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회장 장숙랑)가 지난 22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개최한 ‘일차보건의료에서의 다학제 교육과 다학제 협업: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에서 다학제 연계가 필수적인 통합돌봄 시스템에는 협업에 대한 수가 제도와 환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장숙랑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에 따라 이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시대’는 가고 ‘호모 콜라보레이트(Homo Collaborate) 시대’가 오며, 보건의료와 복지 영역에서 협력할 수 있는 전문가만이 돌봄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돌봄 전문가들과 현장의 이야기를 나눠보면 현실은 녹록지 않은데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통합돌봄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개선점을 함께 도출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거제시 재택의료센터를 이끌고 있는 방호열 원장(동방신통부부한의원)은 ‘한의 재택의료센터에서의 다학제 연계 사례’라는 주제의 발제에서 원활한 다학제 협업을 위해서는 매뉴얼 및 제도 마련을 통한 정서적 공감과 현장의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 원장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거제시는 지난해 기준 전체 인구 23만6888명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3만1054명(13.11%)으로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노인인구의 12%인 3766명은 장기요양등급자이며, 이 가운데 2565명(70%)이 재가급여 수급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방 원장의 한의원은 지난해 11월 거제시 장기요양재택의료센터(이하 센터)로 지정됐다. 센터는 보건복지부가 ‘노인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를 목표로 두고, 노인장기요양 1∼4등급자를 대상으로 한의사·양의사(1인), 간호사(1인), 사회복지사(1인)로 다학제 팀을 구성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서로 다른 직역이 동시에 한 진료실에 모여 한 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시스템인 ‘다학제 진료’는 △재택의료센터 내부 구성원 및 환자, 보호자로 이뤄진 ‘내부 다학제팀’ △외부의 협조를 받는 ‘외부 다학제팀’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특히 내·외부 다학제를 모두 포괄한 모델로 ‘지역 자원 연계를 통한 옴 감염환자 치료 사례’를 소개했다.
올해 노인장기요양기관에서 재택의료센터로 의뢰된 환자인 이씨는 2016년 자전거로 귀가 중 내리막길에서 자동차와 추돌하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전신마비(3번 경추 골절 후유증), 차상위 2종 장애, 장기요양 1등급, 심한 지체장애를 갖고 있었다. 이에 더해 옴진드기 감염에 의해 전신 소양감으로 고통받고 있었으며, 화폐상 습진 등의 다양한 피부질환과 천골 부위에 욕창이 8년째 지속(당시 4단계)되고 있는 환자였다.

센터는 지난 1월 1차 방문당시 환자상태를 보고 옴진드기 감염 건을 미해결 시 의료진, 요양보호사를 거쳐 타지역까지 전파될 수 있다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방역 및 치료 매뉴얼 구성에 착수했으며, 이후 지역 자원 연계를 통해 △피부 진료 및 자문 의뢰(피부과) △의약품 자문 및 협력(거제시약사회장) △연고 도포 및 피부간호(방문간호사) △실내방역(거제시보건소) △위생용품 및 쓰레기봉투(사등면사무소) △환자 목욕(재가노인복지센터) 지원을 통해 옴진드기를 퇴치하고, 방역을 완료했다.
이어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보건소의 장애인 재활사업을 연계한 방문진료 △방문간호를 통한 전신 연고 도포 및 보호자 교육 △한약 처방(승마갈근탕 가감 30일) 및 침치료를 실시해 2개월 만에 90%의 피부 증상이 호전됐으며, 욕창 진료를 위해 논산 대정요양병원과 서울 자연재생한의원의 자문으로 침치료 및 한약연고를 이용한 습윤밀폐드레싱 요법을 실시해 욕창도 90% 이상 호전될 수 있었다.
방 원장은 “한의원 등 일차의료에서 재택의료는 초기 시작 단계로, 대상자 31명의 다양한 질병 및 욕구를 내부 다학제팀의 역량으로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외부 전문 인력 및 기관의 협조가 절실했지만 협조 요청시 여러 이유로 거절 당하기 일수였으며, 특히 재택환자에 대해 ‘아픈 환자가 왜 집에 있어요? 입원해야지’ 등의 정서적 공감 또한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방 원장은 원활한 지역자원 연계를 위해서는 재택의료에 대한 △정서적 공감 △업무적 이해 △지역자원연계를 위한 매뉴얼 및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김동수 동신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는 ‘한의 다학제 협력 가능성’이란 주제로 발표를 통해 한의약의 특성인 통증 관리를 살려 타 보건의료 직능과의 역할을 수립할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정부의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 만성질환관리제 등의 정책이 추진되면서 지역사회에서의 일차의료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고, 이용이 확대됐다. 이에 따라 한의과 또한 ‘제4차 한의약육성발전종합계획’의 핵심정책으로 ‘한의약 중심 지역 건강복지 증진’이 계획되면서 보건복지부의 지원으로 일차의료 현장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미 일차의료에서 전통의학 및 보완대체의학(이하 TCAM)을 활용해야 한다는 이념은 오래 전부터 인식돼 왔다. 지난 1978년 소련의 알마아타에서 열린 WHO와 유니세프 공동주최의 일차보건의료 회의에서 채택된 ‘알마아타 선언’은 ‘지역과 의뢰 단계’에서 전통시술자를 활용할 것을 권고했으며, 지난 2009년 WHO 전통의학 선언에서는 일차보건의료의 활성화를 있어 전통의학이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현재 문헌상 일차의료의 통합적인 관점에서 TCAM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분야는 ‘다학제적 통증 관리’와 ‘환자 중심의 일차보건의료’로, 김 교수는 한의의 특성을 살려 통증 분야를 기반으로 환자 중심 케어를 제공하는 일차의료의 특수한 자원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생물 심리 사회학과’의 상호작용의 결과, 통증은 단일 치료로는 완화가 어려우며, 두 가지 이상의 다른 형태의 치료를 통해 부가적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환자의 선호도와 가치는 치료 순응도와 효과에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통증 관리에 통합할 필요가 있으며, 세계적인 통증 관리에 대한 통합적 접근 방식에는 종종 TCAM 치료가 포함돼 있어 다학제적 통증 관리에 한의가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하지만 일차의료 다학제의 관점에서 TCAM에 대한 명확한 역할 규정과 논의는 아직 부족하며, 특히 국내에서는 거의 진행된 바가 없기 때문에 통합돌봄에 있어 우선 타 의료직능과 통합연계시 역할모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거버넌스의 노력도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편 패널토론에서 김창오 중앙대 지역돌봄연구소장은 “정책과 제도가 의사에게 집중된 행위별 수가를 넘어 방문간호, 사회복지상담, 물리작업치료 등에 대한 수가를 인정한다면 의료기관은 재정과 시간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염은경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재택의료팀 과장은 “다학제의료에 있어 지역재원과의 연계가 활성화되려면 지역 상급병원 등과 진료 협력 의뢰시 이에 대한 수가를 마련하거나 연계에 대한 의무성을 갖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더불어 방문진료시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보건의료가 함께 기록 가능한 통합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