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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여의도책방-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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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여의도책방-26

아프니까 청춘이다 vs 외로우니까 노인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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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대선은 결국 양강 세력의 총합이 동원된 전쟁이었다.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하는 5년만에 돌아온 전국민 참여 빅이벤트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미래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논쟁은 실종된 채, 영끌을 해서라도 한 표라도 더 모아보겠다는 다양한 갈라치기만이 살아숨쉬는 생명력을 발휘하고 말았다. 남녀별, 나이별, 지역별로 양분되어 그 어느 타협으로도 화합될 수 없는 거대한 분열과 갈등의 용광로. 한남충, 김치녀, 된장녀, 페미해충, 맘충, 급식충, 절라디언, 멍청도 등등 남녀를 나누고 세대를 가르며 지역을 비하하고 철학과 취향마저 시비의 대상이 되어버린 평상시의 온라인 혐오 표현들이 대선기간에는 정치라는 바람을 타고 더 구체화되고 더 악랄해졌다. 

 

사그라들지 않는 인종차별주의(racism)와 백인우월주의(white supremacy)로 몸살을 앓는 오늘날의 미국을 떠올리면 민주주의가 대세일수록 이러한 다양한 혐오 현상은 집단화-종교화의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정착하여 깊숙하고 든든한 뿌리를 내리는 듯하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틀딱이라는 멸칭을 듣는다거나 20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일베충이라는 의심을 받는다거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을 읽었다는 게시물을 올리자마자 페미니스트라며 욕댓글로 도배가 된다거나 하는 등의 이 특정 계층에 대한 집단적인 번롱(飜弄)의 문화는 너무도 비이성적이고 무자비하며 폭력적이다. 무조건적인 찬양 그리고 반대를 위한 반대로 극명하게 나뉜 팬덤(fandom)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어느 한 쪽이 정권을 잡게 되면 여야의 공수가 정확하게 교대되는 것이다. 이러한 롤플레잉 게임을 반복적으로 관전해야 하는 한 국민의 입장에서 말화살과 삿대질만 난무하는 정치뉴스는 실로 엄청난 스트레스다. 

 

대선 후 이어지는 분열 양상…미래의 모습은?

정신을 차려 선거결과를 살펴보니 이러한 분열양상은 이전보다 더욱 선명해졌다. 당분간은 새 정부가 새 희망을 심어주길 응원하면서도 이러한 과격한 사회갈등의 불씨가 좀 더 생산적인 에너지로 재생산될 순 없을까 하는 낭만적인 상상도 해보게 되지만 실현 불가능한 헛꿈으로 끝날 가능성이 거의 100프로에 가깝다. 최근 몇 달간 대선뉴스에의 과몰입으로 피곤했었다며 이제 슬슬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들을 건네는 요즈음이다. 유달리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넘치는 너그러움을 과시하시는 분들과 그간 미뤄뒀던 새벽수영이나 다시 하겠다는 결심을 드러내시는 분들을 통해 그들의 지지성향을 스르륵 눈치챌 수 있었다. 연일 30만명 전후를 오르내리는 코로나 확진자 그래프와 이에 따른 강제적 한시적 재택근무 확대로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분들로부터 뭔지 모를 조심스러움과 민감함을 느낀다. 지속되는 칼바람에 봄날의 들뜸마저 잠시 움츠러든다. 

 

귀갓길에 마주치는 대형 전광판에는 서울시의 다양한 복지에 관련된 광고가 자주 상영되곤 한다. 그 광고의 주인공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 빌라에 거주 중인 김일인씨다. 갑자기 허리를 다쳐 옴짝달싹할 수 없을 때 자치구를 통해 미리 신청해두면 병원동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따뜻한 내용이다. 씽글벙글서울(1in.seoul.go.kr)은 서울시에 거주하는 1인 가구를 위한 플랫폼으로 상담·행사·소모임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 주거상담, 심리상담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년째 지속되고 있는 이 시점에 국민들 10명 중 2∼3명은 외로움과 고립감을 심하게 느꼈다고 한다. 혼밥, 혼술, 혼영, 혼여 등 “나혼자 산다”의 펜데믹 솔로는 엔데믹의 시대가 오더라도 주된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잡을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로 인한 고독사회 도래…종식 이후에도 지속 

가족을 이루든 그렇지 못하든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외로움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겠지만 고독사회에 대한 독특한 대처방법들에 관련된 다른 나라들의 뉴스를 접하며 어쩌면 대한민국에서는 예능프로에서나 가능한 일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뉴스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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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외로움 담당장관’ 생겼다』(중앙일보, 김성탁 기자, 2018.1.18.) 사회적 단절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를 근거로 메이 총리는 당시 체육시민사회 장관을 ‘외로움 담당장관’으로 겸직 임명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75세 이상의 절반이 혼자 살며 이들 중 상당수가 1주일이 지나도록 타인들과 아무런 교류가 없이 지내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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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를 원하면 이쪽으로”... 외로움 해결하는 프랑스 계산대』(조선일보,송주상 기자, 2022. 2. 20.) 프랑스 대형마트에 수다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계산대가 등장했다. 일명 블라블라 계산대(Blablabla Caisse)다. 고객이 직원과 아무런 제한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날씨, 이슈 등 가벼운 주제에 관해 몇 마디만 하고 지나가는 고객이 대부분이지만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노인들과 혼자 사는 청년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으며 상품 계산만을 원하는 고객들은 일반 계산대를 이용하면 되므로 별다른 혼란은 없다. 

 

외로움 담당장관이나 수다를 나눌 수 있는 계산대를 따로 설치하는 것은 국내 정서상 쉽게 용납되기 어려운, 아니 어렵다기보다는 상당히 오글거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세대간 혹은 동일한 세대 안에서도 너무도 다른 수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냉정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청년 세대나 노인 세대를 통크고 너그럽게 포용할 사회적 안전장치가 그 무엇보다도 시급해 보인다. OECD 회원국 중 수년째 꼴찌를 차지한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내 코가 석자’라는 생존 우선의 본능에 따른 이 시대 젊은층의 절박함을, OECD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를 차지한 65세 이상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노인 자살율은 어르신들의 처참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호모 저스티스』,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새로운 가난이 온다』의 저자인 정치철학자 김만권 선생이 모 방송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동네의원이나 한의원에 1500원 내고 들르시는 어르신들이 그 병원에 들러서 의료진들과 대화를 나누는 행위는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사회적 접촉일 수도 있다. 며칠만에 겨우겨우 혼자만의 공간을 벗어나 타인과 교류하는 중요한 순간일 수도 있으니 그분들에게 좀 더 친절을 베풀어 주시라. 이런 의미에서 동네 개원가의 그 많은 선생님들은 노인 복지에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신 셈이다.”

 

동네의원 찾는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관심 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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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원을 손에 들고 주 6회 들르시는 어르신들에게 매번 친절과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많은 인내와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다. 드라마 『내과 박원장』에 등장하신 어르신들처럼 사탕이나 커피 그리고 냉난방 시설 때문에 은행 들르듯 가까운 병의원을 찾는 경우 또한 많은 것이 현실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다정한 대화를 건네는 습관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각자의 진료실은 또 다른 차원의 특별한 에너지로 가득찰 수도 있지 않을까?! 

 

컬럼비아대 메디컬센터의 정신의학 교수인 저자는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여러 사례를 목격하며 의학적 치료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요인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일상에서 베푸는 작은 친절, 가족과 이웃 및 공동체 안에서의 긴밀한 유대, 일과 인간관계에서의 긍정적인 경험, 목표 의식 등 다정함의 과학과 건강의 사회적 의미를 탐구한 『다정함의 과학』(켈리 하딩, 더퀘스트, 2022년 1월)이란 책을 읽어내려가며 ‘실력이 살포시 모자라더라도 이보다 더 다정할 수 없는 한의사의 반열에만 올라도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겠구먼..’이라는 행복한 그림을 잠시나마 그려볼 수 있었다. 

 

 

 

 

의사로서 내가 진심으로 충격받은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진료실과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한 사람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에 10∼20퍼센트밖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전체 인구의 건강과 복지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신의학 관계자인 게리 벨킨(Gary Bellkin) 박사는 계속해서 모든 의료서비스와 자원을 진료소나 병원에만 집중시키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했다. 인생과 정신 건강의 99.99퍼센트는 병원 밖에서 일어난다. 

 

내과 전문의 조지 엥겔(George Engel) 박사는 확립된 생체의학 모델의 관념은 이 분야의 ‘심각한 결함’이며 인간의 건강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충고했다. 불완전한 진리가 위험한 정설로 채택된 것이다. 

 

건강의 본질적인 요소는 의학서적이 아닌 사람들 간의 일상적인 관계에 있다. 우리가 의학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건강이 신체에 국한되지 않으며 전반적인 사회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친밀한 일대일 유대관계는 우리 건강에 가장 중요한 숨은 요인이다. 

 

성인이라면 전체론적 동양의학에서 유래한 ‘마음챙김’ 기법이 자기 연민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서양의학이 정신과 신체 사이의 연관성을 서서히 인식하는 단계라면, 동양의학은 오래 전부터 그것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많은 동양의 관습에서 질병은 에너지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생명력을 신체 건강의 한 부분으로 여겼다. 중국에서는 이 생명력을 ‘기’라고 부른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끊임없이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신체에만 중점을 두는 서양의학에서는 이런 관점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의대를 다니던 시절 중국 전통의학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 있다. 회의적인 마음으로 강연을 들었다. 흥미로운 내용이긴 했지만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의사는 아픈 환자들의 에너지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했다. 2000년대 초반 당시 나는 이것이 기이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서양의학의 인간 생리학과 동양의학의 오래된 이론과 실천을 결합할 수 있는 틀이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서양의 의사들에게 터무니없게 들렸던 동양의학은 사실 신경면역체계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양의학에서 우리는 이제 막 자율적이고 내분비적인 기능을 통해 신경체계와 면역체계 사이의 양방향 소통을 이해하는 흥미로운 새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인생에서 지속되는 즐거움은 우리가 서로에게 잘 대해줄 때만 발생한다. 건강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 속에 숨어 있다. 사랑이 마법처럼 발진을 사라지게 하거나 부러진 뼈를 붙여주거나 암을 낫게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사랑은 건강의 숨은 배경이며, 모든 신체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한다. 숨은 요인들의 파급 효과를 살펴보며 이제 우리는 친절함과 유대감이 질병을 예방하고 아픈 정도를 감소시킨다는 것을 안다. 


관절가동범위의 제한과 야간 통증을 겸비한 어깨 통증으로 거의 반년을 고생하던 속기사 한 분이 3주 전에 나를 찾아왔다. 운동과는 거리가 먼 깡마른 체형의 소유자로 병원을 방문하는 것조차 겁을 내고 있었다. 외상으로 인한 발병이 아니더라도 파열, 석회, 염증 등에 대한 영상 진단이 필요하니 내 치료를 받으면서 정형외과 의사의 소견도 참고하자고 했다. 다행히 다섯 번의 치료를 이어가는 동안 야간 통증도 완화되고 신전시의 각도도 개선됐다. 

 

그 사이 근처 통증크리닉에서 충돌증후군 진단을 받고 주사치료를 한 번 받게 되었는데 주사 부위가 너무 아파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고 한다.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통증이 살짝 덜해진 느낌이 들었지만 다시는 주사를 못 맞을 것 같아서 두 번째 외래방문에서 추가적인 주사는 거부하고 회사 안에 있는 한의원에서 침치료를 받으면서 필요할 때 진통제만 복용하고 싶다고 했더니 의사가 본인이 의도하는 치료를 따라오지 않으려면 다른 병원 알아보라고 매몰차게 말하는 통에 그냥 그 길로 병원을 나왔다고 한다. 아마도 한의원 치료를 하고 싶다는 환자의 말에 의사는 빈정이 상했을 게 분명하다(“침 같은 거 맞고 다니려면 내 병원은 오지 마시오!!!”). 


환자 입장에 대한 세심한 경청…치료의 시작

젤리 하딩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부분의 현대의학 전공자들은 한의학이 터무니없고 기이하며 흥미롭지만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환자를 두 번 진료한 의사 또한 침치료로 이러한 질환을 호전시킬 수는 없다고 장담하고 있을 것이다.

유명한 병원과 대단한 의사들을 만나고도 반복되는 호전-악화로 고생하던 만성적 어깨통증 환자들을 많이 만났다. 의미있는 호전례들을 많이 경험한 터라 이번 환자에게도 동일한 치료를 적용해보려고 한다. 과정은 위태위태 하더라도 결과는 해피엔딩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자가 운동과 장시간의 타이핑이 필수적인 직업적 특성상 그에 따르는 유의사항도 보다 자세히 설명할 것이며 환자 입장에서의 걱정과 예후에 대한 궁금증에 관하여 그녀의 이야기를 다정하게 경청할 것이다. 

 

“순간이 영원이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그 영원이라고 믿었던 순간은 금세 허무하게 지나가기도 하고 또 다른 벅찬 순간이 혹은 절망적인 순간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그냥 운명적인 그런 짧은 순간들이 모여 영원이 되는 것이다.” 『다정함의 과학』이라는 책 전체를 관통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이다. 절망적인 순간은 순간으로 벅찬 순간은 영원으로! 순간은 영원으로 영원은 순간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동감의 절정! 봄이다! 생명이다! 

신미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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