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해진 래소한의원장
<우리동네한의사>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제철에 맞는 음식을 한의학적 관점으로 접근한 ‘텃밭에서 찾은 보약’을 소개합니다.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권해진 원장은 텃밭에서 가꾼 식재료를 중심으로 한의약과의 연관성 및 건강관리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려는지 어깨가 아프기 시작이다.” “어제 뭔가 또각또각 써는 소리가 나던데 칼질을 많이 해서 그런 거 아닐까? 팔을 아껴야지요!”
어머니는 손이 참 부지런하신 분입니다. 당신의 손은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합니다. 다행히 손가락 관절은 큰 탈이 없는데 팔과 어깨가 항상 말썽입니다. 어깨를 구성하는 회전근개는 부분파열 되어서 날이 흐리거나 팔을 많이 쓴 날에는 항상 통증이 심해집니다.
겨울 내내 땅속에 저장해둔 무로 김치를 담가요

“가을에 묻어두었던 무 캐서 왔거든. 맛있는 가을 무로 김치 담가야지!” 겨울에 땅이 얼기 전 무 묻을 땅을 팝니다. 깊으면 깊을수록 좋지만 작은 텃밭에 호미로 파니 무릎 정도 깊이밖에 안됩니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을 막기 위해 짚을 깔아주고 무를 넣어줍니다.
무청은 말려서 시래기를 만들기 위해 자르고 무의 잘린 부위가 아래를 향하게 세워서 구덩이에 넣습니다. 촘촘한 무 사이로 흙을 넣어 준 뒤 한 번 더 짚으로 덮어줍니다. 위아래 짚으로 찬 기운을 막아야 겨울 동안 무에 바람이 들지 않습니다.
짚 위로 흙을 두껍게 덮습니다. 흙을 두둑처럼 쌓은 후 겨울비가 스미지 않도록 비닐을 덮고 돌로 눌러둡니다. 무가 닿는 쪽에 비닐을 깔면 더 좋지 않겠냐고요? 공기가 통하지 않아 무가 썩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위에서 내리는 비만 피할 수 있게 겉에만 덮습니다.
새로 담근 무김치 봄처럼 상큼해요

봄이 되어 무를 꺼냅니다. 거꾸로 넣어두었던 무인데도 신기하게 싹이 돋아나 있습니다. 그렇게 싹이 돋은 무는 먹지 않고 그대로 무 전체를 다시 심습니다. 그러면 봄에 무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그 씨를 채종해서 가을에 뿌려 김장무를 수확하지요. 김장 담그고 남은 무는 또 땅에 묻어둡니다. 그렇게 무는 한 해를 또 순환합니다.
꺼낸 무 중 채종할 것을 빼고는 모두 김치를 담급니다. 땅에서 겨울을 보낸 무는 빨리 먹지 않으면 바람이 잘 듭니다. 그래서 서둘러 김치를 담급니다. 깨끗하게 씻은 후 한입 크기로 나박썰기를 합니다. 소금을 뿌려서 절인 후 채에 밭쳐 물을 뺍니다. 고춧가루를 넣어 색을 낸 다음 새우젓, 액젖, 마늘, 생강, 고추청을 넣고 쪽파와 깨소금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익은 김장김치를 먹다가 새로 담근 무김치를 먹는 기분은 봄처럼 상큼합니다.
추운 겨울에도 죽지 않고 싹 틔우는 쪽파

김치 담그는 데 쓰이는 마늘, 생강, 고춧가루 등 재료야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양념입니다. 그런데 쪽파는 어디서 구했을까요? 이것 또한 가을 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겨울을 났습니다.
지난 김장 때 쪽파를 일부 캐내고 일부는 낙엽을 덮어둡니다. 쪽파 뿌리가 얼지 않도록, 잎은 낙엽이 아무리 보온 효과를 주더라도 추운 겨울에는 얼었다가 시들고 합니다. 하지만 뿌리는 살아서 날이 조금만 풀려도 새로운 싹이 올라옵니다. 낙엽 사이사이로 쪽파의 새로운 싹이 고개를 내밀면 진짜 봄이 온 겁니다. 그리고 그때쯤 낙엽을 한쪽으로 치워줍니다. 그 낙엽은 잘 발효시켜 거름으로 씁니다.
감기 걸렸을 때 발한약의 보조 역할을 하는 파

그렇게 어린 쪽파는 겨울을 견디고 커서인지 달달한 맛이 납니다. ‘움 속에 자란 파’라는 의미로 겨울을 난 파를 ‘움파’라고 부릅니다. 따로 이름이 있을 정도니 예전부터 그 맛을 인정받은 겨울을 난 파입니다. 파는 ‘총백’이라는 이름으로 『동의보감』 같은 의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 땀을 낼 목적의 발한약(發汗藥)에 사용되지만 발한의 주된 약재는 아니고 다른 약들의 보조 역할을 합니다.
겨울을 견디고 단단해져서인지 파는 다듬기 쉽진 않지만 잘 까서 무김치에 넣고 남은 것은 가지런히 해서 파전을 부칩니다. 밀가루 또는 쌀가루에 물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합니다. 취향에 따라 새우, 오징어, 홍합 등을 넣어도 좋습니다. 꽃망울을 시기하는 봄비가 오면 날은 차가워져도 파전의 따뜻함은 즐길 수 있습니다.
농사는 기다림, 텃밭의 봄을 기다립니다

초봄 텃밭을 둘러보게 하는 무, 파, 시금치, 양파까지 모두 겨울을 잘 보내주어서 고맙습니다. 이제 모두 캐내고 땅 정리를 하고 거름도 좀 뿌려두고 봄비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가끔은 3월말에 서리가 오니 그 서리가 지나고 감자를 심을까 합니다. 밭을 기다리는 모종도 잘 가꾸어 두었습니다. 아이들은 개학을 하고 학교 적응을 한창 하고 있을 시점이지만 텃밭은 아직 새로운 시작을 하려면 날이 더 따뜻해져야 합니다. 농사는 기다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