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서원 수원특례시한의사회장
(대한한의사협회 국제이사·경기도한의사회 국제부회장)
경기도한의사회가 대만 신죽시중의사공회와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 깊은 인상을 받았던 장면은 국의절 행사 자체였다. 대만에서는 국의절이 단순한 학술행사가 아니었다.
정부 고위 인사들이 직접 참석해 중의학의 역할을 공식적으로 치하하고, 국가 보건의료 체계 안에서 중의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실제로 라이칭더 총통이 직접 축사를 전하는 모습은 한국 의료계 입장에서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물론 대만 역시 중의학과 서양의학 간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 차원에서는 중의약을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활용 가능한 의료 자산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는 한국과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 “환자 중심”보다 직역 논리…
한국 협진의 현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접근성과 의료기술을 갖춘 국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의료 전달체계 왜곡과 지역의료 붕괴, 만성질환 증가, 초고령사회 진입이라는 구조적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최근 의료인력 문제와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의료체계의 취약성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대만 의료인들과 나눈 대화는 많은 생각거리를 남겼다. 대만은 의대·중의대·중서결합대 등을 아우르는 비교적 유연한 의료 인력 양성 체계를 통해 다양한 의료 수요에 대응하고 있었다. 서양의학과 중의학의 강점을 함께 활용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설계돼 있었고, 이는 환자 중심의 통합적 치료로 이어지고 있었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한의학은 오랜 임상 경험과 축적된 치료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도적 제한 속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감염병 대응, 공공보건, 만성질환 관리, 지역돌봄 등 한의학이 충분히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영역에서도 현실의 벽은 높다. 실제 코로나19 시기에도 한의계는 다양한 치료 경험과 임상 데이터를 축적했지만 제도적 참여는 제한적이었다.
결국 핵심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의료정책은 종종 직역 논리에 갇혀 국민 건강이라는 본래 목적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협진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제도와 규제, 정치적 논리 속에서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재택의료·돌봄·예방까지…
대만이 보여준 미래의료 중의약
대만의 사례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협진은 특정 직역의 양보나 타협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 의료체계의 방향이라는 점이다.
특히 초고령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고혈압·당뇨병·근골격계 질환·치매·우울·수면장애 등 복합 만성질환은 단순 약물 처방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방·관리·생활습관 개선·돌봄·정서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 한의학은 충분한 경쟁력과 강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대만은 중의재택의료와 장기요양 정책을 연계해 지역사회 중심 건강관리 모델을 구축하고 있었다. 중의사가 요양시설과 돌봄센터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노인 건강관리와 만성질환 관리에 참여하고 있었고, 예방 중심 건강관리 프로그램에도 적극 관여하고 있었다. 이는 한국의 통합돌봄 정책과도 충분히 연결 가능한 모델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국제 협력이다. 대만은 정치적 제약으로 인해 WHO와 WHA에 정식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염병 대응과 중의약 연구, 공공보건 데이터 축적에서 상당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의료와 보건은 인류 보편의 가치와 직결된 영역이다. 그렇기에 국제사회 역시 정치적 갈등을 넘어 보다 실질적인 보건 협력의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기도한의사회와 대만 신죽시중의사공회의 교류 역시 단순 친선 교류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재택의료, 장기요양, 학교주치의 사업, 예방 중심 건강관리 모델 등 다양한 정책 경험을 공유하며 서로 배우고 있다. 이는 향후 한국 한의약과 대만 중의약이 공동 연구와 산업 협력, 국제 보건 프로젝트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 국제 보건협력의 새로운 가능성…
한국·대만 교류의 의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선의 변화다. 이제 한의학을 ‘과거의 의료’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의학은 예방·관리·돌봄·만성질환 대응이라는 미래 의료의 핵심 과제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특히 지역사회 기반 건강관리와 재택의료, 통합돌봄 영역에서는 더 큰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필요한 것은 용기 있게 방향을 전환하는 일이다. 한의학을 배제하는 구조가 아니라 함께 활용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특정 직역을 위한 요구가 아니다. 국민 건강과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위한 시대적 과제다.
대만은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한국이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