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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03일 (금)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49)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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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忠成의 藥戒論



崔忠成(1458〜1491)은 金宏弼의 문인으로서 南孝溫 등과 교유한 조선 초기의 학자이다.



그는 전국을 주류하면서 각종 서적들을 講論하였다. 羅州에서 태어난 후 1465년 漢陽, 1483년 月出山, 1484년 湧巖山, 1485년 三角山, 白嶽山, 송도의 天磨山, 聖居山, 1486년 瑞石山, 1487년 頭流山 등을 유람하였고, 도중에 金鍵과 함께 南孝溫을 방문하여 『小學』, 『近思錄』등을 講論하였다.



1488년 方丈山을 유람하였고, 金宏弼의 부친상을 조문하러 嶺南에 갔다. 여름에는 完山, 玉川, 가을에는 雪山, 겨울에는 金鍵 등과 더불어 月出山 精廬에서 講學하였다.



1489년 겨울, 鳳城에서 中風으로 병석에 누웠고, 1490년 전라도 관찰사에게 글을 올려 약을 구하였다. 1491년 졸하다여 羅州 可芝洞 선산에 묻혔다.



방랑벽이 있었던 그는 1490년에 병석에 눕게 되고 이듬해에 죽게 된다. 그는 ‘藥戒’라는 글을 짓는데, 이것은 그가 병석에 누워서 세상에 경계가 될 만한 내용을 적은 내용으로서 醫學史에서 귀중한 자료이다.



“침범하여 병이 장부로 들어가서 머물러 있는 날에 좋은 의사를 만나지 못하는 것을 한으로 여기지만, 만나게 되어서도 반드시 질병을 감추고 의사를 꺼린다. 그 까닭을 물어보면 毒藥일 것이 두려워서라고 한다.……그대가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은 족히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경계로 여길만하다. 무릇 천하는 하나의 사람과 같고, 四海는 사람의 몸과 같고, 萬民은 사람의 몸이고, 朝廷은 腹心이고, 敎令은 喉舌이고, 紀綱은 命脈이고, 宰相은 사람의 股肱이니, 陰陽을 익히고 다스려서 命脈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將士는 사람의 手足이니 外患을 막아내어 腹心을 지켜주는 것이다. 君은 사람의 首가 되니 耳目이 되어 그 險易를 보고 그 是非를 들어서 四體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한 즉 눈이 잘 보이고 귀가 잘 들리고 手足이 잘 움직이고 股肱이 마음대로 된 다음에 몸이 편안하게 된다.

만일 一氣라도 不和하게 되면 百病이 이에 일어나니 즉 질병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 의사가 치료하거나 약을 투여하는 것은 諫官과 같은 것이다. 질병이 일어나서 약을 쓰고 약을 쓰는데 그 때 임금이 이를 싫어하니, 싫어하여 가히 구제할 수 없음에 이르게 되어도 감히 경계하지 못하는 것인져! 바야흐로 병이 일어남에 耳目이 昏 해지고 股肱手足이 痺되어 가벼이 運動하지 못하게 되니 이 때를 당하여 四海가 비록 편안하지만 腹心의 기세는 위태롭게 된다.

그러나 이 때 임금이 安逸함에 사로잡혀 한갓 良藥이 입에 쓰다는 것만 싫어하면 병이 장차 일어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의사를 꺼리고 질병을 감추니 질병을 감추어서 병이 날로 더욱 깊어진다. 그 腹心이 팽팽해지고 그 喉舌이 막히고 그 命脈이 울결되어서 身體가 顚覆됨에 이르게 된다. 이 때를 당하여서 비록 扁鵲일지라도 또한 어찌할 수 없을 따름이다. 배꼽을 씹어 먹은들 어찌 미칠 것인가. 장차 위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나의 말을 듣고 마음에 둘 것이니, 病客이 마땅히 경계할 바이니 가히 경계하고 경계하면 즉 그 나라를 가히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어찌 유독 국가만이겠는가. 무릇 사람이 마땅히 다스려야 할 것은 病만한 것이 없다. 無名指가 굽어져 펴지지 않는 것이 疾痛이 害하는 事이 아니다. 一指를 기르고서도 肩背를 잃는 것을 가히 경계하지 않을 것인가. 四肢기 비록 병이 없고, 耳目이 비록 문제가 없다하더라도 天君이 편안하지 않아 밖으로 내달려 하는 일마다 안정되지 않다면 즉 일신의 병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무릇 세상 사람들이 이를 병으로 여기고 애통하게 여기지 않고는 이를 업신여기면서 그 약을 알지 못하여 마침내 心身을 顚倒시켜 四體를 보전하지 못하게 되니 가히 경계하지 않을 것인가? 그러한 즉 어떻게 약을 줄 것인가. 오직 誠敬을 이를 것이라. 嗚呼라. 경계할지어다. 내가 병이 들어서 이로 인해 그 세가지 경계를 發한다.”(필자의 번역)





<- 최충성의 약계론이 나오는 ‘산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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