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香氣로운 美風이 퍼져나가게 하자”
金亨典 先生의 한의신문 창간 축하의 글
[한의신문] 1967년 12월30일 韓醫新聞은 ‘漢醫師協報’라는 이름으로 창간호가 간행된다. 해를 넘겨 1968년 1월15일에는 金亨典 先生이 ‘祝發展’이라는 揮毫를 큰 글씨로 적고 그 아래에 자신의 감회를 적은 글이 나온다. 이 글을 아래에 소개한다.
“○목마르게 고대하던 한의사 전문지가 우리들의 학구의 飢渴을 메워준다고 생각할 때 무엇보다 떳떳하고 흐뭇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우리들의 심장이 되고 입이 되어 줄 한의사협보의 無窮한 발전 祈願한다. ○지난날의 역사를 뒤질 것도 없이 우리들은 화려와 고난을 다 겪은 世代와 現代를 이어온 긴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그 속에서 자라온 奧妙한 醫學의 眞理는 無限한 전개의 날개를 펴고 탐구의 情熱을 손짓할 뿐이다. 現代로 향한 邁進을 위해….
○한의학의 香氣로운 美風이 학구의 窓門을 노크하는 날 우리들의 念願은 이루워질 것이니 無我로 돌아가서 仁術의 社會改造에 全力을 傾注해야 되지 않을까. 씨저는 로마帝國을 征復하고 승리의 언덕에서 화염에 싸인 敵國首都의 慘狀을 보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느 땐가는 나도 저렇게 멸망한다는 哲理를 한단하고, 現代의 문턱에서 있다는 우리 한의학계는 高度한 발전을 목표로 쉬지 않고 달음질쳐야 할 뿐이다.”
金亨典 先生(1910∼?)은 함경남도 북청 출신으로 선친이 한의사로 60년간 활동한 관계로 어려서부터 한의학을 접하면서 성장했다. 일제시대에 醫生이었던 그는 한국전쟁 때 월남해 40이 넘은 나이로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하여 1956년 졸업, 한의사 국가고시를 통해 면허를 받았다. 을지로에서 개원한 이래 종로, 광화문, 남대문 등을 거쳐 청파동에 濟林한의원을 개원했다. 이후 용산구한의사회장, 한의사협회 중앙이사 등을 역임했다.
1968년 2월15일 한의사협보 제4호에는 ‘醫林旅窓’이라는 제목으로 金亨典 先生을 취재한 글이 보인다. 그 기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일제강점기 北京大學에 유학하여 意學을 전공하다가 1945년 해방을 맞아 서울로 오게 되었다.
그가 한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北京유학시절 고명한 中醫師를 만나 그가 말한 醫理에 매료된 경험이 크게 작용되었기 때문이다. 金亨典 先生이 이 시기 유명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끝에 임상시험을 거쳐 100% 완치할 수 있는 자신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성신경 강화에 대한 약물요법과 수술을 해도 재발하는 비후성비염을 1주일간의 복약으로 치료해낸다는 등의 통계이다.
1968년 3월15일 한의사협보 제6호에는 金亨典 先生이 극빈한 환자들을 위해 무료진료를 실시하는 미담을 ‘仁術의 샘’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하고 있다.
또한 1968년 7월15일 한의사협보 제12호에는 ‘大自然의 품속에 안겨’라는 제목의 金亨典 先生의 隋筆이 실려 있다. 여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醫療人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보건의 향상을 생각해볼 때 나에게 부과된 책임도 적지 않게 크다. 우리 한의학에서도 豫防醫學 문제를 가장 먼저 開拓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豫防醫學의 秘法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것이 大衆에게 宣傳되어 있지 못함이 안타깝다. 앞으로 한의법의 활동면에서도 이러한 면을 대대적으로 선전되는 학술의 행사가 자주 있어야겠다. …우리들은 한의사로서 世紀前의 태도를 탈피하고 현대에 깊숙이 파고들어 시대에 맞는 한의사가 되어야겠다. 그러자면 우선 自我心身의 건강 유지가 필요하다. 인생은 건전한 사고의 창조를 요구한다. 건강한 조건을 결한 사람에게 건전한 사고가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새벽의 산책 이것이야말로 신비한 건강의 양식이다. 고요한 새벽길은 맑고 정결하다. …”
이러한 그의 글들은 그의 한의학의 활동영역이 넓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열망에서 나온 것이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金亨典 先生의 한의신문 창간 축하의 글
[한의신문] 1967년 12월30일 韓醫新聞은 ‘漢醫師協報’라는 이름으로 창간호가 간행된다. 해를 넘겨 1968년 1월15일에는 金亨典 先生이 ‘祝發展’이라는 揮毫를 큰 글씨로 적고 그 아래에 자신의 감회를 적은 글이 나온다. 이 글을 아래에 소개한다.“○목마르게 고대하던 한의사 전문지가 우리들의 학구의 飢渴을 메워준다고 생각할 때 무엇보다 떳떳하고 흐뭇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우리들의 심장이 되고 입이 되어 줄 한의사협보의 無窮한 발전 祈願한다. ○지난날의 역사를 뒤질 것도 없이 우리들은 화려와 고난을 다 겪은 世代와 現代를 이어온 긴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그 속에서 자라온 奧妙한 醫學의 眞理는 無限한 전개의 날개를 펴고 탐구의 情熱을 손짓할 뿐이다. 現代로 향한 邁進을 위해….
○한의학의 香氣로운 美風이 학구의 窓門을 노크하는 날 우리들의 念願은 이루워질 것이니 無我로 돌아가서 仁術의 社會改造에 全力을 傾注해야 되지 않을까. 씨저는 로마帝國을 征復하고 승리의 언덕에서 화염에 싸인 敵國首都의 慘狀을 보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느 땐가는 나도 저렇게 멸망한다는 哲理를 한단하고, 現代의 문턱에서 있다는 우리 한의학계는 高度한 발전을 목표로 쉬지 않고 달음질쳐야 할 뿐이다.”
金亨典 先生(1910∼?)은 함경남도 북청 출신으로 선친이 한의사로 60년간 활동한 관계로 어려서부터 한의학을 접하면서 성장했다. 일제시대에 醫生이었던 그는 한국전쟁 때 월남해 40이 넘은 나이로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하여 1956년 졸업, 한의사 국가고시를 통해 면허를 받았다. 을지로에서 개원한 이래 종로, 광화문, 남대문 등을 거쳐 청파동에 濟林한의원을 개원했다. 이후 용산구한의사회장, 한의사협회 중앙이사 등을 역임했다.
1968년 2월15일 한의사협보 제4호에는 ‘醫林旅窓’이라는 제목으로 金亨典 先生을 취재한 글이 보인다. 그 기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일제강점기 北京大學에 유학하여 意學을 전공하다가 1945년 해방을 맞아 서울로 오게 되었다.
그가 한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北京유학시절 고명한 中醫師를 만나 그가 말한 醫理에 매료된 경험이 크게 작용되었기 때문이다. 金亨典 先生이 이 시기 유명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끝에 임상시험을 거쳐 100% 완치할 수 있는 자신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성신경 강화에 대한 약물요법과 수술을 해도 재발하는 비후성비염을 1주일간의 복약으로 치료해낸다는 등의 통계이다.
1968년 3월15일 한의사협보 제6호에는 金亨典 先生이 극빈한 환자들을 위해 무료진료를 실시하는 미담을 ‘仁術의 샘’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하고 있다.
또한 1968년 7월15일 한의사협보 제12호에는 ‘大自然의 품속에 안겨’라는 제목의 金亨典 先生의 隋筆이 실려 있다. 여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醫療人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보건의 향상을 생각해볼 때 나에게 부과된 책임도 적지 않게 크다. 우리 한의학에서도 豫防醫學 문제를 가장 먼저 開拓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豫防醫學의 秘法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것이 大衆에게 宣傳되어 있지 못함이 안타깝다. 앞으로 한의법의 활동면에서도 이러한 면을 대대적으로 선전되는 학술의 행사가 자주 있어야겠다. …우리들은 한의사로서 世紀前의 태도를 탈피하고 현대에 깊숙이 파고들어 시대에 맞는 한의사가 되어야겠다. 그러자면 우선 自我心身의 건강 유지가 필요하다. 인생은 건전한 사고의 창조를 요구한다. 건강한 조건을 결한 사람에게 건전한 사고가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새벽의 산책 이것이야말로 신비한 건강의 양식이다. 고요한 새벽길은 맑고 정결하다. …”
이러한 그의 글들은 그의 한의학의 활동영역이 넓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열망에서 나온 것이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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