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욱 박사

기사입력 2010.07.20 09:44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B0022010072035061-2.jpg

    B0022010072035060-1.jpg

    최근 학문에 대한 융·복합 연구가 새로운 트랜드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신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과학기술원 의과학대학원을 졸업한 한의사가 한의학을 중심으로 다학제 연구에 나서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그 주인공 전종욱 박사를 만나 그가 걸어온 길과 향후 연구계획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한의대 졸업 후 KAIST 의과학대학원에 진학한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황우석 박사 쇼크였습니다. 로컬 임상의로 있으면서 당시 온 나라를 뒤흔든 세계적 과학 스캔들에 대해 어떠한 가치 판단도, 정보 처리도 할 수 없이 망연히 관망할 수밖에 없는 저 자신과 주변의 모습에 무력감이 들었습니다. 이대로는 아무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메인스트림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획득하지 못하면 깊은 골짜기 속의 메아리처럼 허망할 뿐이란 자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다음해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과정을 알게 되었고, 지체 없이 지원서를 냈습니다. 물론 배경 지식이 얇은 저로서 생경한 현대과학의 세계로의 진입에 대한 부담감이 따라다녔고, 30대 후반의 나이에 젊고 머리 좋은 학생들과 혹독한 실험실 생활을 함께 해내기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사적으로 한의과대학에서 동학들과 함께 말과 행동으로 보여 왔던 자신과의 약속에 대한 책임감, 또 그간 거쳐 온 배움의 역정을 어떻게든 완결하고 마무리해야겠다, 그래서 나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야겠다는 내면의 요청 등이 ‘지금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것’이란 판단을 하게 했습니다.”

    - 최근 박사학위 취득논문이 SCI급 저널에 게재됐습니다.

    “박사 학위 논문은 ‘패장초의 HUVEC 셀에 대한 혈관신생효과’ 연구 결과로 제출했고, ‘Microvascular Research’라는 동 분야에서 인지도가 높은 국제 저널(IF 3.0)에 최종 게재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 결과는 특허 출원도 동시에 완료했습니다. 이전에도 다양한 세포실험과 동물실험의 공동저자로 참여한 3~4편의 논문이 국제저널에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음양곽의 HT1080 육종세포에 대한 항암효과’에 대한 후속 연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실험실에서 했던 일이 주로 다양한 동물모델로 혈관 신생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경험 위에서 ‘만일 그런 동물 모델에 한약을 처리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이번 논문은 한약 중에서 상처 치유·보혈 생혈·항염증 기능이 있다고 인정되는 몇 가지 약재를 세포실험을 통해 스크리닝한 후 혈관내피세포의 증식활동이나 운동성 등도 비교 실험했습니다.
    그 중 가장 효과가 좋은 패장초를 선택해 동물실험을 진행한 것이죠. 원래 패장초는 장중경 시대부터 ‘의이인부자패장산’이라는 이름의 처방이 알려져 있듯이 배농활혈의 효능이 탁월했으므로 상처 치유와 혈관신생 효과가 있을법함은 자연스런 추측이었지요. 이런 바탕 위에서 동물실험은 저희 랩에서 잘 세팅되어 있는 마우스의 하지허혈모델을 이용한 생체 광학영상을 사용했습니다.
    한약으로 국제저널에 논문을 내는 데는 여러 가지 애로점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이 토로되는 점이 애초의 조추출물(crude extract)로 실험을 할 때 특정 효능이 있는 듯하다가 점점 더 분획하여 내려가는(narrow -down) 실험과정에서 최초의 효력이 희미해지거나, 또는 기대하던 것과 다른 결과가 나타나거나 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난점을 보완하기에 매우 유용한 실험이 바로 동물실험에서 총체적 재생 정도를 정량하는 것인데, 약물의 분자적 구조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반복가능성과 정량화라는 과학적 기준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논문이 한약실험에서의 난점과 그 보완책을 제시한 것이 인정받은 측면이 매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특정 약물 하나의 효능을 이야기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한약 연구 전반에서의 새로운 연구 툴의 제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향후 다른 한약 실험에도 적용되어 파급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큽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분자레벨까지 확인된 화합물이 제시되어야 더 좋은 저널에 갈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약효가 임상적·경험적으로 알려진 수많은 한약과 약용식물의 쓰임새를 확대하고 과학적 베이스를 확대하는데, 현재로서 생체 광학영상만큼 효과적인 툴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KAIST에서 한의학에 대한 인식은 어떻습니까?
    “KAIST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 중 한약에 포함되어 있는 어떤 성분으로 실험한 경우는 다수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한의학’은 배제된 것으로 봐야겠지요.
    KAIST에서 한의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지난 2008년 거액의 기부를 하신 류근철 박사님 덕택에 신뢰와 존경의 이미지가 형성돼 있다고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교내에 있는 류근철 클리닉도 개원돼 무료로 학생들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KAIST 내의 한의사들(9명)은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한 분의 선택이 KAIST 전체로 하여금 한의학을 더 가까이, 또 호의적으로 다가가는데 큰 역할을 한 셈이지요.”
    박사님께서 속한 실험실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 랩은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에 소속된 세포신호전달 및 생체영상 랩으로, 바이오인포매틱스 분야를 비롯 세포신호전달, 동물의 뇌와 혈관의 광학영상 분야, 그리고 병원과 연계한 환자 임상실험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연구실입니다.
    저는 한의사이면서 또 그 이전에는 한문을 서당교육으로 집중 수학한 바 있어, 동료 연구자들과는 좀 색다른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지도교수님의 맞춤형 지도와 상당히 자유로운 실험실의 연구 분위기 속에서 비교적 잘 적응을 할 수 있었고 한의학에서의 응용법을 함께 고민하기도 하면서 무사히 과정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런 연구실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동료연구자와 함께 한의학고전의 텍스트마이닝(Text Mining)을 통해 병증-약재 특이도 통계프로그램 같은 결과도 낼 수 있었습니다.”

    - ‘임원경제지’ 번역사업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임원경제지’는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산 정약용과 버금가는 조선의 대학자 서유구 선생이 기록한 책으로,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도 있는 중요한 서적입니다. 그동안 국가적 차원의 번역 시도가 몇 차례 있었으나, 실용과학에 사용되는 한문언어의 난해성 때문에 번번이 포기해야만 했던 서물입니다.
    이 난공불락의 ‘임원경제지’ 완역에 도전한 이들이 저도 소속돼 있는 임원경제연구소(소장 정명현)의 젊은 학자들이었습니다. 반드시 번역되어야 할 고전이라는 사실 확인과 소명 의식만으로 우직한 도전을 시작한 8년이 지난 지금, 우여곡절 끝에 50여명의 연구자들이 초벌 번역, 교열회의 등의 과정을 거치며 ‘임원경제지’ 대부분을 완역한 상태입니다.
    저는 ‘임원경제지’의 의학 분야의 번역 책임을 맡았습니다. 총 16개 분야 중 ‘보양지( 養志)’라는 예방의학개념 분야와 ‘인제지(仁濟志)’라는 본격 치료의학 분야 등 2분야가 한의학 관련 분야입니다.
    특히 ‘인제지’는 규모와 분량으로 보면 동의보감을 넘어서는 111만여자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명청(明淸)대의 주요 의서들인 본초강목, 경악전서, 의종금감, 도서집성, 임증지남 등을 집중 인용하는 등 동의보감 이후 동아시아의 의학적 성취를 다시 한 번 집대성한 대작입니다. 헌데 현실은 일반은 물론 한의학도에게도 이런 거질의 존재 그 자체도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지곡서당과 도올서원에서 한문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은 한의사로서 이 일은 운명과 같은 과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의학이 한국전통문화 전반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름해 볼 수도 있고, 임원경제지 번역사업 전체와 맞물려 세부적 단위에서 한국의 문화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의학 관련 병증-한약(단미)-처방의 통계프로그램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임원경제연구소에서는 단순히 한문을 현대어로 옮기는 작업을 번역이라 하지 않습니다. 내용 자체가 한문 읽기로서는 파악이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이므로 축자적 번역으로는 일단 소통이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한문 전문가와 해당 실무 분야의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학제간 공동번역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또 지속적으로 해당분야의 전공지식을 습득해가면서 문자 속에 들어있는 당시의 모습을 하나하나 그려내는 연구 자세를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일반 대중이나 청소년들이 볼 수 있는 책으로 가공하기 위해서는 수천장의 삽화나 컴퓨터그래픽을 창조해내야 합니다. 저희는 ‘그림도 번역이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모든 자료는 한 눈에 쉽게 파악이 되도록 그림으로 구현하여 독자의 이해를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인제지’의 번역본을 실험실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들여다보고 있었지요. 헌데 프로그래밍이 전문인 랩 동료 이정설 연구원이 지나가다 좀 이상한 책을 보고 있는 저에게 묻더라고요.
    “그게 무슨 책이죠?/ 이거 한의학 책이다.”, “다들 이렇게 공부하는가요?/ 다들 이렇게 공부하지.”, “다 일정한 패턴이 있는데, 그림 하나로 압축하면 안되나요?/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다 되지요.”
    이렇게 두 사람의 공동연구가 시작됐습니다(그림 1-1, 1-2). 일단 원본 텍스트에 나온 병증, 약재를 프로그래밍으로 각각의 리스트를 만들어 분류한 다음 약 5000가지의 처방 속에 그 병증이나 약재가 출현하는 각각의 빈도, 공통빈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통계수치인 특이도(specificity, p<0.01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함)를 순차적으로 계산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온 최종 결과가 그림 2-1이고 조금 확대한 것이 2-2, 그리고 이 그림을 원천으로 각 약재별·각 병증별로 구체적 결과물을 뽑아내면 소갈의 예(그림 2-3)와 같은 데이터를 얻게 됩니다.
    이로써 우리는 소갈에 가장 특이도가 높은 약재는 맥문동· 생지황·천화분·과루근임을 알 수 있는 거죠. 이와 같은 데이터로 실험연구의 전단계로서 모든 약재와 병증 간 가장 특이도가 높은 조합을 미리 스크리닝할 수 있게 됩니다.
    이와 병행하여 한의학의 기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약대(藥對) 개념도 통계적으로 구현해 보았습니다. 개념을 조금 더 일반화하여 처방 속에서 하나의 약재와 다른 약재가 동시에 출현하는 양상, 즉 커플링을 고려해 보았습니다.
    X-Y축에 모든 약재를 놓고 함께 출현하는 정도를 보면 3-1 그림처럼 대각선으로 나누어 동일한 그림이 나타나는데, 이 중 p<0.01인 경우를 모아 전체 커플링 그림을 그리면 3-2와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이를 바탕으로 특정 병증에서 가장 동시 출현의 빈도가 높은 약재들 조합을 뽑아내게 되면, 임상에서 약재끼리의 시너지효과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통계적 근거를 마련해 줍니다(그림 3-3).
    지면으로 상세한 전달을 하기에 제약을 느낍니다만, 앞으로 더 구체적인 작업이 진행될 것이고 논문이나 특허 등의 결과물도 조만간 나올 것입니다. 이번 공동연구는 여러모로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다른 연구 분야의 전문가와 협력작업을 촉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마인드로 다가가야 할지, 성공적 결과를 위해 준비할 것이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 한의학 발전을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일단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든 논의가 다 일부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나서도, 추가로 부족 부분이 아직 너무 많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단적으로 ‘총체적 역량’의 부족인데, 이건 방법이 없습니다. 우선 총체적으로 부족한 현실을 자각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런 자각이 있고서야 서로간의 이해가 생기고, 이해가 생기는 곳에서 협동이 싹틉니다. 이것은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대목입니다.
    해서 저는 발전을 위해 선행될 것이 무엇이냐를 입으로 말하기보다, 나름대로 스스로 발전의 모델을 하나 구현해 내고 이를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꾸준히 살찌워 가는 과정으로 저의 인생을 채워나가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든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발전모델을 하나하나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필요한 시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발전의 모델은 이미 제시했다시피 한의학고전-IT-BT가 삼위일체로 결합해서 함께 전진하는 모습입니다.”

    -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이처럼 일견 성격이 좀 다른 일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만 결국 이런 일이 통합적·유기적·효율적으로 진행되어야만 앞으로의 시대에 한의학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모든 일이 더욱 전문화·세분화 되는 추세가 계속되겠지만, 그와 동시에 여러 분야의 일을 함께 통합하고 조율하는 융·복합 프로젝트의 요구 또한 거세질 것입니다. 한의학은 본디 융·복합 학문이지만, 현대의 첨단 IT·BT 분야의 성과와의 접목에도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고 그런 방향에서 기회가 올 것입니다.
    물론 당대에 혹 큰 성과를 내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한의학의 발전에 의미가 있는 일임을 인정하는 후배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난다면 한의학의 또 다른 물줄기 하나가 형성되리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미래에는 더욱 정보가 밀집되고 빨라져서 누군가는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을 한의학 분야에서 성취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 때에 그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미력하지만 그 이전에도 이런 시도를 했던 선배들이 있었고 그 도약판 위에서 그런 놀라운 성공이 가능했다는 역사의 상식이 증명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backward top home