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론’의 허구를 걷어내고 보니 기존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의학이었다. ‘상한론’이란 ‘환자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의 변화를 관찰하여 기록한 임상진료 기록서’였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처절하게 기록한 임상노트였던 것이다.”
최근 ‘임상 상한론(상한론의 정신질환 및 난치성질환 적용과 실제)’를 펴낸 노영범 한의사.
그가 한의학에 몸을 담은 지 약 40년, ‘치료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이란 일념 하나로 임상에 몰두한지도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의학을 접하지 못하며 많은 좌절도 겪었지만 ‘상한론’을 접한 순간 한의학의 뿌리를 찾고 싶고 한의학의 기원을 갈구하던 그의 꿈을 실현시켜줄 책이란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단다.
그러나 ‘상한론’을 제대로 해석해 임상에서 적용하기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상한론’에도 허구와 억측이 난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일본의가인 요시마스토도의 약징과 복진이라 할 수 있다.
“저 역시 한때 진단을 약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상한론을 임상에 적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고 원했던 임상 결과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한의학의 기원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했다.
그동안의 모든 학문적 행로를 문제의 인식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상한론’의 허구를 걷어내고 보니 기존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의학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한론’은 질병발생 당시의 원인을 인체가 반응하는 패턴에 따라 7가지 변병으로 진단하는 제강으로 구성된 구조였으며 질병 발생과 주소증을 야기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나열한 것이 조문으로 구성된 의학서였던 것이다.
“사람을 알게 되고, 질병의 근원적인 원인을 알아내어 근본적인 치유를 실행하는 모든 방법이 ‘상한론’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굳이 현대적인 언어로 구사한다면 ‘원인치유의학’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노영범 한의사는 김경일 교수와 함께 2015년 ‘상한론 원본에 실린 고문자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역사 속의 변환과정을 검증해 ’고석본‘이라는 방식으로 ’상한론-고문자적 번역과 해석‘을 펴낸 바 있다.
그리고 당시 그는 고문자적 해석을 바탕으로 ‘상한론’의 임상 실제 출간을 약속했으며 마침내 이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지난 3년 간 임상 경험상 고문자적 고석을 통한 언어학적 해석과 실제 임상을 바탕으로 한 해석과는 약간의 괴리감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고문자적 고석이 없었다면 한 글자 한 글자의 근거도 불분명할뿐더러 완전한 해석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더구나 실제 임상에서도 완벽한 결과를 도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상한론’ 전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고문자적 해석의 방법론에 의해 코드가 달라진 것을 새삼 실감했다. ‘상한론’이 환자를 중심으로 추상적인 내용은 배제하고 철저하게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상태를 표현한 문헌이며 쓰여진 한 글자 한 글자가 환자의 상태를 압축해서 기록한 처절한 임상진료 기록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상한론’의 고문자적 해석을 바탕으로 임상에서 실제로 체득한 것을 다시금 이 시대에 재현하는 것이 ‘상한론’의 완성이라는 것.
그래서 이번에 펴낸 ‘임상 상한론’은 ‘상한론-고문자적 번역과 해석’에 임상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진료한 치열한 임상 기록을 원문과 함께 기록했다.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자 했다. ‘상한론’에 드리워진 모든 허상을 제거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전달하고자 했다. 모르는 부분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존재할 것이고 향후에 추적도 가능할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채워주면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상한론’ 최초 저술 시기에 기록한 것으로 여겨지는 15자행만 임상적 해석을 진행했다.
후세 의가들의 찬입이라 여겨지는 14자행과 13자행은 과감하게 배제시켰다.
또 15자행도 임상에서 체득하지 못한 것은 임상적 해설도 유보했으며 임상적 해설을 하고 임상사례가 없는 경우 또는 심증은 가나 구체적인 사례가 확실치 않은 케이스는 임상치험례를 기록하지 않았다.
개인적 의견을 피력할 필요가 없는 내용들은 가감 없이 그대로 인용을 했으며 논문 내용, 책의 일부분, 발표 자료 등에서 이 책 내용과 일맥상통하다고 인정이 되는 부분은 출처를 정확하게 밝혔다.
특히 이번 ‘임상 상한론’은 현대의학의 가장 큰 과제이자 난제인 ‘정신질환 및 난치성 질환’에 적용한 실제 치유 사례를 중심으로 집필됐다는 점이다.
“한의학은 전체과학이며 전인적 치료에 장점이 있다. 그래서 만성질환, 면역질환, 기능적 질환 특히 신경정신과 질환 치유에 강점이 많다. 양의학의 장점, 한의학의 장점들을 극대화해 서로가 인정한 대등한 상태에서 통합 의료를 실현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의학의 모델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상한론’은 내향적 원인으로 인한 모든 질환에 장점이 매우 많다. 질병을 야기한 몸과 마음의 현상들만 제거한다면 그 어떤 질환도 접근이 가능하고 치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상한의학’이 가진 큰 강점이다. 현대의학에서 어렵게 느끼는 정신의학을 ‘상한론’으로 한의학에서 해결해 나간다면 한의학의 우월성은 입증될 것이고 양의학과 대등한 의학이 될 것이며 한의학의 미래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 책에서는 ‘상한론’의 심리적 분석을 위한 시도로 매슬로우의 동기 이론과의 접목을 시도한 점도 주목된다.
“‘상한론’은 인간의 질병 발생 원인을 추적한 의학서다. 그렇다면 질병을 야기한 행위를 분석해야 되고 그 행위 이면에 깔린 동기를 추적해야 근원적인 원인 추적과 치유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질병 발생 당시에 외부 자극이나 역동이 주어졌을 때 개체에 따라서 반응하는 패턴이 구분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상한론’의 변병진단체계와 매슬로우의 동기 이론과의 접목을 시도한 이유다.”
‘임상 상한론’에서는 변병진단과 동기이론을 연계시켜 실제적으로 임상에서 적용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이론을 전개하는 동시에 ‘상한론’을 바탕으로 정신질환을 치유하는 치료과정(진단, 치유, 적응, 훈습의 4단계 프로토콜)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미비하고 미완성된 부분들이 많아 보인다는 노영범 한의사.
그는 앞으로 부록의 성격을 띤 임상사례집을 별도로 출간할 계획으로 임상사례의 부족한 부분은 이 별책을 참고해줄 것을 당부했다.
“내가 꿈꾸었던 꿈들은 ‘상한론’의 진실을 밝혀내 한의학도 치료의학임을 천명하고 싶었다. 아직도 ‘상한론’에 드리워진 허상을 보고서 혹세무민하는 부류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수많은 동료 한의사들에게 한의학의 뿌리는 ‘상한론’이며 ‘상한론’은 몸과 마음의 질병의 원인을 치유하는 의학서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러한 의학의 근거를 가지고 학문적 완성을 이뤄 임상적 데이터를 구축해 우월감에 젖어있는 양의학에 한의학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구제해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고 싶었다. 특히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환자들에게는 유일한 해결책이 되는 의학이 되기를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