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치료 배제하는 실손보험…중증환자엔 ‘안전망’ 아닌 ‘장벽’”
[한의신문] 중증질환자의 재발 방지·부작용 관리 등 필수적 사후 치료가 ‘직접 치료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실손보험 보장에서 배제되면서 환자의 생존권과 경제가 동시에 위협받고 있다. 이에 보험사의 자의적 해석이 진료권까지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환자 보호 중심의 제도 재설계 필요성이 제기됐다.
김선민·신장식 의원(조국혁신당)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회장 김성주)는 24일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중증질환자 피해사례를 통한 실손보험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를 공동 개최, 환자들의 실손보험 피해 현황 청취와 구조적 문제점을 점검했다.
김선민 의원은 인사말에서 “실손보험은 국민 4000만명이 가입한 사회적 제도임에도 중증질환자에게 보험금 지급 거절과 장기 분쟁, 나아가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실은 환자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야기하고 있다”며 “이번 토론회를 통해 환자 보호 중심의 제도 개선을 모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중증질환자 피해사례(김지연·오은아·김태동 환우) △중증질환자의 마지막 보루, 실손보험의 역할을 묻다(최태형 연세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를 주제로 발표가 진행됐다.
▲(왼쪽부터) 김지연·오은아·김태동 환우
■ “‘직접치료’ 잣대에 막힌 생존 치료…환자들 ‘치료냐 생계냐’ 이중고”
피해사례 발표에서 중증질환 환자들은 보험사로부터 ‘직접 치료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하며 ‘치료와 생계’ 사이에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호소가 잇따랐다.
유방암 환자 김지연 씨는 수술과 방사선 치료 이후 재발 방지와 면역 관리를 위해 한방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가고 있으나 보험사로부터 “항암·방사선 치료를 직접 시행 중이 아니므로 직접치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원비 지급을 거절당했다.
김 씨는 “치료는 끝난 것이 아니라 사후 관리까지 이어지는 과정인데 통원은 가능하고, 입원은 불가하다는 기준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토로했다.
비소세포폐암 말기 환자 오은아 씨 역시 항암 치료 이후 부작용 완화와 면역 유지 치료를 병행해 왔으나 보험사는 이를 ‘직접적인 암 치료가 아니다’라며 지급을 중단했다. 그는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치료를 보험사가 서류만으로 불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보험은 마지막 안전망이라 믿었으나 오히려 치료를 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6년간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반복해온 전이암 환자 김태동 씨는 면역 치료와 부작용 완화 치료에 대해 보험금 지급이 제한되자 “보험사가 약관에 없는 ‘직접·간접 치료’ 개념을 적용해 보장을 축소하고 있다”며 “환자를 직접 보지 않은 제3자 판단으로 치료 필요성을 부정하는 현실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 “사적 안전망이라던 실손보험, 중증환자에겐 ‘지급 거절 장치’”
이날 최태형 교수는 실손보험이 ‘사적 안전망’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환자 보호 중심으로 실손보험 제도를 재설계할 것을 요청했다.
최태형 교수에 따르면 암환자 등 중증질환자의 보험금 지급 거절 사례는 구조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실제 법률사무소의 보험 분쟁 사례 74건을 분석한 결과, △보험사에 유리한 약관 해석·실제 약관과 다른 내용(40.5%)이 가장 많았으며 △전이·재발 소견 요구(21.6%) △제3의료기관 자문 강제(20.3%) △무관한 판례 인용(12.2%) 등이 뒤를 이었다.
보험사는 단순한 ‘질병 치료’ 보장 규정에 △직접 치료 △입원 필요성 등의 추가 조건을 덧붙여 보장 범위를 축소 해석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지급 거절 이후 방어적 대응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보험사가 선제적으로 채무부존재 소송이나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까지 제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
이에 보험약관 해석에 있어 소비자에게 불리한 해석을 금지하는 가이드라인 도입을 강조한 최 교수는 “약관 해석은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며 “입원 필요성 판단 역시 보험사가 아닌 주치의의 의학적 판단을 우선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보험사가 자문기관을 선정하는 구조에 대해 객관성·중립성 확보를 위해 △독립적 의료자문위원회 구성 △자문 남용에 대한 제재 장치 마련을 제안했다.
보험사의 소송 남용 억제와 금융감독 기능의 실효성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중증질환자 대상의 경우 소송 전 분쟁조정 의무화 △직접 소송 제한(일정 요건) △보험사별 지급 거절 비율 및 소송 제기 현황 공시 △상시 모니터링 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그는 “금융당국은 단순 권고 수준을 넘어 실질적 지급 권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갖춰야 한다”면서 “보험사의 손실 관리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그 관리의 칼날이 중증질환자를 향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장기·반복 치료 vs 단기 보상 구조…제도 간 괴리 존재
김석일 가톨릭대 의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된 패널토론에서 전문가들은 보험 약관 해석의 명확화와 함께 공·사보험 간 역할 재정립, 감독당국의 적극적 개입이 병행돼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유창훈 서울의료원 공공보건정책실장은 중증질환 치료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보험사의 ‘직접치료’ 기준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며 “중증질환은 진단과 치료가 모두 어렵고, 치료 과정이 길고 반복적이며 부작용 관리까지 포함된다”며 “이런 복잡한 치료를 전문가도 판단하기 어려운데 비전문가가 ‘치료가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학적으로는 보조치료, 고식적 치료, 관리치료 등 다양한 치료 개념이 있을 뿐 ‘직접·간접 치료’라는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수술 이후 재활이나 통증 관리, 항암 부작용 대응도 모두 치료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 실장은 “실손보험은 단기적이고 명확한 처치에 적합한 구조인데, 중증질환처럼 장기·반복 치료가 필요한 영역에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공보험과 실손보험 간 역할 정립과 협력 체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보험업계는 제도 유지와 손해율 관리 측면의 현실을 강조했다. 이형걸 손해보험협회 장기보험부 과장은 “2025년 기준 암 환자 실손보험 지급 건수는 약 263만건, 지급액은 약 1조3000억원 수준이며 입원 치료 지급률도 96%를 넘는다”며 “실손보험이 여전히 환자의 재정적 안전망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의료기관에서 과잉 비급여 진료나 보험사기가 조직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지급 기준을 무조건 완화하기는 어렵다”며 “제3의료기관 자문 역시 지급 축소가 아닌 의학적 타당성 검증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강조했다.
금융감독당국은 제도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조적 제약을 언급했다. 전현욱 금융감독원 보험상품분쟁2국 팀장은 “의료자문은 전체 청구의 0.1% 이하 수준으로, 공정성 확보를 위해 제도 개선을 지속해 왔으며, 소송 남용 방지를 위해 내부 통제와 분쟁조정 제도를 강화해 왔다”며 “약관 해석 역시 판례와 제도 틀 안에서 운영될 수밖에 있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참석한 성지은 보건복지부 필수의료총괄과 사무관은 “비급여 진료는 기관별 편차와 정보 비대칭으로 환자 부담이 커지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하는 만큼 관리급여 제도를 통해 필요한 항목을 중심으로 공적 관리 체계를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관리급여는 모든 비급여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성과 이용량 등을 고려해 적용되며, 실손보험과의 연계를 통해 보장 체계가 보완될 수 있다”며 “제도 운영 과정에서 중증환자의 치료 선택권이 제한되지 않도록 현장 의견을 반영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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