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소통으로 스스로 깨닫게 하는 공감의 지언고론요법
김명희 연구원
한의학정신건강센터(KMMH)
경희대 한방신경정신과 박사 수료
최근 영국 브레츨리 시에서 개최된 ‘제1차 AI 안전성 정상회의’에서 G7을 포함한 세계 주요 국가 28개국은 AI의 재앙적 피해를 막기 위한 개인정보 보호, 사이버 보안 등 11개 ‘AI 국제행동강령’이 담긴 ‘블레츨리 선언’을 채택했다.
정부도 ‘챗GPT시대에 맞춰 의료인은 물론 일반 의료소비자들도 의료정보데이터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의 ‘마이 헬스웨이(의료분야 마이데이터) 플랫폼’을 도입하여 건강정보의 선택 기능을 확대시켜 나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대형언어모델 (Large language model, LLM)로 의학적 지식 컨텐츠들을 구축해 놓는다 하더라도 인공지능(AI) 시대를 열어갈 키워드는 결국 인간 고유의 역량인 인문학적 성찰에 있으며 AI에 대한 제대로 된 통제나 관리, 감독 없이는 자칫 혼재된 얼치기 가짜 논문들을 양산하게 되어 학문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한의학은 인간 개체의 전체적 생명현상을 전일(全一)로써 관찰하여 몸의 생·장·화·수·장과 마음의 혼·신·의·백·지에 대해 상대세력적 활동의 조화상태로 분석, 이를 생명현상으로 연구하고 다루는 방법을 수천 년 간 임상으로 실증해 왔다.
한의학리는 병의 원인이 외인이든 내인이든 간에, 생명력의 이상변이를 에너지대사와 물질대사의 음양세력 간 소장운동으로 오기능 상관관계의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질병이 회복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대상의 주체를 나열식 해부학적 물질에다 주는 서의학과는 달리, 결과적으로 한의학은 살아있는 인체에 이상변이가 일어나야 질병이 생기는 것으로 보고 병세, 병기, 병정 간 음양부조인 질병에 대해 인체가 스스로 체내의 병균, 스트레스 등을 이겨내도록 하는 음양조화균형을 이끌어 내어 치유해 왔다.
정신건강한의학은 정신의 기층부에서 발생기능(혼)·추진기능(신)·통합기능(의)·억제기능(백)·침정기능(지) 간 상호관계로 개인별 생명활동, 생활현상에 따라 나타난 불균형의 병정을 분석하고, 그 분석된 개념을 기초로 하여 오기능 구조역학적 균형의 관점에서 개별 맞춤식 치료법으로 질병을 다루어 왔다.
인공지능(AI) 기술시대에 한의학의 역량은 구축되고 있는 의료데이터 정보를 통해 한의학리의 확실성을 견고히 하고 질병의 예방과 치료 및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의과학’에 맞춰져 있다.
향후 한의학의 치료방향도 자체 생명력과 자발적 자기대사력을 상생시키는 동의생리학리 이론에 두고 이를 현대적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는데 모아져야 할 것이다.
임상사례
핏기 없는 얼굴의 20대 여성이 어머니와 함께 내원했다. “4달 전부터 모 대학병원에서 급성 공황장애로 진단받고 항정신약을 복용하고 있는데도 어지러움, 가슴 두근거림, 두통, 호흡곤란이 여전해 요즘은 잠도 못 이룬다”며 어머니가 초조한 표정으로 호소했다. 망문문절 진찰해보니 촌관척 모두 맥무력허약(脈無力虛弱)한 미맥(微脈)이었다.
한의사: 최근에 스트레스 받거나 신경 많이 쓴 일이 있었나요?
환자: (힘없는 목소리로) 특별히 별다른 일은 없었는데도 몇 달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러워졌어요.
엄마: (다급하게) 얘가 큰딸인데 어려서부터 신경이 약해요. 몸도 약해서 엄청 신경 써서 키웠어요. 더구나 제가 10년 이상 대학병원에서 우울증약을 처방받아 복용한 적이 있는데 날 닮아서 그런 건 지 걱정돼요.
한의사: 아니, 어머니는 무슨 일로 우울증약을 복용하셨나요?
엄마: 제가 형제 여럿인 장남에게 시집와 시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온갖 속 터지는 일을 극복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정신과약도 먹게 되고, 이제 와서 말인데 남편 사랑 하나로 극복하고 살았어요.
한의사: (딸을 보며) 어릴 때 부지런히 살림하시는 엄마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요?
환자: 엄마가 고생만 하시니 속상했지만, 늘 ‘훌륭하시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는 자식들을 끔찍이 신경 써서 키우셨고,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온갖 뒷바라지도 다 해주셨어요. 저도 엄마처럼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한의사: 엄마를 무척 존경하고 있군요.
환자: 네 맞아요. 우리 자매들은 엄마 없으면 안돼요. 저는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최근 들어 제 인기가 높아져 학생들이 많이 늘어나고 학원에서도 기뻐하면서부터 이런 증상이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저도 엄마 닮아서 그런 지, 뭐든지 했다 하면 아주 완벽하게 해내거든요.
한의사: (눈을 맞추며) 부모님께 배운 데로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처럼, 환자분은 이미 공황장애를 극복할 힘도 지니고 있었네요.
환자: (활짝 웃으며) 네. 선생님 말씀처럼 가르치는 일은 제가 원래 좋아했고 적성에도 잘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공연히 ‘더 잘해야겠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 너무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지쳤던 거 같아요.
한의사: 환자분은 많은 학생들을 강의에 집중하게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데, 너무 긴장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일순간 장애가 왔던 거예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더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해야지요.
환자: (눈을 반짝이며) 네. 정말 맞아요. 어쩐지 원인을 몰라 답답했는데, 선생님과 상담하니 마음이 훨씬 편안해지네요.
혼·신·의·백·지의 조화와 균형은 자발적 자기대사치료법
복약 한 달 후 내원한 환자는 “선생님이 지어주신 한약을 복용하면서 편안한 상태에서 강의할 수 있게 되었다”며 “선생님 덕분에 요즘은 아예 공황장애 약도 끊고 잠도 잘 잔다”라고 기뻐했다.
위 사례에서 보듯 탁월한 전문성에 풍부한 식견을 가졌던 명랑한 환자는 ‘더욱 더 잘해야 한다’는 불안과 초조감이 몰려오는 감정의 공황으로 통합기능(意)의 정지변동이 사(思)로 편항(偏亢)되어 혼란을 겪어 왔으나, 필자는 자체 비토(脾土)기능을 조화시키는 음양조화치료법을 적용시켜 자발적 자기대사력 회복을 통해 치료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필자는 환자의 병증을 ‘사려과다 현상’으로 보고 ‘경계정충, 불면증, 불안증’을 겪고 있던 환자에게 ‘심신과로, 비위허약’으로 변이증후군을 변증·분석하여 이를 오신의 통합기능을 조화롭게 하는 지언고론요법, 정서상승요법, 오지상승위치, 이정변기요법 및 가감안신보심탕으로 침구·방제했다.
한의학정신건강센터(KMMH)가 산·학·연·병과 연계해 한의약 R&D 주요사업 중 하나로 한방병동 임상사례 확충을 통해 정신장애질환군 환자들을 치료할 때 부작용과 습관성이 없고 면역이 강화되는 한약방제 개발에 적극 나서고자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