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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02일 (목)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61)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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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2월에 간행된 『大韓漢醫學會報』에는 權英植 先生의 ‘良醫祥徵錄’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제목의 뜻은 아마도 ‘良醫의 상서로운 징조를 기록함’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글은 金基澤 敎授가 權英植 先生에게서 제공한 『東洋醫藥大辭典』의 자료에 근거하여 쓴 것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金基澤 敎授(1909〜1976)는 平北 宣川 출신으로, 호가 素虛이다. 한의사 집안에서 성장하여 어린 시절부터 醫書를 강독하다가 滿洲의 間島 延吉에까지 가서 李常和(1869〜?)가 주재하는 漢醫學講習所를 履修하고 귀국하였다. 해방 후에 동양의약대학에 1기생으로 입학한 이후에 동양의약대학의 교수로 활동하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한의원에서 환자를 진료하였다.



權英植 先生(1900〜?)은 한의학 학술잡지인 『醫林』에 수많은 한의학 관련 논문을 게재하여 학술적 논쟁을 이끌어간 인물이다. 그의 글은 『醫林』제35호부터 시작되어 제114호까지 이어진다.

權英植 先生의 ‘良醫祥徵錄’라는 제목의 글을 아래에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일부 내용은 필자 임의로 현대적 어구로 조정하였음을 밝힌다. 이 내용은 송나라의 醫師 何澄의 선행을 기록한 것으로 후대의 귀감이 되고자 적은 것이다.

“良醫가 되려면 먼저 義를 尊重하여야 하며 이를 愼謹하여야 하며 아래의 黃石公素書의 一節을 暗誦하여야 한다.

‘夫人之所行이 有道則吉하고 無道則凶이니 吉者는 百福이 所歸이오 凶者는 百禍가 所攻하나니 非其神聖이오 自然所鍾이니라.’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良醫가 될 것이다. 이곳에서 筆者가 먼저 謝過하는 바는 筆者 自身이 良醫가 못되고 이런 것을 쓰는 것이오나 諸賢이 이런 것을 다 알고 있을 터이지만 或 參考가 되실까 하여서 쓰는 것이오니 特히 恕燭하시기 바라나이다.



何澄은 中國 五季後 宋時代의 良醫이다. 宋時代 宣和間(西紀 1100年頃 推定) 一士人이 抱病纏年하여 百方으로 治療하되 不?함으로서 最後에 良醫인 何澄을 迎來하게 되었다. 一士人의 處가 良醫의 報酬를 줄 수 없어 一計策을 생각하고 何澄을 密室로 引入하여 呼訴하기를 ‘男便이 病床에 臥하여 너무 긴 病으로 오래오래 治療하였기 때문에 家産件物을 全部 典當하고 賣却하여 蕩盡되어서 醫藥값을 充當할 수 없으니 妻의 몸으로 報酬에 代할까 하오니 聽許하시면 감사하겠다’고 한다.



何澄이 正色하고 말하기를 娘子는 엇지 이런 말을 하는가. 그러나 放心하라 當爲調治하여 完治케 하겠다. 그리고 이 報酬로써 서로 몸을 汚穢케 하지 말라. 若不人誅면 必有鬼神之譴責이외라 하고 何澄이 治療에 着手한지 未幾에 一士人의 病이 完差하였다. 其後 何澄이 夢中에 一士兵의 案內로 一殿堂에 들어가니 威儀嚴肅한 判官이 語之曰 汝는 眞實로 良醫요 義醫요 慈醫이라 汝가 醫業을 하는데 大功이 있을 뿐 외라.



艱難한 곳에 以色으로 不貪其慾하니 佳賞한 處事이라 上帝가 特別히 銖文 五萬貫을 下賜하시고 高官一員을 除授하시니 그리 알아두라 하였다. 何澄이 夢覺하여 氣分이 爽快하였다. 未幾日에 東宮이 有疾하여 國醫가 不能治癒이어늘 帝가 詔書를 布하여 草澤醫를 名함으로 何澄이 詔書에 應하여 入闕하여 東宮을 診察한 후 進劑하여 未幾에 病癒하니 帝가 詔하여 黃金五萬兩을 下賜하시고 東海太守를 任官하여 何澄이 一躍 巨財閥과 巨官員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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