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윤사원 선생(1937〜?)은 1974년 『醫林』 제104호에 「四物湯에 對한 小考」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한다. 이 논문은 『醫林』 100호 기념 논문 입선작으로 당선돼 실리게 된 것이었다.
윤사원 선생은 한의사로 3대를 이어온 醫家家門의 계승자다. 그는 1965년 경희대 한의대를 14회로 졸업한 후, 서울시 성동구 마장동에서 동원한의원을 개원하여 한의사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1970년 서울시한의사회 대의원으로 선임되고, 같은해에는 대한한의사협회 중앙대의원, 1971년에는 성동구한의사회 회장, 1972년 서울시한의사회 운영위원, 같은해에는 성동구보건인단체연합회 부회장, 서울시청소년선도협의회 성동지구운영위원, 제3차 세계침구학술대회 공보분과위원회 부위원장 등으로 선임돼 한의계의 사회적 공헌활동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의 논문 「四物湯에 對한 小考」는 서론, 사물탕의 사적 고찰, 사물탕의 주치와 주성분, 원방 약물에 대한 수치와 가감, 사물탕의 문헌적 고찰(의학입문·동의보감·의방집해·신농본초경), 원방의 주약물에 대하여, 치험례(2케이스), 결론의 순서로 구성돼 있다.
그는 이 논문을, 사물탕에 대한 제가의 학설들이 많고 그 作方부터 활용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주장들이 많아 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작성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사물탕을 “調益營衛, 滋養氣血하며, 衝任脈虛損, 月水不調, 臍腹疼痛, 崩中漏下, 血瘕塊硬, 胎動不安, 血下不止 及 産後乘虛, 風寒內損하여 惡露不下, 少腹堅痛, 時作寒熱을 치료하는데 사용하며 특히 婦人의 諸病과 貧血, 鬱血, 月經異常, 血崩帶下, 産前産後의 諸雜病과 諸神經症狀 등에 주로 사용되어 補血, 養血, 調血, 潤血, 和血, 淸血, 凉血 등의 治血에 효능이 있는 聖藥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윤사원 선생은 이 처방을 활용해 효험을 경험했던 두 개의 經驗醫案을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 케이스는 33세 회사원 여성의 난소기능 폐절로 인한 빈혈, 두통, 현훈, 目眩, 심계항진과 經道不順, 불면증 등을 月經過少症으로 진단해 加味四物湯 즉 당귀·천궁·숙지황·백작약 各 二錢, 향부자·현호색·官桂 各 一錢半, 구기자·목단피·건강·오수유·감초 各 一錢, 홍화 三分을 加하여 2제만에 치유한 것이다.
두 번째 케이스는 35세 가정주부로 5차례의 인공유산을 경험했으며, 월경시 출혈 다량, 빈혈, 신경과민, 사지골절 동통, 요통, 하복통, 음부의 습양생창, 음부종통. 소화불량 등의 증상을 加減膠艾四物湯 10첩으로 치료한 케이스이다. 이 처방은 당귀·천궁·숙지황·백작약 各 一錢, 애엽 五錢, 익모초 一錢, 아교주 三錢, 금은화 二錢半, 포공영·치자 各 一錢, 地楡炒黑·側柏炒黑 各 二錢半이다.
그는 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사물탕은 肝血을 조화함에 목표를 둔 것이며, 수소음심경, 소태음비경, 족궐음간경의 약으로서 心은 血을 生하고 脾는 血을 統하고 肝은 血을 藏한다. 원래 사람의 신체에 혈을 생하는 장이 三臟器가 있으니, 즉 心臟, 脾臟, 肝臟이다. 심장은 혈을 생하고 비장은 인신의 혈을 통제하고 간장은 인신의 혈을 저장하므로 심장의 血虛라든지 비장의 혈허라든지 간장의 혈허라든지 등의 구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肝臟의 血虛가 많기 때문에 혈허하면 四物湯을 주치탕으로 대개 사용하는 것이다. 요컨데 혈허라면 일반적으로 단순히 하나의 허라는 것이 아니라 남자에서는 吐血, 下血로 인해서 올 수도 있고, 여자는 産後風漏 혹은 多産에 의하여 될 수도 있으며, 또는 남녀 공히 금속기에 의한 創傷으로 인하여 失血을 많이 한다면 血虛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失血이 모두 肝臟의 혈이니 간장은 항시 혈을 저장하는 까닭이다. 그러니 사물탕이 肝臟部의 약이 되는 동시에 심장, 비장, 간장 구별없이 일체 혈허의 主方이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