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68)

기사입력 2026.07.0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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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동양의학회 김영신 회장을 추모하며
    “일본에서 자란 청년, 부모의 나라에서 한의학의 본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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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달 전에 한국동양의학회 김영신 회장이 타계했다. 근현대 한의학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한·일 전통의학 교류의 길을 탐색했던 큰 별이 진 것이다. 


    필자는 약 11년 전인 2015년경, 『조선 이코노미』의 ‘한방명의 열전’ 시리즈를 진행하며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동산한의원에서 김영신 회장을 직접 취재하고 대담을 나눈 인연이 있다. 당시 마주했던 김영신 선생은 단순한 임상가를 넘어, 동아시아 의학의 역사적 흐름을 꿰뚫고 있는 탁월한 안목의 소유자였다. 


    고인이 된 그를 추모하며, 취재록에 남아 있는 그의 독특한 개인사와 한의학적 업적을 의사학적 관점에서 다시 기록하고자 한다. 최근 일본에서 열린 일본동양의학회의 한국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해 이종안 국제동양의학회 사무총장(배원식한의원장)을 통해 밤을 세가면서 김영신 회장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도 여기에 참조했음을 밝힌다.


    김영신은 1955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출신 한의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일본 최고 명문 사립 중 하나인 와세다실업학교를 거쳐 다쿠쇼쿠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인재였다. 졸업 후 부모의 나라인 한국으로 건너올 때까지만 해도 경영학도로서의 미래를 그렸으나, 우연히 접한 한의학의 깊이에 매료되면서 인생의 항로를 전면 수정했다. 


    인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우주로 바라보고 근본을 치료하는 의학철학에 빠진 그는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한 후 1984년 졸업하고, 1990년 동 대학원에서 한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이 유년기의 추억을 간직한 곳이라면, 한국은 그의 인생 전성기를 함께한 한의학의 모태였던 셈이다.


    그의 개인적 배경은 임상과 연구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김영신 회장은 환자를 진료할 때 問診을 매우 철저히 하고, 환자의 증상과 치료 기록인 차트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는 일본에서의 학창 시절부터 체득한 정밀함과 기록을 중시하는 태도가 몸에 밴 결과였다. 그는 치료가 어려운 질환에 대해서는 환자에게 솔직하게 고지하며, 무리한 투약보다는 질병과 조화를 이루며 건강 수명을 늘리는 ‘삶의 질’ 중심의 의료철학을 실천했다.


    필자와의 대담에서 김 회장이 가장 강조했던 것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 ‘한의학 말살정책’에 대한 역사적 비판과 현대적 대안 제시였다. 그는 일제의 한의학 왜곡과 1913년 제정한 醫生 제도가 한·양방 갈등의 비극적 시발점임을 명확히 짚어냈다. 메이지유신 이후 전통의학을 양의학 아래 강제 편입시켜 학문적 발전을 정체시킨 일본의 과오를 경계한 것이다. 


    동시에 일본 의사의 80% 이상이 한약을 활용하고 한·양방 융합에 적극적인 현실을 언급하며, 한국 한의계가 기본적인 현대 기기조차 쓰지 못하게 하는 규제의 모순을 강하게 비판했었다. 그는 진정한 국익과 전통의학의 발전을 위해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고 과학적 도구를 허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학문적 실천력은 국제동양의학회(ISOM) 활동에서 가장 큰 결실을 맺었다. 김 회장은 한국 한의학이 옛 동아시아 의학의 정통 본류를 온전히 보존한 유일한 의학이라는 확고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소수의 약재만 쓰는 일본의 腹治醫學이나 침구에 치우친 중국의 中醫學(TCM)과 비교해, 한국은 독자적인 제도 하에서 높은 학문적 수준과 처방의 깊이를 유지하고 있다는 논지였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2003년 중국의 사스(SARS)를 한·양방 병행 치료 성공 사례와 WHO 권고안을 인용하며 “감염병에 맞서 몸의 면역력과 저항력을 키우는 한의학적 정책이 시급하다”고 했던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선하다. 시대를 앞서간 혜안으로 근현대 한의학의 영토를 넓혔던 故 김영신 회장. 필자가 받아든 그의 부고는 단순한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닌, 동아시아 의학의 주권을 지키고자 했던 한 거인과의 이별을 의미한다. 고인이 남긴 학문적 유산과 한의학을 향한 과제는 이제 남은 이들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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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타이완에서 열린 제12회 국제동양의학회 회의장에서. 왼쪽부터 이종안·배원식·김영신(이종안 국제동양의학회 사무총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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