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지난달에 출간된 현대의학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신간 두 권을 읽고 있었던 터라, 12월은 이 책들을 주제로 삼아도 되겠다 싶었다. 『허준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VS 의대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로 제목도 미리 정해 두었다. 『허준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나온 것도 벌써 2006년의 일이다.
“아이들 감기, 한방으로 다스린다”는 한의계의 포스터를 문제 삼으며 한의학 폄훼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책으로 저자는 소아과 의사이다. 『의대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2023년)는 의대 중심의 엘리트, 면허 독점 구조가 의료를 왜곡하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공정성을 해치고 있으므로 의대 특권을 해체하고 의료·교육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국가가 지속가능하다는 주장을 담은 책으로 저자는 성형외과 의사이다. 의대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의사 한 명의 외침은 설득력이 부족했는지 올해 대학입시에서도 최상위권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의대로 달려가고 있다.
나혼산 개그맨의 갑질 뉴스를 읽어가다가 미리 정해둔 제목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사 이모, 의대 교수 맞다! 박00 재차 강조”, “주사 이모, 의사면허 없고 조리사 자격증만 있어”, “주사 이모, 의사인 줄” 등 합법과 불법의 논박을 한번에 정리할 수 있는 것은 국내 의사면허 제시였을 것이다. 그 선명하고도 깔끔한 방법이 있음에도 위와 같은 하나마나한 시부렁거림이 난무하는 이유는 주사 이모가 의사면허가 없기 때문이다. 이토록 의사면허는 대단하고 무거우며 그리고 값비싼 것이다. 면허 없는 사람이 의료행위를 하면 의료법 상 불법이다. 무자격자의 의학적 시술은 형사처벌 대상이다. 단순 소비자는 일반적으로 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무자격자인 걸 알면서 지속적으로 이용하거나 소개를 하는 행위 혹은 이익 관계라도 존재한다면 공범 가능성도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주사 이모, 부항 할매 같은 야매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주사 이모 뉴스가 봇물 터지던 날, 약간의 친분이 있는 보좌관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항 할매’라고 불리우는 조선족 한 분이 동여의도 모 오피스텔에서 오랫동안 근무(?) 중이라는…. 새벽이든 야간이든 주말이든 공휴일이든 카톡으로 예약을 시도해서 할매가 오라고 하면 땡큐고 오늘은 안 된다고 하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곳. 내가 원하는 시간에 30분에서 1시간 사이 전신 불부항으로 시작하여 지압과 경락마사지의 중간 즈음에 해당하는 수기치료를 꼼꼼하게 병행함은 물론 태국 마사지에서나 가능한 아크로바틱 포지션을 취하게 한 후 급소를 딱딱 때리는 듯한 손기술이 더해지면 카이로프랙틱과 추나를 받을 때의 뼈 맞춰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는 실감 나는 경험담. 뻑적지근했던 온 몸의 근육들이 비로소 제 위치를 찾아가는 다시 태어나는 바로 그 느낌! 여의도역 금융맨들과 주말 야근이 잦은 국회 근무자들끼리 알음알음으로 찾아간다는 전설적인 부항 할매! 근무 시간 이내라면, 대기 없이 치료만 가능하다면 국회 내 의무실을 이용하겠지만 새벽이나 야간에 간절하게 치료가 받고 싶을 때 문 여는 의료기관이 없으니 이 할매만한 분이 없다는 하소연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치료비는 현금, 게다가 할매가 부르는 게 값! 그때그때 달라요!
주사 이모나 부항 할매같은 야매들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편의성이다. 소비자가 치료받고 싶은 특정 시간과 장소를 최대한 맞춰주기 때문이다. 방문진료, 야간시술 그리고 차내 링거 등은 의료소비자의 시간을 아껴주는 섬세한 배려이다. 정식 의료기관을 방문할 경우 의무기록이 남고 대기실에서 일반인들과 섞여있다가 의사를 만나야 하는 번거로움은 얼굴 팔린 사람들에게는 꽤 불편한 일이다. “내가 젤 잘나가” 레벨의 유명인들도 병의원에서는 한 명의 환자일 뿐인데 기다리면 안 되고, 일반인들과 섞이면 안 되고,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선민의식은 위법성의 두려움마저 희석시켰을 것이고 야매 시술과 대리 처방의 편리함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이다.
야매든 면허 있는 의료인에게든 누릴 특혜가 거의 없는 일반인들은 오직 “과잉진료 없는 병원”, “사기 치지 않는 양심 병원”, “의료사고 없는 병원” 등을 키워드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가고자 하는 과목의 병의원을 꼼꼼하게 검색한 후 방문을 결심하고도 영수증 리뷰에 올라온 유경험자들의 간증까지 몇 개 읽고나서야 병원에 도달하는 번거로움을 감내한다. 과한 의전으로 최근 여론의 도마에 오르신 여권 중진 의원님 한 분의 의전 리스트에 드디어 대학병원 특혜 이용까지 보도되었다. 일반인들은 과잉의료 주의, 의원님들은 과잉의전 주의! 한두 사람의 특별한 대우를 위해서는 안 특별한 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특별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위험한 과잉의료』(피터 괴체, 공존, 2023년 11월)
- 제약회사에 고용된 의사들은 약에 대해 비합리적인 견해를 가져서, 더 나을 것도 없는 고가의 약을 저렴한 대체약보다 선호하고 또 약물 치료를 다른 대체 치료법보다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 정기 건강검진은 더 많은 진단, 더 많은 투약, 더 많은 유해반응을 야기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만큼 건강하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심리적인 문제가 생긴다.
- 수많은 비질환(non-disease)이 있다. 제약회사들은 아픈 사람들과 아플 위험이 있는 사람들, 즉 모든 사람들에게 약을 파는 것으로는 부족해 수많은 비질환을 만들어냈다. 정신의학은 온통 비질환으로 가득하다.
- 의사들은 자신의 임상 경험을 강조한다. 임상 경험은 진실을 호도하기 쉽다.
- 건강한 사람의 일상에서 통증은 모두가 겪는 현상이며 대개는 곧 사라진다. 그러므로 통증에 대한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 만성 통증은 이야기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아편 제제에 의존하게 되며, 그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도 많다. 만성 통증 환자는 의사가 치료하기에 매우 까다롭다. 어떤 것도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일 때는 대체로 심리적 요인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 많은 환자와 일부 의사들이 대체의학의 비합리성에 매료된다. 내가 보기에는 인간의 신앙적 성향과 관련된 현상인 것 같다.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
(로버트 러프킨, 정말중요한, 2024년 12월)
- 우리는 과학을 좇다가 병을 얻었다.
- 모든 질병의 발병 여부는 개인의 유전적 특질과 더불어 독소, 결핍 상태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생활습관 등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 식품산업은 공중보건 분야를 구미에 맞게 뜯어고칠 수 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쓰레기 음식도 건강한 먹을거리로 탈바꿈시킨다.
- 그때나 지금이나 항암 선택지는 똑같다. 수술 아니면 방사선 치료 아니면 화학요법이다. 이 모든 연구에 집중했건만 여전히 우리는 베고, 태우고, 독을 쓰기만을 반복한다.
- 의사가 여러분의 건강을 챙기지는 않는다. 영양사가 내 몸매를 날씬하게 가꾸지도 않는다. 트레이너가 탄탄한 몸을 책임지는 일도 없다. 결국 자신에게 달린 문제다.
- 5년 전에 이 책을 쓰려고 관련 조사를 하다가 충격을 받았다. 흔한 질병들의 원인이 비슷비슷했다. 서방 세계에서 가장 흔한 사망 원인들의 뿌리가 결국에는 하나였다.
- 노화와 결국에는 죽음 자체를 포함하는 주요 만성 질환의 뿌리는 대사 기능이상이다. 이 문제는 어떤 명의보다도 여러분 자신이 더 잘 해결할 수 있다.
- 당신은 매일 그리고 매끼 더 나은 방식으로 더 오래 사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복된 삶이 내 손에, 내 입에, 내 위장에, 내 혈류에 달렸다.
『의사를 반성한다』
(나카무라 진이치, 사이몬북스, 2025년 1월)
- 가만히 놔두는 것, 이것이야말로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가장 좋은 배려이다.
- 미국의 노년 의학자 토마스 피누케인(Thomas E.Finucane)은 고령의 치매 환자에게 억압적으로 음식을 주입하는 일은 반드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항상성이 흐트러지거나 회복에 방해가 될만한 사태를 만나면 몸은 여러 방법으로 경고 신호를 보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 움직일 때마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라는 몸의 신호이다.
- 면역학의 권위자 야야마 도시히코(矢山利彦) 박사는 ‘암은 때릴수록 흉폭해진다’라고 주장한다.
- 나이 들어서 탈이 나는 것은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탓이다.
- 병원 산업은 늘 유행을 몰고 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그때마다 한 차례씩 회오리바람이 분 다음 그 유행이 끝나야 바람이 잠잠해진다.
『중독을 파는 의사들』
(애나 렘키, 오월의 봄, 2025년 11월)
- 현대 미국 문화에서는 통증을 철저히 피해야 할 저주로 여긴다. 이 새로운 인식은 통증이 영구적인 신경학적 손상을 일으켜 향후 또 다른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 심리적 손상과 마찬가지로 신체 통증 역시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향후 통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중추 민감화(central sensitization)라고 한다.
- 오늘날 우리는 참을 수 없는 통증의 기준이 전례 없이 낮아진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이 새로운 기준 탓에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중독성 처방약물 처방과 소비가 늘어났다.
- 오늘날 의료계에서는 속임수와 기회주의가 만연한 구조 속에서 돈을 버는 일이 의료 행위를 결정하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 이 시대의 정신과 의사들이 스스로를 ‘정신약리학자’라고 부르며 정신과 약물 처방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비약물적인 방법으로 통증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의 핵심은 통증을 조절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기 위해 ‘신경계를 재훈련’하는 것이다.
- 의사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은 환자와의 관계이다. 이 핵심 진리를 지키기 위해 의료 제공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다.
『진단의 시대』
(수잰 오설리번, 까치, 2025년 11월)
- 질병 정의의 확장, 즉 더 많은 사람이 병이 있다고 여겨지는 집단에 포함되도록 기준점을 옮기는 추세는 많은 의학적 문제의 진단율에 극적인 효과를 일으켜왔다.
- 진단에는 언제나 회색 지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 놓이면 의사는 환자에게 최선이라고 느끼는 바에 따라서 과소진단이나 과잉진단 중 어느 한쪽을 택하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 주류 의학에는 하나의 진단 범주에 산뜻하게 들어맞지 않는 여러 계통에 걸친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없다.
- 두려움은 과잉진단의 강력한 추진력이다. 암은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어떤 행동을 하도록 압박하는 무엇인가이다. 두려움의 해독제는 지식, 신뢰, 지원이다.
- 병력이 복잡한 환자를 만날 때면, 나는 마지막으로 완벽하게 건강했던 때가 언제였는지를 물으면서 대화를 시작하고는 한다.
-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더욱 고착시키는 진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취미, 관심사, 열정, 사회망을 통해서 웰니스를 추구해야 한다.
- 진단은 명백히 아픈 사람을 위해서 남겨두고, 차이와 불완전함을 더 관용적으로 봄으로써 사람들이 부담 없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에 침구라고 하는 게 있었잖아요. 옛날에.. 그 다음 해방 이후에 그게 뭐 어찌어찌하다 사라진 거 같아요. 근데 침구는 한의학의 일부로 돼 있나요? 아니면 그냥 없어져 버린 건가요?” “한의사는 약을 달이는 것과 처방을 하지, 침 놓는 것은 잘 안 하죠?” “이 소위 단침이라 하나? 조그마한.. 보통 침구사는 긴 침 쓰는 그런 사람들이 있던데 과거에..” “침을 별도로 연구하는 뭐 그런 프로그램은 없어요?” “그 침구학이라든가 침술에 관한 연구나 이런 것들은 다 나름대로 하고 있어요?”
지난 12월16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있었던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대통령님의 한의계 관련 질문들의 목록이다. 위 영상을 내게 처음 공유해 주신 선배는 “이게 어찌 된 노릇이야?”로 시작했다가 “다 내 탓이오!”로 끝나는 문자를 함께 남겼다.
현 시대의 한의학 위상을 다시금 생각하면서…
침구치료를 해방 이후에 사라진 것으로, 그래서 한의사는 침치료보다는 약을 달이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로 한의계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잘못인가? 아니면 이런 대중의 인식 형성에 기여를 했을 것이 분명한 업계 당사자들 잘못인가? 대통령님 발언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던 마음을 위로해준 싯구절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본인의 자화상을 보면서 쓴 시이다. “나라고 해도 좋고/ 나 아니라 해도 좋다/ 나라고 해도 나고/ 나 아니라 해도 나다/ 그 시비 속에 나는 없다/ 제석천 구슬 중중 무진하거늘/ 여의주 한 상(相)에 집착하는 자 누구인가, 하하”
현대의학의 문제점이 아무리 부각되어도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한의학이 제시되는 일은 대한민국 보건정책 혹은 주류 의료계에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한의학 자체가 가진 시대적 그리고 내재적 한계 상황을 머리에 가슴에 짊어진 채, 임상한의사로서의 간당간당함을 감당하며 올해도 진료실을 바쁘게 그리고 즐겁게 뛰어다녔다. 다가오는 2026년, 큰 바람은 없다. 올해만큼 딱 올해만큼만 건강한 일상을 이어가는 것.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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