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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10일 (목)

소화액에서 전신 신호물질로…‘담즙산’이 여는 성장 치료의 새 길

소화액에서 전신 신호물질로…‘담즙산’이 여는 성장 치료의 새 길

성장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 ‘膽의 決斷’ 上편
FXR·TGR5 통해 장·간·면역·내분비 잇는 ‘대사 신호체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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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연 원장(장충한의원 원장·동서비교한의학회 학술이사)

 

현대 생명과학이 담즙산(bile acid)에 새롭게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지방의 소화를 돕는 물질을 넘어, 여러 장기의 기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대사 신호전달물질(metabolic signaling molecule)’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담즙산은 FXR(파르네소이드 X 수용체)과 TGR5를 비롯한 여러 수용체를 통해 장·간·면역계·내분비계·신경계·장내미생물 간 상호작용을 조절하며 인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핵심 신호체계로 작동한다. 이는 인체를 서로 연결된 기능적 네트워크로 바라보는 ‘네트워크 생리학(network physiology)’과 ‘시스템 생물학(systems biology)’의 관점과 맞닿아 있다. 현대 의학은 담즙산을 생체시계(circadian clock)와 연결해 시간에 따라 작용이 달라지는 신호분자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담

 

즙산의 합성과 장간순환, 수용체 활성 및 대사 기능은 24시간 생체리듬에 따라 정교하게 조절되며, 이러한 일주기 리듬은 에너지 대사와 면역 항상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의학에서도 오래전부터 자오유주(子午流注) 이론을 통해 담경(膽經)의 기능을 시간의 흐름과 연계해 설명해 왔다. 물론 담즙산의 생체리듬과 담경의 유주를 등치시킬 수는 없다. 다만 두 이론 모두 인체를 공간적 구조만이 아닌 ‘시간적 항상성(temporal homeostasis)’ 속에서 이해하려 했다는 점은 학문적으로 견주어 볼 만하다. 

 

필자는 이러한 연구를 접할 때마다 깊은 학문적 울림을 느낀다. 최첨단 분자생물학과 시스템의학이 밝혀내는 생명 네트워크가 한의학이 장부(臟腑)의 관계와 시간적 질서를 통해 설명해 온 생명관과 어느 지점에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시대와 방법론에서 출발했지만 ‘생명은 관계이며, 항상성은 그 관계의 조화 속에서 유지된다’는 공통의 질문을 향하고 있다는 점은 학문적으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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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즙산의 두 얼굴, FXR과 TGR5

 

담즙산의 다면적 기능은 크게 두 가지 신호전달체계를 통해 나타난다. 하나는 세포핵에 존재하는 수용체인 FXR(Farnesoid X Receptor), 다른 하나는 세포막에 위치한 G단백질 결합 수용체 TGR5(Takeda G protein-coupled receptor 5)다. 두 수용체는 모두 담즙산을 인식하지만 작용 부위와 생리적 역할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FXR은 주로 간과 회장(소장의 끝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식사 후 담즙산이 회장 말단에 도달하면 장 상피세포의 FXR이 활성화되고, 섬유아세포성장인자19(FGF19)의 발현이 증가한다. 분비된 FGF19는 문맥을 통해 간으로 이동해 FGFR4-βKlotho 수용체 복합체와 결합하고, 담즙산 합성 속도를 결정하는 효소 CYP7A1의 활성을 억제한다. 담즙산의 과잉 생성을 막는 대표적인 음성 되먹임(negative feedback) 기전이다.

 

FGF19의 역할은 담즙산 조절에 그치지 않는다. 간의 포도당신생합성을 억제하는 한편 단백질 합성과 글리코겐 저장을 촉진하고, 지방산 산화까지 조절한다. 즉 FGF19는 담즙산의 양을 조절하는 신호를 넘어 전신 대사를 조율하는 호르몬으로 기능하며, 이를 통해 장은 간의 대사를 원격 조절하는 내분비기관의 역할도 한다.

 

반면 TGR5는 보다 광범위한 조직에 분포하며 다양한 생리작용을 담당한다. 장의 L세포에서는 GLP-1 분비를 촉진해 인슐린 분비와 혈당 항상성을 돕고, 갈색지방과 베이지색지방에서는 에너지 소비와 열 생산을 증가시킨다. 면역세포에서는 염증 반응의 핵심 경로인 NF-κB를 억제해 항염증 작용을 나타내며, 담도 상피세포에서는 담즙 분비를 조절한다. 중추신경계와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연구되고 있다.

 

◆ 담즙산과 갑상선호르몬, TGR5-DIO2-T3 축

 

최근 주목받는 경로가 ‘TGR5-DIO2-T3 축’이다. 담즙산이 TGR5를 활성화하면 세포 내 고리형 AMP(cyclic AMP) 농도가 증가하고, 이는 제2형 탈요오드효소(DIO2)의 발현을 촉진한다. DIO2는 비활성형 갑상선호르몬인 T4를 활성형 T3로 전환하는 효소다.

이에 따라 담즙산은 해당 조직에서 갑상선호르몬 활성을 국소적으로 높이고, 미토콘드리아 기능과 산화적 인산화를 촉진해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킨다.

 

다만 이러한 대사 촉진 효과를 곧바로 소아의 키 성장이나 성장판 자극으로 확대 해석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담즙산의 대사 조절 기능에 대해서는 상당한 연구가 축적돼 있지만, 성장판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아직 규명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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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내미생물과 담즙산의 ‘양방향 대화’

 

담즙산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 장내미생물과의 상호작용이다. 과거에는 장내세균이 담즙산을 일방적으로 대사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숙주와 장내미생물이 담즙산을 매개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양방향 관계로 이해되고 있다.

 

장내세균은 담즙산염 가수분해효소(BSH)와 7α-탈수산화효소 등의 효소를 이용해 1차 담즙산을 2차 담즙산으로 전환하고, 숙주가 스스로 생성하지 못하는 새로운 담즙산 대사산물까지 만들어낸다. 반대로 담즙산은 항균 작용을 통해 장내미생물의 구성과 균형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담즙산 조성이 변하면 장내미생물 생태계가 달라지고, 장내미생물의 변화는 다시 담즙산 풀(bile acid pool)의 조성을 바꾼다.


◆ 담즙산에서 성장·면역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이러한 상호작용은 임상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담즙 분비가 감소하거나 장간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소장세균과다증식(SIBO)이 발생하기 쉬워지고, 담즙산 기능의 이상은 지방 흡수장애와 지용성 비타민 결핍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장 장벽 기능까지 약화되면 내독소가 전신으로 유입되면서 저등급 만성염증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만성염증은 간에서 성장호르몬 신호전달을 방해하고 성장호르몬 저항성(GH resistance)을 유발해 성장과 조직 재생에 불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결국 담즙산은 장내미생물→장 장벽→면역계→간 대사→내분비 신호를 하나의 생리학적 축으로 잇는 핵심 매개체다.

 

이러한 관점은 성장 치료 역시 성장판이나 성장호르몬이라는 단일 요소를 넘어 소화·흡수, 장내미생물, 면역·염증, 간 대사와 내분비 신호의 상호작용을 함께 살펴야 함을 시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담(膽)을 바라보는 새로운 임상적 질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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