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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의 한의학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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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의 한의학 <12>

자연은 하나가 아니다 III

김태호01.jpg

 

김태우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하나가 아닌 자연, 다중의 몸, 복수의 세계

 

하나가 아닌 자연에 대한 논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다자연주의(multinaturalism), 다중의 몸(body multiple), 복수의 세계(pluriverse), 비서구의 자연 이해(ex. Buen Vivir), 가이아(Gaia), 양자역학의 자연(ex. agential realism) 등 자연의 복수성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전 세계적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1). 

 

이것은 지금까지 하나의 자연에 억눌려 있던 자연“들”이 기후위기를 맞아 분출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국내에 번역된 『바디 멀티플』(2022)과 『플루리버스』(2022)는 이러한 분출물의 일부이다2). 각각 유럽에서의 연구와 남미에서의 연구를 주로 논하고 있지만, 두 책이 공히 하나가 아님을 강조하는 용어를(다중을 의미하는 멀티플(multiple)과 복수를 의미하는 플루럴(plural)의 첫머리를) 제목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 분출의 양상을 보여준다. 

 

네덜란드 병원에서 인류학적 현장연구를 통해 서양의학이 다루고 있는 실재를 연구한 『바디 멀티플』은, 표준화된 몸을 강조하는 서양의학에서도 몸의 존재적 토대가 하나가 아님을, 즉 다중의 몸(the body multiple)임을 보여주고 있다. 플루리버스는 하나의(uni-)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에 대비시켜, 신조어인 플루리버스(pluri-verse)를 통해 하나가 아닌 복수(plural)의 세계와 그 가능성을 논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있던 개발, 성장, 발전에 연루된 하나의 세계 너머의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김태우(교체사진).jpg


자연이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하나가 아닌 자연과 복수의 세계에 대한 이러한 논의들은, 자연과 세계를 다시 보기 위한 운동이다. 기후위기는, 그동안 주된 위치를 점하던 자연의 이해에 오해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 오해의 정도만큼 기후 문제는 위기로, 재난으로 다가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근대 이후 인류가 당연시했던 관점들, 특히 이용 가능한 자연, 개발 가능한 자연, 그래서 쓰고 버릴 수 있는 대상으로 이루어진 자연, 인간과 별무관계에 있는 자연에 대한 이해의 방식은, 기후위기 시대에 특히 뼈아픈 대목이다. 이러한 오해의 극복으로서 자연“들”에 대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자연“들”에 대한 논의는 단지 자연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자연을 대하는 인간들의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인간이 인간 밖을 대하는 방식이 자연에 대한 이해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한 방식을 논의함으로써 기후위기와 연결된 자연 이해의 방식, 기후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자연 이해의 방식에 대해 고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고찰은 단지 고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생각과 실천으로 이어진다.

 

자연이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또한 자연과 관계되어 있는 인간도 바뀐다. 자연(自然)에서 자연(nature)으로의 변화에 동반된(<인류세의 한의학> 이전 연재글 <8> “자연(自然)과 자연(nature)” 참조), 동아시아에서의 상전벽해의 변화가 비근하면서도 거대한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백 여 년의 시간이 지나고, 일상이 된 생활 속에서 이제 우리는 그때의 뽕나무 밭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지금의 기후위기는 일상이 된 자연(nature)과 그 자연의 이해를 돌아보게 한다. 


개별주의 자연 이해와 자연을 대하는 특정 방식

 

 

근대 이후의 주도적 자연 이해는 뉴턴물리학과 깊은 관계가 있다. 뉴턴물리학은 단지 과학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즉, 인간이 인간 밖을 대하는 방식에 깊이 관여했다. 뉴턴물리학이 전제하는 것은 “개별주의”이다3). 인간 밖 세계에 있는 대상들은 일정한 특성을 가지고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물체들이다. 

그 물체의 성질, 운동,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과학의 작업이었다. 측정값을 통해 자연을 반영하는 인간은 물체와, 또한 그 물체들의 조합인 자연과 분리되어 존재한다. 뉴턴물리학을 통해서 인간과 자연은 분리되며, 또한 이 근현대를 주도한 과학 패러다임을 통해, 규정가능성이라는, 인간이 인간 밖을 대하는 특정 방식이 당연시 된다. 

 

통상 프린키피아라고 불리는 뉴턴의 대표 저작은, 원제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이다. 당시에는 과학이라는 말 대신 ‘자연철학’을 사용하였고, 그 책은 자연에 대한 이해를 수학적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뒤집어보면, 자연에 대한 이해는 수학적으로 규정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에 대한 명확한 수학적 설명은 당시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고, 서구 유럽을 계몽주의로 이끈다(뉴턴은 과학자이기도 하지만, 세계철학사에서는 계몽주의의 시작을 이끈 철학자로서의 입지도 분명하다). 계몽주의(Enlightenment)는 말 그대로 밝힐 수 (En-lighten) 있음(-ment)을 고무한다. 어두운 부문을 밝혀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 근대라는 시대의 시대정신이었다. 

 

밝힐 수 있음이 고무하는 계몽주의 정신을 통해 인류는 많은 것을 생산했다. 하지만 그 발전이 위기로 전변하고 있으며, 지금의 자연은 수학 공식으로 확실히 규정할 수 없는 자연이다. 자연은 규정을 비켜가고, 예외의 과학이 오늘날의 과학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얼마나 규칙을 잘 파악하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예외를 예측할 것인가가 기후 과학의 과제가 되었다(<인류세의 한의학> 이전 연재글 <12> “자연은 하나가 아니다 II” 참조). 


자연“들”과 자연/인간 관계“들”

 

복수의 자연“들”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그 차이가 드러난다. 지금 우리가 일상으로 알고, 대하고, 이용하는 자연(nature)은 분리된 자연이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의 내용이 분리다. 하지만 이 자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양자역학이 전제하는 자연은 이와 다르다. 양자역학에서 자연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측정자와 측정대상의 관계가 분리불가하다는 것이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관계다. 그 관계에 의해 측정값도 측정자의 존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양자역학에서는 자연의 대상물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과학의 작업이 될 수 없다. 뉴턴물리학의 자연은 이와 다르다. 측정대상(자연)과 측정자(인간)는 분리되어 있다. 고유한 특징이 내재하는 측정대상은, 측정자의 측정을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다. 뉴턴 과학의 패러다임이 전제하는 “자연”이 여전히 주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양자역학과 같은 비근대과학은, 자연에 대한 이해가 하나가 아니며, 그 복수의 자연이해를 통해 지금의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복수의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기후는 변화하는데, 생각은 변하지 않고 행동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재앙이다. 땜질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 먼저 생각, 말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 가진 생각과 사용하는 말의 의미를 짚어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당연시 되는 지금의 자연(nature)을 돌아보고, 다양한 자연“들”의 가능성을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한의학과 한의학에 내재한 자연에 대한 이해는, 복수의 자연“들”에 대한 논의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예를 들면, 자연에 대한 지금의 주된 이해의 관점에서는, 기후(氣候)라는 말이 날씨에도 사용되고 몸에도 사용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인류세의 한의학> 이전 연재글 <3> “기후의 의미” 참조). 바람[風], 추위[寒], 혹서[暑], 습기[濕], 건조[燥], 열기[火]라는 기후의 양상이 몸 안의 상황을 말할 때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현재 주도적 위치에 있는 자연 개념에서는 불가능하다. 몸과 자연이 육기(六氣)와 같은 한의학의 주요 개념을 통해 연결된다는 것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연과 몸에 대한 이해는 기후위기 시대에 확장된 함의를 가진다. 한의학의 내용들은 지금 봇물을 이루고 있는 복수의 자연 논의에 기여할 수 있다.


1) 부엔 비비르(Buen vivir)는 인간과 자연, 존재들 사이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남아메리카 기원의 사유의 방식이다. 행위적 실재론(agential realism)에 관해서는, <인류세의 한의학> 이전 연재글 <5> “환경위기와 천인상응” 참조. 

 

2) 아네마리 몰(2022) 『바디 멀티플』 (송은주·임소연 역)과 아르투로 에스코바르(2022) 『플루리버스』 (박정원·엄경용 역) 참조.

 

3) 여기서 “개별주의”는 캐런 버라드(Karen Barad 2007)의 『우주 중간에서 만나기(Meeting the Universe Halfway)』에서 인용한 표현이다. 버라드는 뉴턴물리학의 자연 이해, 세계 이해를 표현하기 위해 “개별주의(individualism),” “개별주의의 형이상학metaphysics of individualism)”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글의 후반부에서 제시하는 뉴턴물리학의 자연이해와 양자역학의 자연이해의 대비는 버라드의 저서에서 논의하고 있는 내용임을 밝힌다. 

김태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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