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맞아 일제에 항거한 ‘한의사’출신 독립운동가들 재조명

기사입력 2016.02.2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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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우규
    3·1절 맞아 일제에 항거한 ‘한의사’출신 독립운동가들 재조명
    [한의신문=김승섭기자]1일로 3·1일 운동 97주년을 맞는 가운데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을 벌였던 한의사 출신 의사(義士)들의 숭고한 넋이 사뭇 재조명되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 측은 일제 신임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졌던 독립운동가이자 한의사였던 왈우 강우규(1855~1920년) 의사의 일생을 담은 ‘강우규 평전’을 지난해 11월 발간한데 이어 향후 일제에 항거해 조국의 광복에 헌신한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한 평전을 지속적으로 출간한다는 계획이다.

    강 의사는 지난 1919년 3·1운동 소식을 듣고 신흥동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같은해 4월 선생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으로 가 한인독립운동단체 ‘노인동맹단’에 가입하고 러시아인에게서 구입한 폭탄을 지닌 채 원산을 거쳐 서울로 잠입, 그해 9월 2일 서울역에서 일제 신임총독인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에게 폭탄을 던지는 의거를 했다.

    비록 일제의 신임총독은 폭살시키지 못했으나 37명의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죽거나 다쳤다.

    강 의사의 이 같은 의거는 3·1운동 이후 처음으로 일제의 만행과 강압통치에 대해 민족의 강력한 의열 항거로 맞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서울역 앞 광장에는 강 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동상이 서있는 상태다.

    강 의사는 비단 독립운동에만 힘쓴 것이 아니다. 평안남도 덕천군 무릉면 제남리 출생인 그는 나이 30에 함경남도 홍원으로 이사해 한의술로 환자를 치료했다.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망명하기 전까지 인술을 베풀면서 한약방을 경영했는데 이를 통해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그는 이를 기반으로 홍원 읍내에 사립학교와 교회를 세워 신학문을 전파하는 등 교육·계몽 운동에 힘썼다.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강 의사에게는 지난 1962년 3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이어 한의협에서는 지난 2010년 개최한 한방의 달 기념식에서 고(故)강우규 의사와 또 다른 한의사 출신 독립유공자인 고(故)이원직 선생에게 공로패를 드림으로써 숭고한 뜻을 기린바 있다.

    한의협은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3.1운동 이후 처음으로 일제에 맞선 의열 항거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향후 조국 광복에 헌신한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의 삶이 재조명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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