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안영기 회장님(사진)을 처음 뵈었을 때는 1988년 4.26총선에서 민주정의당 공천으로 제천, 단양 선거구에서 한의사 최초로 국회의원에 당선 되시고 4년의 의정활동 하신 후 1992년 재선에 도전 하셨을 때이다.
그 당시 필자가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행정을 전공하고 서울시한의사회 부회장을 역임한 후 한방의료보험 등 각종 한방의료제도 정책관련 대한한의사협회의 다양한 직함을 갖고 있을 때였으므로 국회에 한의사 국회의원이 한 분이라도 계신 것이 너무나도 절실 하였던 때였다.
만사 제쳐놓고 집행부와 함께 제천으로 선거운동 지원 차 자원봉사와 응원의 대열에 참여 하였고, 이는 한의제도 발전에 대한 열망과 안 회장님의 정치적 역량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으리라.
비록 재선에는 실패하셨지만 안 회장님의 열정적인 정치인으로서의 모습과 팔이 안으로만 굽는다는 것처럼 한의학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잊혀지지 않는다.
국회의원 당선에 앞서 1986년 3월 21일 대한한의사협회 제21대 회장으로 선출되셨고 임기 중 1987년 2월 1일 시범사업중이었던 한방의료보험사업이 전국적으로 확대 되는데 기여하셨으며 동년 6월 25일부터 3일간 롯데호텔에서 WHO침구경락경혈명 표준화 실무회의를 개최해 세계침구학 분야에서 한국 한의학이 주도적 위치에 있음을 국제적으로 부각 시키셨다.
당시 한의계에서 크게 아쉬웠던 점은 안영기 국회의원님의 정치적 역량이 출중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지원해 드릴 수 있는 한의계 내부의 싱크탱크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필자(왼쪽에서 첫번째)와 故 안영기 회장님(왼쪽에서 세번째)>
한방의료보험제도가 한의약의 학문 이론적 특성이 배제 된 채 전국적으로 확대 강제되고 타 의약단체에서는 의료일원화와 한의사제도 폐지를 공공연히 외치며, 약사의 한약취급 문제와 복지부내 한의약 전담부서 설치 문제 등 수많은 한의약제도 관련 정책 이슈가 상존했다.
하지만 한의사협회내에 이와 관련된 한의약정책 연구기관이나 연구부서도 없었으며 한의사면허를 가진 제도 및 정책 전문 연구인력이 협회는 물론 복지부에도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당시 보건복지부 당국자에 의하면 한의사가 3천명, 한의과대학생이 3천명이 있었지만 한방의료보험 도입에 관한 논문은 1편도 없었던 가운데 떼를 쓰듯이 한방의료보험도입을 주장해온 한의계 때문에 한의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공무원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한방의료보험제도를 도입시켰다는 말은 이를 잘 대변해준다.
따라서 복지부내에 서양의약 위주 전담부서와 한의사가 아닌 양방의약사 공직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한방의료제도 정책이 하나라도 온전할 수가 있었겠는가?
한의약, 한방의료제도를 집어 삼키려는 이리떼 같은 타 의약단체의 공격 속에서 국회의원이셨지만 오로지 혼자만의 정치력 역량으로 한의계를 지켜내고자 하셨으니 가히 그 고뇌와 어려웠던 상황이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안영기 회장님의 정계입문이 발단이 돼 한의계가 각종 법적 제도 정책적 시각으로 눈을 뜨게 되는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것은 지금 발전된 한의계가 누리는 과실이리라.
새삼스럽게 안 회장님의 한참 후학인 필자가 매번 명예회장협의회에 참석하신 인자하시고 환하게 웃고 계시는 생전의 모습을 기리고 생각하며 감회에 젖어 추모의 글을 올리는 바이다.
안영기 회장님! 부디 천국의 안식 누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