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서현님<광주광역시 북구>
인동초. 나는 그 쓴맛을 기억한다. 어렸을 적 내가 감기에 걸려 목이 아프거나 열이 나면 나의 부모님은 인동초를 달여 주셨다. 뜨끈뜨끈한 약초의 향이 어린 내 목을 타고 넘어갈 때면 온몸에서 땀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는데, 찬바람을 피하고 며칠만 먹으면 신기하게도 감기가 나았다. 그때 나는 인동초가 그렇게 감기에 좋은 약초인지 몰랐다.
우리 집 마당에 넝쿨져 다른 나무들을 마구 휘감고 있는 무성한 푸른 잎과 흰 꽃은 그저 친근하고 흔한 꽃나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인동초 한 그루가 나뿐만 아니라 온 가족의 감기를 치료하고 있었다. 겨울과 꽃샘바람이 심한 이른 봄을 지내는 동안 호흡기가 약한 우리 가족은 인동초를 가마솥에 다려 차처럼 마시곤 하였다. 어쩌면 그것이 한의학과 나의 첫 번째 만남이었는지 모른다.
한의학과 두 번째 만남은 내 삶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시골 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나는 장거리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시기에 장거리 출퇴근이 겹치면서 몸에 무리가 온 탓인지 둘째 아이를 분만하고 나서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식은땀이 나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점 심해져 어께, 팔, 무릎 대관절이 빠질 것처럼 아프고 무거웠다. 어른들이 말하던 ‘몸이 천근만근’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증세가 심해져도 희망적인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옷을 두껍게 입고 이불 속에 있어도 대관절 마디에 찬바람이 들어왔고, 누워서 잠을 잘 때면 어깨를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누르고 있을 정도로 통증이 왔다. 날이 갈수록 증세가 심해지더니 급기야는 숟가락을 들 수도 없게 되었고, 방을 고양이처럼 기어 다니게 되었다. 온갖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오면서 우울증도 심해졌다. 예쁜 아이들이 초롱거리는 눈망울로 내 앞에 있었지만 나의 건강이 무너지고 나니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증세는 점점 심해지고 아무도 내게 희망적인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 지인이 추천하는 어느 산부인과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평생 나을 수 없다는 아주 절망적인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날 그 의사의 표정과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병명은 류머티스 관절염에 속하며, 뚜렷한 치료약이 없으니 평생 소염제와 진통제를 먹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진단은 혼자의 힘으로 숟가락도 못 드는 내게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당시 삼십대 초반이었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내가 할 일은 너무 많았는데 내 몸도 못 가누는 신세가 되어 평생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머리속이 하얗게 되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 마음은 어두운 빛깔로 가득 차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 그런 기분이었을까? 그때 운명처럼 조그마한 한의원이 내 눈에 쏙 들어왔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한의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렸을 적 인동초 이후로 내게 멀어져 있던 한약 냄새가 나의 후각을 자극하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한의사는 양의학과는 반대로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따뜻한 미소로 맞이하던 한의사는 나의 증세를 듣고 진맥을 하더니 양의학과는 정반대로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나의 증세는 한의학에서 산후풍에 해당하며 치료가 가능하니 걱정하지 말고 한의학을 믿어 보라는 것이었다. 당시 절망적이었던 나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내 생애에 그렇게 빠른 판단과 결정을 했던 순간이 또 있었을까? ‘아!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한의학에 신뢰감이 생겼고 나의 건강을 한의학에 맡기기로 순간에 결정했다.
그 신뢰와 판단은 무너지지 않았다. 한의원에 갈 때마다 한의사는 신중하게 진맥을 하고 상담하며 증세를 꼼꼼히 기록하였다. 한의원에서 진맥을 받을 때면 나는 존중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양방병원보다 심리적으로도 편안했다. 더구나 자주 한의원에 올 필요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한약을 먹고 주의사항을 지키면 된다는 것이었다.
한약을 먹은 지 한 달 정도 지나자 몸이 따뜻해졌다. ‘정말 나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한 마음에서 ‘정말 나을 수 있을 거야’로 바뀌었고 증세는 점점 더 호전되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자 언제 아팠냐는 듯이 증세가 사라졌고 세 달이 지났을 때는 온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 졌다.
평소 약 먹는 것을 싫어했던 내가 한약 세제를 두 달 이상에 걸쳐 먹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약은 아픈 곳만 치료한 것이 아니었다. 한약을 먹은 후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예뻐졌다는 칭찬을 하였다. 평생 불구처럼 살 줄 알았는데 그 힘들었던 산후풍 증상이 사라진 것 뿐 아니라 그이후로 어떤 후유증도 없었다. 한의학은 내게 기적을 선물해준 것이다. 그 후 우리 가족은 건강을 한의학에 맡기게 되었고, 나를 치료해준 한의사와 긴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렇게 22년간 인연이 이어졌는데 2년 전에 또 한 번 한의학을 신뢰할 일이 생겼다. 아침 출근길에 갑자기 목이 벌레에 물린 듯이 가렵고 아주 큰 두드러기가 난 것이다. 견디기 힘들었지만 참고 있다가 퇴근 후 피부과에 갔는데 원인모를 알레르기로 진단하고 연고와 먹을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런데 약을 먹고 발랐는데도 저녁에는 더 심하게 두드러기가 온몸으로 퍼지더니 급기야는 머릿속과 발바닥까지 붉은 반점이 되어 번졌다.
두드러기가 심해지면서 열은 더 오르고 가려워 미칠 지경이었다. 잠을 잘 수도 없고 앉을 수도 없고 밤을 꼬박 세고 뒷날 또 피부과에 갔으나 전혀 좋아지지가 않고 3일간 고생만 하게 되었다. 오후에는 더 심해져 붉은 꽃이 되어 얼굴까지 뒤덮었고 그냥 있는 것도 힘들어 근무를 할 수도 없었다.
문득 벌레에 물리거나 알레르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 주치의처럼 나의 건강을 관리해주던 한의원에 갔다. 가장 심할 때 온몸에 붉은 반점이 꽃처럼 핀 사진을 찍어가서 보여주니 음식으로 인한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음식이 맞지 않아 장에 열과 독이 차서 나타나는 증세라며 한약으로 처방을 해 주면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현대인에게 한의학은 꼭 동행해야 할 친구이다
또한 온몸에 두드러기 심해져 열이 나고 가려우면 녹차를 욕조에 담가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라고 하였다. 몸에 열이 나면 시원한 물로 씻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녹차를 우려낸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니 신기하게도 가려움이 없어졌다. 한약을 4일분 지어왔는데 세 번을 먹자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이었다. 3일을 먹었을 때는 깨끗이 좋아져서 다른 사람들도 놀랄 지경이었다. 마치 지옥에서 탈출한 기분이었다. 이일은 나에게 한의학의 효과와 신뢰감을 자신 있게 홍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백세 인생을 맞이한 현대인에게 한의학은 꼭 동행해야 할 친구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이 있듯이 한의학의 매력은 미리 예방하는 데 있다. 이미 병이 시작된 경우에도 단순히 그 병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체질을 파악해 병의 원인을 찾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몸의 균형을 맞춰주기 때문에 다른 병을 예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유난히 피곤을 많이 느끼는 체질이었다. 아침에는 머리가 맑고 좋은 상태였다가도 오후가 되면 에너지가 소진되고 금방 지친다.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건강에 관심이 많았고, 건강관련 서적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중 ‘면역혁명’이란 책은 내게 큰 깨달음과 감동을 주었다. ‘면역혁명’을 읽은 후 내가 한의학에 건강을 맡기고 있다는 게 얼마나 지혜로운 판단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 코끝에 한약의 향기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