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제약산업의 충격적 현장 보고서…'의약에서 독약으로'
저자 : 미켈 보쉬 야콥슨 외 12인
역자 : 전혜영
분량 : 664쪽
가격 : 25000원
출판사 : 율리시즈 (Tel : 02-2655-0166/7)
[한의신문=김대영 기자]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많게는 하루에 7가지 의약품을 복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양약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승승장구해온 제약산업은 그 성장만큼이나 약품의 부작용과 리스크도 늘어났다. 이는 지속 성장을 지향하는 제약산업에 큰 걸림돌이 됐고 의약품의 개발과 마케팅에 다른 변수들을 개입시키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해마다 유럽에서는 약 20만명이 의약품 부작용으로 사망한다. 진통제 과잉 복용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헤로인이나 코카인 등으로 사망한 마약중독자들의 수보다 많다. 의료인은 물론 금융, 정치, 나아가 정부 및 국제기관들을 움직이는 거대 제약자본의 부조리한 역학관계, 그 중심에 ‘인간의 건강 증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의약에서 독약으로’는 우리가 아무런 의심없이 복용하는 양약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그리고 이를 처방하는 의사에 대한 맹신을 거두고 양약에 숨겨진 무서운 진실을 직면하게 함으로써 양약에 대한 우리의 신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주시해야 할 것인지를 일깨워 준다.
빅 파마(Big Pharma)에 맞서 이들의 위험한 질주에 제동을 걸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전력해온 저자와 각 분야의 전문가 12인의 증언이 합쳐진 이 책은 1000여 종의 약품과 빅 파마의 변천사는 물론 주요 질병 및 체료제의 흐름, 거대 의약 스캔들, 범세계적 의약 마케팅의 파급력, 임상실험의 모든 것, WHO와 빅 파마․의학계의 결탁에 이르기까지 제약산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전방위 취재 기록이 빅 파마 시대를 맞이한 의료계 시스템과 문제점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제약산업이 의약품 연구와 의료 행위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독점적 지배를 해왔는지를 폭로한 이들은 처음으로 항우울제의 위험성을 고발했고(카디프 의대 교수 데이비드 힐리), 소염제인 COX-2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렸으며(하버드 의대 교수 존 에이브람슨), 항우울제 치료 효과의 거품이 얼마나 심한지를(헐 대학교 교수 어빙 커시) 폭로했다.
또 알츠하이머 치료제(노인성 치매 분야의 세계 일인자 피터 화이트하우스)와 신종플루 H1N1 치료제(전염병 전문의 볼프강 보다르크)의 허상을 알려준다.
특히 전방위로 펼쳐지는 제약산업의 교묘한 전략을 눈치채지 못하면 자칫 한 순간에 건강을 잃고 만신창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 저자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당장 의심해야 할 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의약품의 개발과 판매 전략은 ‘인간의 건강 증진’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판매량에 따른 이윤만 따질 뿐 시판 전 신약 실험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더라도 제약회사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그 내용을 감춘다.
‘의약품 덕분에 건강이 보장되고 평균 수명이 늘어났다’는 것도 과장된 진실이다.
미국은 인구당 약품 복용량이 가장 많은 나라로 의료비 지출이 국내총생산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지만 평균 수명으로 따지자면 세계 17위 수준이다. 쿠바보다도 낮다. 치료를 내세워 과다처방을 한 결과다. 약품이 인류에 이바지한 혜택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평균 수명의 연장은 삶의 질의 개선과 보건 위생 향상으로 이룬 결과지 의약품 덕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특정 질병의 대표적 치료제이자 베스트셀러 약품은 충분히 안전하며 약효도 출중하다’는 믿음은 위험하다.
30여 년에 걸친 세계적 블록버스터급 약품의 판매 결과는 모두 심각한 부작용과 재발 위험, 중독 증세로 인한 또 다른 문제들을 낳았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질병 퇴치율이 높아지고 신종 질환은 감소하고 있다’는 기대는 착각이다.
오히려 지난 30년 동안 듣도 보도 못한 신종 질병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특히 정신 의학과 관련된 증상과 질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정신과협회에서 발간하는 DSM(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정리된 정신질환 목록을 보면, 초판에는 106가지였던 것이 4판에서는 297가지로 늘어났다. 이렇게 늘어나는 신종 질병에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치료제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소위 질병의 ‘브랜드화’다.
‘만성질환은 완치가 아닌 악화 방지를 목적으로 복용해야 한다’는 기준은 위험하다.
항암제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의약품 품목의 상위 5위까지를 살펴보면 향정신성 의약품(항우울제, 정신병 치료제 등), 콜레스테롤 저하제, 천식 치료제, 당뇨병 치료제, 위궤양 치료제가 자리한다. 이들 약품은 규칙적으로 복용해야 하며 처방약을 먹었다고 완치를 기대할 순 없다. 만성적 증상을 억제하거나 악화를 예방하는 용도의 약품은 하루라도 복용을 거를 경우 금단증상이 생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주시해야 할 부분은 질환을 가늠하는 기준 수치의 지속적인 변화다. 고혈압의 정의는 140/90에서 120/80까지로 권고 기준이 넓어졌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도 300에서 240, 200에서 130까지 기준이 계속 하향하고 있다. 골다공증의 기준도 마찬가지여서 현재 미국 국립골다공증재단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자면 미국인 중 1,000만 명이 골다공증 환자이며 3,500만 명이 조기골다공증 진단을 받았다. 빅 파마는 수치에 민감한 현대인의 성향을 공략해 계속해서 정상 수치를 끌어내리도록 로비하며 해당 약품을 팔기 위해 갖은 수를 쓰고 있다.
‘임상실험은 중증 환자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기대 역시 위험하다.
어떤 약품이 진정한 효과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20~30년의 연구기간이 필요한데 당장의 승인을 위해 요식행위로 진행하는 임상실험에서는 절대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이다. 조직적으로 전 세계에 걸쳐 이뤄지고 있는 임상실험산업의 전모와 그 안에서 환자와 가난한 이들이 실험용 인간으로 전락해버린 불편한 진실의 민낯을 이 책에서 마주할 수 있다.
‘세계적 전염병을 예방하고 억제하는 데 주력하는 국제보건기구 WHO’라는 믿음에도 의심이 필요하다.
2009년 WHO는 엄숙하게 세계적인 유행독감 H1N1 즉, 신종플루를 공표했다. 그로부터 1년 동안 WHO의 진단상 20억 건 이상의 H1N1 사례가 발생했지만 결과적으로 신종플루의 전체 발생 건수는 연간 발생하는 일반적인 독감 사례의 절반 수치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정부들은 국민에게 독감 백신과 항바이러스 약품을 쓰도록 장려했다. 조류독감 때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세계적 전염병의 발표 다음에는 백신 열풍이 뒤따른다. 충분히 테스트하지 않은 비효율적인 백신을 양호한 사람들에게까지 접종함으로써 부작용의 위험을 감당하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는 잘못된 경보를 울릴 수밖에 없었던 WHO의 배경, 초국가적인 규모로 연계된 제약업계의 커넥션을 알려준다.
이 외에도 연구 과정과 그 연구에 대한 재정적 지원, 제약회사에 제품 특허권을 인정해주는 구조적 시스템, 약효와 리스크를 위주로 한 의약품 평가, 임상실험의 방법론, 의사들을 상대로 한 교육 커리큘럼, 의학 전문가와 위생당국의 역할, 질병의 정의 등 재고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저자는 의약품의 효능과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한번쯤은 의사의 진단과 처방전을 들여다보며 꼼꼼히 따져보는 주도적인 소비자가 될 것을 주문한다.
총 3부 2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1부에서 빅 파마라는 거대 제국은 누구이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기술했다. 이어 2부에서는 이들이 의약품을 팔기 위해 어떤 기술적·홍보적 전략을 펼치고 있는지를 여러 관점에서 분석한다. 3부는 ‘근거중심의학’이 어떻게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지, 과학이 제약산업의 실속을 챙기는 수단으로 전락한 맥락을 집중 조명한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는 모든 것을 의약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이 시대를 개탄하며 진정한 의학이 사라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의료계의 부적절한 진단과 쓸데없는 의약품 복용 권장은 비단 다른 나라의 일이 아닌 바로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때 이 책은 제약산업의 현 패러다임이 어떤 양상을 띠고 있는지, 소비자들에게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전 세계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길잡이가 돼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