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한의대생들이 바라보는 ‘한의학’에 대한 인식과 함께 미래 한의학의 발전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보았다.
곽미주 동의대 한의과대학(본과3)
한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설렘을 안고 학교에 입학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한의학 서적들로 가득한 나의 책장을 보며 지난 5년 동안 한의학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낯선 한문이 가득한 책들이었지만 열심히 읽어보려고 고군분투했던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어느새 빨라진 독해 속도만큼이나 한의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커진 것 같다. 이렇게 한의학 책들을 읽으면서 환자를 잘 치료했던 많은 사례들의 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했다는 것을 느꼈다.
호전되는 방향으로 나가려면 환자 마음에 깊이 공감하는 것이 중요
특히 만성화된 병증이나 난치병 혹은 현대에 들어 증가하는 정신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는 환자, 더 나아가 사람에 대해 잘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병만 잘 치료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도 했었지만 완치가 힘들 때 증상을 완화하고 호전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환자의 마음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의대 시절 배웠던 동양철학, 의철학, 경전강독, 의학윤리와 같은 수업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또한 예과 시절 때 밤새워 읽었던 다양한 문학, 철학, 사회과학 책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점점 실용주의적, 물질주의적 가치를 좇는 분위기 속에서 한의사로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올바른 윤리정신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사상과 관점을 배우면서 사고의 틀과 포용력을 넓히고, 사람들의 깊은 내면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특히 내가 평소에 좋아했던 생철학과 실존주의를 접하면서 아픈 사람들이 주어진 삶의 시간동안 최대한 행복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인지 환자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한의학이 참으로 소중한 학문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독서 토론 모임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소통하면서 뜻깊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이처럼 임상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지는 않아도 의철학, 맹자, 주역, 논어 등의 동양 철학과 인문학 과목은 한의사로서 참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깨달음을 주었다.
하지만 의료분야에서 인문학에 대한 가치가 점점 경시되고 ‘진료만 잘하면 된다’ 와 같은 실질적인 결과만 추구하거나 상업적인 분위기만 중시되어 기술로서의 의료만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약간의 안타까움도 있다. 점점 상업화되고 기술이 추구되는 사회 속에서 인문학적인 가치, 사람을 아는 가치도 함께 끌어안는 한의학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매일 동의의료원을 지나며 몸이 아픈 환자 분들을 보면서 한번 뿐인 인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다니던 진료소에서 친해진 할머니 와 함께 얘기를 나누면서 건강이 안 좋아서 불편함이 많지만 그래도 침을 맞으면 낫는 것 같다고 하셔서 뿌듯할 때도 있다.
아픔 속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많은 분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싶고 한의학적 치료가 그 분들에게 희망이 되면 좋을 것이다.
한의학의 바탕이 되는 철학의 근본에는 ‘인류애’ 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한의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사람 냄새 나는 의술을 펼치기 위해 힘쓰고 싶다. 가까운 지인 중에 대장암 2기 진단을 받고 고된 항암치료를 받으신 분이 있다. 하지만 경제적 형편으로 인해 치료 와중에도 직장에 다녀야 하는 사정이 매우 안타까웠다.
각박한 사회 현실 속에서 한의학, 약자들을 도울 수 있는 희망으로
이처럼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마땅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생계를 책임져야 해서 건강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의사라면 막중한 책임감과 윤리의식, 그리고 끊임없는 자아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한의학적 진단과 치료에 동양철학의 정신이 깔려있듯이, 많은 이들을 사랑하고 의료 앞에 차별이 없기를 바라는 가치를 한의학을 통해 실현해보고 싶다. 또한 각박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현실 속에서 한의학이 약자들을 도울 수 있는 희망이 되도록 힘쓸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내게 인류애라는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준 고마운 학문, 한의학. 항상 그 근본에는 사람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삶이라는 축복을 누리지 못한 채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 더불어 우리 주변의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사회의 아픈 현실도 개선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