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脈法을 이미지로 익히자”
李崇仁의 診脈圖訣論

[한의신문] 『診脈圖訣』은 三峯 鄭道傳이 지은 맥학 관련 전문서적이다. 鄭道傳은 조선 태조 때의 名臣이다. 문신이었지만 의술에도 조예가 있어서 恭讓王 원년인 1389년에 『診脈圖訣』을 지었다.
이 책은 脈學에 대한 諸家의 학설을 참고하여 이를 그림을 그려서 脈을 정리한 서적이다. 현재 이 책은 전해지지 않고 李崇仁의 『陶隱先生文集』의 卷四의 ‘誌’에 ‘診脉圖誌’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그 면모를 파악할 뿐이다. ‘診脉圖誌’는 徐居正의 『東文選』(1478년)에도 수록되어 있다. 아래에 그 원문의 번역문을 작성하였다.
“醫書는 쉽게 읽을 수 없고, 醫術은 쉽게 뛰어나게 되지 못한다고 내가 이러한 論을 갖게 된 것이 오래되었다. 세상의 醫家들의 무리들이 책을 읽음에 그 책의 구두도 못하면서 즉 ‘내가 의술에 뛰어난 것을 대개 가지고 있다’고 하니 내가 이러한 무리들을 병으로 여긴 것이 오래되었다. 國家에서 十學科를 설치하여 人材를 양성하였는데, 醫가 그 가운데 하나이다. 提調官이 三峯 鄭藝文이 醫는 마땅히 切脉에 어그러짐이 없은 이후에 처방에 효과가 있다고 여겼다. 諸家의 說을 고찰하여 圖를 만들어 그 평범함을 소통하게 하고 비결을 만들어 그 상세한 내용을 다하게 하여 診脉圖라고 이름을 붙이고는 나로 하여금 그 아래쪽에 기록하게 하였다. 나는 의학에 있어서 자못 일찍이 경험이 있다. 지금 이 책이 상세하지만 번잡함에 이르지 않고 간결하지만 소략한 것에 이르지 아니하였으니, 공부하는 사람이 이를 본다면 당연히 핵심의 사이에서 얻음이 있을 것이다. 만약 이로부터 말미암는다면 읽지 못할 책이 없고 뛰어나지 않은 의술이 없을 것이니 즉 그 사람에게 달려 있을 따름이다. 힘써 깃대를 흔들지어다.

洪武歲 己巳 1389년 秋七月 旣望에 陶隱道人 李崇仁이 적음(醫書未易讀。醫術未易工。予持此論久矣。世之醫家者流。讀未能句其書。則曰。吾於術工也者盖有之。予病此輩亦久矣。國家設十學科。作成人材。醫其一也。提調官三峯鄭藝文以爲醫當切脉無差。然後處方有效。考諸家之說。爲圖以疏其凡。爲訣以盡其曲。題曰診脉圖。俾予誌其下方。予於醫頗甞折肱焉。今此書詳而不至於繁。簡而不至於略。學者觀之。當有得於肯綮之間矣。若由是而無書不讀。無術不工。則在其人矣。勉旃勉旃。洪武歲在己巳秋七月旣望。陶隱道人李崇仁。識。).”(『陶隱先生文集』卷之四) (필자가 변역함)
李崇仁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서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肅雍府丞이 되었다. 그 뒤에 長興庫使兼進德博士가 되었고, 禮儀散郞, 藝文應敎, 門下舍人 등을 지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치적 노선의 차이로 인하여 그는 귀양과 수감을 반복하였으며, 급기야는 정도전에 의해서 살해당하고 만다. 고려 말기 학자 李穡은 그를 “이 사람의 문장은 중국에서 구할지라도 많이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칭찬하였다.
위의 글은 鄭道傳의 『診脈圖訣』을 논평한 글로서 그 맥학에 대한 요약된 정보가 활용성에 뛰어나다는 것을 칭찬한 글이다. 자신이 칭찬한 사람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한다. 이 책은 1612년 許浚이 『纂圖方論脈訣集成』을 지을 때 참고한 서적으로 보인다. 한국 맥학의 연구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李崇仁의 글은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째, 診脈의 방안을 그림으로 그려서 글보다는 눈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진맥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많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눈으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효과가 높다는 인식이다. 둘째,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교육에 활용하기 위해 이 그림이 시도되었다는 것이다.
글자를 외워서 암기로 脈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각적으로 이해하도록 한 셈이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