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서경
원광대학교 한의학과 본과 4학년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학생회연합 소속 한의대 학생들에게 학업 및 대학 생활의 이야기를 듣는 ‘한의대에 안부를 묻다’를 게재한다. 이번 호에서는 신서경 원광대 한의학과 4학년의 기고문을 소개한다.
원광대학교 본과 4학년은 세 팀으로 나뉘어 전주, 익산, 광주에 있는 대학 한방병원을 돌아가며 각각 두 달씩 총 6개월간의 실습을 수행한다. 글을 쓰는 시점으로 실습을 마치기까지 한 달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19란 특수 상황 아래 병원 실습을 돌며 생각하고 느꼈던 점을 기록하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고자 한다.
◇ 코로나19로 실습 한 달간 취소
병원 실습이 시작되기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략 이주 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과 단체 메신저를 통해 코로나19로 한 달간 병원 실습을 하지 않는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첫 실습이 광주 한방병원이었던 학생들은 실습 일정에 맞춰 계약한 방을 취소하거나, 거주하지 않으면서 거주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광주에는 학생들의 거주 지역이 애매한지라 각 턴의 학생들이 모여 광주에서 6개월간 방 계약을 맺고 각 턴을 돌아가며 월세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첫 턴이 광주인 학우들의 사정으로 팀이 깨지기도 하고, 계약을 걸어놓고 일방적으로 취소하여 광주 일대 부동산 업계에서 원광대학교 학생에 대한 평판이 나빠졌다는 말도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불가피하게 취소된 실습이지만 그에 따른 불이익이 고스란히 학생에게 전가된 상황은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 환자들 직접 대면 경험 대체 불가능
병원 실습을 다니며 레지던트 선생님들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교육과정 중 병동에서 환자들을 직접 대면하고 차트를 작성하거나, 교수님의 감독 하에 치료를 직접 해보는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병원의 병동 실습이 취소됐으며, 학생들의 병동 출입도 금지됐다.
본과 3학년까지의 학교 수업이야 온라인으로 진행해도 지식을 습득하는 면에선 별다른 문제가 없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학우들 간의 인간적인 교류도 이루어지는 등 온라인 대체가 가능했다. 하지만 환자들을 직접 대면하는 경험을 대체하기란 불가능했다. 환자를 직접 볼 수 없으니 학생들끼리 가상의 환자를 만들어 진료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만, 진짜 환자와 환자인 척 하는 학우를 진단하는 건 차이가 크다. 교수님의 진료 참관에서 학생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게 서서 교수님의 퍼포먼스를 지켜보는 것뿐이다. 교수님의 진료가 끝나면 교수님께 질문할 수도 있고, 환자에 대해 조원들과 토론을 할 수도 있으나 환자들이 많아 교수님이 바쁘시면 그럴 틈도 없었다.
능동적으로 환자에게 다가가고, 이야기를 나누고, 진맥하고, 진단하고, 직접 치료도 수행해보는 것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실망이 컸다. 병동 실습이 있었다면 어느 정도는 가능했을 일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실습생들의 능동적인 교육의 기회가 많이 축소된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 자율성·다양성 높은 게 한의치료의 매력
교수님들의 진료를 참관하다 보면, 교수님 개인별로 진료 스타일이 다 다르다. 맥진하는 교수님, 전혀 하지 않는 교수님, 환자가 하는 말을 다 들어주고, 친절하고 다정하게 상담해주는 교수님, 다소 강압적으로 환자의 부차적인 말을 허용하지 않는 교수님, 치료에 대한 불안과 불만에 대해(예를 들어 “침 맞고 더 아파졌어요”라고 주장하는 환자) 조목조목 설명하고 후속 조치를 제시해주는 교수님, 그건 치료에 대한 결과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고 돌려보내는 교수님, 한방변증을 사용하는 교수님, 거의 쓰지 않는 교수님, 진단기기를 개발해 사용하는 교수님, 진단기기를 전혀 쓰지 않는 교수님... 교수님마다 진단 방법의 특색과 개성이 뚜렷했다.
치료 방법도 달랐다. 환자에게 침을 놓는다는 것 자체는 같고, 교수님마다 겹치는 혈자리도 꽤 있으나 혈위 선정 방식은 꽤 다른 편이었다. 경락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경혈 자체를 정하고 놓기도 하고, 압통점 같은 아시혈, 통증 유발점, 초음파를 통해 실시간으로 도침 지점을 정하기도 한다. 신경전도 검사를 통해 자침 부위를 정하는 예도 있었다. 뜸의 경우도 향기가 나는 뜸, 일반 뜸, 해외 신제품 뜸, 전자뜸 등 다양한 뜸이 있었다. 질문해본 바로 뜸 종류와 상관없이 청구되는 가격은 같은 듯했다.
또한 병원의 분과를 돌다 보면 증상이나 병명이 같은 환자인데 교수님마다 치료하는 방식이 다른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같은 부위의 마비가 있는 ‘벨마비’(Bell’s palsy) 환자인데 자침 부위나 사용하는 침의 종류와 수가 달랐고, 사혈 여부가 달랐고, 약침 사용 여부·종류, TENS 사용 여부 등이 달랐다.
이는 부정적으로 보면 진단방법과 치료방식이 일관적이지 않고 다소 중구난방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그만큼 진료와 치료에 대한 한의사의 자율성이 높고, 다양한 방식의 진단 및 치료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변화를 만들고자하는 한의사 많아”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로 ‘대한민국이 안 망하는 이유’란 제목의 게시글을 본 적이 있다. 3시간에 걸쳐 동네 도로변의 쓰레기를 청소한 게시글에 ‘꼭 이런 놈들 때문에 이놈의 나라가 안 망하고 버티는 거임. 좀 이기적으로 살면 안 되냐?’는 댓글이 있었다.
내게 그 댓글을 단 사람과 비슷한 마음이 들게 하는 교수님, 레지던트 선생님, 직원이 있었다. 수가를 받을 수 없는 진단기기를 공부하고 진료에 사용하거나, 다른 분야의 지식을 한의학에 접목해 진단과 치료에 응용하거나,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하거나, 학생에게 관심을 가지고 세세하게 지도하거나, 꾸준히 열의를 갖고 환자들을 대하는 모습 등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한의학을 배웠거나, 한의계 종사자라면 한번쯤은 문제의식을 가졌을 다양한 문제-교육, 정책, 지원, 인식, 한의학 자체-들 때문에 한의학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거나, 한의계의 전망이 어둡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뭔가가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 세상에서 한의사가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한의계를 그렇게 비관적으로 전망하기엔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아직 그 성과를 판단할 수는 없으나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고, 병원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시설이나 제도의 한계를 갖는 병원에서도 이럴진대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로컬에선 더하리란 기대감마저 든다. 아직 실습을 돌지 않은 학생이라면 본과 4학년 때의 실습을 기대해도 될 듯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이 덜할 후배들은 훨씬 더 양질의 실습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