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호 변호사
-한의사
-법무법인 율촌, 조세그룹
제마는 한의과대학 동기였던 영수가 한의원을 매물로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마는 영수가 평소 자랑하던 한의원을 매수하기로 마음먹고, 영수의 한의원을 선점하고 싶다는 생각에 가계약금 2,000만 원을 송금하고, 일주일 뒤 만나 한의원 양도양수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제마는 대형 한방병원에서 생각지도 못한 좋은 조건의 영입 제안을 받게 됐다. 제마는 고민 끝에 영수에게 연락해 한의원 양수가 힘들 것 같으니 없던 일로 하자고 하면서, 어제 보낸 가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제마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계약금의 정의와 그 법적 효과
사람들은 거래대금이 크고 체결 및 이행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계약을 하면서 대금의 일부를 ‘계약금’이라는 명목으로 주고받고 있다. 그리고, 매수인이 ‘계약금’을 매도인에게 지불하고 나면, 매도인은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하고 거래에서 이탈하여 매도를 철회하거나, 새로운 매수자를 찾아볼 수 있으며, 매수인도 ‘계약금’을 포기하면 거래에서 이탈할 수 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 그럴까?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법언이 강조하듯, 계약이 일단 성립한 뒤에는 당사자 일방이 마음대로 계약을 해제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민법 제565조가 ‘매매의 당사자 일방이 계약당시에 금전 기타 물건을 계약금, 보증금 등의 명목으로 상대방에게 교부한 때에는 당사자 간에 다른 약정이 없는 한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라 정하고 있고, 이 규정은 민법 제567조에 따라 다른 유상계약에 준용된다.
따라서 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금, 보증금 등의 명목으로 돈을 지불하면, 다른 약정이 없는 한 주된 계약에 부수하는 ‘계약금계약’이라는 종된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간주된다.
한편 계약금계약은 위 민법 규정에 따라 달리 약정하지 않는 한 양 당사자는 계약금 혹은 보증금 명목의 손해를 상대방에게 지불하고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매도인은 지급받은 계약금을 반환하면서 동액 상당의 금원을 얹어 ‘계약금의 배액’을 지불하면서, 매수인은 기 지급한 계약금을 포기하면, 계약의 이행의 착수 이전에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계약에 부수하여 체결되는 ‘계약금계약’은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늘날 거래 현실상 어느 한순간에 계약내용을 확정하는 것은 전제가 되는 사정이나 중요한 요소들이 급박하게 변경되는 오늘날의 거래현상을 볼 때 당사자가 계약을 체결하면서도 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평가된다.

계약금의 일부만을 지급하는 ‘가계약금’
앞서 설명한 계약금계약은 ‘계약금’ 또는 ‘보증금’이 지급된 후 성립되는 요물계약이다. 그러니 계약금을 전액 지불하기 전의 계약이나, 계약금 중 일부만을 지불하는 것만으로는 계약금계약이 아직 성립하지 않았다고 본다.
따라서 계약금의 일부로 지급하는 가계약금의 교부만으로는 통상 계약금계약이 체결되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특별한 약정이 없는 한 가계약금의 포기나, 가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는 것만으로는 계약이 해제되지 않고, 양 당사자는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하여 해제권을 행사하거나, 양 당사자가 합의하여 계약을 해제하기로 하면 계약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계약금계약이 체결된 경우와 달리, 이미 주고받은 가계약금의 포기나, 가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한 것만으로는 계약이 종결되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주된 계약이 종결되었다는 점에 대해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으면서, 가계약금의 귀속이나 상환 여부에 대해 아무런 합의가 없다면, 계약 해제 후 가계약금의 보유를 부당이득으로 보아 계약금 수령자가 계약금을 지불한 자에게 반환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달리 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어떨까? 양 당사자 간의 합의가 있다면, 그것이 법률상 강행규정 위반이어서 무효가 아닌 한, 그 합의가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예컨대, 가계약금은 계약금이 아니기에 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금 또는 보증금 명목의 돈을 지급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매수인은 계약금을 포기하면서, 매도인은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면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취지의 민법 제565조가 적용되지는 않는다.
다만 가계약금을 주고받기 직전에 당사자 사이에 ‘매수인은 이 가계약금을 포기하면서, 매도인은 가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면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특약이 있는 경우, 그와 같은 내용으로 체결된 당사자 간의 ‘가계약금 계약’은 당사자들을 구속하는 유효한 계약이 된다.
따라서 가계약금을 지급할 때 위와 같은 구체적인 약정을 하였다면, 그 약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반대로 가계약금을 지급하면서 가계약금의 포기나 배액 배상을 통해 계약을 무르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와 같은 내용의 합의를 사전에 하여야 한다. 가계약금을 주고받는 거래에서 장문의 문자가 오가고 그 안에 여러 합의사항이 기재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당사자 사이에 합의한 내용에 따라 처리되므로,
중요한 내용은 미리 살펴야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계약금 또는 가계약금의 지급 이후 그와 관련된 법률관계는 당사자 간의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포함한 제반 사실관계를 면밀히 따져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일례로,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계약 체결 시 계약금을 전혀 지참하지 못하여, 계약서 작성일 당일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계약금 상당의 현금보관증을 써 준 사례가 있었다.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실제 계약금을 전혀 지불하지 못하였음에도, 계약금 전액을 지급한 다음, 그 계약금 상당의 돈을 매수인이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뜻으로 현실로는 ‘현금보관증’만 교부한 사례였다.
법원은 이 사례에서 계약금이 지불된 것으로 간주하여 ‘계약금계약’의 성립을 인정했고, 계약금계약에 따라 매수인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즉, ‘계약금의 일부’ 조차 지급하지 못해 ‘현금보관증’만을 써준 사건이었지만, 계약금이 전액 지불된 채 계약금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간주하고, 약정해제권을 인정한 것이다. 즉, 현금보관증에 기재된 돈을 매도인에게 주고, 매도인은 그와 같이 받은 계약금을 되돌려 주지 않고 그대로 몰취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렇다면 글 서두의 제마는 어떻게 될까? 일단 계약금이 지불되지 않았으므로, 본 계약의 성부를 불문하고 계약금계약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이다. 만약 본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면 가계약금은 법률상 원인 없이 영수가 보유하고 있는 돈이 되므로, 제마의 청구에 따라 제마에게 돌려줘야 하는 부당이득으로 평가된다.
반면, 만약 본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본다면 제마는 가계약금의 포기만으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제시킬 수는 없으므로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영수의 한의원을 인수할 계약상 의무에 구속된다. 제마가 한의원 인수 계약을 무르려면, 영수와의 합의 하에 원만하게 없던 일로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계약금 및 가계약금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달리 처리가 될 것이므로, 계약에 임할 때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