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일본에서 1895년 제국의회에서 한의사제도가 통과되지 못하여 서양의학 중심의 의료체계가 구축되어 한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집단의 설립의 필요성을 느낀 한방의들은 1927년 東洋和漢醫學硏究會를 결성한 이후 한방의 단체의 설립에 힘을 기울였다. 아래에 그 내용을 정리한다. (이하 潘桂娟의 『日本漢方醫學』, 中國中醫藥出版社, 1994를 참조함)
① 東洋和漢醫學硏究會: 1927년 결성되었다. 취지는 한방의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여 현대의학을 보완하는 것이다. 이 연구회에서는 한방의학에 대한 단기적 강습을 제공하는 활동을 진행하였다. 강소로 渡邊熙, 藤本豊吉, 中野康章 등이었다. 이 연구회의 학술연구에 참가하는 인물로 森田幸門, 黑川惠寬 등이 있다.
② 東洋醫道會: 1928년 동경에서 창립되어 『皇漢醫界』라는 학술잡지를 간행하였다. 발기인은 南拜山이었다. 이 모임의 종지는 한방의가들을 연합하여 한방의학을 부흥시키는 것이었다. 성립 초기에 木村博昭와 湯本求眞을 따르는 의가들을 포괄하여 시작하였다. 이외에 新妻良甫, 大塚敬節, 矢數道明 등이 이 모임의 회원이었다.
③ 皇漢醫道會: 1928년 5월 東洋醫道會에서 나온 木村博昭 등이 창립하였다. 6월에 강습소를 열어 교육에도 힘썼다. 1929년 5월에는 『醫道』라는 학술잡지를 창간하였다.
④ 東洋古醫學硏究會: 1932년 5월 湯本求眞의 문인인 佐藤省吾, 荒木性次, 大塚敬節, 山城正好 등이 창립하면서 학술잡지 『古醫道』를 창간하였다. 매달 학술토론회를 개최하였다.
⑤ 日本漢方醫學會: 1934년 3월 창립과 함께 『漢方與漢藥』이라는 월간 잡지를 창간하였다. 한방의학을 중심으로 구미의 서양의학을 연결시켜 한방의학을 부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石原保秀, 奧田謙藏, 大塚敬節, 中野康章, 栗原廣三, 矢數道明, 柳谷素靈, 安西安周, 木村長久, 木村雄四郞, 湯本求眞, 淸水藤太郞, 森田幸門 등이 중심인물이었다.
⑥ 일본의학연구회: 1935년 安西安周, 馬場和光, 內山孝一 등이 창립하였다. 1938년 『日本醫學』을 창간하였다.
⑦ 東亞醫學協會: 동아의학협회의 전신은 漢方醫學講習會로 偕行學苑이라고도 불렸다. 1935년 10월 25일 石原保秀, 大塚敬節, 矢數道明, 矢數有道, 柳谷素靈, 木村長久, 淸水藤太郞 등 7인이 한방의학의 계몽과 교육을 통해 인재를 키워 한방의학을 부흥시키기 위해서 창립하였다. 偕行學苑에서는 상한론강의(大塚敬節), 금궤요략강의(목촌장구), 후세요방석의(矢數道明), 화한약물학강의(淸水藤太郞 ), 한방의학사강의(石原保秀), 실험십사경락강의(柳谷素靈) 등으로 구성되었다. 1938년 11월 大塚敬節과 矢數道明이 중심이 되어 偕行學苑에서 시행한 한방강좌를 기초로 東亞醫學協會를 창립하여 1939년 2월에 『東亞醫學』을 창간하였다. 1940년부터 이 협회에서는 ‘漢方夏季大學’을 주관하여 척식대학 원내의 교실에서 오후6시부터 9시까지 교과과정을 진행하였다.
⑧ 千葉大學東洋醫學硏究會: 1939년 4월 千葉醫科大學 학생인 藤平健, 長濱善夫 등이 설립하였다.
⑨ 近畿漢法醫學會: 1940년 5월 中野康章이 회장을 하고, 新妻良輔, 森田幸門이 간사를 맡아 11명의 회원으로 출발하였다.
⑩ 近畿漢方醫學會: 1940년 6월 9일 中野康章 회장, 阿部博行 부회장, 森田之皓가 간사로 구성하였다.
⑪ 일본한방약제사회: 1942년 淸水藤太郞이 회장이 되어 구성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