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철 교수
경희대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김호철 교수(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의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를 통해 임상 현장에서 자주 제기되는 한약의 궁금증과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최신 연구 결과와 한의학적 해석을 결합해 쉽게 설명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이 기존의 한약 지식을 새롭게 바라보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약의 효능은 기미론(氣味論)의 전통적 관점과 현대 과학적 접근(약리학, 천연물화학, 시스템 약리학)을 융합하여 이해하고 연구해야 한다.
한의사가 임상 현장에서 처방을 할 때 가끔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이 한약의 유효성분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은 전통적 한의학과 현대 과학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질문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한의학에서는 약재의 효능을 설명할 때 기미론(氣味論)을 이용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기미론이란 기(氣)와 미(味)를 통해 약재의 효능을 해석하는 이론으로, 수천 년간 한약의 효과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이었다. 그래서 많은 한의사들이 이 질문에 대해 “한약은 성분으로 치료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하곤 한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생각해보자. 기미론에서 미(味), 즉 맛은 무엇인가? 맛이란 결국 여러 성분들이 복합적으로 섞인 화학적 결과물이다. 따라서 한약의 효능을 기미론으로 설명한다 하더라도 그 근본적 바탕은 결국 성분의 복합적 작용이다.
따라서 “한약은 성분으로 치료하지 않는다”는 말은 반만 맞는 이야기일 수 있다. 실제로 한약의 효능은 성분이 존재하고, 그 성분들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인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어떤 성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확히 특정하지 못할 뿐이다.
한약 성분의 복합성과 상호작용의 중요성
현대 약리학과 천연물화학의 발전으로 한약의 성분을 더 세밀히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단일 성분이 아니라 여러 성분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약효를 나타내는 것을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마황을 예로 들면, 마황에는 에페드린(ephedrine), 슈도에페드린(pseudoephedrine), 노레페드린(norephedrine) 등 다양한 알칼로이드가 포함되어 있다. 이 성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관지 이완, 교감신경 활성화, 발한 작용 등의 다양한 효능을 나타낸다.
그런데 마황의 전통적 효능인 ‘산한해표(散寒解表)’는 이들 성분 각각의 독립적인 효능만으로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복합 성분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인삼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삼에는 약 50가지 이상의 진세노사이드(ginsenoside) 성분이 존재한다. 각각의 진세노사이드는 면역력 강화, 항염증, 항산화, 신경 보호, 피로 회복 등의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삼의 전체적인 ‘보기(補氣)’ 효능은 이 성분들의 복합적인 시너지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특정 성분 하나만으로 인삼의 효능을 대표할 수 없는 것이다. 여러 성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전체적인 효능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한약의 효능연구에서 논리적 비약의 위험성
한약의 효능을 연구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논리적 비약이다. 특정 성분이 특정 효능을 나타냈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한약 전체의 효능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오류를 범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부자에서 하이겐아민(higenamine)이라는 성분이 강심 작용을 나타내지만, 이 성분 하나만으로 부자의 전통적 효능인 온리(溫裏)를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하이겐아민의 작용이 부자의 전체 효능 중 일부일 뿐이며, 이 작용 또한 성분 간의 복합적 상호작용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약 효능 연구의 올바른 접근 방법은 개별 성분의 약리학적 작용을 규명하고, 이렇게 밝혀진 여러 성분들이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하여 전체 효능을 나타내는지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 방식을 통해 한약의 효능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체계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다.
한약의 효능을 이해하기 위한 미래연구 방향
한약의 성분 연구를 통해 효능을 밝히기 위해서는 다양한 최신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주목받는 접근법 중 하나가 시스템 약리학(system phar macology)이다. 이는 복합 성분들이 여러 표적(target)에 동시 다발적으로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규명하는 접근이다.
예를 들어 황기(Astragalus membranaceus)의 면역력 증강 효과가 아스트라갈로사이드(astragaloside)뿐 아니라 다당류(polysaccharide) 성분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여 나타난다는 연구가 있다.
이러한 현대적 접근 방식은 단일 성분의 효능 연구를 넘어서 성분 간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전체 약효로 연결되는지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생물정보학과 네트워크 약리학(network pharmacology)을 이용한 연구 역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 방법은 성분 간의 상호작용과 효능을 데이터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한약의 효능을 더욱 정확하게 규명하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결국 한약의 효능을 이해하는 최적의 방법은 개별 성분의 특성을 명확히 규명하는 것과 동시에 성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내는 전체 효능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의학의 전통적 지혜와 현대 과학적 접근이 조화를 이루며 상호 보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약의 효능 연구가 이 방향으로 발전할 때, 우리는 전통적 한의학의 가치와 현대적 과학의 정확성을 함께 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