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을 현대문화사조에 적응할 수 있는 학문으로 改化發展시키자”
1973년 설립된 金定濟 敎授가 설립한 東洋醫學硏究院

[한의신문] 1974년 8월호로 간행된 월간 한의학잡지『漢方春秋』(한방춘추사 발행)에는 ‘東洋醫學硏究院의 이모저모’(부제: ‘學術硏究와 古典飜譯에 注力 漢醫協名譽會長인 金定濟 院長이 主管’)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이 기사는 1973년에 金定濟 敎授가 사재를 털어서 재단법인으로 설립한 東洋醫學硏究院을 취재한 것이다.
金定濟 敎授(1916∼1988)는 일제 강점기에 醫生으로 활동했으며, 해방 후 대한한의사협회장을 거쳐 경희대 한의대에서 교수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대성학교를 거쳐 보병농업학교를 졸업, 평양 기성의학강습소를 수료하고 동양의학원에서 한의학을 공부한 후 황해도 의생시험에 합격하였고, 한국전쟁으로 월남하여 군산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다가 1956년부터 서울에서 성제국한의원을 개원하여 활동하였다. 1963년부터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으로 피선된 후에 6년제 한의과대학의 틀을 만드는데 공헌하였고, 1965년 동양의약대학과 경희대의 합병된 후에 경희대 한의대 교수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기사를 살펴보면 東洋醫學硏究院이 설립되어 일년이 지난 시점에서의 면모를 알 수 있게 된다. 아래에 그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먼저 金定濟 敎授가 말씀하신 東洋醫學硏究院의 설립 동기는 다음과 같다.
“인류 역사와 더불어 발전하여온 동양의학은 그 발상지가 중국이라고 하지만 실은 광대한 아세아대륙 각 지역에서 각기 그 특징을 내포한 여러 醫術을 集大成해 온 것으로서 이는 우리 민족과 함께 반만년의 역사를 통해 伴侶가 되어 왔음을 주지의 사실이나 학문의 원리나 표현이 원래 난해한 古文으로 되어 있어 현대인으로서는 도저히 그 속에 간직된 사상이나 原意를 理解得達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所期의 발전을 이룩하지 못해 왔는데 이를 현대적 사고방식에 입각하여 東洋醫學을 이해하고 그 진가를 과학적으로 究明하므로써 현대문화사조에 적응할 수 있는 학문으로 改化發展시켜야 되겠다는 시대적 사명감에서 奮起했다.”

東洋醫學硏究院에서는 임상의 데이터로 질환의 증상 분류와 治方의 약효 문제 등을 세밀히 검토하는 한편 고전을 중심으로 하는 학술번역사업을 본격화하고자 하였다. 이것을 金定濟 敎授께서는 사업의 주요 목표로 몇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한의학의 기본이 되는 고전을 현대적 문장으로 飜譯 또는 醫譯하여 사계에 보급하는 것, 둘째 傳來해 온 임상경험을 과학적 방법으로 구명하여 그 가치를 입증함으로써 현대인이 요구하는 의학으로 발전시키는 일, 셋째 오늘날과 같이 시각을 다투는 奔忙한 사회생활에서는 번잡한 과정을 탈피해야 하므로 한약의 본성을 변질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조제와 복용방법을 간편화하고, 넷째 東西醫學이 지닌 特長을 절충하여 取長補短함으로써 독특하고도 새로운 치료의학을 수립할 것, 다섯째 국가의 지상과업인 외화 획득 및 절약을 위한 생약의 이용방법 연구이다.
이러한 사업을 위해서 그는 원장직제 하에 기획관리국, 약학연구부, 의학연구부, 사업국 등을 두어 企劃, 藥學, 醫學 등 세 개의 분야를 묶어 연구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이외에도 재단이사회와 고문단을 두어 관리하였다. 원장은 김정제 교수가 맡았고, 김기완·김현제 등이 臨床을 담당하였으며, 임상에서 나타난 병리검사와 자료 입증은 박홍력 박사(내과·소아과)가 담당하였다. 또한 姜華錫 출판부장이 제반사무를 담당하면서 번역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체계가 만들어진 데에 한양대학교 陳泳泰 교수의 공로도 중요했다.
이 무렵 김정제 교수는 그의 역작인 『診療要鑑』의 출판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해에 출판에 성공하였다. 1975년에는 계간 학술지 『東洋醫學』의 발행인으로 참가하여 학술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 잡지도 東洋醫學硏究院에서 창간하였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