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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한의대한방병원, 대구시 건축상 최우수상·시민상 수상[한의신문] 대구한의대한방병원이 대구광역시가 주관하는 ‘제34회 대구광역시 건축상’ 행사에서 최우수상 및 시민상을 동시 수상했다. 이번 행사에는 변준석 대구한의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비롯해 홍성주 대구시경제부시장, 이동관 (사)대구건축문화연합 이사장, 김대권 수성구청장 등이 참석했다. 대구한의대학교 의료원 산하 대구한의대한방병원은 66년 한의학 진료 역사를 보유한 한방병원으로써, 지난해 10월 대구시 동구 혁신도시로 지상 6층, 총 연면적 2만6696m² 규모로 확장 이전했다. 이와 함께 의료, 교육, 연구 상호 연계된 메디플렉스(Medical Complex)가 실현된 대구·경북의 대학한방병원으로써 한의학·의학 협진 진료를 통해 원스톱 진료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친환경 조경을 갖춘 야외공원과 개방적인 동선은 시민투표에서도 높은 호응을 얻어 ‘대구시 건축상 최우수상’과 함께 ‘대구시 시민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얻게 됐다. 이와 관련 변준석 의무부총장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대구한의대한방병원은 대구와 경북을 잇는 의료 거점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지역민들에게 단순히 진료를 위한 병원을 넘어 힐링의 공간으로 자리잡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구한의대한방병원은 5일 수성구 상화동산에서 개최한 ‘2025 대구건축비엔날레’ 시상식에 참석해 상패와 동판을 받았다. -
부천시 한의사, ‘재가 의료급여 사업’에 나선다[한의신문] 부천시한의사회(회장 김범석·부천시분회) 소속 중동한의원·역곡휘문한의원은 부천시와 11일 부천시청 시민상담실에서 ‘재가 의료급여 사업 협력의료기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퇴원 환자에 대한 재가의료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재가 의료급여 사업'은 정부가 퇴원하는 의료급여 수급자를 대상으로 집에서도 불편함 없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의료, 돌봄, 식사, 이동 등 여러 재가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으로, ‘의료급여법’ 제5조(보장기관) 및 2(사례관리)에 근거하고 있다. 사업은 각 의료급여관리사가 지역별 의료급여수급 입원환자(31일 이상) 중 입원 필요성이 낮은 수급자를 대상자로 선정하면, 각 의료기관에서 △케어플랜 조정 △모니터링 △집중교육·상담 △방문진료를 시행하게 된다. 이날 협약식에는 중동한의원(원장 김범석·분천시분회장), 역곡휘문한의원(원장 김휘문)과 함께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부천시민의원(원장 조규석·이하 부천시민의원)이 참여했다. 서비스 내용을 살펴보면 각 의료기관은 대상자의 서비스 욕구 및 제공여건 변화 등으로 환자 관리에 수정·보완이 필요한 경우 케어플랜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어 대상자의 건강수준 및 생활실태 전반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변화에 따른 적정 조치(방문, 내원, 전화)를 취하게 된다. 또한 대상자의 의료기관 내원 또는 한의사(의사)의 가정방문을 통해 △질환 관리(기존 질환, 합병증 및 신규질환 등 관찰) △복용 약물 관리(다제 약물) △생활실태 점검 및 평가 △식사량 모니터링 △건강관리 및 식이·영양에 대한 교육·상담을 진행하게 된다. 특히 한의사(의사)가 케어플랜에 따라 방문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해당 의료인 또는 간호사가 대상자의 재택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이날 김범석 회장은 “앞서 이들 한의의료기관과 부천시민의원이 일차의료 방문진료 현장에서 한·양방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대상자에 대한 한의학적 치료가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델이 구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이어 “부천시분회는 시와 함께 의료급여 퇴원자들의 안정적인 지역사회 정착을 돕기 위한 의료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향후 한의사가 지역사회 주치의로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제도 연구에도 매진해 나가겠다”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협약식에는 중동한의원 김범석 원장·김민경 재택의료팀장, 김휘문 역곡휘문한의원장을 비롯해 부천시민의원 이영주 대표·조규석 원장·박현주 재택의료팀장, 정미연 부천시 복지정책과장, 최미숙 원미구청 의료급여관리사, 이순호 소사구청 의료급여관리사, 김영희 오정구청 의료급여관리사 등이 참석했다. -
‘난지도 슈바이처’ 전설…“의료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이자 영광이죠”[한의신문=강환웅 기자] “측은지심은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마음으로, 이를 가장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의료봉사다. 누구나 한두번 의료봉사에 참여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정기적으로, 또한 오랜 기간 동안 지속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한의사의 길을 선택한 이상 측은지심은 일생에 걸쳐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일이며, 이는 한의사의 사회적인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앞으로 보다 많은 한의사 회원들이 의료봉사 등 사회공헌활동에 적극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12일 개최된 ‘2023 한의혜민대상’에서 김창환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명예교수(김창환한의원장)가 1977년 부터 격주 토요일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찾아 그 곳 지역주민들에게 의료봉사를 진행해 ‘난지도 슈바이 처’로 불리는 등 의료봉사를 통한 한의사의 위상을 높인 공로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개인 사재로 모든 의료봉사 활동 비용 ‘충당’ 김창환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강조했던 말이 ‘의료인이라면 측은지심을 늘 마음에 품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제자들에게 이를 몸소 실천할 수 있는 의료봉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과 성취감 등을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어 ‘난지도 봉사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하게 됐다”며 “혜민대상 특별상은 그동안 많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함께 의료봉사를 꾸준히 해준 모든 사람들을 대표해서 받는 것으로 생각하며, 앞으로도 어려운 이웃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활동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 교수가 난지도에 방문했던 초창기에는 주변에 파리가 너무 많아 소형비행기를 이용해 소독을 한 후에야 생활이 가능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으며,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들로 하루 벌어 먹고 살기도 버거운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는 탓에 크고 작은 만성질환에 시달리지만 병원을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김 교수는 첫 의료봉사 후 ‘이곳이야말로 정기적인 의료봉사가 꼭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에 봉사동아리를 꾸려 봉사를 진행했다. 김 교수는 “처음에는 주민들이 ‘얼마나 가겠어’라는 생각에 반신반의하면서 환영받지 못했던 것 같았지만, 이후 꾸준한 봉사활동을 통해 의료봉사가 오는 날을 기다리는 인식의 전환을 이뤄낼 수 있었다”면서 “무슨 일이든 처음에는 어렵지만, 진정으로 다가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언제든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이 폐쇄된 1994년부터는 난지도 주민들이 가장 많이 정착한 마포구 성산2동 영구임대 아파트 단지 내 성산종합 사회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이어오면서, 어느새 ‘난지도 슈바이처’로 불리우게 됐다. 김 교수는 난지도 의료봉사 이외에도 봉사단과 함께 1995년 베트남 호치민시를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필리핀 바기오 지역, 1998년부터 2007년까지는 러시아 모스크바를 8차례나 방문해 의료봉사를 했으며, 2005년에 는 카자흐스탄을 2차례 방문해 우스토베 지역의 고려인들을 위한 의술활동도 펼쳤다. 특히 난지도 의료봉사는 물론 해외 의료봉사에 대한 일체의 비용은 후원이나 지원이 아닌 순전히 김창환 교수 개인의 사재를 털어 충당해 더욱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다. 김 교수는 “‘난지도 슈바이처’라고 불리우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부분도 있지만, 의료인으로서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의료봉사를 이어왔던 모든 세월을 보상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또한 돈보다는 제자들에게 봉사의 기쁨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하면서까지 사재를 털어 모든 의료봉사를 해나갔지만, 지금도 전혀 아깝다거나 후회는 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김창환 교수의 투철한 봉사정신은 이미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제2회 아산의료봉사상 진료 부문 대상(2000년)과 서울사랑 시민상(2004년)을 수상한 바 있으 며, 경희대학교에서도 동문의 명예를 드높인 공로로 ‘목련상’(2011년)을 수여키도 했다. 언제나 자신보단 후학들 사랑이 ‘최우선’ 김창환 교수는 의료봉사 이외에도 한의학 학술 발전과 후학 양성을 위해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김창환 교수에게는 ‘난지도 슈바이처’라는 말 이외에도 ‘최초’라는 수식어도 항상 따라붙는다. 실제 김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로 한방병원 수련의 과정을 마쳤고, 양의계에서 뇌질환센터를 만들기 전인 1974년에는 경희의료원 부속한방병원에 중풍센터가 개설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의료진들의 오진으로 인해 복막염으로 보름간 고생하다가 1972년 8월29일 우리나라 최초로 무약물 침술 마취를 통해 직접 수술을 받기도 했으며, 1976년에는 류근철 교수·권순욱 산부인과 교수 등과 함께 무약물 침술마취에 의한 제왕절개 수술에 성공하는 등 경희대 한방병원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또한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병원장을 비롯해 주요 요직을 거치면서 한방병원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물론 대한한의학회 회장, 대한침구의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의학의 과학화·객관화를 위한 노력에도 매진했다. 특히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기로 유명해 해외 의료봉사 비용 전액을 자비로 충당하는 등 개인의 이익보다 는 제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왔다. 김 교수는 “경희대 한의대 1기 졸업생 중 처음으로 교수로 임용돼 동기들이 축하선물로 뭐든지 해줄 테니깐 말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던 차에 강의 때 사용하던 ‘침구동인’이 부족했던 것이 떠올라 동기들과 함께 한의과대학에 침구동인 80개를 기증했다”면서 “이후에도 현미경 등 기자재를 교체하는 것도 주도하는 등 후학들이 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동문학 작가로 세상에 따뜻함 전하기도 특히 김 교수는 “한의계의 미래는 결국 후학들에게 달려 있는 만큼 그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고, 임상이나 연구를 함에 있어서도 지속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역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선배로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의료봉사가 의료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면, 후학에 대한 사랑은 선배라면 당연히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김창환 교수는 한국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회, 색동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어린이들에게 따스한 마음을 전하는 아동문학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1995년 한국아동문학 작가상을 비롯해 올해에도 송명호아동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편 김창환 교수는 “봉사를 적극 실천하는 사람들은 ‘봉사를 받는 것보다 오히려 베풀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항상 하곤 한다”면서 “누구나 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생업에 늘상 쫓기다보면 마음처럼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이 바로 봉사”라고 운을 뗐다. 김 교수는 또한 “비록 시작하기는 어렵겠지만, 의료봉사란 한의사가 국민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만큼 많은 한의사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는 회원들을 응원하며, 나 역시 앞으로도 봉사의 참된 의미를 실천하고 주변에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의료인이면 측은지심 품어야, 40년 봉사 외길 후회 없어”“의료인이라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어야 해요. 어떤 환자들이라도 도와야 된다는 사명. 제 후배들도 꼭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제13대 경희대한방병원장이자 ‘침통 든 슈바이처’로 유명한 김창환 경희대한방병원 침구과 명예교수는 의료인으로서 지녀야 할 봉사·박애정신이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서울 마포구 난지도 일대에 쓰레기 매립이 활발하던 1977년. 김창환 명예교수는 토요일만 되면 격주로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누볐다. 이곳을 생활터전으로 삼아 어려운 생활을 유지하던 지역 주민들을 위해 사비를 들여 무료 한의진료봉사를 진행한 것이다. “서울 어느 곳보다도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어 그런지 속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많았죠. 술을 매일 마시다 보니 다들 밥이 안 넘어 간다는 거야. 위는 물론이고 간까지 나쁜 환자들이 너무 많았어요. 주변 쓰레기 더미로 인해 피부와 호흡기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김 교수는 뜻 있는 의사들과 제자들을 모아 ‘난지도 봉사 동아리’를 만들었다. 난지도의 소외 계층도 돕고, 제자들에게는 봉사에서 오는 기쁨과 성취감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봉사 공로 ‘서울사랑 시민상’ 수여 그러다 한 번은 어느 한 여중생이 김 명예교수를 찾아왔다. “어렸을 때 김 명예교수에게 치료를 받았다”며 “이제는 자신도 자랄 만큼 자랐으니까 의료 봉사를 돕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 때가 가장 감명 깊었다는 김 명예교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기억날 정도로 너무 소중한 시간”이라고 술회했다. 난지도 매립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자 그는 지난 1991년부터 봉사 장소를 마포구 성산2동으로 옮겼다. 이곳에 난지도 주민들을 위한 영구임대아파트가 건립되면서 아파트 내 이대성산종합사회복지관 진료실에서 고령의 저소득 어르신들을 위한 인술을 펼친 것이다. 김 명예교수는 “어르신들이 퇴행성관절염,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치료를 제대로 받기 어려웠다”며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김 명예교수는 ‘경희한의대 난지도 봉사팀’과 함께 진료 무대를 국내에서 해외로 옮겼다. 열악한 의료 환경 때문에 병원 한 번 가기 힘든 이들을 돕고, 우리 한의약의 우수성도 알리자는 이유에서다. 지난 1995년 베트남 호치민시를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필리핀 바기오 지역, 1998년부터 2007년까지는 러시아 모스크바를 8차례나 방문해 의료봉사를 했다. 2005년에는 카자흐스탄을 두 차례나 방문해 우스토베 지역의 고려인들을 위한 의술을 펼쳤다. 이에 대해 김 명예교수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해외 경험과 의료봉사를 통한 보람을 알려주고 싶어 해외의료봉사를 시작했다”며 “그 비용부담 때문에 제 개인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한 뒤, 그걸 빼내서 운영비로 썼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고 웃었다. 그러자 지자체와 공익재단도 그의 공로에 갈채를 보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지난 30여 년간 이어진 그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지난 2000년 ‘제2회 아산의료봉사상’ 진료부문 대상을 김 명예교수에게 수여했다. 또 서울특별시도 난지도 의료봉사 등의 공로로 ‘서울사랑 시민상’을 그에게 수여했다. 학술활동도 ‘우뚝’…한의계에 큰 족적 남겨 하지만 김 명예교수가 의료봉사에만 헌신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한방병원 수련의 과정을 마친 뒤, 경희의료원 부속 한방병원(현 경희대한방병원) 침구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환자들을 돌봤다. 그러면서 그의 학술 성과도 함께 드높아졌다. 지난 1976년에는 류근철 교수 등과 함께 무약물 침술 마취에 의한 제왕절개 수술에 성공했다. 또 김 명예교수는 양의계가 뇌질환센터를 만들기도 전인 1974년 경희의료원 부속 한방병원에 중풍센터를 개설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때 부터 경희대 부속 한방병원은 중흥기를 맞았다. 김 명예교수의 진료실에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40~50명의 환자가 내원했다. 환자가 많은 날에는 60명의 환자가 그를 보기 위해 경희의료원을 찾았다. 이 같은 학술·임상적 성과들이 10년, 20년 누적되면서 한의계 내에서 그의 업적은 곧 한의계의 역사가 되었다. 대한침구의학회장을 비롯해 대한한의학회 이사장, 제13대 경희대 한방병원장을 역임하는 등 지난 2009년 정년퇴임까지 약 40여년을 학교에 재직하면서 한의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퇴직하고 나서도 근 10년 동안 의료봉사와 나눔 활동에 앞장섰다. 요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저소득 노인 돌봄에 더욱 헌신하고 있는 주민센터 직원들을 위해 쌍화탕을 틈틈이 기부하고 있다. 돌봄 최일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젊은 직원들이 혹여 면역력을 잃게 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김 명예교수는 또 요즘 한의계에 대해 “‘에고이스트(Egoist)’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렇기 때문에 한의계 내부 구성원 간에 시기나 질투, 폄훼하는 일들이 잦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명예교수는 “의료인은 측은지심을 늘 마음에 품어야 한다”며 “학교가 학생들에게 학과 공부만 시킬 것이 아닌 의료봉사와 같은 나눔 활동에도 잘 이끌어 공동체 사회 속에서 뜻깊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 앞장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런 의미로 “일흔을 훌쩍 넘겨서까지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고 있는 한의계 원로들이 많다”며 “이들을 발굴해 조명하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살아온 발자취와 업적 등을 되새기면서 2030 젊은 한의사들에게 울림을 전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 제시했다. 김 명예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번 제44대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선거를 통해 한의계가 더욱 화합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 사회를 보면 이념, 성별, 지역 간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지만 우리 한의계 만큼은 서로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는 “적어도 우리 내부 안에서 만큼은 갈등과 반목 없이 마음을 넓게 가지고 하나로 화합해야 한다”며 “새 집행부가 잘 결정하겠지만, 그런 적합한 사람들을 잘 등용해 한의계의 발전에 이바지했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신간]침향의 놀라운 비밀…이것이 침향이다[한의신문=윤영혜 기자]‘이것이 침향이다’는 한의사이자 침향 전문가인 저자가 난치병으로 분류되는 신장병은 물론 당뇨병, 고혈압, 뇌졸중, 불면증, 변비, 동맥경화, 심근경색, 협심증, 두통, 통증, 암, 불임증, 위장병, 여성질환, 갱년기질환, 성기능장애 등 각종 질환에 효과적인 침향의 성분과 약리작용을 기록했다. 저자는 “침향을 한 가지의 단순한 약재로만 보지 않았다”며 “자료를 찾아갈수록 의학과 철학이 있고, 사상이 있고 역사가 있고 문화가 함께 들어 있었다”고 전한다. 또 저자는 책에서 당나라 현종을 사로잡은 중국의 대표 미인 양귀비가 다른 장신구는 배제한 채 왜 침향 목걸이만 하고 다녔는지, 세계 여성들을 사로잡은 향수 ‘샤넬 NO. 5’에 왜 침향이 들어갔는지, 중동의 부호들은 왜 오래 전부터 침향을 독차지해 왔는지, 우리 조상들은 왜 향나무를 바닷물이 접한 곳에 묻으며 매향의식을 치렀는지 등 재미있는 일화도 소개한다. 저자인 김영섭 한의사는 동대문문화원장을 역임하며 40년 이상 동대문구의 문화창달과 봉사활동을 해온 공로를 높이 사 세계평화대상(중화민국 정부), 자랑스러운 서울시민상,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목련장, 대한민국 문화훈장, 무궁화 봉사상, 글로벌의료대상(6년 연속), 대한민국 보건의료대상, 전국향토문화연구논문 최우수상, 세계평화교육자협의회 평화봉사상 등 다수의 상훈을 수상했다. 또 50여 년 신장 질환 치료에 몰두해 온 업적을 인정받아 한국노벨재단으로부터 노벨생리의학상 후보로 추대된 바 있으며, 20여 년간 한미 양국 국민의 우호 증진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GOLD 공로 사회공헌 표창’을 받았다. 지은이: 김영섭/쪽 수: 207쪽/정가: 19000원/구입문의: 도서출판 한영문화사 -
“가족의 일을 돌본다는 마음으로 매사에 나서”오재근 국장(강동·송파구한의사회) 여기 한 우물만 판 사내가 있다. 요즘에는 한 우물만 파다가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도 있다’, ‘한 우물만 파다 물이 안 나오면 대실패’란 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상에서 묵묵히 모진 풍파(風波) 다 견뎌내며 자신의 위치에 우뚝 서 있는 사람을 우리는 레전드(legend·전설)라 칭한다. 최근 본지에서 전국 시도지부 사무국 국·처장들의 일상을 취재하면서, 강동구·송파구분회의 오재근 국장(72)을 만난 것은 그의 삶이 곧 한의 역사의 한 단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지난 온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한국전쟁 발발 2년 전인 1948년 충남 보령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기치아래 잘살고자 몸부림치던 시절, 그도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느 날 밤,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첫 일터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약령시장. 시장에서 이 곳 저 곳의 한의원에 한약재를 배달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한 한의사를 알게 됐다. 서울시한의사회 제19대 회장을 역임한 유승원 원장이다. 유 원장은 마침 강동구한의사회 사무국에 직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오재근 국장을 추천했다. 서른 살 되던 해인 1978년 1월 19일, 강동구한의사회에 입사했다. 그때부터 한의사회와 인연을 맺은 게 벌써 42년의 세월로 이어져 오고 있다. 1988년 1월에는 강동구에서 송파구가 분구됐다. 그해 4월부터는 강동구에 이어 송파구분회의 일까지 맡아 지금에 이르렀다. “지난 온 세월을 되돌아보면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그래도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지금의 나란 존재가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누가 뭐래도 한의사분들과 함께 해 가능했다. 정말 깊이 감사드린다.” 강동구·송파구분회에서 42년 동안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소속 회원들의 격려와 성원의 힘이 컸다. 하지만 현재의 ‘오재근’을 만든 것은 ‘오재근’ 그 자신이다. 그의 성실성과 진정성이 살과 피가 되고, 뼈대가 됐다. 큰 애착을 갖고 있는 그의 분신은 낡은 오토바이 두 대다. 늘 그의 든든한 발이 돼 주었다. 오토바이는 왜, 그의 분신이 되었는가. 그의 일 때문이다. 분회 특성상 회원들의 민원은 밤낮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때 가장 빨리 달려갈 수 있는 게 바로 오토바이다. 군대의 5분 대기조처럼 그는 늘 비상 대기하며 살아 왔다. 그의 첫 생활신조는 신속한 대처다. 두 번째가 정확한 일처리이고, 세 번째가 진정성이다. 회원이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질질 끌어서는 결코 안 된다. 급박하고, 중차대하다고 해서 엉터리로 일처리를 해서도 안 된다. 매사에 진심을 담아야 한다. 회원이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군대의 5분 대기조처럼 늘 비상 대기하며 살아와 그런 모습을 보이는 오 국장에게 회원들은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때론 작은 아버지도 됐고, 때론 큰 형님도 됐다. 그렇게 회원들은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42년 동안 어디 한번 멀리 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다. 회원들이 언제라도 부르면 즉시 달려갈 준비가 돼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불만도 있었겠지만 내 일에서만큼은 조금도 허투루 하고 싶진 않았다.” 그의 오래된 서류 더미를 넘기다가 노란 밴드로 묶인 한 뭉치의 종이 묶음을 확인했다. ‘합의서’ 또는 ‘각서’였다. 현재처럼 한의사배상책임보험이 없던 시절, 회원들의 의료분쟁이나 의료사고 해결은 대부분 그의 몫이었다. 의료사고로 입원한 환자를 찾아 며칠이고 병실로 출퇴근하며 간호를 했고, 사망 사고의 경우는 장례식이 마치는 날 까지 상가에서 머물며 유가족의 아픔을 같이했다. 피해자나 유가족들은 그런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결국에는 합의에 나서주었다. “오랫동안 회원들과 동고동락하다 보니 몇몇 회원들께서는 ‘맏형님 같다’, ‘작은 아버지 같다’고 말씀 해주신다. 그런 때 정말 즐겁고, 보람을 느낀다.” “작은 것에 결코 소홀하지 않는 마음이 장수 비결” 분회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가정의 화목이다. 가정사가 안정되지 못하면 반드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다행히 아내와 아이들이 나의 일을 늘 이해해줬고, 힘을 북돋아 줬다. 가족들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부인 이정임 여사와 큰 아들 병섭, 작은 아들 준섭, 그리고 둘째 며느리와 손자손녀(세준, 세현, 세아)의 존재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유다. 그가 관심은 가족과 일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불우한 이웃들과의 일상 역시 매우 소중했다. 강동구에서 그는 독거노인의 대부다. 경제적 후원은 물론 전기장판과 이불 지원, 도배, 밑반찬 제공 등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이 같은 이웃사랑 실천은 서울시장으로부터 두 번씩이나 ‘자랑스런 시민상’을 수여받았다. “아버님, 어머님을 일찍 여의였기 때문에 주변의 어르신들이 모두 다 부모님 같다. 나 또한 늙어가고 있기에 그분들의 애환을 좀 더 잘 안다. 외롭지 않고, 건강할 수 있도록 한번이라도 더 찾아뵈려 한다.” 그가 분회 일을 하면서 크게 자부하는 것이 있다. 바로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강동구 천호한의원 윤석용 원장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일이다. 윤석용 원장의 개인적 능력과 더불어 분회 차원의 아낌없는 지원이 한 몫을 했다. 그 당시 오 국장은 회원들과 함께 윤 원장의 당선을 위해 밤낮없이 뛰고, 뛰었다. “지금도 변함없이 주장하는 게 있다. 한의약이 발전하고 싶다면 소속 사회의 행정기관은 물론 정계에 대거 진출해야 한다. 보건소 과장, 소장을 비롯해 시군구 의회, 국회 등에 한의사들이 다양하게 포진될 때 한의사들의 업권을 위해 말해줄 수 있는 대변인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분들이 너무 안 보여 안타깝다.” 시군구 분회 및 중앙회 직원들에게 당부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작은 것에 소홀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인양 취급하는 게 회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일 수 있다. 한의사회의 일엔 크고 작은 게 없다. 모두 다 중요하다. 진정성을 담아 열심히 해야 한다. 회원들이 무심한 듯해도 다 지켜본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때 ‘한의’라는 한 가족이 된다. 가족의 일을 돌본다는 마음으로 매사에 나서줘야 한다.” -
대구한의대 이재수 총동창회장, 모교 1억원 쾌척[한의신문=최성훈 기자] 대구한의대학교(총장 변창훈)는 총장실에서 모교 발전과 후배들을 위해 발전기금 1억원을 기부한 이재수 총동창회장(이재수한의원장, 한의학과 2기)의 발전기금 전달식을 가졌다고 3일 밝혔다. 대구한의대는 회춘의학연구소와 제한의원의 설립년도인 1959년을 대학 건학의 연도로 지정하고 지난 2일 기린체육관에서 건학 60주년 기념식을 가지게 됐다. 이런 뜻깊은 날을 축하하기 위해 이재수 총동창회장은 대학 발전과 후배들의 학업에 도움을 주고자 발전기금을 전달했다. 이재수 총동창회장은 “본인도 학창시절 대학에서 받은 장학금으로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며 “내가 대학에서 받은 혜택 이상을 후배들을 위해 환원하고자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나눔과 기부는 사회 지성인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하며, 모교가 건학 60주년을 맞아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하는데 마중물이 돼 다른 동문들의 모교사랑이 도미노처럼 일어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변창훈 총장은 “이재수 총동창회장님은 평소 아름다운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베품과 나눔을 몸소 실천하는 분으로 존경하고 있다”면서 “기부하신 발전기금은 회장님의 소중한 뜻이 빛날 수 있도록 대학 발전과 후배들을 위해 소중히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수 총동창회장은 대구한의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의학과 동창회장, 대구 수성구 한의사회 회장, 수성문화재단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성구협의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대구 수성경찰서 의사협력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도에는 아너소사이어티 가입과 자랑스러운 선행·효행부문 대구시민상 수상, 대구 수성구 희망나눔위원회 활동 등 지역사회 발전과 봉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
안억붕 원장 서울사랑 시민상 수상깨끗한 환경을 통해 소중한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안억붕 원장. 그가 지난 5일 환경의 날을 하루 앞두고 열린 서울시청 주관의 2005 서울사랑시민상 환경부문 시상식에서 푸른마을 분야 본상을 수상했다. 성동구에서 경희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안억붕 원장은 관내 매봉산 약수터에 야생화 꽃길을 가꾼 공로로 서울시로부터 상을 수상하게 됐다. 안 원장은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생활주변부터 푸르게 가꾸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꽃 가꾸기에 나선 것인데 이런 상을 받게 돼 쑥스럽다”고 밝혔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의 집 뒷산인 매봉산에 꽃길을 만든 안 원장은 새벽 4시부터 오전 8시까지 매일 아침 꽃을 돌본다. 또 일요일엔 아예 매봉산에서 살며 꽃길을 가꾸는 것 외에도 등산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우는 등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같은 안 원장의 열정으로 인해 아름다운 꽃밭이 가꿔진 뒤에는 근처 유치원과 초·중·고교 학생들이 자연학습을 위해 찾는 일이 잦아져 지난 2001년부터는 여름방학 자연학습학교를 열고 매년 4회씩 강의를 하고 있다. 물론 올 여름방학 때에는 자연학습학교를 열 계획이다. 꽃길 가꾸기 초창기에는 일부 주민들로부터 “당신이 뭔데 함부로 산을 파헤쳐 꽃을 심고, 물도 마구 쓰느냐”고 항의를 받았지만 정상 언저리 200m 등산길이 화사한 모습을 갖춰가면서 주민들의 반응은 칭찬과 격려로 바뀌어졌다. 뱀딸기, 붓꽃, 꽃잔디, 초롱꽃, 패랭이꽃 등 400여종의 들꽃과 들풀마다 플라스틱 이름표를 붙여 우리 산야의 꽃과 풀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는 안 원장. 안 원장은 “양적 성장위주의 경제활동으로 인해 생태계와 생활환경이 악화되어 삶의 질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며 “생태계를 가꾸는 일은 조화와 상생을 중시하는 한의학의 삶과도 맥을 같이해 즐거운 마음으로 꽃길 가꾸기를 계속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한의사로서 아픈 분들 보듬어줄 수 있어 행복"나눔국민대상서 대통령상 수상한 강병령 광도한의원 원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지난 19일 나눔국민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강병령 광도한의원 원장에게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와 앞으로의 활동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부산동래고, 동국대 한의대 및 동대학원을 거친 그는 현재 부산시장애인총연합회 부회장, 대한장애인요트연맹회장, 대한장애인체육회이사 등 장애인 관련 단체와 희망을여는사람들이사장,인봉장학회 회장 등 저소득층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강병령 광도한의원 원장. [한의신문=민보영 기자] Q. 나눔국민대상은 평소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한 분들과 기관을 발굴하는 상이다. 이번 상을 받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활동이 어떤 것들이 있다고 보시는지. A. 스스로 말하기는 다소 겸연쩍은 부분이 있어 동래구청에서 보건복지부로 올린 추천서로 갈음하겠다. 지역 소외계층과 어려운 저소득가정 청소년에게 장학금 및 후원금 등으로 15년 동안 총 10억여원을 지원하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지속적인 나눔 활동으로 나눔 환경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전언이다. 난치성 질환에 걸린 어린이를 돕기 위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왔으며,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바다축제 이벤트 개최 등도 여기에 한 몫 했다고 했다. 부산시장애인체육회부회장·장애우인권연구소상임이사로 활동하면서 비장애인의 자리에 장애인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한 공적도 있다고 들었다. Q. 2004년 교육부총리 표창, 2006년 자랑스런 부산시민상 의료 부문상, 지난 2015년 올해의 장애인상(대통령표창)등 국가적인 상을 여러 차례 받으셨다. 임상을 하시기 전에도 장애인 관련 활동을 활발하게 하셨는데, 임상과 병행하시면서 어려운신 점은 없었는지. A.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시간 문제였다. 한의사는 환자의 진료와 치료가 최우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여러 봉사활동이 주로 낮에 많이 진행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료자리를 비워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환자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정신없이 행사에 다녀오거나, 점심시간에 점심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행사장에 뛰어갔다가 끼니를 굶고서 오후에 다시 진료를 보는 강행군도 수없이 하기도 했다. 저녁에는 저녁대로 장애인단체, 봉사단체, 지역장학단체 등의 행사 참여로 시간을 쪼개어 가며 바쁜 일과를 보내는 게 다반사였다. 나중에는 환자분들께 너무 미안해 부원장을 2명 더 채용하기까지 했다. 특히나 내가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이라 활동의 어려움이 비장애인보다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애인도 봉사만 받는 입장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어렵고 힘든 이웃을 위해 봉사로써 어려움을 같이 나눠 장애인도 당당한 사회의 한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다른 장애인분들께 일깨워 주고 싶어 더 부단히 노력했다. Q. 이번 상을 받게 된 소감과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말씀 부탁드린다. A. 개인적으로도 그 어느 상 못지않게 귀하고 값진 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더 훌륭한 봉사와 기부를 하신분도 이런 상을 못 받으신 분들이 아주 많으시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이 상을 많이 자랑하고 싶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장애가 있으신 분들이 다시 이런 상을 받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다. 너는 목발을 짚고 하루 평균 150명 내외의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주변의 많은 독거노인과 장애인을 위해 무료로 의술 봉사활동을 해 오고 있다. 의술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활동을 하면서 점차 지쳐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저도 모를 새로운 에너지가 솟구쳐 나온다는 점이다. 독거노인과 장애인을 환하게 마주하며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고통을 같이 공유하는, 그것은 아마도 제가 그 동안 힘들고 어려운 경험을 했기에 얻어진 귀한 자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에게 치유뿐만 아니라 제가 가진 특유의 따뜻함과 포근함까지 전하게 되었고, 주변에서는 저를 '희망 메신저'라 부르기도 한다. 어린 시절 장애를 가지고도 굴하지 않고 이를 이겨내 왔지만, 지속적인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 속에 시련과 좌절을 되풀이하게 되면서 삶을 마감할 생각까지 했던 과거가 있었다. 하지만 일생을 장애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의 벽 앞에서 희망을 놓아버릴 뻔했던 청소년기를 겪었음에도, 수많은 문제를 끊임없이 극복해낸 '현재의 나'를 마주할 때, 앞으로 내게 부여된 소명을 깨닫게 되리라 믿는다. 앞으로도 커다란 장애를 이겨내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름대로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 마주할 '나의 미래'는 내게 부여된 소명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Q. 한의신문 지면을 통해 독자 분들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나는 내가 한의사라는 점이 행복하다. 내가 아프고 힘들고 어려우신 분들께 손 내밀어 그 분들을 보듬어 줄 수 있고, 잡아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나는 개원하고 30년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아침 욕탕물속에서 기도한다. 내게 몸을 맡겨주신 우리 환자분들이 빨리 잘 낫게 해 달라고, 제가 그분들을 제대로 낫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해 달라고, 우리 가족이 항상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아마 이런 마음은 저 뿐만이 아니라 의사라면 누구나 가질 꺼라 생각한다. 우리가 그런 신실한 마음으로 환자분들께 봉사하고,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나아가 국가에 봉사한다면 지금과 같이 아무리 우리가 위기와 어려운 고난의 시기를 거치더라도 우리 한의학이 또 다시 민족의 중심의학으로 우뚝 서리라 확신한다. -
손창수 원장, 대구시 자랑스러운 시민상 수상사회봉사 부문 본상 수상…소외된 이웃대상 다양한 사회봉사 실천 [한의신문=강환웅 기자] 손창수 원장(손한의원·사진)이 대구광역시 자랑스러운 시민상에서 사회봉사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대구광역시는 지난 13일 '제42회 자랑스러운 시민상' 공적심사위원회를 개최하고, 대상 1명·본상 3명·특별상 2명 등 6명의 수상자를 선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제42회 자랑스러운 시민상' 시상식은 내년 2월 시민주간 행사 기간(2019년 2월 21일∼28일) 중 개최된다. 특히 올해 사회봉사 부문 본상 수상자로 결정된 손창수 원장은 그동안 저소득 가정 어린이들에게 한약과 교복을 무료로 나누고, 범죄피해자 자녀에 학자금 기부 및 범죄피해자 가족을 위한 의료봉사 등 지역의 나눔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급식봉사, 연탄배달, 집수리 봉사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한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전개해 왔다. 이밖에 대상에는 박언휘 박언휘종합내과원장이 선정된 것을 비롯해 지역사회개발 부문(본상)에는 서홍명 대구광역시 주민자치회장, 선행·효행 부문에서는 박애련 대현사랑적십자봉사회장이 각각 선정됐다. 이와 함께 특별상에는 김길윤 일심봉사회장과 신기우 비앤비푸드 대표가 선정됐다. 한편 대구시 자랑스러운 시민상은 1977년 이후 지난해까지 41회에 걸쳐 모두 131명이 수상했다. 대구시는 수상자들을 시 단위 각종 행사에 귀빈으로 초대하는 등 예우하고 있으며, 수상 공적은 대구시 기록물로 영구 보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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