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3 (토)
모래시계한의원 황효정 원장
<편집자주>
지난 3월 스위스 제네바 세계보건기구(이하 WHO)에서 열린 ‘제1회 피부소외열대질환 회의’에 부룰리궤양 치료제 ‘SRM1’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황효정 원장(모래시계한의원)이 초청받아 눈길을 끌었다. 이에 본란에서는 황 원장으로부터 부룰리궤양이라는 질환 및 ‘SRM1’ 이라는 치료제 개발 동기 등에 대해 들어봤다.
Q. ‘부룰리궤양’은 어떤 질환인가?
NTDs(Neglected Tropical Diseases:소외열대질환·이하 NTD)는 전 세계 약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앓고 있으며, WHO가 우선순위로 지명하고 있는 소외열대성 질환을 말한다.
부룰리궤양은 NTD 중 하나로 나병·결핵균과 동속균인 마이코박테리움에 의해 발생하는 염증질환이다. 열대·아열대 지역 33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보고되고 있는 질환이며, 피부에 광범위하게 발생해 균이 침투하면 피하지방을 파먹고 근육과 뼈까지 파고들어가 발생 초기에는 항생제 조합요법으로 억제와 치료가 가능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체되면 절단해야 한다.
만약 절단할 수 없는 체간에 발병해 심해지게 된다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질환이다. 귀신병, 저주의 병, 살을 파먹는 질환 등으로 불리며, 최근에는 호주에서 많이 발생해 많이 알려지게 됐다.
Q. ‘SRM1’이라는 치료제를 개발했다.
그동안에는 주로 아토피 치료를 위한 약을 개발해 왔는데, 기존의 보습요법이나 청열해독, 발한요법 등으로 하는 치료가 아닌 속에서 새살이 나서 재생해 피부로 배출하는 약을 사용해 왔다. 우리 몸에는 스스로 아물고 재생하는 능력이 있는데 이 능력을 더 강화시키는 약을 개발해 주로 사용한 것이다.
이 처방을 한의원에서는 여러 가지 복합처방을 통해 응용된 것으로 사용해 왔으며, 해외에서는 허벌메디슨으로 등록하고, 또 부룰리궤양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을 위해 ‘SRM1(Skin Renewal Medicine)’이라고 이름 지어 사용하고 있다.
Q. SRM1의 치료기전은?
현대의학은 세균과의 전쟁을 벌였다. 병이 생기면 먼저 세균을 검사하고 이를 죽이는 약을 찾아 치료하려 노력해 왔지만 세균은 점점 더 강해지고 복잡해졌으며, 또 많은 변형과 함께 내성이 강해져 더 강한 약을 사용해야 했고, 그래도 안되면 절단 및 이식 등의 방법으로 치료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우리 몸은 스스로 병을 예방하고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병이 우리 몸 속에 침투했는지 우리 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또한 이 병들을 이길 수 있는 모든 능력도 가지고 있다. 이 기전을 강화시켜주면 병이 번지는 것을 차단·축소하고, 스스로 염증을 제거해 병이 깊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며, 손상된 조직이나 피부에 육아세포가 생겨나 병든 피부 및 세포를 배출하고 스스로 복원할 수 있게 한다. 이 능력을 강화시켜주는 치료제를 사용하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마이코박테리움 역시 없앨 수 있으며, 이 같은 기전을 ‘새힘시스템’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 기전을 통해 ‘SRM1’이 부룰리궤양을 치료한다.
Q. 아프리카서 부룰리궤양 퇴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굿 뉴스월드라는 의료봉사단체에서는 2008년부터 아프리카와 중미 그리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매년 의료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 와중에 2012년 당시 코트디부아르에 의료봉사팀이 구성돼 준비 중에 국내 한 언론사로부터 “코트디부아르에 부룰리궤양이 많이 퍼져있다”며 “이 질환이 아주 끔찍해서 세계에 알리고 싶어 우리 의료봉사단체에서 진료하는 모습을 취재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았다.
이 질환을 알고 보니 나병균과 같은 질병이지만 다행히 대인 감염은 되지 않았다. 다만 처음에는 너무나 무서운 질환이었기 때문에 주저했었다. 하지만 언론사에서 의료봉사팀이 봉사를 통해 환자들을 치료하는 모습 등을 꼭 담고 싶다고 해서 결국 응하게 됐다.
현지에 도착해서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환자들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현지 대학병원에 있는 환자들은 처참한 상황이었고, 또 현지 마을에 있는 환자들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궤양으로 인해 표피가 드러난 사람뿐 아니라 눈을 포함한 온몸에 질환이 발생해 구멍이 나고 많은 기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상황에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며, 돌아올 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재생약을 며칠분 주고 온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얼마 후 함께 진료했던 현지 의료진으로부터 상처가 아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우연히 치료약의 가능성을 발견해 본격적으로 부룰리궤양 치료제 개발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베냉보건부와 MOU를 맺었으며, 코트디부아르 보건부와도 MOU 등을 맺었다. 이와 함께 코트디부아르 정부가 임상시험비용을 지원해 1년 동안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었고, 올 3월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임상시험은 환부크기가 10cm 이하의 환자들을 선별해 62명의 환자들에게 적용했으며, WHO 표준치료제인 rifampicin and clarithromycin의 조합으로 치료하는 그룹과 이 약에다 ‘SRM1’을 더한 그룹을 나눠서 치료하는 비교 시험을 진행해 기존의 치료법보다 ‘SRM1’을 더해 치료한 그룹이 훨씬 치료 속도가 빠르고 상태도 개선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향후 단독으로 ‘SRM1’만을 사용하는 임상시험을 더 진행해서 ‘SRM1’이 부룰리궤양약으로 WHO에서 공식적으로 공인받는 것이 계획이자 목표다.
Q. ‘제1회 피부소외열대질환 회의’에도 참석했다.
전 세계에서 약 300여명의 관련 기관 관계자들과 학자들이 모여 글로벌 미팅을 했다. 한국에서는 제가 혼자 ‘SRM1’ 개발자로 초청돼 임상시험 참여 박사들과 발표하는 곳에 참여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저 혼자 참여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매우 영광스러웠으나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도 이제 전 세계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되고 있는 만큼 이 분야에 정부나 여러 연구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Q. 아프리카에서 수차례 의료봉사를 했다.
아프리카에 의료봉사를 가게 되면 그 사람들은 의사를 한번 만나는 것만으로 크게 고마워하고 기뻐한다. 매년 의료봉사를 가려면 보통 힘든 게 아니지만 다녀오고 나면 그 사람들의 얼굴이 맴돌곤 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의료봉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다.
앞으로는 풍토병을 치료하는 길을 열어감과 동시에 더 크게는 각 나라에 병원을 세워 한의학으로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
특히 아프리카 사람들도 우리와 동일한 질병들을 가지고 있다. 다만 여러 가지 감염에 주의해서 치료해야 하며, 이번 부룰리궤양 치료를 시작으로 앞으로 이와 비슷한 NTD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 한의학의 영역을 새롭게 확장해 갈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Q. 강조하고 싶은 말은?
우리 한의학도 이제는 새로운 세계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의학을 통해서도 염증성질환을 치료할 수 있으며, 재생의학, 예방의학, 그리고 세계보건과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앞으로는 이 길을 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우수한 미래 한의학도들이 세계로 뻗어가는 새로운 의학의 세계를 열어 미래 의학을 한의학이 주도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