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해진 래소한의원장
<우리동네한의사>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제철에 맞는 음식을 한의학적 관점으로 접근한 ‘텃밭에서 찾은 보약’을 소개합니다.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권해진 원장은 텃밭에서 가꾼 식재료를 중심으로 한의약과의 연관성 및 건강관리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거 좀 봐! 잘라서 가지고 온 건데 이렇게 크다.” “전체 크기는 어마어마하겠네! 한꺼번에 들지 못해서 서로 나눴겠네!” “한 집에서 다 못 먹을 만큼이라 나눴지. 비에 더위에 신경을 못 썼는데도 이렇게나 커 있지 뭐야. 김치도 담그고, 국도 끓여야겠다.” “이름이 ‘동아박’이라 그랬나?”
계절 가리지 않고 마트에서는 무엇이든 살 수 있습니다. 채소는 거의 텃밭에서 나오는 것을 먹는 저희 가족도 이맘때는 마트에서 장을 안 볼 수 없습니다. 김치 담글 무씨를 이제 뿌려 두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강원도 고랭지에서 온 무를 사서 김치를 담급니다. 무를 나박 썰어서 오징어젓과 김치 양념을 함께 버무리면 간단하게 무 김치가 되거든요.
“텃밭 ‘무’를 대신해 ‘동아박’으로 요리해요”

무가 텃밭에서 나오지 않는 요맘때 무를 대신하는 식재료가 있습니다. 바로 ‘동아박’이라고 불리는 동과(冬瓜)입니다. 늦여름 초가을이 수확 시기인데 ‘겨울 동(冬)’ 자가 들어가는 것에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김새를 보면 하얀 막이 박 주변에 있어서 꼭 첫서리를 맞아 겉이 얼어붙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하얗게 얼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박이다’하여 ‘동과’라고 부르지 않나 싶습니다. 한의학에서 동과의 성질은 차서 속이 냉한 자는 피하라고 하니 그 이름에 성질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맛과 요리법이 비슷한 무와 동과

이번에 어머니가 집으로 가지고 오신 동과는 전체 크기의 1/3정도입니다. 한 번씩 팔뚝만 한 동과를 가지고 오신 적은 있지만 1/3로 잘랐는데도 그 지름이 30cm나 되는 동과는 처음입니다. 동과는 박과 식물이니 호박처럼 단맛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무보다 쓴맛은 없지만, 그렇다고 달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맛입니다. 박과에 속하지만 요리하는 방법은 무와 비슷합니다. 맛도 요리법도 수분이 많은 무 같습니다.
“동과 씨로 만든 ‘동과자’, 주사비와 종기 치료에 써요”

동과에서 씨가 있는 부분은 호박을 요리할 때처럼 긁어서 제거합니다. 씨를 음식 재료로 쓰지는 않습니다. 저희는 씨를 버리지는 않고 잘 씻어서 말렸다가 다음 해에 모종을 내어 다시 동과를 기르는 데 사용합니다. 한의학에서는 동과의 씨를 말려 찧어서 황색이 될 정도로 볶아서 약재로 사용합니다. ‘동과자(冬瓜子)’라고 부르고 외용제로 주사비(코끝이 빨갛게 되는 증상)와 종기 치료 약으로도 사용합니다.

씨 제거 후 껍질은 자릅니다. 껍질도 음식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진2의 동과 껍질’을 말리면 ‘동과피(冬瓜皮)’라는 한약재가 됩니다. 호박과 마찬가지로 부종을 제거하거나 몸의 수분대사를 돕는 약재로 쓰입니다.
동과자, 동과피 모두 한의원에서 많이 쓰는 약재는 아닙니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씨와 껍질을 말리면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니 집에 두었다가 약재로 사용하기 딱 좋았을 것 같습니다. 또 씨앗 하나가 자라 주렁주렁 박이 열린다는 표현처럼 동과가 열렸을 터이니 흔히 구할 수 있어 이용하기 더욱 편했을 것 같습니다.
“소고기동과국, 무를 넣어 끓인 소고기무국처럼 시원해요”

요리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동과는 씨도 껍질도 제거하고 나박 썰기를 합니다. 그렇게 썰어두면 수분이 많은 무처럼 보입니다. 재료 준비 후 소고기와 다시마, 표고를 넣고 육수를 끓입니다. 소고기가 푹 익을 때까지 끓이다가 다시마와 버섯은 건지고 썰어둔 동과를 넣습니다. 박이 다 익은 후 채를 친 파를 넣으면 ‘소고기동과국’이 완성됩니다. ‘소고기무국’과 모양이 같습니다. 무는 끓일수록 시원한 맛이 우러나지만 동과는 너무 끓이면 모양이 흩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무를 넣은 국처럼 시원한 맛은 느낄 수 있습니다.
무김치처럼 동과를 썰어 김치도 담갔습니다. 물기가 많아 금세 물이 생기지만 맛만큼은 아삭아삭합니다. 동과는 어찌 보면 호박 같고 어찌 보면 무 같은 식재료입니다. 무가 자라 김장할 시기가 올 때까지 저희 식탁 위에는 동과가 무를 대신합니다.
연재를 마치며…
1년을 계획하고 쓰기 시작한 글이 어느새 27번째가 되었습니다. 부모가 되면 부모 마음을 헤아린다고 하는데 아이 키우느라 부모님 챙기는 것을 소홀히 했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동안 어머니와 텃밭농사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다 보니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됐습니다. 나가기 싫었던 텃밭에도 더 자주 같이 가게 되었고요. 그리고 어머니의 농사 지식으로 글이 더 풍성해졌습니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신 한의신문에,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