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윤 대전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대전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날 의료 환경은 눈부시게 변하고 있다.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 환자 중심 진료 패러다임의 확산,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헬스케어의 급속한 발전은 의료인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의과대학, 치과대학, 약학대학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발 빠르게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지식 위주의 평가에서 역량 기반 평가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의과대학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으며, 한의학교육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
한의학은 수천 년의 전통을 지닌 의학이지만, 그 뿌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과학적 근거와 실질적 역량 기반 교육, 그리고 인문학적 성찰이 함께 어우러져야만 미래를 향한 발전이 가능하다.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환자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사, 그리고 다양한 전문가와 협업할 수 있는 의사를 길러내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의학교육이 지향해야 할 목표다.
한의학교육학회의 역할과 성과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2023년 출범한 한의학교육학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한의학교육학회는 한의학교육을 고민하는 교수, 연구자, 임상가, 교육 전문가들이 모여 ‘한의학교육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고자 창립된 학문 공동체이다. 학회의 탄생은 단순히 또 하나의 학술 단체가 생겼다는 의미를 넘어, 한의과대학 교육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개선하기 위한 플랫폼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창립 이후 학회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정기적으로 격월 웨비나를 개최하여 교수법 혁신, 학생 평가, 임상실습 교육 개선과 같은 현실적인 주제를 다루었고, 이를 통해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서로 공유하고 지혜를 모을 수 있었다.
2024년 여름에는 대구한의대학교에서 ‘효과적인 임상실습 교육 사례 공유’를 주제로 첫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전국의 교수와 학생이 함께 경험을 나누는 장을 마련했다.
지난 겨울에는 ‘기초한의학 교육 혁신 사례 공유’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상지대에서 개최됐다. 병리학과 해부학, 생리학, 경혈학 등의 교과에서 비교과 연계 방안과 다양한 교수법을 활용한 사례를 공유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참석자들의 토론이 이뤄졌다.
한의학교육의 개선과 혁신이라는 공통 주제하에 현장의 실제 경험이 교육 연구와 정책 논의로 이어지는 이 같은 움직임은 학회의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또한 한의학교육학회는 한의학교육학회지를 발간하여 연 3회씩 다양한 한의학교육 연구 성과를 꾸준하게 소개하고 있다. 한의학교육 연구를 선도하고 전문적인 연구의 장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의학교육학회가 그리는 미래는?
한의학교육학회가 그리는 미래는 네 가지 큰 축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교육과정의 표준화와 고도화다. 현재 대학별로 상이하게 운영되는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학습 성과를 기반으로 한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제시하는 것은 한의학교육 발전의 기초가 될 것이다.
둘째는 교육 평가의 혁신이다. 여전히 필기시험에 의존하는 현 평가 체계는 학생의 실제 역량을 반영하기 어렵다. OSCE(객관적 구조화 임상시험), 포트폴리오, 태도와 의사소통 능력을 측정하는 다양한 평가 도구를 도입함으로써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 학회는 이를 위한 연구와 적용 사례를 공유하며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평가 체계 마련에 기여하고자 한다.
셋째는 교수 역량 강화와 학생 지원 체계다. 교육 혁신은 결국 교수자의 변화와 성찰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학회는 교수법 워크숍, 교육 연구자 네트워크, 교수 역량 개선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학업 실패나 유급을 경험한 학생들이 다시 학업과 삶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체계도 중요한 과제이다. 학업 실패를 낙인으로 남기는 대신, 성장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은 한의학교육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넷째는 국제적 연대와 세계화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전통의학의 표준화와 교육 체계화를 주요 과제로 삼고 있으며, 각국은 전통의학 교육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정비하고 있다. 한의학교육학회는 이러한 국제적 흐름과 보조를 맞추어 해외 학회와의 교류를 확대하고, 한국형 한의학교육 모델을 세계 전통의학 교육의 모범으로 자리매김 시키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학문의 교류를 넘어, K-메디슨이 세계 속에서 경쟁력과 위상을 확보하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한의학교육학회가 제시하는 비전은?
물론 이러한 변화와 혁신은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라 생각한다. 한의학교육학회가 제시하는 비전은 교육 현장과 연구, 정책을 아우르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교육은 사회가 미래에 대한 투자를 실현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며, 학회는 이러한 교육의 공공적 가치를 지켜내는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한의학교육의 미래는 어느 한 대학이나 특정 연구자의 몫이 아니다. 교수와 학생, 그리고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과제이다. 한의학교육학회는 그 중심에서 한의과대학 교육의 혁신을 촉진하고, 미래 한의사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을 길러내는 데 앞장설 것이다. 오늘의 작은 실천이 내일의 큰 도약으로 이어지듯, 학회의 걸음걸음이 결국은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과 의학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