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협회장을 뽑는, 좋은 지도자가 절실한 중차대한 시점입니다, 마침 남한산성이라는 영화가 나오고 최명길과 김상헌의 관점이 재조명되는 터라 9년 전에 써 놓았던 글을 다듬어 올려봅니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많겠지만, 이번 협회장님 해임사태를 보면서 화합을 최고 덕목으로 꼽고 싶습니다.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자 제일 먼저 자신을 고문하고 흑인을 탄압했던 백인 경찰과 우익 인사들의 사면령을 내렸습니다. 그들을 포용해야 다른 반대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이런 통 큰 지도자를 기대하는 것이 저만의 허황된 꿈은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
가. 말, 길, 삶 그리고 ……
김류가 읽어 내려가는 임금의 교지를 들으면서 최명길은 울음 같은 말들을 참아 내고 있었다. 담장 너머로 삼전도 쪽 들길이 점점 흐려졌다.
…전하, 지금 성 안에는 말[言]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 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적에게 닿는 저 하얀 들길이 비록 가까우나 한없이 멀고, 성 밖에 오직 죽음이 있다 해도 삶의 길은 성 안에서 성 밖으로 뻗어 있고 그 반대는 아닐 것이며, 삶은 돌이킬 수 없고 죽음 또한 돌이킬 수 없을진대 저 먼 길을 다 건너가야 비로소 삶의 자리에 닿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 길을 다 건너갈 때까지 전하, 옥체를 보전하시어 재세在世하시옵소서. 세상에 머물러주시옵소서……. (본문 197- 198쪽)
감히 당신께 묻습니다. 당신의 전하(殿下)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받들어 모셔야 할 전(殿)은 어디에 세워야 합니까? 남한산성을 세 번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화두(話頭)가 이것이었습니다.
이리도 어렵고 험난한 길을 지극한 정성으로 헤쳐 나가면서 지켜야 할, 꼭 지켜주어야 할 당신의 전하는 누구입니까?
오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금수강산, 우리 선조의 피와 땀이 배어있지 않은 곳이 없는 보배로운 땅, 이 강토 이 나라와 소처럼 착하고 순한 백성을 싼값에 대국에 저당 잡히고 알량한 왕권을 빌어 와서는 자못 점잔을 빼며 용상(얼마나 욕된 이름이던가!)에 앉아 거들먹거리는 저 이씨 왕조의 무지렁이 같은 자들입니까?
본연의 무능을 재물과 허세로 감추고 당상(堂上)과 당하(堂下)에 모여 하릴없이 패싸움을 일삼고, 어려운 문자로 만들어진 자신도 모르고 남들은 더 알 수 없는 쓸모없는 지식과 이론으로 잘난 척하지만, 막상 어려운 때가 되면 쥐새끼처럼 지금까지 타고 있던 배를 버리고 저쪽으로 도망가서는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관료나부랑이들입니까?
이제 천하를 명나라에 팔아먹고 쓸데없는 당쟁으로 국력을 소모하다가 막상 위기가 닥치니까 그 잘난 왕 노릇에 꼭 필요한 백성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제 한목숨을 부지하고자 남한산성에 처박혀서는, 하는 일이라곤 ‘경들의 말씀이 지당하오.’ 하는 것뿐인 저 이조의 멍청한 왕을 보고 있자니 속에 천불이 납니다.
임진(壬辰)년 왜란(倭亂)을 거치고 다시 정묘(丁卯)년의 호란(胡亂)을 당하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말입니까? 임진년에만 해도 저 탐욕스런 왜구들이 부산, 동래를 거처 한양까지 진격하는데 보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강토를, 처녀 속살처럼 순결한 이 산하를 저 냄새나는 왜놈들에게 이렇듯 허무하게 내어준 것이 몇 년도 채 되지 않아 이번에는 북쪽 오랑캐에게 금수강산을 유린당하게 되었습니다.
옛 말씀에 그 시절이 편안할 때 위험을 대비하라 했는데, 편안할 때는 서로 싸우면서 그 편안함을 좀먹고 세월을 죽이더니, 막상 위기가 닥치니 어떤 일도 할 줄 모릅니다. 그 잘난 지배 계급들이 하는 일이라곤 위험을 백성들에게 전가하고 그 좁은 산성으로 도망가서는 반성은커녕, 밥 먹고 다시 힘내서 서로 다투는 것에 힘을 낭비하는 것뿐이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다시 제게 묻습니다. 제가 섬겨야 할 전하는 누구신지?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살아남아 끝까지 재세(在世)해 달라고 기원해야 할 대상은 미련한 군왕이 아니고 말 많은 재상들도 아니고 어린 백성임을 저는 이제 알았습니다.
삶과 죽음이 한 순간에 나뉘는 전쟁 통에서나, 위험이 잡초처럼 무성한 생존의 길에서도, 묵묵히 제 일을 하면서 하나의 먼지처럼 이름 없이 스러지는 저 백성들이 이 땅의 주임임을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오천년 상처투성이의 역사가, 온갖 고난을 감내한 이 산하가 그것을 온 몸으로 증명하는데도, 통곡으로 외치는데도 저는 여태 몰랐습니다. 이 바뀌지 않는 거대하고도 환한 진실을 보지 못했던 저는 얼마나 어리석은 장님이었고, 듣지 않던 저는 왜 이리 답답한 귀머거리였단 말입니까?
길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마음의 길을 마음 밖으로 밀어내어 세상의 길과 맞닿게 해서 마음과 세상이 한 줄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삶의 길은 열릴 것이므로, 군사를 앞세워 치고 나가는 출성과 마음을 앞세워 나가는 출성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먼 산줄기를 바라보면서 김상헌은 생각했다. (본문 199쪽)
그렇습니다. 길이고 마음이고 다 사람의 것이고 다시 백성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는 살 길이란 없습니다. 이 백성의 길을 빌지 않고는 출성(出城)이란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최명길과 김상헌이 그렇게도 애타게 찾던 그 길, 나라를 구하고 사직을 보존하는 길은 오직 백성들에게 있음을, 천 년 전이나 천 년 후에도 오직 백성뿐임을 그들은 정녕 몰랐습니다. 정답은 제쳐 놓고 답을 찾으려니 그리도 허황한 말(言) 먼지들만 성안에 가득 찰뿐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 견딜 수 없는 것은
임금의 어깨가 더욱 흔들렸다. 내관들이 임금 곁으로 다가갔다. 내관은 임금 양쪽에서 머뭇거리기만 할 뿐, 흔들리는 임금의 어깨에 손대지 못했다. 최명길이 말했다.
- 전하,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옵니다. 군병들이 기한을 견디듯이 전하께서도 견디고 계시니 종사의 힘이옵니다. 전하, 부디 더 큰 것들도 견디어 주소서.
임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임금은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본문 249쪽)
과연 죽음 이전에 치욕이란 말입니까? 치욕의 무게는 죽음보다 가볍다는 말입니까? 최명길은 명분보다 실리를 챙기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반대편에 서있는 김상헌과의 대비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최명길은 죽음보다 치욕을 가벼이 여깁니다. 아니 그런 인물로 그려진다고 보는 것이 옳은 해석일 것입니다.
시선을 서안 너머 마룻바닥에 고정시킨 채 임금은 고요했다. 신료들의 목소리가 합쳐져서 누구의 말인지 임금은 분간할 수 없었다.
김상헌이 앞으로 나왔다.
- 전하, 뜻을 빼앗기면 모든 것을 빼앗길 터인데, 이 문서가 과연 살자는 문서이옵니까?
임금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상헌이 다시 임금을 다그쳤다. (본문 314쪽)
최명길이 주화파라면 김상헌은 척화파입니다. ‘오랑캐와 무슨 화친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것도 군사를 몰고 와서 우리 산하와 백성을 해치고 군왕을 핍박하고 이제 와서 나와서 내 발아래 무릎을 꿇으라니, 이건 아니다. 차라리 혀를 물고 죽을 수는 있어도 뜻을 굽힐 수는 없다.’
그렇습니다. 옳지 않은 일에 비분강개(悲憤慷慨)가 없다면 그건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상헌이 조금 더 선비답습니다. 이에 비해 최명길은 장사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누가 더 낫다고 평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허황한 말 먼지만 날리게 될 것이니 아예 그런 생각은 접어두십시다(姑捨是). 이 장면에서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왕이 치욕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토록 군왕에게 충성하는 그들이, 그렇게 고전(古典)에 해박하고 역사에 달통한 그들이 왜 백성을 볼 줄 몰랐더란 말입니까. 왕이 무릎 꿇는 것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백성 때문임을 그들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이 지금 우리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대(事大)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맹자(孟子)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에 惟仁者 爲能以大事小 …(중략)… 惟智者 爲能以小事大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직 어진자만이 능히 큰 것으로써 작은 것을 섬길 수 있고, 오직 지혜로운 자라야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섬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 이치가 큰 것이 작은 것을 섬긴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으니 논외로 하고, 작고 약한 것은 크고 강한 것을 섬기는데 지혜로워야 한다는 말씀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큰 것들은 항상 작은 것을 넘보고 언제든 힘으로 제압할 수 있으니 작은 것들의 생존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작은 것이 큰 것들 틈에서 살아남으려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역사는 지혜와 어리석음 사이에서 요동치는 고난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한 순간이 더 많았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유사 이래로 한사군부터 시작해서 그 후 여러 차례 강역을 침범한 중국(중국처럼 호전적인 종족도 없는 듯합니다), 고려․조선조의 왜구, 근대에 와서는 일본,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폭압으로부터 영토와 주권을 지킨 것은 돌이켜보면 지배계급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힘없는 백성들이 부서지고 깨지면서 이 산하를 지켜왔습니다. 지배층이란 것들은 평화로울 때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백성을 수탈할 생각만 하다가 막상 위기가 닥치면 제 한 몸 구하고자 힘없는 백성들을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위험으로 내몰기까지 합니다.
이 국가라는 개념도 많은 검토가 있어야겠지만 국가적 레벨에서 벌어진 사태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고는 위에서 치고 죽어나는 것은 아랫것들뿐인 게 지금까지의 역사였습니다. 촘스키의 말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는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말임을 알 것 같습니다.
멀리 거슬러 갈 것도 없이 6․25 사변 때만 봐도 그렇습니다. 전쟁은 윗대가리에서 이승만과 김일성 아님 그 보다 더 윗선인 미국과 러시아가 일으켜 놓고 전쟁 내내 죽어 나간 것은 힘없는 우리 국민들뿐이었습니다.
뿐 아닙니다. 개전 초 이승만 패거리들은 전쟁 3일 만에 서울을 포기하고 부산까지 도망가면서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저들끼리만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한강 인도교 폭파당시 다리를 건너 피난가려다 죽은 사람들이 수백 명이나 되고, 다리가 끊겨 서울에 갇혀 고생한 서울 시민이 80퍼센트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제 청의 칸이 용골대를 앞세워 침입해오자 인조는 한양을 버리고 좁은 남한산성에 피해 들어와 애꿎은 백성을 괴롭힙니다. 편안하던 백성들의 안방에 사나운 이리를 끌고 들어온 셈이 된 것입니다. 또 강화도로 보낸 왕자들과 처첩들로 인해 힘없는 강화도 백성들은 그 죄를 입어 청병들에게 무참히 도륙됩니다. 피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처참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모습입니다.
조선인 포로들이 언 강 위로 뗏목을 끌었다. 뗏목 한 척에 포로 오십여 명이 붙어 있었다. 조총을 멘 청병들이 포로를 부렸다. 청병들은 쓰러진 포로들을 뗏목에서 떼어 내어 얼음이 깨진 물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강 상류 쪽에서도 뗏목이 내려왔다. 포로들은 상류 쪽 양평 산악에서 잘라 낸 통나무를 뗏목으로 엮어서 언 강을 따라 밀고 내려왔다. 청병들이 채찍으로 포로들을 갈겼다. 뗏목들은 삼전도나루에 닿았다. 나루터 모래벌판에서 포로들이 통나무로 사다리를 만들고 있었다. 사다리의 길이는 스무 자가 넘어 보였다. 성을 타고 넘어 들어가서 깨뜨릴 때 성벽에 걸치는 운제雲梯였다. (본문 162쪽)
백성들에게 지배층들은 과연 어떤 존재입니까? 조선이라는 국가를 엄밀하게 설명하면 이씨 왕조를 이루는 군왕들과 그의 친족, 처첩들의 호강을 위해 조금 똑똑한 놈들은 사대부라는 등급을 받고 성안에서 관리 질을 하거나 아니면 지방 관료를 맡아 보좌하면서 편히 살고, 등급외의 나머지 백성들은 쌔 빠지게 열심히 일해서 귀하신 분들 먹여 살리는 그런 시스템 아니었던가요?
이 착한 백성들은 성대(聖代)에도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고 흉년에는 굶어 죽거나 유민(流民)이 되어 타향을 떠돌며 거지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전쟁이 나니 내 나라의 백성이 청병의 포로가 되어 내 나라의 성을 깰 운제를 만들기 위해 고된 노역을 합니다. 제가 싼 똥으로 제 몸을 구워 먹히는 낙타의 비애를 보는 듯합니다.
조선에서도 보호해주지 못하는 못난 백성들인데 청나라 군사들 눈에는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채찍으로 갈기고 얼음 구덩이로 밀어 넣고 잔인하게 다룹니다. 내 나라 사람이 아니고 남의 나라 사람들인데 오죽하겠습니까? 그 고초가 채찍질처럼 아프게 느껴집니다.
삼전도 청진에는 조선인 부녀들이 수없이 끌려와 있는데, 젊고 미색이 있는 여자들은 여러 군장들의 군막 안에서 몸시중과 술시중을 들고, 늙고 추한 것들은 군막 밖에서 청병의 끼니를 익혀 내며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고 땅꾼은 말했다. 끌려오는 여자들이 강을 건널 때 청병들이 등에 업힌 아이를 빼앗아 언 강에 던져서, 송파나루 앞강에는 머리가 처박히고 다리가 처박힌 어린아이들의 주검이 얼음에 줄지어 꽂혀 있다고 땅꾼은 말했다. (본문 240-241쪽)
송파나루 앞강 얼음판에 다리와 머리가 처박혀 죽은 어린아이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나라와 군왕과 군대를 생각합니다.
함석헌님의 <뜻으로 본 한국사>란 책에 보면 더 비참한 내용이 나옵니다. 정묘, 병자호란 그 연간에 우리 아녀자들의 젖퉁이를 북쪽 오랑캐 놈들이 다 베어갔다고 말입니다.
그 전에 고려 말 몽고의 침입 때는 굶주린 우리 백성들이 승리에 취해 술과 고기를 실컷 먹고 토한 몽고 병사의 토악물 찌꺼기를 주워 먹고 연명했다는 말도 나옵니다. 읽을수록 원통하고 울화가 치미는 우리의 역사입니다.
다. 당면하여
강화 검찰사 김경징은 배를 내어 달아났다. 조선 관군은 해안 돈대에 배치되어 있었다. (중략)
- 성을 지켜라. 물러서지 마라.
김상용은 지팡이를 짚고 성첩을 돌며 소리쳤다. (중략) 청병은 성첩을 돌며 청소하듯 도륙해 나갔다. 김상용은 쫓기면서 남문 문루 위로 올라갔다. 종이 따라왔다. 문루 위에 미처 쓰지 못한 화약더미가 쌓여 있었다. 김상용이 화약더미로 다가갔다. 종이 김상용의 도포자락을 잡았다.
- 대감, 어찌……
- 당면한 일을 당면하려 한다. 너는 돌아가라.
종은 돌아가지 않았다. 김상용이 화약더미에 불을 붙였다. 종이 김상용의 몸을 덮쳐서 끌러 안았다. 화약이 터졌다. 문루가 무너져 내렸고, 김상용의 육신이 흩어졌다. 종이 함께 죽었다.
위패를 받들고 강화도로 들어온 늙은 선비가 행랑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선비가 종에게 유서를 남겼다.
아들아, 너는 목숨을 귀하게 여겨 몸을 상하게 하지 마라. 아아, 너희들은 생명에 칼질을 하지 마라. 고향에 조용히 엎드려서 세상에 나오지 마라. (본문 331 - 332쪽)
이조 오백년 역사에 충신이 몇 명이고 열사는 또 몇 명입니까? 김경징은 쥐새끼와 같은 놈입니다. 이 배가 침몰하기 전에 새 배를 찾아갑니다.
그럼 김상용은 어떻습니까? 김상헌의 형답게 기개가 있습니다. 이런 선비가 있어 썩어빠진 왕조가 500년을 버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면한 일을 당면하려 한다.” 이 말에서 고절한 선비의 기개를 느낍니다. 그 기개에 감동하여 같이 산화한 종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행랑에서 자살한 늙은 선비도 가엽습니다. 고향에 조용히 엎드려서 세상에 나오지 마라는 유서는 또 다른 느낌으로 생각을 하게 합니다.
모진 전란을 겪으면서 귀한 목숨이 힘없이 스러지는 모습을 숱하게 보면서, 자식들만은 그런 참혹한 처지에 빠지지 않길 바라는 부모의 애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세상에 목숨보다 귀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 귀한 목숨을 평생을 간직한 신념을 위해 바친 김상용과 그런 선비들이 그래서 더욱 훌륭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라. 봄은 오는가?
묵은 눈이 갈라진 자리에 햇볕이 스몄다. 헐거워진 흙 알갱이 사이로 냉이가 올라왔다. 흙이 풀려서 빛이 드나드는 틈새를 싹이 비집고 나왔다. 바늘 끝 같은 싹 밑으로 실뿌리가 흙을 움켜쥐고 있었다. 행궁 뒷마당과 민촌의 길바닥에, 산비탈이 흘러내려 들에 닿는 언덕에, 냉이는 지천으로 돋아났다.
민촌의 아이들과 성첩의 군병들이 호미로 언 땅을 뒤져 냉이를 캤다. 냉이는 본래 그러하듯이 저절로 돋아났는데, 백성들은 냉이가 다시 겨울을 견디었다고 말했다. 냉이의 말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었다. 뿌리가 깊어야 싹을 밀어 올린다, 봄은 地心에서 온다고, 냉이를 캐던 새남터 무당이 말했다.
임금과 신료들, 백성과 군병과 노복들이 냉이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언 땅에서 뽑아낸 냉이 뿌리는 통째로 씹으면 쌉쌀했고 국물에서는 해토머리의 흙냄새와 햇볕 냄새가 났다. 겨우내 묵은 몸속으로 냉이 국물은 체액처럼 퍼져서 창자의 먼 끝을 적셨다. 쌀뜨물에 토장을 풀어 냉이 뿌리를 끓인 다음 고춧가루를 한 숟갈 뿌렸는데, 도살장 계집종의 솜씨와 수라간 상궁의 솜씨가 다르지 않았다. 태평성대에는 냉이국에 모시조개 서너 마리를 넣었는데, 정축년 정월의 남한산성 안에는 모시조개가 없었다. 냉이국을 넘기면서 임금은 중얼거렸다. 백성들의 국물에서는 흙냄새가 나는구나……. (본문 265-266쪽)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듯이 비참한 역사의 기록 끝에 다시 희망의 햇살이 비칩니다. 본래 그러하듯이 저절로 돋아나는 냉이처럼 우리 백성들은 이 어려움을 이기고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산천의 주인은 이를 가꾸고 보살피며 그 품속에서 일생을 보내고 다시 그 품속에 묻히는 백성들이니까요.
임금과 신료들, 백성과 군병과 노복들이 모두 밥아 말아 먹은 냉이국처럼 백성들은 천대를 받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주고 그 기운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 냉이국의 맛은 임금과 백성이 모두 같이 느꼈을 것입니다. 임금의 창자나 백성의 창자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진하게도 흙냄새가 나는 백성들의 국물처럼 임금과 신하의 마음결에 흙냄새, 백성 냄새가 스며들면 얼마나 좋을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다 부질없는 꿈이겠지만. 사실 어느 시대건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사이좋게 지낸 시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가 최고조로 발달했다고 하는 미국에서도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 두 대립항(對立項)은 사회를 이루는 두 요소로 서로 견제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고 항상 팽팽한 긴장을 이루면서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둘 중 하나(특히 하부구조)가 허약하면 다른 하나(상부구조)가 더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따라서 약해지면서 결국 그 사회는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상부구조는 그 힘의 원천이 오직 하부구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땅이 없이는 곡식이 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국민 없이 권력 없다는 말이 이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힘의 역전(逆轉)은 개선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역전의 결과가 17세기 남한산성 내부의 모습이고, 망해가던 조선 시대 후기의 모습이고, 오늘날 21세기 한국의 모습입니다. 백성들은 이제 지쳐서 조정이 어서 자리를 비켜주길 기대합니다.
국서1)가 이미 삼전도로 떠났다는 말을 김상헌은 하지 못했다. 말해주지 않아도 서날쇠는 곧 알게 될 것이었다. 김상헌은 말했다.
—아무 일 없으나, 갇혀서 답답하구나.
—봄에는 조정이 나가는 것이옵니까? 조정이 비켜줘야 소인들도 살 것이온대…….
김상헌은 대답하지 못했다. (본문 319쪽)
저 무능한 인조와 보수적 관료 패거리들은 자신의 보신을 위해 개혁자 광해군을 폐하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말로는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항상 백성과 유리된 사림(士林)들의 파벌싸움으로 저들끼리 힘을 소모하더니, 사정이 다급해지자 백성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백성들마저 외면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조정이 비켜주길 바라는 그런 정치는 다시 있어서는 안 되는데……
개인적으로 이조시대를 보자면 당대의 왕권과 그를 통해 행사되는 통치는 늘 현실과 유리된 그 지점에 있었고 - 이것은 유학이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한 왕도(?)정치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만 - 왕이든, 신료이든, 백성이든, 군병이든 현실 인식은 다 비슷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험난한 우리 역사를 놓고 볼 때, 우리를 바꾸어주는 건 외부의 힘이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고 다들 생각했던 시대였고, 힘 센 자의 편에 붙어 제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되 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신라시대는 당나라의 위세에 굴복하였고 고려 말에는 원나라의 편에 서야 행세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조 초기 이성계가 나라를 통째로 명나라에 바치고 왕권을 빌어먹더니, 이제 청에게 기대야만 왕권이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무력해진 것입니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 국내에 만연하는 정치․경제적 혼선, 이 모든 의도하지 않는 부조화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우선 무엇보다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는 위정자들의 오만한 자세를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국민을 섬기겠다고 말하던 때의 초심이 그립습니다.
또 하나 우리나라와 운명과 국민의 안위(安危)가 걸려 있는 중요한 대외관계(對外關係) 설정에 혼선이 많은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는 약자와의 관계이므로 맹자님의 인(仁)으로 해야 할 것이고, 주위의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강대국과의 관계는 지혜롭게 풀어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보수 정부가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친미(親美)․ 보수(保守)의 시각은 너무나 편협하고 어찌 보면 위험한 시각입니다. 친미도 요령껏 적절히 잘하면 우리나라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친미가 보수랑 결합하는 순간 우리의 지난 역사의 굴종(삼전도의 굴욕) 같은 폐해가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강자에 기대는 것과 그 상황을 끝까지 이어가려는 보수적 습성이 결합되면 그땐 보수가 아니라 수구에 반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섬기는 데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지혜란 한 쪽에 편중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과 멀리 내다보는 긴 호흡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인조 때도 명과 청 사이에서 균형 있는 외교를 했다면 그런 치욕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쉽지 않으므로 지혜라 한 것입니다. 이 친미라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친미가 되어야 하며, 미국과 친교(親交)하되 다른 강대국에게 섭섭하지 않은 배려를 해주는 친미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만을 위하는 정치, 오직 미국을 위한 사대에서 벗어나 국민을 위하는 정치로 중심을 잡을 때 남한산성의 비극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통령이 다시 한 번 강대국에 무릎 꿇고 신하의 예를 강요당했던 남한산성의 전철을 밟기를 원치 않습니다. 어찌 보면 최근 정치, 경제 사회적인 난맥상은 친미, 보수, 반동의 시각이 가져다 준 폐해일 수 있습니다.
강대국의 깍두기 노릇에서 벗어나 국민의 친구가 되고, 돈 많은 기업가와 부자들의 프랜들리에서 노동자와 가난한 국민을 배려하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이것도 부질없는 꿈일 수 있으나 꿈꾸는 행복마저 없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가파를 것 같아서 이렇게 사족(蛇足)을 답니다.
가. 말, 길, 삶 그리고 ……
김류가 읽어 내려가는 임금의 교지를 들으면서 최명길은 울음 같은 말들을 참아 내고 있었다. 담장 너머로 삼전도 쪽 들길이 점점 흐려졌다.
…전하, 지금 성 안에는 말[言]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 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적에게 닿는 저 하얀 들길이 비록 가까우나 한없이 멀고, 성 밖에 오직 죽음이 있다 해도 삶의 길은 성 안에서 성 밖으로 뻗어 있고 그 반대는 아닐 것이며, 삶은 돌이킬 수 없고 죽음 또한 돌이킬 수 없을진대 저 먼 길을 다 건너가야 비로소 삶의 자리에 닿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 길을 다 건너갈 때까지 전하, 옥체를 보전하시어 재세在世하시옵소서. 세상에 머물러주시옵소서……. (본문 197- 198쪽)
감히 당신께 묻습니다. 당신의 전하(殿下)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받들어 모셔야 할 전(殿)은 어디에 세워야 합니까? 남한산성을 세 번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화두(話頭)가 이것이었습니다.
이리도 어렵고 험난한 길을 지극한 정성으로 헤쳐 나가면서 지켜야 할, 꼭 지켜주어야 할 당신의 전하는 누구입니까?
오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금수강산, 우리 선조의 피와 땀이 배어있지 않은 곳이 없는 보배로운 땅, 이 강토 이 나라와 소처럼 착하고 순한 백성을 싼값에 대국에 저당 잡히고 알량한 왕권을 빌어 와서는 자못 점잔을 빼며 용상(얼마나 욕된 이름이던가!)에 앉아 거들먹거리는 저 이씨 왕조의 무지렁이 같은 자들입니까?
본연의 무능을 재물과 허세로 감추고 당상(堂上)과 당하(堂下)에 모여 하릴없이 패싸움을 일삼고, 어려운 문자로 만들어진 자신도 모르고 남들은 더 알 수 없는 쓸모없는 지식과 이론으로 잘난 척하지만, 막상 어려운 때가 되면 쥐새끼처럼 지금까지 타고 있던 배를 버리고 저쪽으로 도망가서는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관료나부랑이들입니까?
이제 천하를 명나라에 팔아먹고 쓸데없는 당쟁으로 국력을 소모하다가 막상 위기가 닥치니까 그 잘난 왕 노릇에 꼭 필요한 백성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제 한목숨을 부지하고자 남한산성에 처박혀서는, 하는 일이라곤 ‘경들의 말씀이 지당하오.’ 하는 것뿐인 저 이조의 멍청한 왕을 보고 있자니 속에 천불이 납니다.
임진(壬辰)년 왜란(倭亂)을 거치고 다시 정묘(丁卯)년의 호란(胡亂)을 당하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말입니까? 임진년에만 해도 저 탐욕스런 왜구들이 부산, 동래를 거처 한양까지 진격하는데 보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강토를, 처녀 속살처럼 순결한 이 산하를 저 냄새나는 왜놈들에게 이렇듯 허무하게 내어준 것이 몇 년도 채 되지 않아 이번에는 북쪽 오랑캐에게 금수강산을 유린당하게 되었습니다.
옛 말씀에 그 시절이 편안할 때 위험을 대비하라 했는데, 편안할 때는 서로 싸우면서 그 편안함을 좀먹고 세월을 죽이더니, 막상 위기가 닥치니 어떤 일도 할 줄 모릅니다. 그 잘난 지배 계급들이 하는 일이라곤 위험을 백성들에게 전가하고 그 좁은 산성으로 도망가서는 반성은커녕, 밥 먹고 다시 힘내서 서로 다투는 것에 힘을 낭비하는 것뿐이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다시 제게 묻습니다. 제가 섬겨야 할 전하는 누구신지?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살아남아 끝까지 재세(在世)해 달라고 기원해야 할 대상은 미련한 군왕이 아니고 말 많은 재상들도 아니고 어린 백성임을 저는 이제 알았습니다.
삶과 죽음이 한 순간에 나뉘는 전쟁 통에서나, 위험이 잡초처럼 무성한 생존의 길에서도, 묵묵히 제 일을 하면서 하나의 먼지처럼 이름 없이 스러지는 저 백성들이 이 땅의 주임임을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오천년 상처투성이의 역사가, 온갖 고난을 감내한 이 산하가 그것을 온 몸으로 증명하는데도, 통곡으로 외치는데도 저는 여태 몰랐습니다. 이 바뀌지 않는 거대하고도 환한 진실을 보지 못했던 저는 얼마나 어리석은 장님이었고, 듣지 않던 저는 왜 이리 답답한 귀머거리였단 말입니까?
길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마음의 길을 마음 밖으로 밀어내어 세상의 길과 맞닿게 해서 마음과 세상이 한 줄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삶의 길은 열릴 것이므로, 군사를 앞세워 치고 나가는 출성과 마음을 앞세워 나가는 출성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먼 산줄기를 바라보면서 김상헌은 생각했다. (본문 199쪽)
그렇습니다. 길이고 마음이고 다 사람의 것이고 다시 백성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는 살 길이란 없습니다. 이 백성의 길을 빌지 않고는 출성(出城)이란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최명길과 김상헌이 그렇게도 애타게 찾던 그 길, 나라를 구하고 사직을 보존하는 길은 오직 백성들에게 있음을, 천 년 전이나 천 년 후에도 오직 백성뿐임을 그들은 정녕 몰랐습니다. 정답은 제쳐 놓고 답을 찾으려니 그리도 허황한 말(言) 먼지들만 성안에 가득 찰뿐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 견딜 수 없는 것은
임금의 어깨가 더욱 흔들렸다. 내관들이 임금 곁으로 다가갔다. 내관은 임금 양쪽에서 머뭇거리기만 할 뿐, 흔들리는 임금의 어깨에 손대지 못했다. 최명길이 말했다.
- 전하,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옵니다. 군병들이 기한을 견디듯이 전하께서도 견디고 계시니 종사의 힘이옵니다. 전하, 부디 더 큰 것들도 견디어 주소서.
임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임금은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본문 249쪽)
과연 죽음 이전에 치욕이란 말입니까? 치욕의 무게는 죽음보다 가볍다는 말입니까? 최명길은 명분보다 실리를 챙기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반대편에 서있는 김상헌과의 대비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최명길은 죽음보다 치욕을 가벼이 여깁니다. 아니 그런 인물로 그려진다고 보는 것이 옳은 해석일 것입니다.
시선을 서안 너머 마룻바닥에 고정시킨 채 임금은 고요했다. 신료들의 목소리가 합쳐져서 누구의 말인지 임금은 분간할 수 없었다.
김상헌이 앞으로 나왔다.
- 전하, 뜻을 빼앗기면 모든 것을 빼앗길 터인데, 이 문서가 과연 살자는 문서이옵니까?
임금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상헌이 다시 임금을 다그쳤다. (본문 314쪽)
최명길이 주화파라면 김상헌은 척화파입니다. ‘오랑캐와 무슨 화친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것도 군사를 몰고 와서 우리 산하와 백성을 해치고 군왕을 핍박하고 이제 와서 나와서 내 발아래 무릎을 꿇으라니, 이건 아니다. 차라리 혀를 물고 죽을 수는 있어도 뜻을 굽힐 수는 없다.’
그렇습니다. 옳지 않은 일에 비분강개(悲憤慷慨)가 없다면 그건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상헌이 조금 더 선비답습니다. 이에 비해 최명길은 장사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누가 더 낫다고 평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허황한 말 먼지만 날리게 될 것이니 아예 그런 생각은 접어두십시다(姑捨是). 이 장면에서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왕이 치욕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토록 군왕에게 충성하는 그들이, 그렇게 고전(古典)에 해박하고 역사에 달통한 그들이 왜 백성을 볼 줄 몰랐더란 말입니까. 왕이 무릎 꿇는 것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백성 때문임을 그들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이 지금 우리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대(事大)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맹자(孟子)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에 惟仁者 爲能以大事小 …(중략)… 惟智者 爲能以小事大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직 어진자만이 능히 큰 것으로써 작은 것을 섬길 수 있고, 오직 지혜로운 자라야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섬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 이치가 큰 것이 작은 것을 섬긴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으니 논외로 하고, 작고 약한 것은 크고 강한 것을 섬기는데 지혜로워야 한다는 말씀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큰 것들은 항상 작은 것을 넘보고 언제든 힘으로 제압할 수 있으니 작은 것들의 생존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작은 것이 큰 것들 틈에서 살아남으려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역사는 지혜와 어리석음 사이에서 요동치는 고난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한 순간이 더 많았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유사 이래로 한사군부터 시작해서 그 후 여러 차례 강역을 침범한 중국(중국처럼 호전적인 종족도 없는 듯합니다), 고려․조선조의 왜구, 근대에 와서는 일본,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폭압으로부터 영토와 주권을 지킨 것은 돌이켜보면 지배계급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힘없는 백성들이 부서지고 깨지면서 이 산하를 지켜왔습니다. 지배층이란 것들은 평화로울 때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백성을 수탈할 생각만 하다가 막상 위기가 닥치면 제 한 몸 구하고자 힘없는 백성들을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위험으로 내몰기까지 합니다.
이 국가라는 개념도 많은 검토가 있어야겠지만 국가적 레벨에서 벌어진 사태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고는 위에서 치고 죽어나는 것은 아랫것들뿐인 게 지금까지의 역사였습니다. 촘스키의 말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는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말임을 알 것 같습니다.
멀리 거슬러 갈 것도 없이 6․25 사변 때만 봐도 그렇습니다. 전쟁은 윗대가리에서 이승만과 김일성 아님 그 보다 더 윗선인 미국과 러시아가 일으켜 놓고 전쟁 내내 죽어 나간 것은 힘없는 우리 국민들뿐이었습니다.
뿐 아닙니다. 개전 초 이승만 패거리들은 전쟁 3일 만에 서울을 포기하고 부산까지 도망가면서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저들끼리만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한강 인도교 폭파당시 다리를 건너 피난가려다 죽은 사람들이 수백 명이나 되고, 다리가 끊겨 서울에 갇혀 고생한 서울 시민이 80퍼센트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제 청의 칸이 용골대를 앞세워 침입해오자 인조는 한양을 버리고 좁은 남한산성에 피해 들어와 애꿎은 백성을 괴롭힙니다. 편안하던 백성들의 안방에 사나운 이리를 끌고 들어온 셈이 된 것입니다. 또 강화도로 보낸 왕자들과 처첩들로 인해 힘없는 강화도 백성들은 그 죄를 입어 청병들에게 무참히 도륙됩니다. 피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처참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모습입니다.
조선인 포로들이 언 강 위로 뗏목을 끌었다. 뗏목 한 척에 포로 오십여 명이 붙어 있었다. 조총을 멘 청병들이 포로를 부렸다. 청병들은 쓰러진 포로들을 뗏목에서 떼어 내어 얼음이 깨진 물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강 상류 쪽에서도 뗏목이 내려왔다. 포로들은 상류 쪽 양평 산악에서 잘라 낸 통나무를 뗏목으로 엮어서 언 강을 따라 밀고 내려왔다. 청병들이 채찍으로 포로들을 갈겼다. 뗏목들은 삼전도나루에 닿았다. 나루터 모래벌판에서 포로들이 통나무로 사다리를 만들고 있었다. 사다리의 길이는 스무 자가 넘어 보였다. 성을 타고 넘어 들어가서 깨뜨릴 때 성벽에 걸치는 운제雲梯였다. (본문 162쪽)
백성들에게 지배층들은 과연 어떤 존재입니까? 조선이라는 국가를 엄밀하게 설명하면 이씨 왕조를 이루는 군왕들과 그의 친족, 처첩들의 호강을 위해 조금 똑똑한 놈들은 사대부라는 등급을 받고 성안에서 관리 질을 하거나 아니면 지방 관료를 맡아 보좌하면서 편히 살고, 등급외의 나머지 백성들은 쌔 빠지게 열심히 일해서 귀하신 분들 먹여 살리는 그런 시스템 아니었던가요?
이 착한 백성들은 성대(聖代)에도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고 흉년에는 굶어 죽거나 유민(流民)이 되어 타향을 떠돌며 거지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전쟁이 나니 내 나라의 백성이 청병의 포로가 되어 내 나라의 성을 깰 운제를 만들기 위해 고된 노역을 합니다. 제가 싼 똥으로 제 몸을 구워 먹히는 낙타의 비애를 보는 듯합니다.
조선에서도 보호해주지 못하는 못난 백성들인데 청나라 군사들 눈에는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채찍으로 갈기고 얼음 구덩이로 밀어 넣고 잔인하게 다룹니다. 내 나라 사람이 아니고 남의 나라 사람들인데 오죽하겠습니까? 그 고초가 채찍질처럼 아프게 느껴집니다.
삼전도 청진에는 조선인 부녀들이 수없이 끌려와 있는데, 젊고 미색이 있는 여자들은 여러 군장들의 군막 안에서 몸시중과 술시중을 들고, 늙고 추한 것들은 군막 밖에서 청병의 끼니를 익혀 내며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고 땅꾼은 말했다. 끌려오는 여자들이 강을 건널 때 청병들이 등에 업힌 아이를 빼앗아 언 강에 던져서, 송파나루 앞강에는 머리가 처박히고 다리가 처박힌 어린아이들의 주검이 얼음에 줄지어 꽂혀 있다고 땅꾼은 말했다. (본문 240-241쪽)
송파나루 앞강 얼음판에 다리와 머리가 처박혀 죽은 어린아이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나라와 군왕과 군대를 생각합니다.
함석헌님의 <뜻으로 본 한국사>란 책에 보면 더 비참한 내용이 나옵니다. 정묘, 병자호란 그 연간에 우리 아녀자들의 젖퉁이를 북쪽 오랑캐 놈들이 다 베어갔다고 말입니다.
그 전에 고려 말 몽고의 침입 때는 굶주린 우리 백성들이 승리에 취해 술과 고기를 실컷 먹고 토한 몽고 병사의 토악물 찌꺼기를 주워 먹고 연명했다는 말도 나옵니다. 읽을수록 원통하고 울화가 치미는 우리의 역사입니다.
다. 당면하여
강화 검찰사 김경징은 배를 내어 달아났다. 조선 관군은 해안 돈대에 배치되어 있었다. (중략)
- 성을 지켜라. 물러서지 마라.
김상용은 지팡이를 짚고 성첩을 돌며 소리쳤다. (중략) 청병은 성첩을 돌며 청소하듯 도륙해 나갔다. 김상용은 쫓기면서 남문 문루 위로 올라갔다. 종이 따라왔다. 문루 위에 미처 쓰지 못한 화약더미가 쌓여 있었다. 김상용이 화약더미로 다가갔다. 종이 김상용의 도포자락을 잡았다.
- 대감, 어찌……
- 당면한 일을 당면하려 한다. 너는 돌아가라.
종은 돌아가지 않았다. 김상용이 화약더미에 불을 붙였다. 종이 김상용의 몸을 덮쳐서 끌러 안았다. 화약이 터졌다. 문루가 무너져 내렸고, 김상용의 육신이 흩어졌다. 종이 함께 죽었다.
위패를 받들고 강화도로 들어온 늙은 선비가 행랑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선비가 종에게 유서를 남겼다.
아들아, 너는 목숨을 귀하게 여겨 몸을 상하게 하지 마라. 아아, 너희들은 생명에 칼질을 하지 마라. 고향에 조용히 엎드려서 세상에 나오지 마라. (본문 331 - 332쪽)
이조 오백년 역사에 충신이 몇 명이고 열사는 또 몇 명입니까? 김경징은 쥐새끼와 같은 놈입니다. 이 배가 침몰하기 전에 새 배를 찾아갑니다.
그럼 김상용은 어떻습니까? 김상헌의 형답게 기개가 있습니다. 이런 선비가 있어 썩어빠진 왕조가 500년을 버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면한 일을 당면하려 한다.” 이 말에서 고절한 선비의 기개를 느낍니다. 그 기개에 감동하여 같이 산화한 종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행랑에서 자살한 늙은 선비도 가엽습니다. 고향에 조용히 엎드려서 세상에 나오지 마라는 유서는 또 다른 느낌으로 생각을 하게 합니다.
모진 전란을 겪으면서 귀한 목숨이 힘없이 스러지는 모습을 숱하게 보면서, 자식들만은 그런 참혹한 처지에 빠지지 않길 바라는 부모의 애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세상에 목숨보다 귀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 귀한 목숨을 평생을 간직한 신념을 위해 바친 김상용과 그런 선비들이 그래서 더욱 훌륭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라. 봄은 오는가?
묵은 눈이 갈라진 자리에 햇볕이 스몄다. 헐거워진 흙 알갱이 사이로 냉이가 올라왔다. 흙이 풀려서 빛이 드나드는 틈새를 싹이 비집고 나왔다. 바늘 끝 같은 싹 밑으로 실뿌리가 흙을 움켜쥐고 있었다. 행궁 뒷마당과 민촌의 길바닥에, 산비탈이 흘러내려 들에 닿는 언덕에, 냉이는 지천으로 돋아났다.
민촌의 아이들과 성첩의 군병들이 호미로 언 땅을 뒤져 냉이를 캤다. 냉이는 본래 그러하듯이 저절로 돋아났는데, 백성들은 냉이가 다시 겨울을 견디었다고 말했다. 냉이의 말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었다. 뿌리가 깊어야 싹을 밀어 올린다, 봄은 地心에서 온다고, 냉이를 캐던 새남터 무당이 말했다.
임금과 신료들, 백성과 군병과 노복들이 냉이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언 땅에서 뽑아낸 냉이 뿌리는 통째로 씹으면 쌉쌀했고 국물에서는 해토머리의 흙냄새와 햇볕 냄새가 났다. 겨우내 묵은 몸속으로 냉이 국물은 체액처럼 퍼져서 창자의 먼 끝을 적셨다. 쌀뜨물에 토장을 풀어 냉이 뿌리를 끓인 다음 고춧가루를 한 숟갈 뿌렸는데, 도살장 계집종의 솜씨와 수라간 상궁의 솜씨가 다르지 않았다. 태평성대에는 냉이국에 모시조개 서너 마리를 넣었는데, 정축년 정월의 남한산성 안에는 모시조개가 없었다. 냉이국을 넘기면서 임금은 중얼거렸다. 백성들의 국물에서는 흙냄새가 나는구나……. (본문 265-266쪽)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듯이 비참한 역사의 기록 끝에 다시 희망의 햇살이 비칩니다. 본래 그러하듯이 저절로 돋아나는 냉이처럼 우리 백성들은 이 어려움을 이기고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산천의 주인은 이를 가꾸고 보살피며 그 품속에서 일생을 보내고 다시 그 품속에 묻히는 백성들이니까요.
임금과 신료들, 백성과 군병과 노복들이 모두 밥아 말아 먹은 냉이국처럼 백성들은 천대를 받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주고 그 기운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 냉이국의 맛은 임금과 백성이 모두 같이 느꼈을 것입니다. 임금의 창자나 백성의 창자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진하게도 흙냄새가 나는 백성들의 국물처럼 임금과 신하의 마음결에 흙냄새, 백성 냄새가 스며들면 얼마나 좋을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다 부질없는 꿈이겠지만. 사실 어느 시대건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사이좋게 지낸 시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가 최고조로 발달했다고 하는 미국에서도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 두 대립항(對立項)은 사회를 이루는 두 요소로 서로 견제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고 항상 팽팽한 긴장을 이루면서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둘 중 하나(특히 하부구조)가 허약하면 다른 하나(상부구조)가 더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따라서 약해지면서 결국 그 사회는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상부구조는 그 힘의 원천이 오직 하부구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땅이 없이는 곡식이 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국민 없이 권력 없다는 말이 이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힘의 역전(逆轉)은 개선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역전의 결과가 17세기 남한산성 내부의 모습이고, 망해가던 조선 시대 후기의 모습이고, 오늘날 21세기 한국의 모습입니다. 백성들은 이제 지쳐서 조정이 어서 자리를 비켜주길 기대합니다.
국서1)가 이미 삼전도로 떠났다는 말을 김상헌은 하지 못했다. 말해주지 않아도 서날쇠는 곧 알게 될 것이었다. 김상헌은 말했다.
—아무 일 없으나, 갇혀서 답답하구나.
—봄에는 조정이 나가는 것이옵니까? 조정이 비켜줘야 소인들도 살 것이온대…….
김상헌은 대답하지 못했다. (본문 319쪽)
저 무능한 인조와 보수적 관료 패거리들은 자신의 보신을 위해 개혁자 광해군을 폐하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말로는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항상 백성과 유리된 사림(士林)들의 파벌싸움으로 저들끼리 힘을 소모하더니, 사정이 다급해지자 백성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백성들마저 외면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조정이 비켜주길 바라는 그런 정치는 다시 있어서는 안 되는데……
개인적으로 이조시대를 보자면 당대의 왕권과 그를 통해 행사되는 통치는 늘 현실과 유리된 그 지점에 있었고 - 이것은 유학이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한 왕도(?)정치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만 - 왕이든, 신료이든, 백성이든, 군병이든 현실 인식은 다 비슷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험난한 우리 역사를 놓고 볼 때, 우리를 바꾸어주는 건 외부의 힘이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고 다들 생각했던 시대였고, 힘 센 자의 편에 붙어 제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되 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신라시대는 당나라의 위세에 굴복하였고 고려 말에는 원나라의 편에 서야 행세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조 초기 이성계가 나라를 통째로 명나라에 바치고 왕권을 빌어먹더니, 이제 청에게 기대야만 왕권이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무력해진 것입니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 국내에 만연하는 정치․경제적 혼선, 이 모든 의도하지 않는 부조화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우선 무엇보다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는 위정자들의 오만한 자세를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국민을 섬기겠다고 말하던 때의 초심이 그립습니다.
또 하나 우리나라와 운명과 국민의 안위(安危)가 걸려 있는 중요한 대외관계(對外關係) 설정에 혼선이 많은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는 약자와의 관계이므로 맹자님의 인(仁)으로 해야 할 것이고, 주위의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강대국과의 관계는 지혜롭게 풀어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보수 정부가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친미(親美)․ 보수(保守)의 시각은 너무나 편협하고 어찌 보면 위험한 시각입니다. 친미도 요령껏 적절히 잘하면 우리나라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친미가 보수랑 결합하는 순간 우리의 지난 역사의 굴종(삼전도의 굴욕) 같은 폐해가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강자에 기대는 것과 그 상황을 끝까지 이어가려는 보수적 습성이 결합되면 그땐 보수가 아니라 수구에 반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섬기는 데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지혜란 한 쪽에 편중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과 멀리 내다보는 긴 호흡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인조 때도 명과 청 사이에서 균형 있는 외교를 했다면 그런 치욕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쉽지 않으므로 지혜라 한 것입니다. 이 친미라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친미가 되어야 하며, 미국과 친교(親交)하되 다른 강대국에게 섭섭하지 않은 배려를 해주는 친미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만을 위하는 정치, 오직 미국을 위한 사대에서 벗어나 국민을 위하는 정치로 중심을 잡을 때 남한산성의 비극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통령이 다시 한 번 강대국에 무릎 꿇고 신하의 예를 강요당했던 남한산성의 전철을 밟기를 원치 않습니다. 어찌 보면 최근 정치, 경제 사회적인 난맥상은 친미, 보수, 반동의 시각이 가져다 준 폐해일 수 있습니다.
강대국의 깍두기 노릇에서 벗어나 국민의 친구가 되고, 돈 많은 기업가와 부자들의 프랜들리에서 노동자와 가난한 국민을 배려하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이것도 부질없는 꿈일 수 있으나 꿈꾸는 행복마저 없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가파를 것 같아서 이렇게 사족(蛇足)을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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