직될 때 같이 사직하고 조정에 나가지 않은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더 상세한 내용은 앞으로 연구해볼 일이다.



“삼가 생각하건대, 신은 죽기를 결심하고 앞으로 나아가 죄를 무릅쓰고 곧장 범하여 더욱 강력하게 해면을 요청하였으나, 聖旨는 더욱 돈독하시므로, 감격이 극도에 달하여 두렵기까지 하니, 분골쇄신의 노력으로도 보답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다만 그 사이에 上下가 서로 믿는 것이 미진한 데가 있으므로, 감히 논의를 십분 다하여 다 해명되지 못한 것을 파헤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이 직임을 사양하는 것은 감히 국사를 생각하지 않고 무거운 짐을 벗어 던져서 스스로 편안하고 스스로 해이해지려고 해서가 아닙니다.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데 있어 이렇게 하지 않으면 分範 엄히 하고 公議를 중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의 성정은 金玉을 등에 진 사람은 벗어 던지기를 중난하게 여기지만, 糞土를 등에 졌을 경우에는 이를 가벼이 버리는 것은 貴賤의 형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신이 짊어진 것은 본디 실질적인 貴도 없이 텅 빈 군더더기 자리인데, 아무 까닭 없이 짊어져서 스스로 어깨와 등만 상하고 있는 처지이니, 나아가나 물러가나 무엇을 의거하겠습니까.



또 신은 들으니, 怔忡症이 있는 사람은 心神을 안정시킬 수 없고, 痿痺症이 있는 사람은 手足을 놀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은 齒舌에는 정충증이 있어 이 마음이 이미 미쳐 버렸으니, 어떻게 스스로 안정시킬 수 있겠으며, 事爲에는 위비증이 있어 全身을 이미 거두지 못하는 형편이니, 어찌 수족 놀리기를 기대하겠습니까.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수족을 놀리지 못하면 약을 쓸 곳이 없어 醫門에서도 버리는 바인데, 무슨 마음을 다할 수 있으며 무슨 일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2090-30-1그리고 신하가 충성을 다하는 것은 본디 한 가지 길만이 아닙니다. 世論에 의하면, 국가를 도모하는 데에 있어서는 반드시 句踐을 칭도하는데, 그는 구구한 敗亡의 餘業을 가지고 范蠡는 軍旅를 다스리게 하고, 文種은 政事를 담당하게 하고, 諸稽郢은 辭命을 주관하게 하여 각각 인재를 적소에 써서 서로 직무가 바뀌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千乘의 나라로서 일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데, 어찌 반드시 본래 배우지 못한 일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책임지워서 河水를 담론하다가 목이 말라 죽은 뒤에야 옳다고 해야겠습니까. 옛말에 이르기를, “능히 하지 못할 일을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고 하였거니와, 이것은 신이 능히 하지 못할 바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세상에서 비웃으며 손가락질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짐짓 自劾을 윤허하여 早晩을 기다려 주신다면, 鉛刀가 아무리 무디다 하더라도 혹 한 번은 벨 수도 있을 것이니, 어찌 두 가지를 다 이루게 되지 않겠습니까. 신의 심정이 이러하고 일의 형편이 이러하고 또 이렇게 훌륭하신 임금을 얻었는데도 오히려 명을 얻지 못한다면 이것은 천명인데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君王의 마음이 光明한 촛불로 변화하시기만을 기원할 뿐입니다. 훌륭하신 처분을 바랍니다.



이에 대해 비답하였다. 이미 다 유시하였으나 뜻이 서로 미쁘지 않으니, 매양 辭章을 볼 적마다 나도 모르게 두렵고 걱정이 된다. 이제는 사양을 그만하고 안심하여 직무를 살필지어다.”(임정기, 한국고전번역원, 1998의 번역을 따옴)



이항복에게 복직을 권유함에도 이를 거절하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그는 怔忡症과 痿痺症의 두 증상으로 자신의 심정을 비유하고 있다. 자괴감에 빠져 있는 심리적 공항상태에서 그가 궁중에 들어가 다시 집무를 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을 것이리라. 그는 이러한 상태를 怔忡症과 痿痺症의 두 증상으로 비유하여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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