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민 대한한의학회 국제교류이사
올해 추석은 코로나19 엔데믹 전환 후 처음으로 맞는 추석이자 6일간 이어지는 관계로 황금연휴라고도 불리는 기간이었다. 이 황금연휴에 약 30명이 넘는 한국대표단이 가족과의 시간을 반납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네덜란드로 출국했다.
바로 제36회 ICMART(International Council of Medical Acupuncture and Related Techniques, 국제 침술 협의회) 총회가 열리는 암스테르담에 가서 의학적 침술 분야의 최신 지견을 공유하고, 2024년 제주도에 열릴 차기 ICMART 총회를 홍보하기 위한 출장이었다.
ICMART는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첫 학회를 열었고, 현재는 전 세계 약 80개의 의료침술협회 및 대학과 3만5000명의 의사 회원이 가입돼 있는 기관이다. 현대의학적 침술의 활용과 연구를 통한 근거 구축을 장려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침을 사용하는 수많은 의사들이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침구 치료를 행하는 의사가 한의사인 우리나라에서는 대한한의학회가 2019년에 정식 회원학회로 가입했고, 2024년에는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한국에서 제37회 ICMART 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내년 제주도에서 열릴 37회 ICMART 총회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번 네덜란드에서 열린 36회 ICMART 총회 또한 중요한 자리였다. 올해는 ICMART 창립 40주년이자 네덜란드 의사침술협회도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기 때문에, 개막식에서는 화려한 축하 행사가 열렸고, ICMART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영상도 방영됐다. ICMART Board Member 15명 중에 ICMART 회장인 Patrick Sautreuil, 사무총장인 Konstantina Theodoratou를 포함해 거의 15명 전체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고, ‘침의 과학적 접근과 임상활용’의 저자이자 Acupuncture in Medicine 학회지의 associate editor인 Mike Cummings도 참석했다.
그리고 3일간, Novotel 호텔 컨벤션센터 내에 마련된 5개의 강의장에서는 90명 넘는 연자가 140개 이상의 세션을 준비했고, 14개의 워크샵 외에도 22개의 포스터 발표, 그리고 6명의 수의사가 침구치료 관련 발표를 진행했다. 침구치료에 치우쳐 있던 예전 총회와는 달리 이번 학회에서는 기공, 한약, 추나 등에 대한 세션도 열린 것이 흥미로웠다.
한국 연자 중에서도 사암침법학회 이정환 회장님, 상지대학교 유준상 교수님께서 사암침 관련 워크샵을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고, 대한통증진단학회 조성형 회장님, 경희대학교 남동우 교수님, 우석대학교 김경한 교수님, 주찬우 공군 의무사령부 한의진료과장은 한국에서 진행된 연구들을 소개하며 한국 한의학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전세계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침 치료라는 공통적인 관심사를 주제로 연구, 임상, 치료 등을 논한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의사들이 주로 참여하는 국제학술대회에서 한국 전통침인 사암침이 논의되고, Oriental Medicine 혹은 Chinese Medicine이 아닌 Korean Medicine이라는 이름으로 침과 관련된 지식이 공유되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필자는 침구의학과 수련의 시절이었던 2014년부터 SAR(Society of Acupuncture Research), ISCMR(International Society of Complementary Research), BAcC(British Acupuncture Council) 등 한의계 국제학술대회부터 2017년도 제주도에서 열렸던 IEEE Engineering in Medicine and Biology Society 의용생체공학 학회까지 약 10여개의 다양한 학회에 참석했다. 한의계 분야의 석학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고, 궁금한 것을 직접 물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젊은 연구원이자 대학원생이었던 필자에게 학회에 참석하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제36회 ICMART 총회에서는 전반적으로 참가자 연령층이 매우 높다는 것이 느껴졌다. 젊은 연구자가 설레는 마음으로 와서 세계 무대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세계적인 학자가 되기 위해 배워야 하는 다양한 경험 및 네트워크를 얻는 자리는 많지 않았고, 오히려 임상 경력이 많은 임상의들이 와서 최신 기술과 경험을 논하는 자리였다.
어느 학문이든 젊은 사람이 몰리는 곳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이 몰리기 위해서는 10년 후, 20년 후에도 활용 가치가 있고, 뚜렷한 비전이 제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의 의견을 듣고 공감하며 같이 미래를 그려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37회 ICMART 총회를 준비하는 대한한의학회에서는 전국 12개 한의과대학, 대학원 연구원을 대상으로 37회 ICMART 총회 주제를 공모했고, 젋은 세대의 의견을 반영해 ‘Future of Integrative Healthcare: Convergence of Acupuncture, Medical Science, and Technology(통합의료의 미래: 침, 의과학, 기술의 융합)’이라는 주제를 선정했다.
그리고 총회 마지막 날인 10월1일, 차기 총회를 홍보하는 폐막식 자리에서 내년에는 침술의 미래에 더욱 초점을 맞춰서 의과학뿐만 아니라 테크놀로지까지 적극적으로 융합한 침구 치료에 대해 논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발표됐고, 관중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황금 연휴를 반납해서가 아니라, 내년 학회 준비에 대한 설렘과 부담으로 이번 출장은 30여명의 대표단에게는 마냥 즐겁고 가벼운 여행은 아니었다. 출발하기 몇 개월 전부터 차기 국제학술대회 홍보를 위한 로고 및 홍보 동영상 제작, 브로셔 및 기념품 준비, 다양한 이벤트 구상, 메인 홈페이지 구축 등을 준비해야 했고, 내년 학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확인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타학회 임원진과 교류 협력하기 위한 사전 미팅도 준비해야 했다. 무거운 마음과 무거운 ‘짐’을 끌고 출발한 대표단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내년에 한국에서 열릴 학회에 대한 기대를 안고 조금 더 가볍게 돌아온 것 같다. 제36회 ICMART를 빛내준 대표단들에게 감사드리며, 내년 37회 제주도에서 많은 분들을 뵐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