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 플루 ‘면역 강화’ 강조하는 한의학적 예방법 각광
김진숙 박사, 충남대 서상희 교수팀과 공동 연구
한의계가 신종 플루의 한의학적 치료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9월17일 ‘인플루엔자A(신종 플루)에 대한 한의학적 접근’이란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대한한의학회, 경희대 동서의학연구소 등이 함께 진행한 세미나에는 차오훙신 중국중의과학원장, 린이신 대만 위생성 중의약위원회 주임위원, 정창현·정승기 경희대 한의과대학 교수 등 동아시아권 한의학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한의계는 국제세미나에서 발표된 중국의 신종 플루 치료현황을 토대로 적극적인 한방치료 도입과 한·양방 결합 대책본부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차오훙신 중국중의과학원장에 따르면, 중국은 중의약 치료와 중서 결합치료를 통해 치료기간 단축, 사망자 0명의 결과를 얻었다.
몇몇 한방병원은 신종 플루 감염을 염려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면역력을 높이는 ‘면역대보탕’과 ‘면역대보단’ 등을 처방하고 있다. 현재 KAIST발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의계 원로 류근철 박사도 언론을 통해 신종 플루의 발열 증상이나 인후통, 기침 등에 효과가 있는 한약 처방전을 공개했으며, 한방 명의들의 조언을 토대로 ‘신종 플루의 한의학적 예방법’ 관련 기사가 빈번하게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한의계의 움직임에 의학계는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한의학적 대안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이다. 한방병원을 찾는 신종 플루 고위험군의 숫자가 병원마다 늘어나는 추세고, 면역력 증강 한방건강식품들의 판매량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신종 플루의 공포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최고의 예방’이라는 한의학의 대응법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한의계 내부에서는 전염병 관리에 대한 한의학의 접근을 애초에 막아놓은 제도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병원체 자체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병은 몸이 낫는 것…약은 낫도록 도울 뿐”
신종 플루는 사람·돼지·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이 혼합되어 있는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로서 계절성 독감처럼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침입해 자신을 복제한 뒤 빠져나와 다른 세포를 감염시킨다.
한의학에서 신종 플루는 ‘염병(染病)’, 즉 전염병에 해당한다. 한의학은 면역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면역(免疫)’이란 전염병을 면한다는 의미다. 면역은 기본적으로 병원체와 몸의 대결로서 전염병에 대한 면역 연구는 한의학이 시작될 때부터 강조해온 부분이며 한의학에서의 면역력은 양의학과는 의미가 다르다. 양의학은 백신주사와 같은 일반적 의미의 면역체 형성을 주로 의미하고 있지만 한의학에서는 이와 더불어 인체 스스로의 방어능력과 고위험 체질이나 질환을 갖고 있느냐 등 종합적 판단을 포함한다. 한의학에서는 면역력을 높임으로서 신종 플루에 대한 예방법을 찾고 있다.
또 전염병에서의 한의학적 치료원칙은 병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다. 병은 몸이 알아서 낫는 것이므로 약은 몸이 스스로 나을 수 있도록 증상을 없애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신종 플루에 대해서도 한의사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치료법을 찾고 있고, 기침이나 열 등 증상에 따라서 처방이 달라진다.
신종 플루 연구 “감염시기 제한 없는 한방치료제 개발 중”
고전 의서에서 찾을 수 있는 면역력 강화와 증상 완화 처방에서 나아가 신종 플루에 대한 한방치료제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융합연구본부 김진숙 박사팀은 충남대학교 수의학과 서상희 교수팀과 공동 연구를 통해 신종 플루(H1N1)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5N1)에 대한 치료 효능이 우수한 3종의 한국산 한약재와, 이들 한약재 중에 존재하는 3종의 화합물을 세포밖(in vitro)에서 선별했다. 현재 동물실험을 준비하고 있으며 동물실험에서도 효능이 입증되면 신종 플루·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치료제로 개발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김 박사팀은 400여종의 표준한약재 표본, 추출물 및 300여종의 한약지표물질 및 유효물질을 보유하고 있어 한약의 표준화 및 재현성을 입증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한 상태다.
또 서 교수팀는 신종 플루·조류인플루엔자를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에서 국내학자로서는 유일하게 분양받아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그의 독감바이러스연구소는 동물실험까지 가능한 정부허가받은 3등급생물안전밀폐시설(BSL-3:고위험 병원체 연구를 위한 안전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두 팀은 공동연구를 통해 감염시기에 제한이 없는 획기적인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타미플루는 감염 후 2~3일이 지난 경우에는 약효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의학연구원 신한방제제연구센터 마진열 박사팀도 BT와 한의학기술을 융합해 바이러스 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마 박사는 발효과정을 통해 약재가 가진 약효 성분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바이러스 치료제에 있어서도 같은 원리를 활용하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 바이러스 계열에서 연구가 진척이 된 상태다.
마진열 박사팀의 치료제는 실험 결과, 바이러스가 세포 내에서 증식을 막는 효과를 지닌 것으로 나타나 신종 플루에 적용될 경우, 타미플루보다 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바이러스 치료제는 대체로 세포에 유입되는 것을 막는 기전, 세포내 증식을 억제하는 기전, 증식이 다 된 후 다른 세포에 확산되는 것을 막는 기전 등이 있다. 타미플루는 증식이 다 된 다음 다른 세포에 확산되는 것을 막는 기전을 통해 치료효과를 나타낸다.
마 박사는 건국대학교 응용생명과학부와 인플루엔자 쪽 한방제제 연구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수의동물의약품 전문기업인과도 천연물 항생제 연구도 진행 중이다.
그는 “과학적 도구를 활용해 한방 바이러스 치료제의 효과를 검증하고 있다”며 “항상성을 유지하고 조화를 강조하는 한의학적 치료를 통해 효과가 높은 항바이러스 제제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일 한약재에 대한 환상 버려야…만병통치약은 없다”
최근 신종 플루 감염에 대한 대책으로 면역력 강화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면역 증강을 위한 한의학적 예방법도 각광을 받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요구한다. 특히 면역력을 높여주는 개별 약재에 대한 만병통치약의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의학연구원 최고야 연구원은 “최근 팔각회향이 타미플루의 원료로 알려져 이를 끓여먹으면 신종 플루가 낫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팔각회향의 원료는 팔각회향이 아니라 ‘망초’라는 중국식물이나, 이는 독초로 분류되어 사람들이 먹을 수 없는 식물이다.
최 연구원은 “개별 한약재는 집을 짓기 위해 쓰이는 나무처럼 재료일 뿐”이라며 “효과가 검증된 처방에 들어가는 하나의 약재를 먹는다고 병이 낫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확한 처방을 쓴다면 양약에서 효과를 못했던 병이 낫기도 하지만 함부로 약을 써도 안 되고 반드시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폐 쪽의 불순한 기운을 정리해주는 배즙과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생강차·유자차·수정과 등의 식품을 추천하며, “신종 플루에 100%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환절기 면역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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