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재의 모순을 읽는 알고리즘, 지산 박인규의 의철학과 AI의 만남”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한의학자 芝山 朴仁圭(1927〜2000)는 한국 현대 한의학에서 ‘形象’이라는 키워드로 독자적인 학술 체계를 세운 거목이다. 그의 의학은 단순한 기능적 치료에 머물지 않는다. 해방 전후의 옥고와 언론인 생활을 거치며 『동의보감』과 『주역』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정립된 그의 철학은 “인간은 모순의 집체”라는 통찰에서 출발한다. 그는 인간이 천지자연의 법칙대로 형성된 ‘자연인’임을 강조하며, 존재 자체가 지닌 흠을 파악하여 삶의 법도를 제시하는 ‘인간 과학’으로서의 한의학을 주창했다.
몇일 전 대한형상의학회(회장 최영성)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초대되었다. 명예롭게도 필자는 이 자리에서 ‘지산학술상’을 수여하는 영광을 받았다. 이 대한형상의학회를 창립한 인물이 芝山 朴仁圭다.
지산 선생은 인간을 고정된 틀에 가두지 않고 다각도로 분석했다. 인체의 근본 요소인 精氣神血에 따른 形象과 더불어, 기혈의 升降 기세에 기반한 六經形論을 창안했다. 이는 눈과 코의 기세를 통해 태양·소양·양명·태음·소음·궐음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에 인체의 구조적 특징을 다루는 八象論과 정기신의 운행을 다루는 九宮論이 결합한다. 선생은 “생긴 대로 병이 온다”는 명제 아래, 외형적 조직(體)과 내면적 운행(用)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질병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모든 형상을 귀납한 膽體·膀胱體 분류는 임상에서 질병을 간략하고 명확하게 판별하는 최고의 방법론이 되었다.
박인규 선생의 맥학인 지산맥법은 혁신적이다. 기존의 27맥상에만 의존하지 않고, 1분간의 脈動數를 기준으로 ‘芝山圖表’를 활용해 장부의 계위와 병리를 추적한다. “그 형에 그 맥이 있어야 順이다”라는 원칙 아래 形色脈症의 합일을 추구했다.
또한 그는 “의학의 體는 仙道”라고 공언하며 ‘芝山仙法’을 통한 양생을 강조했다. 調身·調息·調心을 통해 마음과 몸을 합일시키는 선도 수련은 醫者에게는 사물을 바르게 보는 혜안을, 환자에게는 天壽를 누리는 법도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병이 나기 전 다스리는 治未病의 철학이자, 생활이 곧 의학이 되는 양생의 실천이다.
지산 선생은 한의사가 기술자를 넘어 聖醫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醫者三訓’을 제시했다.
첫째, 심신합일로 사물을 바르게 보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는 환자의 형색맥증을 합일하여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한 필수 전제다. 둘째, 여건 변화에 따라 能變할 수 있는 임기응변의 지혜를 가꾸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고정된 법칙으로만 설명할 수 없기에, 時中의 도를 찾아내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셋째, 정기신을 배양하여 천리에 역행하지 않고 천수를 다하는 것이다. 한의사 스스로가 양생의 본보기가 되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할 때, 비로소 환자의 생명을 온전히 다룰 자격을 얻는다는 엄중한 가르침이다.
지산 박인규 선생의 형상의학은 현대 인공지능(AI)과 만났을 때 그 진가가 더욱 빛날 학문이다. 형상의학은 얼굴의 윤곽, 눈·코의 기세, 피부색 등 정교하게 체계화된 시각적 지표를 기반으로 한다. 이는 이미지 인식과 딥러닝 기술을 통해 객관적 데이터로 변환하기에 매우 용이한 구조다.
수만 가지 인간의 모순을 패턴화하고, 방대한 임상 사례를 지산도표와 결합하여 분석하는 과정은 AI의 연산 능력과 완벽하게 궤를 같이 한다. 선생이 혜안으로 꿰뚫어 보았던 ‘형상적 법칙’은 이제 디지털 기술을 통해 보편적이고 정밀한 맞춤형 미래 의학으로 진화할 준비를 마쳤다.
지산 박인규의 형상의학론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원형을 탐구하고 미래 기술과 공명하는 살아있는 의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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