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국토교통부가 지난 6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이하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경제민주화시민연대·금융소비자연맹·금융정의연대·민생경제연구소가 6일 공동성명 발표를 통해 이번 개정안은 교통사고 피해자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민간 보험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졸속·편향 입법이라면서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이번 개정안의 가장 심각한 독소조항은 의료인의 진단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결정돼야 할 치료 지속 여부를 민간 보험사에게 위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교통사고 피해자의 회복 속도는 연령, 사고의 충격도, 기저질환 유무, 신체조건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8주 이후에도 통증과 후유증이 지속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 이에 의료인은 환자와의 대면 진료를 통해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치료 계속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이에 성명서에서는 “이번 개정안에서는 의학적 전문성과 의료 경험 등을 요구하는 치료 필요성에 대한 판단을 민간 보험사가 비대면으로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는 보험금 지급의 기초가 되는 ‘의학적 근거’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보험사가 자의적으로 치료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들 단체들은 피해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사실상 제한한다는 부분도 개정안이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로 지적했다. 즉 개정안에 따르면 피해자는 사고 발생 7주 이내에 진단서, 치료 경과 자료 등 전문 자료를 직접 준비해 보험사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후 치료 지속 여부는 보험사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러한 행정적 부담은 환자에게 진료 연장에 대한 진입장벽을 만든다는 것.
이들 단체들은 “누군가에게는 간단할 수 있지만 고령자나 장애인, 경제적 취약계층 등 개별적 상황에 따라 자료 제출 절차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이같은 개정안의 내용은 환자가 필요한 치료를 스스로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치명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가 피해자와 이해가 상충하는 ‘가해자 측 보험사’라는 점을 지적한 이들 단체들은 “민간 보험사의 최우선 목적은 비용 절감이지, 피해자의 완전한 원상회복이 아닌 만큼 피해자가 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보험사의 더 많은 비용 지출로 이어질 것이고, 비용 절감을 최우선 목적으로 하는 민간 보험사는 ‘치료 필요성 불인정’ 결론을 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즉 개정안은 공정하지 않은 판단자에게 피해자의 치료 권한을 넘기겠다는 것으로, 이는 보험 제도의 존재 이유인 ‘피해자 보호’ 원칙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보험사의 치료 불인정 결정에 대해 피해자가 7일 이내에 공제분쟁조정분과위원회(이하 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이번 개정안은 피해자에게 불리한 구조라는 지적이다.
즉 보험사는 환자가 이미 제출한 자료를 참고해 해당 위원회에 보험사측 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 반면, 환자는 보험사측 자료를 확인할 수 없어 정보의 비대칭과 불공정 문제가 심각할 뿐만 아니라 위원회의 구성이나 조정 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 규정도 전무해 위원회가 실제 피해자의 권익을 대변하고 공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들 단체들은 자동차사고 치료비 허위·과다 청구 등 보험금 부정수급 문제에 대한 개선에는 동의하지만, 이 문제는 피해자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방식이 아닌, 의료계·보험업계·소비자단체 등 전문가가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 이들 단체들은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 강화 △표준진료지침(CPG) 적극 활용 △한의사·의사 단체의 자체적인 과잉 진료 기준 마련 등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또한 이 같은 기준을 위반해 부정수급을 유발한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보험 처리 제외를 비롯한 강력한 불이익을 적용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반복되는 부정수급 행위에 대해선 형사고발까지 검토하는 등 실질적 제재를 가하는 방법이 바람직할 것이며, ‘보험사기방지법’을 강화하는 것 또한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 단체들은 “자동차보험 진료비의 효율성과 적정성을 높이기 위한 논의는 필요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부정수급 방지’라는 명분 아래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보험사의 비용 절감만을 노린 개악”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한편 “이러한 독소조항이 자동차보험에서 허용된다면, 추후 다른 보험상품에도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다”면서 “시민사회단체는 부정수급을 핑계로 한 교통사고 환자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자배법의 즉각 폐기를 다시 한번 촉구하며, 개정안이 강행될 경우 강력한 반대 운동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