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국가가 환자에게 한방 또는 양방이든 적합한 치료법을 지정해 줍니다. 한의사도 그런 시대를 대비해야 합니다."
이선동 전 상지대 한의대 교수가 지난 13일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에서 '한의계의 현실 및 발전방안'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 전 교수는 대한예방한의학회 회장을 역임한데 이어 하버드대학교와 미시간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연구했고, 150여 편의 예방의학 및 양생학 관련 논문을 비롯해 한의대 교과서, 한약 독성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바 있다.
현재 영등포구에서 행파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학계에 있다 현장에서 진료해보니 큰 변화가 필요해 보였다"며 "발전방안이 한의협 정책에 반영됐으면 하는 마음에 강의를 진행하게 됐다"고 전했다.
◇"변증론치 한계, 표준화가 핵심"
이 전 교수는 한의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핵심 키워드로 '표준화'를 꼽았다. 한의계가 환자들로부터 얻는 불신은 한의사마다 각기 다른 치료법에 있는 만큼 ‘증후’를 병으로 보는 '변증론치(辨證論治)'가 한계라고 진단했다. 질병이 아닌 증후를 치료하다보니 한의사마다 비방(秘方), 통치방(通治方) 등이 혼재하고 치료 방향과 접근이 전부 달라 통일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에서 분석해보니 건선이라는 하나의 증후에 따른 변증은 443개나 있는데 이 말대로라면 한의사가 하나의 치료를 위해 이러한 변증을 다 고찰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며 "증후를 치료한단 것은 사실상 질병개념의 부재를 의미한다. 통계에 기반해 질병과 관련된 증상을 직접 분류해 통일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증후가 아닌 '질병' 중심의 통계기반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체계적인 분류 과정을 거친 뒤 질병 중심의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나 허브를 만들어 공유할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객관적인 데이터를 축적하면 한의학의 강점 분야를 개척하기도 쉬워질 거라는 주장이다.
그는 "중국은 중의우세병종이라고 해서 환자가 치료를 받을 때, 중의약으로 하면 치료가 더 잘되는 질병들에 대한 연구가 이미 진행됐다"며 "이러한 기준에 따라 이 질병은 한방, 저 질병은 양방(서의우세병종) 이런 식으로 지정을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통 대상포진에 걸리면 양방 병원에 입원하고 항생제를 복용해야 치료할 수 있다고 알고들 있을 것"이라며 "예전에 대상 포진 환자가 온 적이 있는데 대상포진이 중의우세병종에 들어있어 한의학적으로 깨끗하게 치료를 한 경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관습대로 치료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데이터를 축적한 뒤 기준에 따라 치료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현재 한의원에서 근골격계 위주로 치료하고 있지만 의외로 중의우세병종에 한의사들이 치료하지 않는 질병들이 많았다"며 "내과, 피부과, 심지어 감염병조차 포함돼 있었다"고 강조했다.
◇증상→질병, 개인→전체, 비법→공유로
이 전 교수는 한의계 발전방향에 대해 이렇게 증상보다는 ‘질병’, 개인보다 ‘전체’, 과거보다 코로나19 이후를 내다보는 ‘미래 지향적’, 경험보다 ‘표준화 및 평준화’, 주관성보다 ‘근거나 통계’, 비법보다는 ‘공개나 공유’를 지향할 것을 제안했다.
이외에도 한의 치료가 고비용이라는 데서 오는 환자들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장성 강화, 공공성 제고가 핵심으로 표준비용을 제시하는 등 제도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약 부작용 및 독성과 관련해서는 “안전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데서 기인하는 것”이라며 “정부와 한의계가 연구를 통해 근거를 확보하고 선제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서양의학의 가장 큰 문제는 치료약이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습진, 건선, 백반증 등 피부질환을 살펴보면 병은 다 다르지만 약은 결국 스테로이드”라며 “그런데 한의에는 약이 있다. 관건은 독성인데 의료는 원래 리스크를 동반하는 만큼 인정할 부분을 인정하고 한의사가 전문성에 근거해 한약을 처방하고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과거의 관습적 의료에서 나아가기 위한 현대 의료기기 사용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