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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의식 확산 위한 업무협약 체결식 -
여한의사회, 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업무협약대한여한의사회(회장 박소연, 이하 여한)가 지난 22일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원장 장명선, 이하 양평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업무 협약은 양성평등 문화 확산과 폭력예방 의식 제고 등을 위한 지속적인 교류 및 협력을 시행하기 위해 마련됐다. 협약 내용에 따라 양 기관은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사업과 여성인재 양성 및 대표성 제고를 위한 사업 협력 등 세부사항 추진과 관련한 실무 절차를 단계적으로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구체적인 협약 내용은 △양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교육·홍보 등의 협력 △폭력예방 의식 확산을 위한 교육·홍보 등의 협력 △여성인재 양성 및 대표성 제고를 위한 사업 △기타 상호간 업무지원 및 우호 증진 등이다. 박소연 여한회장은 "여한의사회에서 기존에 해왔던 양성평등 관련 교육과 연구를 소개하고 한의사를 대상으로 양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리였다"며 "내달부터 실시하는 2022년도 여한 학술세미나에 전문강사 섭외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장명선 양평원장은 "대국민 보건의료를 수행하는 전문 한의사의 양성평등 의식 향상과 진료 현장의 성인지 관점 확산은 우리 모두의 행복한 사회 실현을 위해 매우 큰 의미가 있다"며 "이번 협약을 계기로 양 기관 간 협력 강화와 더불어 한의 의료체계 내 양성평등 문화 확산과 관련해 여한의사가 ‘국민건강 수호자’로서의 의무와 사회적 책무를 선도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2022 여한 학술세미나는 '성폭력피해자 진료를 위한 한의사 역량 강화'를 주제로 내달 1일부터 14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강형원 원광대 신경정신의학과 교수가 '성폭력 피해자의 한의 트라우마 치료'에 대해, 남은영 미미한의원장이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여성의학 진료'를 주제로, 고미경 여성의 전화 전 상임대표가 '성인지 감수성의 이해'에 대해 강의한다. -
“한의약으로 갱년기 증상 예방하세요∼”문경시보건소는 중년층 대상의 한의약 건강증진사업의 일환으로 갱년기 여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주체적 건강관리 생활화를 통해 갱년기 관련 증상과 만성질환 등을 예방하기 위해 오는 11월23일까지 ‘한방 갱년기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폐경연령과 평균연령을 고려하면 30년 이상을 폐경상태로 지내고 있으며, 이는 여성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기준이 되고, 이 시기의 적절한 건강관리 여부가 노년기 삶의 질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그동안 갱년기증후군은 참고 견뎌야 하는 증상으로만 여겨져 예방에 대한 인식수준이 낮아, 이번 한의약 건강증진사업을 통해 이에 대한 인식 개선 및 관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프로그램은 한의진료와 상담을 바탕으로 요가와 명상을 통한 심신수련과 체험활동, 교육자료 제공 등으로 프로그램으로 10주간 운영될 예정이다. 문경시보건소 관계자는 “갱년기는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동질감을 가진 신청자들이 즐겁게 참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앞으로 문경시보건소의 한의약건강증진사업에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전했다. -
황만기/이승언 부회장, 서울식약청장과 간담회(9.22) -
의료 마이데이터의 제도 설계 위한 법적 쟁점 논의우리나라 의료 분야 마이데이터인 ‘마이헬스웨이’의 법적 쟁점을 공유하고 효과적인 적용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는 지난 22일 비대면 방식으로 ‘의료 마이데이터의 법제’ 토론회의 두 번째 순서인 ‘의료 마이데이터의 제도적 설계’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원복·배현아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를 진행하고, 황희 카카오헬스케어 대표, 이창범 연세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 양광모 삼성서울병원 교수, 박은경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 등이 참여해 패널토론을 벌였다. 이원복 교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에 의료정보 전송요구권을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 2건을 소개하고, 관련 법 시행시 살펴봐야 할 쟁점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전송요구권은 마이데이터 구현을 위해 필요한 정보주체의 핵심 권리로, 의료 마이데이터 구현시 의료정보 전송을 요구하는 권한과 관련이 있다. 정부와 민형배 의원이 지난해 각각 발의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정보주체가 자신의 정보를 정보주체 자신이나 개인정보관리 전문기관 등 제3자에게 전송할 수 있도록 하는 ‘전송요구권’을 포함하고 있다. 이 교수는 “개인정보보호법은 전송 대상 정보의 개념과 기술적인 전송형식, 의무 이행자 규모 등에서 의료 마이데이터 구현을 위한 제도와는 차이가 있다"며 "또한 보건의료법제 하에서 기록열람이나 진료기록 송부 관련 규정, 진료정보 교류 규정 역시 주체나 대상이 매우 한정적”이라고 지적하는 한편 ‘마이헬스웨이’ 제도의 법적 쟁점으로 △대상 정보 범위 △상호 운용성 △앱 개발 생태계 △정보 주체 이해에 기반한 동의 선택권 △공공보건·연구 등 2차 목적 이용 △의료기관·의료인의 이해 관계 △활용기관 사전 심사 등을 꼽았다. 특히 이 교수는 의료기관·의료인의 이해관계와 상충하는 지점으로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대한 정보주체 독점권 인정 여부 △개인정보에 대한 의료기관·의료인의 권리 여부 △정보소유권 개념 도입 문제 △의무기록 종이 사본 발행 문제 등이 있다고 밝혔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대한 정보주체 독점권 인정과 관련해서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은 타인의 부적절한 사용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일 뿐 정보주체 본인이 독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개인정보에 대한 의료기관·의료인의 권리 여부에 대해서도 “제정되는 마이헬스웨이 근거법률에서 의료기관·의료인의 권리가 없다고 규정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재산권에 대한 침해에 해당하면 위헌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 교수는 “의료기관에서 생성된 의료정보에 대한 의료기관·의료인의 권리가 어디까지인지도 주요 쟁점”이라며 “이 권리가 정보주체의 권리와 어떻게 공존 가능한지, 정보주체가 의료정보를 활용해 발생한 수익이 의료기관·의료인의 권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참가자들은 다양한 쟁점에 대한 우려 등을 공유하고, 의료데이터 특성에 대한 현장의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황희 대표는 “마이헬스웨이의 성격은 금융 분야나 행정 분야의 개인정보와 다르다. 병원과 병원 사이에서 더 나은 진료를 위해 환자 정보를 파악하게 하고, 다른 산업과도 연계될 수 있는데 어떤 요소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공공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정제하고 제공하는 등 기존에 제공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양광모 교수는 “진료 연속성을 확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이헬스웨이가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마이헬스웨이에 대한 여러 쟁점이 있겠지만 시행된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진행 경과를 보다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은경 사무관은 “어떤 데이터 표준을 통해 시스템의 효용을 높일지 고민하고 있다. 다만 시범사업의 결과를 본 후에 이를 결정할 것”이라며 “의료데이터 특성에 대한 이해와 의료계, 산업계 등 이해관계자의 충분한 토론과 협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사상체질의학,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통해 한의학 표준화 이끌 것이준희 경희대 교수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약혁신기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출판된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증 사상체질병증, 긴장성 두통, 통풍 등 3가지 지침에 대한 주요내용을 알리기 위한 각 분야 관계자의 기고를 싣는다. 이번 순서에서는 이준희 경희대 한의대 교수가 사상체질의학에 대한 내용을 소개한다. 사상체질의학은 한국 고유의 한의학 분야로서 국제표준질병사인분류(ICD) 및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도 등재되어 있으며 한의 병증으로서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질환에 대한 치료뿐만 아니라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 등 임상 현장에도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사상체질의학의 보급은 상대적으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에 국한되어 있어 관련한 임상연구는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현대의학적 질환 개념이 아닌 한의학 병증에 기반한 임상진료지침을 도출하는 것은 상당한 도전이었다. 무엇보다 한의약 의료 서비스를 통한 국민 건강 증진과 의료비 절감 등 시대적 사명을 갖고 사상체질병증의 진단과 치료 시 한의사의 합리적 의사결정 길잡이가 될 수 있는 표준화된 임상진료지침을 개발하고자 노력했다. 본 임상진료지침에서는 사상체질의학 고유의 소증(素證) 및 현증(現證)을 고려한 체질병증 진단과 치료법 결정의 필요성을 제시했으며 체질한약치료, 체질침구치료, 체질식사요법, 체질운동요법, 체질성정요법 등 한의원·한방병원 등에서 다빈도로 적용되고 있는 다양한 치료법에 대한 권고안을 상세한 임상적 고려사항과 함께 제안했다. 또한 뇌졸중 후유증,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특발성 파킨슨병, 불면증 등 특정 질환에 대한 사상체질의학적 치료(단독치료, 한의복합치료, 한양방 복합치료 등) 방법을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 분석 방법론을 적용한 근거와 함께 제시했다. 또 체질식사요법, 체질운동요법, 체질성정요법 등을 활용한 건강 관리 요법을 별도 권고했다. 사상체질병증의 진단·치료·예방에 대한 표준화된 임상진료지침의 마련은 비록 초보적인 수준이라 할지라도 질환이 아닌 한의 병증으로는 최초의 임상진료지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향후 발전된 형태의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의 토대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개발된 지침의 보급을 통해 한의사 보수교육과 한의과대학 정규 교육 과정에 본 지침을 적극 활용할 예정으로, 향후 좀 더 충실하면서도 근거수준이 높은 임상진료지침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한의사와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
수사와 재판 잘 받는 법-17[편집자주] 본란에서는 박상융 대한한의사협회 고문변호사(법무법인 한결)로부터 한의계를 둘러싼 다양한 법적 분쟁을 대비해 원인과 대응책을 살펴본다. 박상융 대한한의사협회 고문변호사(법무법인 한결) 광고는 매출과 직결이 된다. 특히 요즘처럼 네이버, 유튜브 등 SNS를 통한 광고가 보편화되면 더욱 그렇다. 변호사인 필자 역시 서울가정법원이 있는 양재역에 가면 이혼전문 변호사라는 광고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한의사, 한약사의 경우에도 광고는 보편화돼 있다. 최근 대한한의사협회로부터 한약 업자가 약초원을 개설, 관절명약이라면서 자신이 제조한 한약제품을 소개하는 광고관련 처벌가능성 여부의 질의를 받았다. 한약업자는 자신이 제조한 제품이 왕들의 관절명약이라고 선전하면서 경옥고, 공진단을 만드는 수업까지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을 상담하고 질병에 맞는 약을 처방, 직접 제조해 주었다는 것이다. 한의사도 아니면서 버젓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 질병상담 및 문의(예약필수)라고 광고까지 한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현행법상 약사법 제23조(한의사 면허 없는 자가 공진단 등 한약조제 판매)와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위반 제8조(소비자로 하여금 해당제품이 의학적 효능, 효과가 있는 것처럼 오인광고)에 저촉될 가능성이 높다. ◇수사에 소극적인 경찰 문제는 이러한 행위가 버젓이 모바일, 유튜브를 통해 성행하고 있음에도 이와 관련 단속과 수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이러한 광고에 현혹되어 비싼 돈을 주고 한약제품을 구매하고 심지어 진단치료까지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의사협회에서 경찰에 단속요청공문을 보내도 실질적으로 수사관들은 이러한 사건은 한의협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일이라면서 수사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의 특별사법경찰관리도 단속 전문인력 부족을 내세워 제대로 한 번도 단속을 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한의사 치료행위, 한약제품 효능성 관련 광고와 관련해 과연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지에 대한 자체 기준마련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것도 문제다. 경옥고, 공진단이라는 제품도 파는 사람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점도 문제다. 특히 시중에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녹용판매, 한방관련 건강보조식품의 효능과 관련해 제대로 된 검증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필자로서는 궁금해진다. ◇식약처, 벌금 구약식 처분 실제 단속처벌 사례와 관련해 총명성장탕 광고 및 치료효과 오인광고와 관련, 검찰청에서 약사법 위반과 관련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처분을 하면서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관련 벌금 구약식 처분을 했다. 더불어 사향 공진단 판매광고, 한약명칭 식품판매 광고와 관련해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벌금 구약식 처분을 했다. 즉 대부분 검찰과 법원이 벌금 5백만원 이하의 구약식 결정 등 경미한 벌금형으로 처분하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각종 한약처방 명칭사용 한약제품 조제 및 허위과장광고행위가 성행하는데 빌미를 주는 것 같다. 필자의 생각에는 이러한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한의협에서 관련 법률처벌규정을 좀 더 명확하게 구체화(특히 한방 건강보조식품광고)하는 한편 처벌법정형을 높이고 아울러 자체적으로 광고기준을 정하는 한편, 협회에서 자체적으로 징계조치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더불어 협회와 지자체, 협회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간 합동단속반(특별사법경찰단)을 편성해 주기적으로 광고판매 행위를 모니터링하고 단속활동을 펴는 한편, 국민들이 이러한 광고행위에 현혹되지 않도록 자체 홍보활동(특히 협회자체 유튜브 개설)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32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추석연휴가 시작되던 첫 날(9월9일) 기어이 영접하고야 말았다. “물 많이 드시구요. 소금물로 인후부 안쪽까지 자주 가글하세요. 인후통이 제일 심하다고 하셨죠? 5일분 처방 드릴테니까 고양시청 홈페이지나 포털 들어가셔서 검색하시면 주소지 근처에 당번약국 리스트 뜰 겁니다. 귀갓길에 약 받아가시면 됩니다. 일주일만 고생하시면 뭐 거의 괜찮아지실 겁니다. 격리기간 꼭 지키시구요.” 내과 전문의로 추정되는 의사 한 분과 짧게 전화 통화를 나누었다. 코로나 환자로서의 첫번째 일정, 바로 비대면 진료체험이었다. 일산서구 보건소의 명절 당직 직원은 몹시 친절하고 신속했다. 키목신캅셀, 록스펜정, 페니라민정 3가지 약제 5일분을 받아들고 귀가했다. 1개월 전 코로나로 고생했던 동생 때문에 집에는 이미 삼소음 스틱 10개와 만성 기침에 잘 듣는 한약 20팩도 준비되어 있었다. 인후에 직접 분사하는 소염제 스프레이와 목캔디까지 갖추고나니 든든했다. 가족들과 추석연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연휴와 격리 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국회 진료실에 휴진으로 인한 피해를 덜 주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쉬면서 그간 미뤄왔던 옷정리도 하고 시간이 없어서 못 보고 있었던 넷플릭스 시리즈물도 몰아봐야지 싶은 마음에 코로나 확진 직후의 당황스러움은 잠시나마 평정심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코로나 확진, 다양한 증상으로 인한 힘든 시간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이 헛꿈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귀가 직후부터 묘하게도 ‘이제부터 코로나 환자 역할 시작이야!’라고 몸에 오더가 입력된 것처럼 인후통과 고열로 인한 두통, 몸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청소도, 영화도 코로나 환자에게는 모두 사치스런 일이었다. 시간 맞춰 약을 먹는 데도 증상은 고만고만했고 1층 사시는 친정 어머니께서 문 앞으로 올려다주시는 각종 명절 음식들에도 도통 손이 가지를 않았다. 천돌혈 부위에 왕호두알 하나가 박혀있는 것 같은 이물감이 느껴졌고 물을 넘기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동안 진료실에서 환자분들과 나누었던 그 많은 코로나 토크들이 파노라마처럼 샤샤샥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고생을 하셨건 거였구나…정말 힘든 시간이었겠구나…” 코로나 진단 여부에 대한 질문을 건넸을 때 체감상 5명 중 4명은 “나도 확진이었소”라고 대답했다. 일일 확진자수가 62만명까지 치솟았던 지난 3월에 확진된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상당히 많은 분들이 다양한 후유증을 호소하시며 진료실에 들르셨고 삼소음, 소청룡탕, 갈근탕, 패독산 등의 보험처방을 내어드렸다. 주변에 걸릴 사람들은 다 걸렸고 나를 뺀 모든 친정 식구들이 코로나로 인한 짧은 고생을 하고 지나간 터라 지금까지 안 걸린거 보면 난 백퍼 무증상 코로나 환자였음이 분명하다고 자신했었다. 도대체 누구에게서 받은 코로나일까? 확진일 이전의 일정을 돌이켜 보니 짧은 추석연휴를 앞둔 9월 초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운 마음으로 와인이나 한 잔 하자는 즐거운 저녁 모임이 릴레이로 잡혀있었다. 3명만 입장하는 룸 좌석의 식당부터 양쪽 통창을 통해 맞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오는 테라스 좌석, 쉐프님 서빙을 직접 받는 카운터 좌석의 식당까지 그 모든 모임에서 나와 다른 참석자들 모두는 침을 튀기며 열띤 토론을 벌였고 술잔이 부딪히는 쨍그렁한 사운드는 경쾌하기만 했다. 그 어드메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스르륵 내게 전달되었을 터이다. ‘이제 와서 동선을 역추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을 했었던 모든 지인들에게 나의 확진을 알리고 그들의 증상 유무를 체크하며 추석 안부를 챙겼다. 다행히 모두 코로나 확진의 과거력을 가지고 있었고 나 빼고는 모두 별무증상이었다. 나의 코로나 막차 탑승을 걱정해 주면서도 격리해제가 되면 그 때 또 축하주를 마셔야 한다고 웃어대며 10월의 어느 날을 기약하고 있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인한 환자 내원 ‘지속’ 지난 8월 21일부터 9월 18일까지 『헬쓰조선』에는 대한이비인후과학회와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의 공동 취재로 코로나 후유증에 대한 기사가 5주 연속 실렸었다. “코로나 19에 감염되면 발열, 인후통, 기침, 콧물, 코막힘, 가래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보통 감염 후 3∼4주가 지나면 증상은 개선된다. 그러나 4주가 지나고 나서도 코로나 증상이 계속되거나 4주가 지난 후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면 이를 ‘long COVID’ 즉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진단한다. 롱코비드는 적어도 2∼3개월 동안 다른 진단명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롱코비드는 다양한 장기에서 발생하며 지금까지 알려진 후유증은 코, 귀, 호흡기, 혈액, 심혈관, 정신적인 문제, 콩팥, 피부 등에서 발생한다. 코로나 확진자의 22∼40%가 한 가지 이상의 롱코비드 증상을 경험하며 가장 흔한 롱코비드 증상은 기침, 목소리 변화, 후각 저하, 난청, 어지럼증, 이명 순이다.” 격리 첫 날 극심했던 증상은 5일차를 정점으로 점차 잦아들었고 7일차 아침부터는 거의 정상적인 컨디션을 회복했다. 한약, 양약 복합 투여에 내가 가진 기본적인 면역력의 총합 덕분이었으리라!! 9월 15일 목요일 24시 드디어 격리가 해제되었다. 꼭 누군가가 “이제 당신은 자유의 몸입니다”라며 방에 드리워진 암막 커튼을 제껴주는 듯했다. 극적인 그리고 짜릿한 해방감을 만끽하고자 집앞 편의점으로 달려나가 벤엔제리스 하프 베이크드 아이스크림을 한 통 사들고야 말았다. ‘그래, 이 맛이야, 자유의 맛!’ 롱코비드의 후유증들은 다행히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지만 금요일 출근을 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까지도 롱코비드의 다양한 불편함으로 내원하시는 환자분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다. ”원장님, 코로나 걸리셨었다면서요? 지금은 괜찮으세요? 역시 건강하신 분이네요. 이렇게 바로 회복되시고.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쓰기 시작하면서 콧물이 싹 말라붙길래 그 고질적인 비염이 세상에나 마스크 때문에 다 사라졌구나 생각했었는데, 지난 4월엔가 코로나 걸리고 나서부터 그전보다 비염 증상이 더 심해졌어요. 그 때 주셨던 소청룡탕 좀 받아갈 수 있을까요? 그 약 먹고 코세척하면 그나마 증상이 많이 덜해지더라구요.” 소설가 정대건은 9월 15일자 한겨레 신문의 『삶의 창』이라는 코너에 “미각을 잃은 사례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본인의 코로나 체험기를 투고했다. “8월 초에 목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왔다. 2년 동안 익히 들어왔던 증상과 같았다. 나도 걸렸구나. 마침내, 이틀은 정신이 혼미했다. 의자에 앉아있을 힘도 없었다. 그러나 많이들 겪은 일이기에 그렇게까지 두렵지는 않았다. 일주일을 앓고 나자 잔기침은 계속 났지만 괜찮아졌다. 그런데 미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레몬즙 원액이나 엄청 매운 떡볶이를 먹어도 양치할 때 치약 맛도 나지 않는다.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내게는 너무 가혹한 후유증이었다. 이전과 다른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어디에는 스테로이드 치료를 권하는 의사들이 있었다. 다른 곳에는 스테로이드로 효과를 못 본 사람에게 강황이 좋다는 말이 있었다. 보아하니 한의원에서 낸 기사였다. 둘 다 이해당사자들의 광고였다. 의료진의 전언도 신뢰할 수 없게 된 나는 블로그의 생생한 체험기들을 검색해 봤다. 10개월째 미각 상실이라는 글이 있었다. 스테로이드 치료도, 한의원 치료도 소용 없었다고 한다. 조만간 신경과에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동병상련의 마음과 동시에 나도 미각이 끝내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절망적이었다.” 뚜렷한 해법 보이지 않는 코로나 후유증 소설가는 글 말미에 향은 다행히 맡을 수 있게 되었으나 단맛은 아주 조금 느껴지는 정도에 머물러 있음을 고백하며 미각을 잃은 상태가 이렇게 오래 지속된다면 이 또한 장애로 분류되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롱코비드의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처방으로 본인의 컨디션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환자분들부터 정대건 소설가처럼 상당한 수준의 미각을 잃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증상들. 이 다름에 최적화된 맞춤 처방이 가능한 의학이 한의학의 특장점 같기도 하다가도 심각한 수준의 부작용에는 어찌보면 의학도, 한의학도 한없이 무기력한 것이 사실이다. 롱코비드도 그 정의만 내려져 있을 뿐, 환자 개개인의 지속적인 개인 방역과 증상 관찰 권고 이외에는 뾰족한 해법이 없어 보인다. 롱코비드의 독한 맛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환자분들의 억울함과 불편함을 가까이에서 목도하면서도 깊이 공감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 환자로서의 7일을 보낸 후 유난히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출근을 하여 진료실 책장을 살피던 중 연초에 흥미잔잔(!)하게 읽히는 제목들과 귀여운 문고판 사이즈에 이끌려 세트로 구비해 두었던 도서출판 은행나무의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물이 눈에 들어왔다. 원색의 북커버 디자인 또한 마음에 들어 한꺼번에 주문을 해서 쌓아만 두고 섣불리 펼쳐들지 못했던 책들이다. 그 중 어린 시절 자주 아팠던 경험 때문에 자연스럽게 질병과 죽음에 대한 의학적, 사회문화적 해석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인문학 강의를 하게 된 최은주 작가의 『질병, 영원한 추상성』(2014)은 환자 입장에서의 질병, 의료, 의료문화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해 주는 좋은 책이다. 같은 해에 출간된 『죽음, 지속의 사라짐』에도 의미있는 글들이 꽤 보이는데, 이 책은 다른 죽음에 관한 책들과 묶어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의학이 신종 질병을 발견할 때마다 질병은 유행한다. 이전까지는 불투명해서 불치로 방치해 두었던 질병이 치료 방향을 찾게 된다면, 개인은 신종 질병을 의심해 봐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행을 자초하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렇듯 대세와 유행은 질병을 초기에 근절한다는 달콤한 약속과 더불어 앎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킨다.” “질병 또한 신체의 부위에 나타난 비정상적인 것으로, 제거 대상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질병에 대해 ‘엄마 손은 약손’이나 ‘아브라카다브라’의 주문은 철없는 어린아이나 하는 것으로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몇 년 전 나는 각막염을 앓았다. 병원 검사와 치료를 받았지만 눈물이 나고 가려울 뿐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동네 병원이라서 제대로 진단을 하지 못했나 싶어서 대학병원까지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으나 알레르기성이라고만 말해 주었다. 그때부터 나의 시력은 급속도로 나빠졌고 눈물이 날 때는 눈물 약을 사용하고 눈을 쉬게 할 도리밖에 없었다. 오래 일하면 생기는 시력 저하와 눈물의 증상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익숙해져야만 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 해도 비정상적이거나 질병 상태에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병원 치료로도 아프기 이전의 몸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완치의 개념은 일상으로 복귀가 가능해지는 것이지 아프기 이전과 똑같은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몸은 나의 의식을 건드리면서 어떤 조치를 위하도록 요구하지만 증상을 불가피하게 내 몸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따르는 것이다.” “눈부신 의료기술의 발달과 반대로 여전히 의학 분야에서 놓치거나 간과하는 구멍들이 있다. 그 구멍들은 의학 개발이 지향하는 방향성과도 관계가 있다. 생명 구제의 지평이 질병 자체의 제거 및 절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므로 거기에 달라붙는 부작용이나 합병증은 부수적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은 종양을 떼어 내는 수술만 받고 항암 치료는 포기했다. 그가 수집한 정보 중에는 주류적인 의학의 입장 뿐만 아니라 그에 불일치하는 대안적 입장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쪽이 옳은가?’의 문제에서 그가 내린 결정은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삶에 미칠 직접적 영향과 관련한 위험의 전망은 지식을 놓고서 의심과 맹신이라는 문제를 한층 복잡한 층위에 올려놓는다.” “완치가 어려운 질병으로 고생한 환자는 좋다는 여러 가지 치료를 경험한다. 상이한 접근법을 가진 다양한 주장들을 저울질하면서 어떤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지만 어떠한 압도적인 권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수고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경쟁적인 치료법을 찾는 중에 환자의 행동 양식이 갖춰지는데, 이 속에는 라이프스타일과 존경과 같은 것들이 결합하면서 추천받은 의사에게 결정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 속에도 여러 위험 요소들이 숨겨져 있다. 전문가들 또한 불일치하기 때문에 최종적 권위자가 없는 체계에서 전문가 체계를 뒷받침하는 가장 선호되는 신념들조차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각 환자들에게 알맞은 치료법을 찾아 주기 위해 객관적인 법칙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을 기적을 발견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의사의 권위와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맹신하고 싶은 마음, 또 그만큼 가까이에 달라붙어 있는 의심 간의 투쟁은 소비 시장이 부추기는 개인적 불충분함에 대한 공포, 불안, 고통에서 기인하는 또 다른 문제이다.” “자신의 고유한 삶에 대한 책임은 의사보다 개인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내가 나의 고통에 먼저 관여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엔 약사나 의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아는 체를 한다. 반면 그 상태를 벗어났을 때 불안에 떨며 완전히 의사에게 몸을 맡긴다. 이 양극의 행동이 한 사람에게서 일어난다. 어느 쪽도 위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약의 효과 이전에 내게 부과된 고통을 먼저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극복할 정도의 고유한 차원을 스스로에게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의학기술이 명명하기 전까지 모호한 상태의 병은 병으로 의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학 전문가들에 의해 매개되는 지식 주장들이 권위와 진실성을 부여받아 언어적으로 결정되면(진단), 일상 전체가 위험 분위기에 놓인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이 분위기에 맞춰져 제한된다. 신화가 그렇게 결정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에 대한 편집증 때문에 질병 보유자가 되고, 행복에 대한 편집증 때문에 불행에 도취된다. 그것에서 빠져나와 바라보라. 내가 도취된 내 몸 자체가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가 보일 것이다. 그것은 어떠면 '조성된' 위험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 한의사는 항상 국민 곁에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대한의사협회는 국민들에게 코로나19 치료를 위한 한약 복용을 하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하며 『Nature』와 『Lancet』에 기고된 코로나19에 검증되지 않은 중국의 전통의학 치료 조장에 대한 중국 전문가의 비판글을 인용했다(『코로나19 한방 치료 급여해달라고? 의료계, 한의계 규탄』, 의협신문, 2020.09). 그 후로도 의협은 지속적으로 코로나19에 비대면 한의치료는 위험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까지 한의협의 비대면 진료 시도를 반대해왔다(2021년 12월). 그러나 불굴의 의지의 한국인들로 구성된 한의사협회는 코로나19 한의진료접수센터를 운영해왔고 2021년 12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센터를 통해 진료받은 8423명을 대상으로 한의진료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재택치료자의 약 94.4%가 진료에 만족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2022년 6월). 서울역 중앙광장에는 “코로나19, 한의사는 항상 국민 곁에 있습니다”라는 대형 광고판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한의사 너네들이 설마? 코로나를?’ 혹은 ‘한의원 아니었으면 이 코로나 기침 안 나았을거야…’ 등등 그 광고판을 본 일반인들은 코로나의 맛을 겪은 각자의 경험을 근거 삼아 여러 다채로운 반응을 쏟아낼 것이다. 내 몸이 아파보니 환자란 그런 존재였다. 그저 쉬고 싶고 보호받고 싶으며 위로받고 싶은 나약한 존재. 만사가 귀찮아서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들이 모두 짐스럽게 느껴지는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진 상태. 민생 앞에 여야의 다툼이 볼썽사나운 뻘짓으로 여겨지듯이 허약해진 심신으로 방황하는 환자들 앞에 한·양방의 상호비방은 소음일 뿐인 것이다. 두 개의 태풍과 짧았던 추석연휴가 코로나 투병으로 금세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퇴근길의 여의도에는 부쩍 차가워진 가을이 도착해 있었다.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의 맨 마지막 구절을 떠올려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천주교 사제들과 항일운동한 변태우 한의사[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광복 77주년을 맞아 독립운동 한의사들의 삶을 조명하고 의미를 되새겨 본다. 일제 강점기 제주도 서귀포 출신의 의사, 항일운동가인 변태우(邊太祐)는 제주도 내 천주교 사제들과 함께 항일운동을 했으며, 의사로서 인술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모슬포금융조합을 잘 이끌어 지역민들이 일제 강점기에 생활 경제를 실천하도록 계몽했던 항일운동가다. 본관은 원주(原州)로 아버지는 변양근이다. 1899년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933번지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이 제주읍 이도리 1429번지로 이주해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천주교제주성당(현 제주중앙성당)의 신도가 됐다. 1922년 장한규의 둘째 딸과 결혼하고 1923년에 의생(醫生) 시험에 합격한 뒤 모슬포에 보창의원을 개업해 의료 활동을 시작했다. 의생면허는 6920번, 한지의업면허 879이다. 그의 한의사로서의 기록은 동아일보 1923년 12월5일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치경, 장한규, 김홍기, 변태우 등이 제주의생회(濟州醫生會, 한의사회 전신)를 설립했다고 보도된 것이다. 생존방편으로 불가피하게 이와다(岩田富丞)라는 일본 이름을 쓰기도 했던 그는 1932년부터 모슬포금융조합에 이사 등 임원으로 일하며 주민들의 경제적 권익보호에 기여하기도 했다. ◇탄압받은 천주교 신도들 43세가 되던 1938년 가을 변태우는 제주도 제주읍 삼도리로 거처를 옮겼다. 거기서 천주교 신도가 돼 제주성당(남문통 소재)에 교적을 두었는데 1937년 일제의 의료법 시행령에 따라 한지의사(=지역 의사) 시험에 합격한 뒤로, 천주교 모슬포 지역 회장직을 역임하며 지냈다. 그해 가을 그는 당시 제주읍(濟州邑) 삼도리(三徒里)에 천주교 선교사로 와 있던 아일랜드 출신의 손신부(孫神父: 도슨 또는 다우스 파트리크)와 대화를 나누던 중 일본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대화 가운데는 모슬포 비행장의 넓이는 20만 평 정도이며, 남경 함락 당시에는 하루에 두 차례씩 한 번에 20기 정도가 바다 건너 폭격을 하기 위해 왕복 비행을 하였으나, 지금은 비행숫자도 많이 줄고, 군인 수도 많이 줄어서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1941년 10월 일본 경찰은 제주도 내의 반일 감정을 가진 세력들을 색출할 때 천주교 신도들의 모임 또한 탄압 대상으로 삼았었기, 때문에 몇 년 전에 손신부에게 말한 내용을 들어 그를 검거하였다. 당시 손신부는 일본의 패망을 바라던 입장이었기 때문에 일본 측에서는 손신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것 자체가 군사기밀을 폭로한 것이라는 혐의를 두었다. 얼핏 보면 크게 문제가 안 될지 모를 이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한 인물을 탄압의 대상으로 몰아넣어 지독한 고문을 가하게 만들었다. 제주도 천주교 신자들의 항일 활동은 세 명의 천주교 신부가 주도하고 있었다. 손 신부, 서 신부(徐 신부:Sweeney, Augustine), 그리고 나 신부(羅 신부:Ryan, Thomas.D.) 이들은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할 경우, 동양에서 천주교의 포교는 불가능해지고 서양인은 동양 각처에서 쫓겨나게 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때 모슬포 군용 비행장의 모습과 내용이 외국 잡지에 사진과 함께 게재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일본 군부에서는 군사기밀이 누설됐다며 야단법석을 떨었고 기밀을 누설한 사람을 색출하는 데 혈안이 됐다. 일본 군부는 먼저 서양 사람과, 조선인들을 의심했다. 당연히 모슬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우선으로 검속을 당했다. 1940년 일제는 제주도를 군사 기지로 만드는 계획을 수립했다. 그렇게 삶의 터전에서 죽음의 땅으로 변한 아픔의 장소가 제주에는 참 많다. 대표적인 게 알뜨르 비행장이다. ◇제주 내 반일세력으로 색출돼 일제가 제주도에서 중일전쟁과 남경지역 폭격을 준비하며 1930년대 중반까지 제주도 도민을 강제 동원해 군용 비행장을 건설했고, 1940년대에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탄약고, 연료고 등 중요 군사 시설을 감추기 위한 동굴 진지를 구축했다. 그것이 ‘셋알오름일제’와 서귀포시에 있는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 진지’이다. 이러한 군사 기지화, 전초 기지화 작업을 하며 제주도도내 반일세력(항일세력)을 색출 및 제거하기 시작했다. 일제는 우선 적성국인 아일랜드 선교사들과 그들이 소속된 천주교회의 신도 조직을 탄압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군사기밀을 누설했다고 해서 모슬포 공의로 종사 중이던 변태우는 1940년 10월 일본 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일제 당국은 외국인 신부 3명과 평소 반일 감정이 있는 신도 35명을 구인해 심한 고문을 가했다. 결국, 외국인 신부 3명과 한국인 신도 10명이 기소됐고 그중 1명은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혹독한 고문의 여독으로 순국했다. 변태우는 194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국방보안법 및 군기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조국이 광복되면서 변태우는 전라남도 광산군(光山郡) 대촌리의 보건소장으로 발령받아 생활 근거지를 광주로 옮겼다. 1948년 광주 시내에 ‘월산의원’을 개업하고 의술을 펼치다 고문의 여독과 옥중 생활 후유증으로 2년 뒤인 1950년에 광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3년 광복절에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235)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동기는 일반적으로 그 직업을 대하는 태도와 직접 연결된다. 대체로 직업 선호도가 높은 직업군은 이직률이 낮고, 선호도가 낮은 직업군은 이직률이 높게 나타난다. 한의학에 입문해 한의사로 활동했던 전통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한의사들은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가지 못하는 특성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아마도 사람을 치료하는 보람이 그 어떤 학문적 성취보다 더 큰 성취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래에 전통시대부터 근현대까지 한의사들의 한의학 입문 동기를 살펴본다. 첫째, 儒學이라는 학문을 하면서 한의학을 하게 된 경우다. 柳成龍(1542∼1607)은 고관대작을 두루 거친 문관이었지만, 『醫學入門』의 鍼灸篇을 연구해 『鍼灸要訣』을 저술했다. 丁若鏞(1762∼1836)은 『麻科會通』과 『醫零』의 두 의서를 저술했다. 李圭晙(1855∼1923)은 『黃帝素問節要』(일명, 『素問大要』), 『醫鑑重磨』 등 의서들을 저술하는데, 그 醫論들과 處方들은 儒醫로서의 풍모를 보여준다. 金宇善은 1914년 『儒醫笑變術』이란 의서를 간행한다. 제목의 의미는 ‘儒醫가 환자의 병을 치료하여 그 집안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바꿔주는 기술’이라는 뜻이다. 둘째, 道家·養生術의 연구를 하면서 의학에 입문하게 된 경우다. 정렴(1505∼1549)은 養生術을 연구해 養生書인 『龍虎秘訣』과 醫書인 『鄭北窓方』을 지었다. 그의 동생 鄭碏(1533∼1603)은 許浚이 『東醫寶鑑』을 지을 때 참가해 도가적 의학의 영향을 미쳤다. 曺倬(1552∼1621)은 養生醫學 연구에 정진하여 『二養編』을 저술했다. 셋째, 가업을 계승해 의사가 된 경우다. 수많은 의사들은 대대로 의업에 종사하던 집안의 출신이다. 고려시대 薛景成, 조선시대 양예수·강명길·윤동리 등이 그러한 예이다. 넷째, 의학 자체에 대한 탐구심으로 의학에 입문한 경우다. 許浚(1539∼1615)은 가문 좋은 양반의 자제였다. 그럼에도 의학 자체에 대한 탐구심으로 사회적으로 양반보다 낮은 계층에 속하는 의사를 택했다. 李濟馬는 말년에 관직을 버리고 함흥에서 ‘保元局’이라는 한의원을 경영하면서 제자들을 양성했다. 다섯째, 사회적 변혁에 따라 진로를 전환해 의사가 된 경우다. 韓秉璉은 과거시험을 위해 상경했지만 과거제도가 폐지돼 한의학 연구에 정진하게 됐다. 李鶴浩(1850∼?)는 낙향하게 되어 한의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名醫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南采祐(1872∼?)는 양반가문에서 성장했지만 낙향을 하게 되어 의학에 입문해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뜻을 펼치게 됐다. 여섯째, 부모의 질병으로 인해 의사가 된 경우다. 李喜福은 어머니의 질병 때문에 『景岳全書』를 읽고 의술을 익혀서 명의가 됐다. 黃翰周는 구한말에서부터 일제시대에 걸쳐 활동한 의사이다. 그는 16세에 양친의 질병으로 의학에 뜻을 두어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특별히 그는 鍼灸에 조예가 깊었다. 일곱번째, 자신의 건강으로 인해 의사가 된 경우다. 金永勳(1882∼1974)은 어려서부터 漢學을 공부했으나, 15세 되던 해에 눈병을 앓은 것이 계기가 되어 당시 강화도에서 활동하던 名醫 徐道淳의 제자가 되어 의학을 공부했다. 여덟번째, 주위의 권유로 의사가 된 경우다. 洪鍾哲(1852∼1919)은 서울에 거주하면서 구한말에서 일제시대 초기까지 40여년간 名醫로 이름을 날린 醫家이다. 그는 일찍이 12세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한의학에 뜻을 두기 시작해 『景岳全書』를 많이 연구하여 호를 慕景이라고 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